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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의복 이야기: 1화 길거리의 슬픈 옷

캐주얼 패션 브랜드 로프(LOAF)의 운영자이자 여러 의류 브랜드의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신현민이 오랜 시간 패션업에 종사하며 느낀 바를 풀어내는 코너다. 현재 국내 패션 시장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궁금하다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꽤 흥미롭게 다가올 것. 그가 생각하는 국내의 의복 문화 그리고 우리가 쉽게 접하는 하나의 제품이 나오기까지 과정. 이제부터 신현민이 들려줄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길거리, 지하철 역사를 거닐면 아웃도어 땡처리, 공장 부도 등 갖가지 사유로 덤핑 옷을 판매하는 슬픈 팝업 스토어를 만나게 된다.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많은 이의 노력이 깃든 수많은 옷이 어느 순간 원자재, 부자재 생산가도 안 되는 허름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며, 그로 인한 손실은 누가 보는 걸까. 여기에 우리가 알아야 할 뒷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대형 마트 입구의 가판이나 지역 시장 초입의 깔세 ─ 임차할 때 임차 기간만큼의 셋돈을 한꺼번에 미리 지급하는 월세를 얕잡아 이르는 말 ─ 를 놓은 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옷이 우리들의 어머니에게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의류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야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합리적 소비의 장이겠지만, 의류생산을 업으로 삼는 나 같은 경우에는 버스정류장에 하나꼴로 있는 이런 매대가 상당히 불편하다. 원단과 디자인은 물론이거니와 옷에 달린 ‘태그’ 하나만으로 천차만별인 가격표가 붙는 옷이지만, 아무래도 길거리의 옷은 너무 슬프다. 누군가는 분명히 손해보고 있으니.

이런 옷이 등장하는 첫 번째 배경은 의류회사나 생산 공장의 부도로 인해 브랜드 가치를 포기하는 경우다. 무수히 쌓인 재고를 덤핑 의류 매입 업자에게 원단값도 안 되는 가격에 넘겨 조금이라도 자금회수를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상황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전봇대나 담벼락에 붙어있는 공격적인 전단, 거기에 더해 ‘부도’를 강하게 어필하는 폰트의 레퍼토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님을 가슴 깊이 새겨두자.

 

물론, 개중에 좋은 품질의 옷이 회사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저렴하게 판매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보온성과 관련 없는 부풀리기 용 충전재, 빠른 생산을 위한 넓은 바늘땀, 저렴한 원, 부자재를 숨기기 위한 화려한 패턴과 조잡한 배색,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플라세보 효과라도 난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기능성이라는 딱지를 붙인 저렴한 옷은 제 기능을 못 하는 껍데기뿐이다. 저렴한 생산비용과 생산속도 때문에 중요한 본질을 잃은 옷, 결국 주인을 잃고 버려지듯 판매되는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그 두 번째는 생산 공장에서 원단의 요척 ─ 옷이 만들어지는 원단의 양 ─ 을 속이고 브랜드와 약속한 생산 수량보다 더 많은 양을 제작한 뒤 납품 수량 외의 수량 ─ 흔히 로스(Loss) 분이라고 한다 ─ 을 뒤에서 브랜드 몰래 싸게 판매하는 옷이다. 보통 이런 로스 분은 라벨을 붙이지 않거나 전혀 엉뚱한 다른 라벨을 붙여 내놓기도 한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라인 공장에서는 1,000장을 만드는 시간이나 1,100장을 만드는 시간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시간, 물질적인 큰 투자 없이 뒤에서 팔 수 있는 100장의 옷이 거저 생기는 것이다.

생산 공장에서 견적한 원단 요척을 믿고 넣은 업체는 원단으로 야금야금 원가손실을 본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이 정식 판매처로 갈 수 없으니 길거리로 나오게 된다. 이런 옷을 공장 관계자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저렴하게 판매하고 동네에 사람이 몰리는 찾는 부동산이나 세탁소에 행거를 두고 판매를 하는 행위도 어렵지 않게 목격했다. 더불어, 일거리가 끊긴 공장도 매월 임대료와 시설비가 나가는 공장을 마냥 놀릴 수는 없으니 자투리 원단으로 뭐라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땡처리 업자에게 넘긴다. 이렇게 한철 입고 버려지는 옷이 또 생겨난다.

 

또 다른 이유로는 1990~2010년 내수 봉제 공장의 호황기를 보낸, 근래 베트남으로 넘어간 오더에 있다. 내수 생산으로 옷을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공정이다. 역으로 내수 브랜드의 옷을 해외에서 생산해 들여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느 정도 생산량이 채워지면 눈을 자연스레 베트남, 중국 생산으로 돌린다. 타 업체를 끼고 아웃소싱으로 생산해도 국내 생산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러나 싸다고 무조건 달려들 수는 없다. 제품의 질과 판매될 수량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회사 차원에서는 당연히 해외로 눈을 돌리겠지만, 한국의 마켓은 트렌드가 유난히 빠르게 바뀌어서 미래를 가늠할 수 없기에 재고 부담과 재주문 시 소요되는 시간 등 여러 문제를 안고 가야 한다.

마지막 이유는 일정 수익 이상의 판매량을 보장한 아이템을 해외에서 대량 생산했지만, 잘 팔리지 않는 경우다. 이 문제는 재고 부담과 과도한 할인으로 인한 정가 구매자의 브랜드 신뢰도 하락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반대로 제품이 너무 잘 팔려서 즉각적인 재주문을 해야 하지만 해외생산은 내수보다 빠른 반응을 보이기 힘들기에 그 흐름을 이어가기 힘든 경우도 있다.

똑같은 옷이라도 백화점과 직영매장, 아웃렛,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이 모두 다르고 실제 소비자는 옷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충동 구매로 정가에 제품을 사는 경우가 잦다. 나중에 더 저렴하게 파는 판매처를 확인한 소비자가 브랜드에 불신이 쌓인다면, 이후 건강한 구매는 어려워지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렇게 저렴한 제품이 잘 팔리니 공장 역시 최소한의 비용으로 옷을 생산하게 된다. 점점 올라가는 인건비 또한 부담스러운 문제. 이렇게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한 허접스러운 옷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탄생한 슬픈 옷은 계속 버려지고 만들어지고 또 버려지는 순환을 거친다. 춥고 불편한 주인 없는 옷은 지금도 만들어진다.

 

이 모두가 브랜드의 선택이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선택지 대부분이 베트남 생산으로 몰리는 문제로, 꾸준히 일을 받아 운영하던 국내 생산 공장이 우수수 무너졌다. 이 문제의 중심에는 부실한 정책과 무관심 그리고 여러 가지 불신의 사회현상이 맞물려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다른 주제를 통해 더 깊게 이야기하겠지만, 봉제 공장의 노령화와 해외로 나가는 일거리, 인스턴트 패션 등 건강하지 않은 갖가지 현상을 마주한 우리의 현실을 빠르게 깨닫는 것이 지금 국내 패션 시장의 가장 시급한 숙제가 아닐까.

글, 사진 │ 신현민, 오욱석
커버 이미지 │ 박진우

신현민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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