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와 디제이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아티스트 썸데프(Somdef)가 정규 앨범 [Morning Mare]를 발매했다. 해당 음반은 수민(SUMIN), 씨피카(CIFIKA), 킹맥(KINGMCK) 등의 아티스트가 소속된 레이블 마더(MOTHER)를 통해 발매했으며, 앨범 뮤직비디오 또한 함께 공개됐다.
썸데프는 메이저와 언더그라운드 신(Scene)을 넘나들며 뮤지션뿐만 아니라 여러 패션 브랜드와도 협업을 이어가며 다방면에서 족적을 남겼다. 2013년 [Somdef] EP로 시작해 디피알 라이브(DPR Live), 버벌진트(Verbal Jint), 팔로알토(Paloalto) 등의 아티스트와 협업했고, 2018년 크러쉬(Crush)가 참여한 트랙 “미끌미끌”, 로꼬(Loco)와 브라보(Bravo)가 함께한 “1+1(원플러스원)”이 담긴 [Some Definition of Love] EP로 대중에게도 존재감을 알렸다.
본작에서 아무래도 가장 처음 눈에 띄는 점은 역시 키드밀리, 도끼, 기리보이, 소코도모, 오디, 저스디스&팔로알토 등 떠오르는 신예 랩스타와 베테랑을 다채로운 비트 속에서 한데 아울러 조명한 점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한껏 보여주고 싶은 듯 본작의 스펙트럼을 넓혔고, 이에 적합한 피처링진을 적절히 섭외했다. 재능 있는 아티스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는 프로듀서의 입지를 고려하면 앨범 내 썸데프의 용인술은 꽤 탁월한 편이다. 더구나 자신의 능력을 각 피처링진의 팬, 달리 말해 더 폭넓은 리스너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한 모양새다.
첫 곡이자 인스트루멘탈 곡인 “goodMORNING”에서 부드러운 피아노와 하이햇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어지는 “Insomniac”에서는 피아노 중심의 트렌디한 트랩 사운드 위에 키드밀리는 중첩된 목소리로 성공 이후의 대인관계 형성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며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호소한다. 썸데프가 밝힌 대로 앨범 제목에까지 영향을 미친 “goodMORNING” 이후에 잠에 관한 이미지를 품은 “Insomniac”이 바로 이어지는 구성은 다소 독특한 부분이다. 육중한 베이스라인이 돋보이는 세 번째 “No Rules”는 앞 트랙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자신을 가식적으로 대하는 소위 왝(Wack) 래퍼에게 ‘업보(Karma)’를 언급하며 훨씬 적극적으로 화를 분출하는데, 첫 벌스를 맡은 저스디스 특유의 발음을 뭉개는 빠른 플로우가 압권이다. 중반부의 희미한 내레이션 샘플 이후 비트는 붐뱁 스타일로 바뀌는데, 팔로알토와 저스디스는 마디를 주고받으며 음악 및 예술을 향한 그들의 진짜 사랑을 허심탄회하게 술회한다. “어젯밤”에 다다르면 분위기가 급변하며 90년대 테크노 스타일의 비트가 이어지는데, 오디의 목소리가 왜곡되는 부분 등의 디테일로 클럽에서 술에 만취한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중반부는 비트의 느낌이 조금은 더 가벼워진다. “사랑할 수 없는 이유”의 트랩 비트에 더해지는 소울 샘플과 기타 리프는 청량한 느낌을 준다. 낯간지러운 기리보이의 스킷이 친구와 연인 사이라는 곡의 안타까운 상황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어지는 “Imaginary”에서는 댄스홀 비트에 토미 스트레이트가 첫 벌스와 훅으로 곡의 중심을 잡고, 창모가 두 번째 벌스에서 싱랩을 보여주는 구조를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가 마치 디제이로서 플레잉하듯 곡 분위기의 완급을 조절하고, 또한 [Somdef] EP에서부터 이미 보였듯 랩 및 싱잉과 인스트루멘탈 비중의 적절한 안배가 눈에 띈다.
”OMG”에서 분위기는 다시 고조되어, 핑거링이 강한 록 스타일 기타 리프와 재지한 피아노 사운드를 잘 버무린 비트 위 소코도모가 마치 ‘Earthgang’을 연상케 하는 빠른 랩을 보여준다. “Reality”에서 상당히 오랜만에 듣는 도끼의 목소리 그리고 일선(Illso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나선 더블케이의 목소리 조합이 반갑다. 미국 래퍼 타이가(Tyga)와 함께 포스타 보이즈(Posta boys)를 결성한 도끼답게, ‘Nipsey spirits on me, 100미터가 아닌 마라톤’ 등으로 현재 미국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레퍼런스를 선보인다. 일선 또한 변하지 않는 태도라는 클래식한 주제를 준수하게 잘 보여주었다. 앨범은 섬뜩하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인더스트리얼한 비트의 마지막 곡 “nightMare”로 마무리하며 악몽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는데, “Reality”에서 이어지는 이러한 흐름 또한 현실과 꿈 간의 이미지 반전이 나타나는 구간으로, 앨범 초반 부분과 대칭을 이루어 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본작은 인접하게 놓인 곡들이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만들며 리스너에게 흥미를 선사한다. 전작 [Some Definition of Love]가 직관적인 제목처럼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 의식이 꽤 명확했다면, 본작의 경우 대인관계, 분노, 사랑의 입장 차이, 현실 직시 등 꿈이나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읽을 수 있으나, 이러한 정서가 강하게 연결된다기보다는 그저 나열된다는 인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제목과 발매일 그리고 문제적인 그림의 앨범 커버 등이 제시하는 분위기에 일견 배반되는 것 같기도. 전체적인 앨범의 통일성을 구현하는 데 일말의 노력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본작의 흐름이 마치 썸데프가 공연장에서 호스트 디제이로 음악을 준비하고, 피처링진은 자신의 차례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내려가는, 즉 딱히 하나로 응집될 필요 없는 흐름을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가 각 아티스트에게 탁월한 비트를 제시한다는 아주 또렷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어쩌면 그의 음악에는 너무 거창한 의미 부여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본작을 통해 썸데프의 역량을 제대로 감상해보자.
글 하단에 썸데프와 나눈 인터뷰를 수록했다.
Mini Interview
먼저 본작을 만들게 된 상황 혹은 계기가 궁금하다. 전작과는 달리 대중적이라고만 칭할 수 없는 방향성이 드러나는데, 노선을 선회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이전작인 [Some Definition of Love]를 마무리하면서 다음 앨범은 전부 랩 트랙으로 만들고자 했다. 첫 정규 앨범을 어떠한 형태로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그 요소 중 하나가 랩이 중심이 된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나에겐 “SDOL”이 노선을 선회했다고 볼 수 있는 작업물이었고, 그 앨범은 ‘나 나름의 대중 지향적인 앨범을 만들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이미 밝힌 대로 ‘MorningMare’는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조합한 이름이라고 알고 있지만, 제목을 이렇게 한 단어로 조합했을 때 새로이 암시하게 되는 의미는 없는가?
굿모닝이 될지 나이트메어가 될지는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앨범은 악몽 같은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 같은 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간의 작업물에서 피처링 아티스트의 조합을 굉장히 신경 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피처링을 부탁하는 아티스트를 정하는 특정한 기준은?
나름 힙합 마니아로 언제나 국내외 래퍼들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래퍼에게 부탁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테고… 좋아한다는 사실 이전에 작업한 비트를 들으며 떠오르는 목소리가 일차적인 과정이고 이후에는 그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재밌겠다’, ‘잘 어울리겠다’까지 도달하면 연락한다. 조합을 생각할 때 웬만하면 기존에 보지 못했던 그림을 선호하는 편인데 저스디스와 팔로알토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그들과 함께한 적이 처음이니 새로운 그림이긴 하겠다.
이번 앨범에 특히 더 고민한 요소라면?
첫 번째 질문의 답 중 ‘내가 첫 정규 앨범을 만든다면 이러이러한 요소들이…’에서 몇 가지 요소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 정규 앨범이다 보니 프로듀서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이야기의 대주제는 ‘모닝메어’겠고, 그에 걸맞는 사운드 ‘결’의 통일을 위해 여러 가공도 하고 레이어링을 많이 시도했다. 또 음악적인 표현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가령 인트로인 “goodMORNING”은 잠에서 깰 때 정신이 돌아오기 전 몽롱한 상태를 표현하고자 느린 속도로 시작해 원래 곡의 속도에 도달하게끔 연출했다. 곡 안에서는 뻔하지 않은 구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일례로 “Imaginary”는 창모 파트를 중심으로 앞뒤가 대칭을 이루고 특별히 이게 ‘훅’이다 할 법한 것 없이 흐른다. 이외에도 여럿 있지만 찾는 재미를 위해 이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뮤직비디오가 독특하다. 뮤직비디오를 모아서 찍게 된 계기가 있을까?
지금 속한 레이블 마더의 대표이자 GDW 감독인 성욱 형에게 언젠가 이런 질문을 했다. “형이 생각하는 뮤직비디오의 넥스트는 뭐에요?”라고 내가 물어본 적 있다. 이번 뮤직비디오가 그에 대한 대답이자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성욱 형이 감독했기 때문이다.
앨범 커버가 꽤 파격적이다. 아트워크에 일부 부정적인 반응이 있기도 했는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패러디한 이유는?
주로 앨범 커버의 제작자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 결과물은 음악이 아닌 하나의 이미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패러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나는 나만의 해석으로 이 커버가 앨범을 대표하는 그림이 되어서 좋다.
앨범의 처음과 끝에서 “GoodMorning” 다음에 잠에 관한 “Insomniac”이 나오고, “Reality” 다음에 바로 “NightMare”가 나오는 등 곡의 구성이 순차적이지 않다고 느껴졌다. 앨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트랙 전후에서 꿈과 현실의 이미지가 혼재된 것은 꿈과 현실이 서로에게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인가? 이에 관한 이야기 부탁한다.
꿈과 현실이 서로에게 작용한다는 표현도 맞을 것이다. 꿈과 현실은 서로를 갈망하기도 부정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이 꿈이길 바랄 때도 있고 꿈이 현실이길 바라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에 앞서 개별 곡들 중 ‘이건 꿈이야? 현실이야?’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다. 어떻게 느끼고 해석해도 좋다. 내가 바라던 바다.
“No rules”에서 중간 내레이션을 통해 곡의 메시지에 큰 변화를 도모했는데, 그럼에도 트랙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제목으로 묶은 점이 독특하다. 곡을 만들게 된 전반적인 과정이 궁금하다.
앞뒤 비트의 내용이 사뭇 다르다. 무언가에 대한 불만을 가감없이 쏟아내다가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분위기가 바뀐 뒤 다른 생각에 잠겨 회상하는 것처럼 다른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 곡 안에서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는게 일반적이지만 노래 제목이 “No Rules”니까 우린 여기서도 룰을 깨보자’라는 아이디어를 두 래퍼가 주었고 이를 반영하여 나는 중간 내레이션 내용 ─ 모든 규칙이 사라집니다. 머릿 속을 오가는 잡념이 녹아내립니다. 현실에 갇혀 날카로워진 마음은 과거의 추억으로 덮여 서서히 무뎌집니다 ─ 을 만들어 앞과 뒤를 한 흐름으로 연결지었다.
비트의 무드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BPM 사이에서 오는 색다른 다이내믹을 전달하고 싶었다. 뒷 비트의 편곡 아이디어는 싸이퍼에서 왔는데 따라서 디제이가 일정 구간을 반복하고 가벼운 스크래치와 디제이 믹서에서 들어봄직한 이펙트만을 사용하여 완성했다. 랩 앨범에서 해보고 싶었던 여러 아이디어가 담긴 트랙이다.
“OMG”의 경우 앨범이 제시하는 감상적인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되는데, 곡 콘셉트를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감상적인 면에서의 환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트랙을 넣고 싶었고 자칫 몽환적이거나 꿈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것만이 이 앨범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대표한다. 나는 진지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위트를 좋아한다.
릴리즈 파티가 성황으로 끝났다.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다면 궁금하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파티를 찾아와주신 덕분에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맘껏 놀았다. 잊지 않고 함께해주셔서 항상 고맙다. 그리고 올해는 국내외 폭넓은 방향으로 활동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이고 더 많은 음악을 만들 것이다. 또 어떤 앨범이나 곡으로 찾아뵐지 모르겠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몸 건강히 ‘굿모닝’했으면 좋겠다.
진행 / 글 │ 강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