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는 행위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속되었지만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의도와 기능은 변화해 왔다. 원시인은 사냥을 위해, 고대인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현대인은 레저와 스포츠의 일환으로 등산을 떠난다. 한편 조선시대 선인들은 산을 주제로 한 예술의 발자취를 다수 남겼는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산을 친구삼고 종종 올라 풍류를 즐기곤 했다.
홍성화 김세인 기획의 전시 ‘X의 산’은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재현되는 중년 등산객을 모티브로 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품들은 근대적 등산 개념이 유입되기 이전의 유산(遊山)이라는 다소 생소한 전통을 내포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기행문학인 유산기(遊山記)는 대체로 선비로서 산행의 이념을 내세우지만, 그것에 배타적이며 은밀한 해방적 체험에 관한 기록들 역시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X의 산’은 유산의 이러한 국면과 중년 등산 문화를 연결짓고, 중년 등산 문화를 통속적으로 재현한 모습들을 하나의 산으로 간주한다. 여기에 세 팀의 작가가 새롭게 써 내려간 유산기를 선보여 한국의 산행 전통에 관한 이질화된 시각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김민희는 깊은 산속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와 내밀한 욕망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을 그렸다. 자연과 몸에 대한 사유, 설화적 세계관과 만화적인 도상 사이를 오간다.
아티스트 콜렉티브인 무병장수(미도리킴, 우이지, 윤요주)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북한산 이미지로 병풍형식의 설치와 영상을 제작했다. 더불어 산의 경치, 등산객의 취사용품, 신체의 일부를 연상하게 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전시한다.
주현욱은 구글 마스(Google Mars)의 고도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의 컴퓨터 프로그램인 마스 다우저(Mars Dowser)를 다룬다. 영적인 장소로서 산을 대하는 관점을 관찰하면서 산수를 감상하고 즐기는 방식인 ‘와유’의 의미를 환기한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비자발적 여가인구가 폭증하고 베이비 붐 세대가 고령화한 후의 언제부턴가, 익명의 무수한 중년들은 형식화된 알피니즘이 각인된 예복인 등산복을 입고 산으로 간다. 여기에는 음조를 미묘하게 이탈해가며 조야한 신스 사운드 속에서 줄기차게 허우적대는 바이브레이션으로 관광버스에서, 휴게소에서, 등산로 초입에서 강박적으로 플레이되는 트롯 메들리가 있다. 그리고 쨍한 컬러의 등산복들이 이루는 아찔한 보색의 행렬이 한낮의 산중에서 일제히 내뿜는 뭉근한 생기가 있다. 그리고 들숨은 해방감이, 날숨은 욕망이 되는 산에서의 숨결들이 비밀스레 교차하며 섞이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산의 일부인 듯 유난히도 성업 중인 위락시설들이 있다. 그리고 “중년의 등산”을 구글링하며 성인인증을 요구받는 우리들이 있다……
「전시 서문 중」
이처럼 ‘산’은 젊은 세대에게도 미묘하게 이상야릇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전시공간 산수문화는 ‘중년의 홍대’ 관악산 인근에 위치한다. 중년 세대의 등산 문화와 조선 시대 유산기(遊山記)가 미술을 통해 연결되는 흥미로운 광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집에 한 벌 쯤은 걸려 있을 등산복과 함께 전시장을 방문해도 좋겠다.
전시 정보
전시명 │X의 산
기획 │ 홍성화, 김세인
참여 작가 │ 김민희, 무병장수(미도리킴, 우이지, 윤요주), 주현욱
전시 기간 │ 2019년 8월 2일~8월 25일
전시 장소 │ 산수문화(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481-5 대성빌딩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