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이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240명의 영화 산업 종사자들이 뽑은 ‘한국영화 100선’을 공개했다. 선정위원은 영화 연구자, 평론가, 창작자 그리고 영화 산업 종사자 등이 포함됐다. 10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1위를 차지한 작품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다. 다만 2014년 리스트에서 “하녀”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던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과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은 각각 4위와 6위에 위치하며,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지형도가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다.
가장 눈여겨야 할 점은 1990년대 이후 작품들의 약진이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거장들의 이름이 지난 2014년의 명단에서는 공동 7위에 이름을 올렸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리스트에서는 앞서 언급한 세 작품을 제외한 모든 이름이 90년대 이후 작품들로 포진되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기생충”이 각각 2, 3위에 있었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 이창동 감독의 “시”,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나머지 리스트를 채우게 되었다.
고전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못내 아쉬움이 남을 결과다. 지난 리스트에서 언급되었던 강대진 감독의 “마부”나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등이 10위 권 밖으로 밀려났다는 점은 그만큼 영화 지형도에서 고전이 자리하는 위상이 변화됐다는 뜻이다. 반면 지난 리스트에서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만이 포함되었던 여성 영화인들의 영화는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부터 김보라 감독의 “벌새”에 이르기까지 총 9편으로 증가했다. 그만큼 한국영화사에서 여성감독 영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다는 증거기도 하다.
한편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미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다시보다: 25+50’라는 특별 프로그램 섹션을 개최하며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했다. 이번 달에는 특집도서 ‘한국영화 100선’을 발간할 예정이다. 자세한 리스트는 사이트에 직접 방문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영화 평론가, 연구자, 기자 등으로 구성된 ‘보는 사람’과 영화 산업 종사자와 영화 제작자들의 시선이 담긴 ‘만드는 사람’의 리스트 간의 차이를 발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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