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팬데믹과의 종식을 선포한 이후, 한국의 클럽 신(Scene)은 그간 다양한 장르의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와 로컬 아티스트 간의 호흡을 중시한 멋진 이벤트 기획이 넘쳐났다. 혹자는 이 흐름이 일시적인 반등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2024년인 지금까지도 이 흐름은 계속되어 더욱 다양한 아티스트를 섭외하고, 지난 1년의 기획을 상회하는 훌륭한 이벤트를 현재까지도 계속하여 선보이는 중. 이러한 흐름 끝에 서구가 한국의 음악 신을 주목하는 등 오히려 원류가 한국의 움직임을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모두가 서울을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바로 그 중심에 있는 이태원 녹사평의 터줏대감 베뉴 ‘케이크샵(Cakeshop)’에서 언제나 훌륭한 이벤트를 선보이는 ‘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이 아주 큰 기획을 선보였다. 바로 현세대 트랜스 로드(Lord), ‘에비앙 크라이스트(Evian Christ)’를 섭외한 것.
오는 11월 7일 목요일 케이크샵에서 울려 퍼지게 될 에비앙 크라이스트의 내한 공연은 에어베어(Airbear), 예츠비(Yetsuby), 아렉시보(Arexibo), 뮌(Muin), 그리고 목졸라(Mokzolla)까지. 매력적인 로컬 아티스트들이 에비앙 크라이스트의 첫 내한 서포팅 긱을 선보일 예정이다. 필자는 공연 이전에, 왜 에비앙 크라이스트가 현세대 ‘트랜스 로드’로 각광받게 됐는지, 그리고 그의 공연과 파티에 어떠한 에너지가 있어 서구를 열광하게 만드는지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Revanchist
2023년 10월 17일,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데뷔 이후 근 10년의 세월 끝에 그의 개인 앨범 [Revanchist]를 완성한다. 과연 무엇이 그의 개인 앨범 발매를 늦어지게 했을까. [Revanchist]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통일성과 일관성에 있다. 드랍 이후 낮게 깔리는 스트링과 성가대(Choir), 그 기반을 지탱하는 공격적인 신디사이저 멜로디가 화합을 이루는 트랙 “On Embers”는 트랙 자체로 완벽한 트랙이며 이와 같은 장엄한 분위기로 앨범을 이어갈 것 같지만 바로 다음 2번 트랙 “Yxguden”에서 그는 블레이디(Bladee)를 섭외, 그의 감미로운 보컬을 곁들인 ‘에모(Emo)’한 팝 트랜스를 취한다.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이렇게 전체적인 흐름의 전복을 감행하는 한편 개인 앨범 단위의 서사시를 완성하며, 앨범을 듣게 될 이에게 개별 트랙이 아닌 앨범 단위의 흐름으로 청취할 것을 권장한다.
우리가 ‘트랜스’를 떠올릴 때, 개별적인 트랙의 일관된 구조와 그 안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연상하기 쉽지만,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그 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트랜스’로 불리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에비앙 크라이스트가 완성한 트랜스에는 과격한 브레이크를 곁들인 정글, 그리고 세기말의 장엄한 분위기를 연상하는 앰비언트 또한 존재한다. 앨범 안에서 유동적인 변화를 일삼으며 통일성을 유지하는 한편 전체적인 트랜스 장르를 완성하는 것. 이러한 그의 음악 철학은 이어지는 디제이 세트에도 느낄 수 있다.
BBC Radio 1 Essential Mix
개인 앨범 [Revanchist] 발매 한 달 전 시점인 2023년 9월 2일,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BBC에서 라디오 믹스를 공개한다. 총 두 시간의 방대한 길이 속에서 그는 동료 프로듀서들의 이름과 옛 트랜스의 정수를 2023년의 시점으로 불러온다. 듀럼(DJRum), 스키 마스크(Skee Mask)와도 같은 동료 프로듀서들의 트랙은 에비앙 크라이스트가 재편한 트랜스 에디트로 탄생하는 한편, 사샤(Sasha), 엘리시아 크램튼(Elysia Crampton) 등의 2000년대를 주름잡던 트랜스, 그리고 현세대 새롭게 탄생한 네오 트랜스들은 믹스를 통해 자연스레 연결되며 서로 충돌을 일으킬 것만 같은 성격의 장르들은 그의 세밀한 조율 끝에 조화를 이루며 서사를 만들어냈다.
그의 훌륭한 믹스 안에서도 가장 먼저 시사할 만한 점이란 영국의 국민 지상파 방송 BBC에서 트랜스 장르가 디제이 세트의 형태로 울려 퍼졌다는 것이다. 잠시 트랜스의 역사를 읊어보자. 90년대, 앰비언트를 건너 트랜스의 방법론을 설계한 선구적인 프로듀서, ‘비티(BT)’의 손길 끝에 댄스 뮤직 장르로 정립된 후, 00년대로 넘어가 페리 코스턴(Ferry Corsten)의 손길 끝에 ‘더치 트랜스’의 형태를 갖추고, 2010년대 이후 마틴 개릭스(Martin Garrix) 등의 디제이를 통해 그것들은 ‘빅룸 트랜스’로 변형되며 트랜스 장르는 그간 페스티벌 튠과 원류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원산지인 서구 또한, 논쟁을 피할 수 없어 네오 트랜스와 트랜스로 분류가 갈리는 등 방향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잠시 과거로 돌아가서, 잊혀진 옛 이름을 소환하는 동시에 다소 언더그라운드에 가까운 동료 프로듀서들의 레프트필드 튠 또한 더치 트랜스에 가깝게 믹스해 두 장르 사이 간격을 줄였다. 갈등을 넘어 트랜스로 대통합한 순간. 2023년 9월 2일,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BBC에서 트랜스 긱의 새로운 모듈을 제시했다.
TranceParty
워프 레코즈(Warp Records) 소속 프로듀서의 앨범 디자인을 담당한 저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데이비드 러드닉(David Rudnick)’과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두 가지 면에서 겹치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그들은 EPL을 사랑하는 영국 축구 광팬들이며, 두 번째는 그들의 인연이 한 파티를 통해 만나 워프 레코즈로 연을 이어왔다는 점이겠다.
2010년대,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등의 아티스트가 이름을 올린 어느 한 파티 기획을 통해 만난 그들은 파티 브랜드 ‘TranceParty’를 설립한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인 2020년,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네오 트랜스의 기념비적인 트랙 “Ultra”를 워프 레코즈에서 발매하며 그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Ultra”의 아트워크 또한 데이비드 러드닉이 맡으며 그들의 비주얼 또한 점차 ‘TranceParty’의 모습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TranceParty’는 옛 런던의 클럽 문화를 중심으로, 그들의 열기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에서 출발한다. 이들의 파티에 이름을 올린 게스트 프로듀서 또한 영국의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성장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상단의 영상에 따르면, ‘TranceParty’ 초기에는 아르카(Arca), 베슬(Vessel) 등의 아티스트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키코 코스타니노브(Kiko Kostadinov)의 쇼 믹스를 담당한 ‘E-Saggila’, 네오 트랜스의 한 갈래로서 비트리스(Beatless) 작법을 선보인 ‘로렌조 세니(Lorenzo Senni)’의 이름을 현재 그들의 파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등 이미 그들의 파티 브랜드는 흥행 보증 수표로 이름을 굳혔다. 영국의 RA를 주의 깊게 보는 독자라면, RA의 이벤트 섹션에서 ‘TranceParty’는 항상 매진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이름의 게스트 프로듀서 라인업은 데이비드 러드닉과 에비앙 크라이스트의 헌신이 깃든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브루탈리즘 타이포그래피를 기반으로 훌륭한 플라이어 디자인을 선보이는 데이비드 러드닉은, 2023년 즈음 그들의 공통된 취미인 ‘스포츠’를 모티브로 삼아 파티를 전개했다. 에비앙 크라이스트의 세트는 ‘에너제틱 트랜스’의 결로 다양한 장르가 믹스되고, 그들의 파티는 옛 클럽 문화의 열기를 복원해 영국 전역을 달궜다. 어느덧 유럽까지 진출한 ‘TranceParty’. 유럽마저 매진 신화를 기록한 후, 그는 ‘TranceParty’의 열기를 전파하기 위해 한국을 찾을 준비를 마쳤다. 혹, ‘TranceParty’의 열기를 온전히 체험하고 싶은 독자라면, 당일 드레스코드를 블록코어로 맞춰가는 것이 좋겠다.
이미지 출처 ㅣ Mixmag, David Rudn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