날이 좀 풀리나 싶다가도 좀처럼 한기가 가시질 않는다. 아직은 얼음이 녹지 않는 겨울, 온기를 지닌 노래 다섯 곡을 소개한다.
1. Hoody – Baby Oh Baby Remix (Feat. Cokejazz, 이다흰)
https://www.youtube.com/watch?v=vmqxboWJ-Fo
짝사랑을 시작한 여자는 로맨스 드라마의 각본가가 된다. 집필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하루에 세 번 이상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살핀다. 사진을 바꾸지는 않았는지, 프로필 문구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 과정에서 둘만이 알고 있는 콘텐츠를 발견하는 순간 각본 집필 과정의 속도는 두 배로 빨라진다. 그리고는 소셜 미디어 연구 과정에 돌입한다. 스크롤을 잔뜩 내려가며 그 사람의 아카이브를 확인한다. 교우 관계부터 이성 목록까지 상대방을 중심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를 머릿속에 그려 넣는다. 어쩌다 최신 포스팅에 걸린 태그로 다른 이성이 레이더에 걸리면 그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소위 말하는 파도타기를 시작한다.
“Baby Oh Baby”를 듣다 보면 오래전 겨울, 짝사랑이 떠오른다. 그 사람의 모습, 그를 향한 마음보다는 말 한마디에 설레 연극 한 편을 짜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짝사랑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몰입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 노래를 듣다 보면 괜히 짝사랑이 하고 싶어진다. 달짝지근한 Hoody의 목소리와 Cokejazz의 몽롱한 기타 선율이 마음을 더 들뜨게 하는지도. 원곡도 좋지만, Cokejazz와 이다흰이 참여한 리믹스 버전을 더 자주 찾는다.
글 / 윤지현, Carhartt WIP 마케팅 매니저
2. Shook – Time Runners
나는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즐거운 기억이 많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러나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Shook의 “Time Runners”는 당시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내가 매일 경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준 곡이다. 늦은 저녁, 적막한 탄천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는 하루의 피로를 덜어주었다. 그의 내한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터라 곧 들려온 내한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졌고,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즐겼다. “Time Runners”는 작년의 따스함을 간직한, 몸서리치는 겨울을 잠시라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손난로 같은 곡이다.
글 / 한준기, 레트로웨이브 러버
3. Outkast – Prototype
집에서 칠(Chill)할 때는 주로 몸과 마음에 안정을 주는 음악을 듣는다. 특히 요즘은 애플 뮤직이 월 10불에 제공하는 ‘맞춤형 플레이리스트’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올 겨울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은 Outkast의 “Prototype”이다. 물방울이 터지는 듯한 베이스와 함께 흘러나오는 “Think I’m in love… again…” 훅 파트는 아련하다 못해 가끔은 짠할 때가 있다. 아 아련한 사랑의 기억…
글 / 오문택, 스케이터
4. Khruangbin – A Calf Born in Winter
나는 음악에 특별한 계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음악이라도 여름 나무 그늘서는 산들바람이고,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는 나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까지 데워주는 난로가 된다. “A Calf born in Winter”는 내가 즐겨 듣는 컴필레이션 앨범 시리즈 [Late Night Tales]의 ‘Bonobo’편에 수록되어 있다. 텍사스 쓰리-피스 밴드, Khruangbin은 타이 훵(Thai Funk)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조화로운 그룹이다. 그들은 포근하면서도 시원한 기타로 나의 피로한 정신을 마사지하듯 풀어준다. 이 곡은 내가 우울할 때 말없이 안아주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길 한복판에서 나를 더 멀리,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끄는 안내자다.
글 / CIFIKA , 프로듀서
https://www.youtube.com/watch?v=cr6UNeRuU3w
나는 작년 7월,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그리고 아직 이별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사실 올해만 해도 벌써 구정을 넘어가는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남들 눈에는 지지리 궁상으로 보이겠다만, 어떤 부정도, 긍정도 하고 싶지 않다. 가슴 정 가운데를 크게 가로질러 간 상처는 아마 눈을 감는 순간까지 또렷하게 남아있겠지.
다행스럽게도 시기적절하게 공개된 이센스(E-Sens)의 “비행”은 내 마음을 식혀주는 진정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린다든가 헤어짐의 아픔을 노래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깊숙이 자신을 돌아본 만큼, 나 역시도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서브 컬처의 일원으로 이제는 멀어져 버린 양복 차림 친구들과의 괴리감. 나이 서른 먹고 새삼 앞으로는 무엇을 목표로 살아갈 것이냐는 고민. “비행”은 처음 음원이 공개되자마자 내려받아 지금껏 내 휴대전화에서 ‘많이 재생한 음악 25’를 벗어난 적이 없다.
나는 비흡연자다. 따라서 그 조용한 5분의 시간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대신 조금 멍하게 울려 퍼지는 인스트루멘탈을 시작으로, 이 곡은 나에게 3분 30초의 ‘멍 때릴 시간’을 허락한다.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괴로운 비행이 시작된다. 반나절은 훌쩍 넘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비행을. 그곳에 도착하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날씨였으면 좋겠다.
글 / 백윤범, VISLA 매거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