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레어버스(Rarebirth)의 작업실을 잠시 방문한 적이 있다. 이름 모를 반려 식물과 무수히 많은 의자, 모서리엔 2단으로 쌓인 수납장이 위치했고 그곳엔 바이닐이 가득했던 기억. 나는 이 기억을 더듬어 ‘디거의 노래’ 두 번째 대상으로 레어버스의 라이브러리를 소개하기로 했다.
지난 회에 이어 레어버스에게 역시 ‘단 하나의 레이블’을 소개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레이트 나이트 테일즈(Late Night Tales, 이하 LNT)’ 컴필레이션 시리즈 바이닐 다섯 장과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인도 사상 음악을 놓고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엔 LNT 시리즈를 선택, 이유는 모범생같이 무난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단다. 자신의 아이돌인 조지 해리슨을 소개하고 싶은 한편, 음악 이야기는 차치하고 괜히 인도 여행을 더듬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도 여행기는 아쉽게도 못 들었다. 하지만 레어버스는 LNT 바이닐을 중심으로 마인드맵을 그리듯, 다양한 음악을 줄줄이 엮어 소개했다. 레어버스와 LNT를 두고 나눈 대화, 하단에서 만나 보자.
LNT를 소개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과거 핑앤퐁(Ping N Pong) 시리즈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래서 시리즈를 지속해서 진행하는 게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LNT는 20년 가까이 시리즈를 지속하고 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지. 또한 이들의 비주얼은 디자이너인 나에게 큰 영감을 준다. 그리고 단순히 말해 수록된 음악의 무드도 좋고, 컴필레이션을 큐레이팅하는 아티스트와 음악과 관련된 인터뷰 또한 진행하기에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더 잘 알 수 있는 컴필레이션이라 소개하고 싶었다.
LNT, 어떤 시리즈인가?
어나더 레이트 나이트(Another Late Night) 큐레이션 시리즈가 시초였다. 2003년 나이트메어즈 온 왁스(Nightmares on Wax)의 컴필레이션을 시작으로, ‘늦은 밤’이란 테마를 가지고 지금의 시리즈인 LNT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또한, 비교적 최근 들어 하위 레이블 ‘나이트 타임 스토리즈(Night Time Stories)’를 소유하고 다양한 음악을 릴리즈하기도 한다.
늦은 밤이란 테마와 함께 아티스트 각각의 레퍼런스와 자양분이 된 음악 또한 들을 수 있는 컴필레이션이라 생각했다. 특히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의 큐레이션은 전자음악가로서 지향점과 앙상블 재즈 밴드 리더의 면모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맞다. 플로팅 포인츠는 음악 스타일 만큼이나 유명한 디거라 LNT뿐만 아니라 많은 매체에서 다양한 음악을 큐레이션했다. LNT 시리즈의 플로팅 포인츠 큐레이션 역시 재즈, 훵크를 비롯해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컴필레이션 중 인상적인 트랙은?
샘 셰퍼드(Sam Shepherd)의 손을 거쳐 다시 탄생한 트랙 “The Sweet Time Suite”이다. 그는 곡의 원작자인 케니 휠러(Kenny Wheeler)에 무한한 사랑을 표한다. 케니 휠러의 밴드 아지모스(Azimuth)의 “The Tunnel” 또한 수록됐고. 인터뷰에 따르면 샘 셰퍼드가 처음 선물 받은 바이닐 앨범이 케니 휠러 앨범이라고 하더라.
또한, 아부 탈립(Abu Talib)의 “Blood Of An American”을 즐겁게 들었다. 이유는 멜로디즈(Melodies)에서 이를 리이슈했기 때문. 샘 셰퍼드의 행보를 본 이들 또한 즐겁게 듣지 않았을까. 그는 멜로디즈라는 파티를 기획하고, 나아가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Blood Of An American”의 7인치 리이슈 싱글 또한 내 수납장에 보유하고 있다. 이건 플로팅 포인츠의 LNT 컴필레이션을 듣고 난 후에 구매한 것이다.
LNT 시리즈는 컨티뉴어스(continuous), 즉 믹스 셋으로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반면 피지컬 바이닐에는 어떤 형식으로 담기는지 궁금한데.
수록곡 모두 믹스 버전이 아닌, 풀렝스 버전으로 담겨있다. 음원 플랫폼에서도 확인이 가능한데, 라이센스 이슈 때문인지 컴필레이션 전 트랙을 담아내지 못했다.
플로팅 포인츠 앨범이 먼저 소개됐으니 릴리즈 역순으로 배드배드낫굿(BadBadNotGood) 컴필레이션을 소개하면 될 것 같다. 이는 어떤 앨범인가.
‘새벽의 테마’를 주제로 밴드 사운드를 통해 최대한 많이 담아낸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배드배드낫굿의 지향점이 많은 사랑을 받는 만큼, 이들이 큐레이팅한 컴필레이션 또한 싫어하는 리스너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을 정도로 멋진 컴필레이션. 특히 스테레오랩(Stereolab)의 아방가르드 팝, 포스트 록 트랙을 수록한 것은 최근 이들의 재결성 소식을 들어서 그런가?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힙합과 재즈의 경계에 선 아티스트로 스테레오랩을 비롯한 포스트 록 큐레이션과 앨범의 오프너로 보드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의 “Olson” 또한 의외라 생각했는데.
배드배드낫굿의 다양한 테이스트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재즈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 컴필레이션의 인터뷰에서도 배드배드낫굿을 재즈라 부르지 말아 달라고 명시되어 있다.
MGMT, 이들은 어떤 음악을 엮어놨는가?
MGMT는 신스팝, 사이키델릭 밴드답게, 드림팝, 슈게이징 등의 이펙터를 다량 함유한 음악을 큐레이팅해놨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포인트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마크 프라이(Mark Fry)의 “Song For Wilde”을 수록한 것. 이걸 애시드 포크라고 말하더라. 나는 이 컴필레이션을 듣고 난 후 앨범을 구매했는데, 최근 어느 매체에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애시드 포크 중 한 곡으로 꼽기도 했다. 그리고 마크 프라이는 이 앨범을 공개한 후 화가로 전향한 것으로 안다. 따라서 디스코그라피가 한 앨범뿐이라 이 앨범이 다시 주목받는 것 같았다. 2017년에 이어, 올해까지도 리이슈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진짜 꼭 들어보길 바란다.
활발한 리이슈는 MGMT의 큐레이팅이 시발점이었나?
아니다. 시기상으로 MGMT가 조금 더 늦었다.
다음으로 시네마틱 오케스트라(The Cinematic Orchestra)의 LNT다. 이들의 올해 앨범 [To Believe]를 들어봤나?
모제스 섬니(Moses Sumney)가 참여한 “To Believe”를 들어봤다. 시네마틱 오케스트라를 좋아하나?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을 좋아해서 가끔 찾아 듣는다. LNT 컴필레이션 리스트 역시 대부분 들어본 음악이더라.
여기에 알 법한 영국 뮤지션이 많긴 하지. 컴필레이션 릴리즈가 2010년인데, 동시대 탄생한 아방가르드 전자음악, 베리얼(Burial), 톰 요크(Thom Yorke), 비요크(Bjork) 등을 많이 담은 것을 보아 그 당시의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 신(Scene)을 많이 담아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기타리스트인 셔기 오티스(Shuggie Otis)의 74년도 릴리즈 “Aht Uh Mi Hed”를 수록했다. 여담으로 퀸시 존스(Quincy Jones)가 프로듀싱한 것으로 알려진 “Strawberry Letter 23”는 셔기 오티스가 오리지널이다.
또한 디제이 집단이었던 디제이 푸드(DJ Food)의 “Living Beats”가 수록되어 있다. 알다시피 시네마틱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던 페드릭 카펜터(Patrick Carpenter)가 디제이 푸드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지 않았나. 여기 함께 큐레이션한 것이 이들의 팬 입장에서 큰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에어(AIR)의 컴필레이션은 어떠한가?
소개에 앞서, 에어가 아니라 에르라고 읽더라. 나도 최근까지 에어로 알고 있었는데, 구글에 ‘AIR musician’을 검색하면 에르라고 명시한다. 아무튼 컴필레이션은 엠비언트와 밴드 사운드를 절충한 느낌이다. 특히 A 사이드의 무드가 가장 독특했다. 큐어(The Cure),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영화 “Casanova”의 괴기한 사운드 트랙을 포함하여 마치 악몽과 같은 어두운 정취를 그려냈다. 에르 또한 이러한 무드를 완벽히 의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블랙 사바스의 “Planet Caravan”은 그들의 디스코그라피 중에서도 그나마 잔잔한 결을 가지고 있다.
무시무시한 정취를 담아내는 한편으로, LNT가 꾸준히 이끌어온 늦은 밤의 정취는 최소한으로 타협한 것 같은 재밌는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플로팅 포인츠나 배드배드낫굿의 오프너에 비하면 매우 어둡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앨범의 오프닝은 천천히 잠으로 빠져든다고 한다면, 에르의 오프닝은 마치 지하 소굴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외에 인상적인 부분은?
미니 리퍼튼(Minnie Riperton)의 “Lovin’ You”, 샤방한 음악인데, 괜히 여기 껴있으니 꿈을 꾸는 것 같은 의외의 느낌을 준다. 그리고 미니멀한 포스트 록 트랙 로버트 와이어트(Robert Wyatt)의 “P.L.A.”가 인상적이다. 로버트 와이어트의 목소리는 사람을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커버아트 또한 매우 독특해서 좋아했다. 김윤기 작가의 아트가 종종 생각나곤 한다.
무려 40회나 전개된 시리즈다. 그중에서도 앞서 소개된 컴필레이션만 꼽아 소장한 이유가 있나?
평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먼저 보고 구매했다. 하지만 에르와 시네마틱 오케스트라의 경우는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음악이 좋아서 구매하게 된 경우다. 또한, 컴필레이션을 듣고 궁금증이 생겨 이들이 직접 제작한 음악 또한 찾아 듣게 되더라.
디자이너로서 LNT가 제작한 커버아트의 콘셉트를 좋아하는가?
약 20년간 일맥상통한 콘셉트를 밀고 가는 게 대단하지. 시리즈가 지닌 테마와 일맥상통하게 어두운 배경과 빛을 오브제로 디자인한 게 포인트. 또한 앨범마다 오브제가 다르고 배경 역시 제각각이다. 그리고 유튜브로 감상하면 커버아트에 모션을 입혀 움직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니 반드시 체크하길.
지난 ‘디거의 노래’에서 제시 유(Jesse You)는 바이닐 리이슈에 어떤 시선을 가졌는가를 친절히 알려주었다. 레어버스 또한 바이닐 디거로, 또 오늘 많은 리이슈 바이닐을 소개한바, 바이닐 리이슈에 어떠한 시선을 가졌는지 궁금한데.
나는 리이슈가 그저 반갑다. 내가 듣고 싶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소장하고 싶었던 음악을 리이슈를 통해 구할 수 있으니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최근의 리이슈는 왜 대부분 바이닐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나.
바이닐이 가진 매력 때문이 아닐까?
바이닐의 매력이라면?
바이닐은 만질 수 있다. CD 또한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지만, CD-ROM에 넣으면 순간 디지털로 변하여 만질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바이닐은 재생되는 순간에도 음악을 만질 수 있다. 그리고 커버아트 디자이너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패키지를 가지고 있다는 게 바이닐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의견 잘 들었다. 마지막으로 린드스트롬(Lindstrom)의 LNT 컴필레이션을 권하며 인터뷰를 마치겠다.
한번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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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ebirth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황선웅
사진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