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거의 노래 : Jongho – ‘Arbor Day’

그냥 태양 밑에 두고 가끔 물만 주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안일한 생각만으로 다가갔다가 죽어버리기 일쑤인 식물은 키우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주변 친구의 사례와 VISLA 사무실에 녹색 빛을 잃고 고개를 푹 숙인 아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4월 5일, ‘디거의 노래’ 식목일 특집은 여러분의 반려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길 기원하는 의미로 제작되었다. 이를 위해 특별히 선정된 디거, 디제이 종호(Jongho)는 식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피스틸(Pistil) 스테이지를 식물로 가득 메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또한 최근 경리단길 어딘가 ‘뜻밖의 행복’이라는 반려 식물 숍을 마련하여 누군가의 친구가 될 식물을 무한한 사랑으로 보듬는다.

식물과 하우스 음악, 두 분야에 노련한 종호는 과연 식물을 주제로 어떠한 음악을 셀렉했을지, 하단에서 확인하자.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종호라는 본명으로 디제이 활동을 하고 있다. 식물을 좋아하고 음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식물과 음악이 함께하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고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뜻밖의 행복’이라는 식물 판매 공간을 운영하게 되어 기쁘다.

식목일을 기념하여 식물을 주제로 음반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기준으로 음악을 선정했는지 알려줄 수 있나?

식물에서 연상되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자연스러움이다. 그래서 이번에 셀렉한 바이닐 모두 실제 클럽에서 플레이할 때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을 골라봤다. 그리고 재즈, 소울 바이닐을 두 장 선택했다. 이는 비록 플레이하진 않지만, 이 또한 내가 좋아하는, 즉 내 자연스러운 모습이 드러나는 음악이다. 참고로 재즈는 식물에 직접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

식물이 좋아하는 음악과 싫어하는 음악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정말 놀랍다.

연구 결과가 너무 많고 식물의 종류 또한 워낙 많다 보니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통으로 식물이 저음역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인간 역시 비슷하다. 우린 클럽에 가면 저음역에 세포가 반응하고 자극받아서 춤을 춘다. 그런데 이를 지속하면 피곤해지지. 식물도 저음역 파동에 자극을 받으면 세포가 움직이고 과하게 자극을 받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그래서 클래식, 재즈 같은 비교적 잔잔한 음악은 덜 자극적이라고 세포가 느낀다고. ‘그린 음악’이라고 농사를 지을 때 틀어놓는 음악도 있기도 하다.

실제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주파수가 식물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나?

얼마 전에 오픈해서 잘 모르겠다. 관찰하고는 있긴 한데, 아직 죽은 식물은 없으니 마냥 네거티브한 영향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제 주제에 맞게 셀렉한 바이닐을 하나씩 소개받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픈 앨범이 있나?

스페인 하우스 레이블 펄프(Pulp)에서 공개한 레이 딜라(RayDilla) [Mind flight E.P.]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내가 딥 하우스를 처음 접하게 됐을 때 들었던 바이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A2 트랙인 “Something Inside”을 추천하고 싶다. 자극적인 음악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딥 하우스, 미니멀 등의 차분한 것을 좋아하는 편. 레이 딜라의 음악은 마디가 넘어갈 때 자극적이지 않고 유려하게 넘긴다.

들어본 바로 강한 리듬 선에 반하는 따뜻한 멜로디의 하우스였다.

맞다. 따뜻하고 공간감, 공명이 일어나는 신시사이저. 저음역대 킥의 울림보다는 고음역, 중음역의 하모디가 이루는 공명.

Raydilla – “Something Inside (DaRand Land D4L Remix)”

식물과는 어떻게 연관을 지어야 할까?

테마가 식물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기보다는, 앞서 말했듯 내가 이 음악을 플레이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마치 식물과도 같아서 선정했다. 또한 가장 큰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하는 음반 중 하나다. 아쉽게도 자극적인 댄스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약간 지루하게 느끼는 것 같더라.

다음 음반은 어떤 음악인가?

다음으로 소개할 [Slices Of Life 10.1]은 가장 최근에 구매한 바이닐이다. 작년 독일에서 우연히 다나 러(Dana Ruh)가 직접 운영하는 레코드 숍을 방문했다. 다나 러는 평소 좋아하던 아티스트며 그의 셀렉션 또한 존경하고 있다. 본 EP에 담긴 다나 러의 미니멀은 드라이함과 따뜻함이 대비되어 특히나 좋아하는 편. 또한 바즈(Baaz)라는 프로듀서의 딥 하우스 트랙도 명곡이니 더불어 추천한다.

이 바이닐은 포털 검색으로 들을 수 없었다.

이건 정확한 검색을 필요로 한다. ‘10.1’ 넘버를 반드시 적어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Dana Ruh – “Out Of Ada20”

어떤 목적으로 베를린에 갔나?

가족과 함께 이민을 생각하고 있던 와중 신혼, 가족여행으로 겸사겸사 한 달 정도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음 바이닐 소개를 부탁한다.

다음은 밀트 잭슨(Milt Jackson)의 [Opus De Jazz]. 내가 앞서 말한 공명의 끝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 바이닐을 구매할 당시 밀트 잭슨과 그의 밴드인 모던 재즈 콰르텟(Modern Jazz Quartet) 등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그렌 언더그라운드(Glenn Underground)와 오선라드(Osunlade) 트랙 중에서 비브라폰이 리드하는 하우스를 듣고 나 또한 비브라폰 소리를 샘플로 곡 작업을 하고자 구매했다. 비브라폰 커버 아트를 보고 이건 무조건 괜찮을 것이라 상상했는데 역시나 너무 좋더라.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 그런데 이걸 샘플링으로 작업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밀트 잭슨의 공명을 담백하게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상 악기로 따라 해보려고 시도 또한 했는데 실제 연주가 아니니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었다.

하드밥 시대, 진귀한 플룻 재즈 또한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이다.

이 앨범에 참여한 모두가 쉽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선구적 위치에 서 있던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이들처럼 이질적이지 않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Milt Jackson – “Opus And Interlude”

프로듀싱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음악은 언제쯤 공개될까?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내 식물 매장이 사실 예정되어 있던 계획이 아니라 목표에 차질이 생긴 것 같다. 요즘엔 디깅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되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바빠져서 좋고,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릴 수 있어 좋고. 쉬어간다는 느낌? 그러나 올해 안에 내가 소속된 크루 비그라운드(Beground)와 컴필레이션 EP를 공개하는 게 목표다. 그 후로 프로듀서로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싶다.

역시 하우스 트랙을 제작할 예정인가?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는 딥 하우스를 제작할 예정이다.

딥 하우스는 조화, 화성이 중요하지 않나. 시작부터 쉽지 않은 도전인데.

그게 어렵더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해서 시간 또한 오래 걸리는 편이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다 보니 기초적인 코드 진행만으로 음악을 제작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안도감을 얻기 위해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닌 사람의 경우를 찾아본다.

다음으로 소개할 바이닐은?

체즈 다미어(Chez Damier)의 [I Never Knew Love]. 하우스 좋아하는 셀렉터라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케리 챈들러(Kerri Chandler)보다 과소평가되는 뮤지션이라 생각한다. 케리 챈들러보다 멜로디 라인이 짙은 느낌이다. 이 또한 내가 잘 틀고 많이 트는 바이닐이라 선택했다.

앨범에서 가장 많이 재생한 트랙은?

“I Never Knew Love (Change Up Mix)”. 보통의 클래식 하우스가 기본적인 틀에 맞춰서 반복적인 샘플을 쌓아가는 느낌이라면 “I Never Knew Love (Change Up Mix)”은 이를 조금 벗어나는 느낌을 준다.

Chez Damier – “I Never Knew Love (Change Up Mix)”

그래서 ‘Change Up Mix’가 아닐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리고 “I Never Knew Love (Made In Detroit Mix)” 역시 많이 플레이했다. 디트로이트라는 타이틀이 거친 느낌을 연상시키는데 체즈 다미어는 어떻게든 시카고적으로 풀어가려 했던 것 같다. 두 트랙 모두 클럽에서 틀면 일단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트랙이다. 이 정도의 클래식 하우스라면 대중적이지 않은 현재의 하우스가 뭍에 올라올 수 있는 동력이 될 것 같다.

선정한 바와 같이 클래식 하우스 또한 자주 플레이하고 있다. 체즈 다미어와 케리 챈들러같이 클래식한 문법의 하우스를 제작하고 싶진 않았나? 이들 또한 샘플링이 주를 이루는 것 같은데.

틀 때는 좋은데 이상하게 곡 제작에 임하면 전혀 생각이 안 난다. 딥 하우스는 자유로운 어레인지 과정에서 예상하지 전환이 소름돕게 만드는 힘을 가졌는데, 클래식 하우스는 앞서 말했듯 정적이지 않나. 대신 반복되는 멜로디가 중독적이지. 그러나 내 프로듀싱 방식이 정통적이지 않다 보니 그 생각 자체를 아예 못하는 것 같다.

Dense Foliage

피스틸에서 클래식 하우스를 플레이하는 파티, 덴스폴리지(Dense Foliage)는 식물로 치장한 스테이지가 아주 인상적이던데.

한창 식물을 좋아하게 된 시기에 내가 가르친 제자과 함께 파티를 열고 싶어 시작했다. 식물과 클래식 하우스를 모두 좋아하니 두 가지 모두 세심하게 짠 파티를 열고 싶었다.

덴스폴리지의 식물과 하우스의 접점은?

아프로, 클래식한 하우스의 원초적인 느낌과 식물의 원초적, 원시적인 면?

다음 바이닐 소개를 부탁한다.

릴 루이스 엔 더 파티(Lil Louis & The Party)의 트랙 “Clap Your Hands”가 다양한 버전으로 수록된 레코드. 97년 레이블 ‘FFRR’ 반이다. 쇼핑하러 도쿄로 여행을 갔다가 산 바이닐이다. 바이닐을 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디깅 문화 또한 전혀 몰랐을 때 구매했다. 방문한 일본 레코드숍에 디거들이 너무 빠르게 고르더라. 나는 이제 막 바이닐을 수집할 때라 천천히 찾아봐야 하는데, 빠르게 디깅하는 이들에 밀려 덩달아 이름만 보고 구매하게 됐다. 릴 루이스는 일단 너무 유명하니까.

구매한 후 들어보니 일단 거칠었다. R&B, 하우스 믹스 등 다양한 버전이 수록되어 있는데 나는 특히 “Tamburine Mix”를 좋아한다. 어릴 적 노래방에서 가지고 놀던 탬버린 이미지를 지워버리는 거친 사운드가 좋다. 특이한 것이 “Ok, Go back one more time?” 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백스핀을 걸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간다. 거친 심벌 소리 또한 이때부터 걷힌다. 백스핀으로 이렇게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 수 있구나 싶더라. 이건 생각해보니 식물과는 큰 상관이 없다. 그래도 꼭 추천하고 싶었다.

Lil Louis & The Party – “Clap Your Hands (Tamburine Mix)”

백스핀 걸리는 파트를 클럽에서 플레이하면 반응이 볼만할 것 같다.

잘 틀면 정말 멋있다. 그러나 못 틀면 다 나가버릴 것 같다.

다음으로 소개할 바이닐은 뭔가?

레전드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Menagerie]. 서울의 레코드 숍 라드 레코드(Rad Record)에서 구매했다. 빌 위더스를 처음 접한 건 “Just the Two of Us”였다. 한국에서 번안곡으로 많이 불렀던 음악인데 워낙 많이 번안되어 처음엔 한국 음악인 줄 알았다. 훗날에야 “Just the Two of Us”의 원곡자가 빌 위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

그 흥미에 이것저것 들어봤는데 [Menagerie]가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다. 빌 위더스 보컬 자체가 중저음에 진하긴 하지만 바이브레이션으로 막 기교부리며 끌고 가는 느낌이 아니다. 그냥 담백한 사람인 것 같더라고. 그리고 커버 아트 자체가 자연 친화적인 느낌이라 고르기도 했다. 그리고 밀트 잭슨과 이 앨범 또한 확실하게 식물에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Bill Withers – “Lovely Day”

마지막으로 소개할 바이닐은?

[August EP]. 베이스가 리드하는 전형적인 딥 하우스 바이닐이다. 초반 고음역 드럼이 매우 거칠다. 특히 바이닐 B1 트랙 “Acid Carpaccio”는 처음에 고음역 드럼이 매우 거친데 실제 클럽에서 플레이하면 서로 맞물리지 않고 어긋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후반부에는 재지한 멜로디가 애시드에 얹어진 채로 등장한다. 거친 면모를 부드러운 소스로 풀어내려고 한 느낌이다.

나는 릴 루이스보다 이 앨범이 가장 거칠다고 생각했다. 애시드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찾아본 바로는 미지의 나라 몰타에서 릴리즈된 바이닐이더라.

아 그래서 커버 아트가 독특한 건가?

Owen Jay & Melchior Sultana – “Acid Carpaccio”

사실 식물을 주제로 한 음반이라면 모트 가슨(Mort Garson)의 [Plantasia]가 대표로 떠올라서 이처럼, 식물을 주제로 한 바이닐을 골라줄 것이라 예상했는데, 독특한 하우스 바이닐을 다수로 셀렉해서 의외다.

나는 질문에 언급된 모트 가슨이나, 라이브러리 음악과 같이 식물을 주제로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냥 식물과 바이닐을 행위로 연결짓고 싶었다. 아티스트가 음악을 녹음하고 바이닐에 음악을 담는 행위는 본래 숲에 있던 식물을 화분에 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바이닐이 음악을 만진다는 느낌이 있다면 화분과 식물들 또한 어루만지는 느낌과 그 맛이 있다. 이참에 골라줄 테니 하나 키워봐라.

안 그래도 숍에 놓인 이쁜 아이들을 보며 집을 화사하게 꾸미는 걸 생각해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반지하 집에 자연광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자연광 없이 물만 마셔도 쑥쑥 자라는 친구는 없는가?

없다.

Jongho 인스타그램 계정
뜻밖의 행복 인스타그램 계정


에디터│ 황선웅
사진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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