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5 Favorites : CHA CHA

‘가장 소중한 5가지 물건’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 쑤시고 다니는 필자에게 차승우는 분명 모종의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인디 록의 첫 페이지를 쓴 선봉장, 로큰롤 아이콘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멋쟁이. 부끄럽지만 오랜 경력과 깊은 취향을 자랑하는 그인 만큼, 진귀한 수집품을 보게 되리란 기대를 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섣부른 예상과 달리, 명동의 아늑한 카페에서 만난 차승우는 가벼운 손가방 차림이었다. 구태여 무거운 물건은 가져오지 않았다며 입을 연 그는 가방에서 소장품을 하나하나 꺼내며 테이블 가득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브랜드와 가격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와 사람에 관한 이야기. 차승우의 ‘Rock Stuff’를 소개한다.

‘Rock Stuff’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조금 두루뭉술했을 것 같다. 어떤 아이템을 준비했는가?

사춘기 이후로 지금까지 로커로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지닌 물건은 대부분 크건 작건 록에 관련되어 있다. 그때그때 누구한테 선물 받거나 직접 구입한 물건을 준비했는데, 내 개인적인 궤적과도 관련 있을 것 같다.

1. 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 vintage bag

그간 여러 가지 스타일을 즐겼고, 최근에는 처음 록을 접했던 시절 푹 빠져있던 60년대 빈티지 의류에 다시 관심을 두고 있다. 이 가방 또한 60년대의 물건으로, 가방에 크게 프린트된 B.O.A.C는 영국해외항공의 과거 로고다. 60년대 중반에 최초로 전 세계를 운항한 영국 항공사로 알고 있는데, 이 가방이 흥미로운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좋아하는 초기 비틀즈(The Beatles) 사진 중에는 소위 말하는 ‘공항 샷’이 많고, 특히 그중에서도 항공사에서 받은 항공 가방을 든 사진이 많이 보인다. 바로 이 가방이지. 이베이(eBay)에서 ‘찜’해놓고 있다가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외투 주머니에 물건을 넣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항상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 편이라 장갑, 담배, 핸드폰, 책 정도만 들어가는 이 가방의 사이즈가 내겐 적당하다.

60년대는 록의 황금기였다고 알고 있다. 직접 소개해줄 수 있을까?

록 음악, 아니 대중음악 전반의 르네상스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50년대에 태동한 록 음악이 찬란하게 만개한 시기였고,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는 용어로 잘 알려졌다시피 비틀즈를 위시한 영국 뮤지션들의 음악이 미국 그리고 전 세계에 퍼지면서 보편화한 시기다. 나 또한 60년대의 음악이나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록 음악도 비틀즈의 음악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팬이다.

어떤 계기로 록 음악에 빠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을 거다.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 아하(A-ha), 왬(Wham!), 듀란 듀란(Duran Duran) 같은 팝 음악을 듣는 것이 유행이었고, 4살 터울의 친누나가 팝송을 굉장히 좋아했다. 누나가 그런 음악을 즐겨 듣다 보니 어린 나도 자연스레 그런 음악이 좋게 들린 것 같다. 누나가 갖고 있던 ‘길보드’, 즉 해적판 카세트 중 ‘CM송 모음집’이라는 테이프가 있었는데, 그중 한 곡, ‘상일 가구’의 CM송에 꽂혔다. 바로 비틀즈의 “I Wanna Hold Your Hand”였지. 겨우 3분 남짓한 노래지만 그 노래가 내 향후 삶을 완전히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맘때에 느끼는 예술적인 카타르시스, 음악이나 영화를 통해 느끼는 쾌감은 엄청나게 크지 않나. 대부분의 예술적 자극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완전히 미쳐버려서 좋은 음악과 부가적인 자료를 찾으러 헌책방 등을 쏘다녔다.

그렇다면 지금 설명한 의상 스타일을 모즈(Mods)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 모즈 룩은 60년대에 기원을 둔 영국의 서브컬쳐(Subculture) 코드다. 당시의 런던 서브컬쳐 부흥기를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이라고 칭하는데, 그 시기를 발판 삼아 모즈 룩이 전 세계적인 패션 코드로 널리 퍼졌다. 외형적으로 모즈 룩을 상징하는 대표 아이템이 몇 개 있다. 몇 가지를 들자면 이탈리아제 스쿠터, 이탈리아 및 프랑스 남성 캐주얼에 영향을 받은 복식, 쓰리 버튼 정장 등이 있다. 모즈 룩을 즐긴 청년 대부분이 노동 계급이나 하층민이었는데, 나름의 찌글찌글한 삶의 돌파구로 삼은 게 외형적인 사치였다고. 재미있는 것은 모즈와 대립한 로커즈(Rockers)라는 서브컬쳐 그룹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영국제 모터사이클, 즉 네이키드 바이크(Naked Bike)와 가죽 잠바 그리고 미국식 폼파도르(Pompadour) 헤어 등 터프한 스타일을 즐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들은 모즈와 반대로 중상층 이상이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계급을 향한 로망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최근 힙합 뮤지션이 차용하는 비주얼이나 패션에서 종종 펑크 록의 요소를 발견하곤 한다. 록 뮤지션으로서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다.

록 티셔츠를 입는다거나 하는 등의 믹스매치는 이제 너무 보편화된 것 같다. 다만 펑크 록의 음악적 요소를 섭렵하는 일은 드물고 그냥 패션의 도구로써 그 이미지를 차용하는 듯하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좋아 보인다.

2. M51 Fishtail parka

일명 ‘개파카’라고 불리는 아이템이다. 이 또한 모즈 컬쳐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당시 맞춤 정장을 즐기던 모즈 젊은이들이 스쿠터로 떼를 지어 이동할 때 도로의 흙탕물이나 빗물 등 갖은 오염에서 비싼 수제 정장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오버사이즈 아우터를 입었다고 한다. 한국 전쟁 등 여러 전쟁이 지난 이후에 밀리터리 의류가 런던의 빈티지 숍에 많이 공급된 것도 유행에 한몫했겠지. 어쨌든 단아한 정장 차림을 유지하기 위해 상반된 느낌의 밀리터리 아우터를 믹스매치했고, 지금은 모즈 룩의 또 다른 상징이 됐다. 나 또한 이 제품을 부담 없는 가격에 구매해 겨울에 가볍게 걸치는 용도로 자주 활용하고 있다.

독특한 패치(Patch)가 눈에 띈다.

4년에 걸쳐 직접 부착했다. 모두 이베이에서 구매한 것들로, 나름의 스토리가 있지. 파란색 패치는 과거 스카(Ska) 음악과 투톤 무브먼트(Two-tone Movement)의 유행에 기여한 블루 비트 레코즈(Blue Beat Records)의 것이고, 붉은색은 모드 젊은이들이 유흥을 즐겼던 소울 클럽(Soul Club)의 패치다. 둘은 레플리카지만, 가장 큰 직사각형 패치는 와스프 오브 런던 스쿠터 클럽(Wasps of London Scooter Club)의 80년대 오리지널 빈티지 패치다. 재미있게도 이 패치는 독일인 판매자가 제품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한국에서 이런 물건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하더라.

패치의 디자인이 흥미롭다. 어떤 정치적인 함의나 상징을 담은 경우도 있을까?

모즈 컬쳐는 정치적인 성향이 없다. 그냥 흥청망청하지. 그런 라이프스타일에서 더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로커의 자세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록 음악 본연의 자세는 ‘야성이 거세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자세가 느껴져야 록 음악의 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 주관적인 취향일 수 있으나, 최근 록 신에 그런 에너지가 많이 꺾이면서 조금 시시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옛날에는 핫(Hot)한 게 미덕이었다면 최근에는 칠(Chill)하고 쿨(Cool)한 정서가 유행이지 않나. 자연스레 록 밴드들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렇다면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록 뮤지션은?

불고기 디스코(Bulgogi Disco)의 데뷔 앨범을 정말 좋게 들었다. 록 음악 신(Scene)이 침체한 게 사실인데, 불고기 디스코가 그런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기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럴 만한 에너지를 분명히 지니고 있으니까. 록 음악 본연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놓치지 않고, 연주력도 탁월해서 바람직한 형태의 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The Beatles handkerchief

둘도 없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일본에서 사다 준 선물이다. 초등학교 당시에도 같이 비틀즈, 퀸(Queen) 등의 음악을 같이 듣던 친구라 내가 비틀즈에 죽고 못 사는 걸 잘 알지. 사춘기 때 같이 놀면서 문화적인 욕구를 해소했던 각별한 사이다. 지금도 비틀즈 관련 물건만 눈에 띄면 선물해준다. 손수건을 딱히 즐겨 사용하진 않지만, 이 제품은 각별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맘에 들어 항상 휴대한다.

4. The Clash [London Calling] 40th Anniversary mook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유학했다. 노브레인을 탈퇴하고 무작정 떠났는데, 사실 명목은 유학이었지만 공부에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환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막상 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기서 또 밴드 활동을 하고 있더라 하하. 배틀 오브 더 닌자 맨즈(Battle of The Ninja Mans)라고, 라커빌리(Rockabilly)나 사이코빌리(Psychobilly) 음악을 표방하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에 기타 멤버로 들어가 활동했다.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약 2년 정도 활동했는데, 그 밴드의 다른 기타리스트 쿠보 상이 정말 나를 친동생처럼 따듯하게 대했다. 최근 유학 생활을 마친 지 13년 만에 일본에 다녀왔는데, 쿠보 상과의 짧은 만남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13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공항에 직접 마중을 나왔다. 내 모습을 보고 유학 당시와 크게 변함이 없는 듯해 안심했다면서 이 책을 건넸다. ‘너 이거 아직 좋아하지? 잊지 않고 있지?’ 같은 메시지랄까. 무언의 동지애가 느껴지면서, 짠하더라고. 밴드 활동하던 당시 그 형님도 나도 클래시(The Clash)를 정말 좋아했다. 그걸 잊지 않고 클래시의 전설적인 명반 [London Calling] 40주년 기념 무크지를 준비한 거다. 그 자체로도 앨범의 엑기스를 넉넉한 분량으로 담은 기념비적인 책이지만, 쿠보 상과의 추억이 더해지며 상징적인 물건이 되었다. 요새 음악 활동을 게을리한 것이 사실인데, 13년 만에 재회한 음악 선배에게 이런 선물을 받으니 일침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더라. 음악 생활에 터닝포인트를 맞은 느낌이었다.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은 팬에게도 잘 알려졌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 같다. 유학 생활은 어땠나?

나에게는 천국이었다. 요샌 일본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앨범 차트 3위권 안에 항상 펑크 록 앨범이 있었고, 1위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역사적인 배경뿐 아니라 세부적인 디테일에 강한 특성 그리고 영국과 공유하는 모종의 ‘섬나라 정서’가 더해져 일본 신을 만들어낸 것 같다.

최근엔 국내 인디 밴드도 일본을 비롯한 해외 시장으로 적극적으로 활로를 넓히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 음원 시장은 밴드에게는 최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밴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지 못하면 입에 풀칠하기 불가능한 시대고, 공연장도 많이 없어지고 있다. 해외로 활로를 넓히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당연히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주목하는 해외 신이 있나?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의 인디 신 형성 시기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늦다고 알고 있는데, 에너지가 정말 대단하다. 경제적인 여건으로 동남아에 그런 신이 존재할 거라고 예상 못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접하며 많이 놀랐다. 록 신의 세부적인 장르를 제대로 즐기는 동시에 만들어가는 플레이어 또한 많은 것 같다. 물론 한국 신과 활발히 교류하는 대만과 태국도 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아시아 각국의 로컬 신이 서부의 답습을 떠나 아시아라는 이름 안에서 연대하고 독자성을 모색하려는 경향이 분명히 보인다.

5. Galcia Silver bracelet

일본에서 배틀 오브 닌자 맨즈로 활동할 때 밴드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실버 주얼리 브랜드 갈시아 실버(Galcia Silver)의 오너 사카모토 상인데, 50~60년대 아메리카의 로큰롤 문화와 바이크 문화에 영감을 받은 쥬얼리를 직접 제작한다. 잘나가는 브랜드 오너였던 그는 배틀 오브 닌자 맨즈와 꽤 친분이 있었다. 하루는 밴드의 공연을 좋게 봤는지 공연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대뜸 자신이 착용한 팔찌들을 보여주더니 갖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했다. 한국에서 온 어린 애가 리젠트(Regent) 머리 제대로 하고 기타를 연주하니까 귀여웠던 거지. 갑작스러운 호의에 이 팔찌를 골랐고, 그는 즉시 자신의 손목에서 팔찌를 풀어서 내게 채워 주었다. 그 당시의 기억이 너무 흐뭇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쭉 착용하고 있다.

팔찌에 적힌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

퍼니시먼트(Punishment). 근데 수제 작품이다 보니 제작 과정에 실수가 있었는지 알파벳 s가 빠졌다. 그게 맘에 든다 하하.

오늘 소개한 선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롭다.

다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로 인정하는 사람끼리 채널링해서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벅차지 않나. 모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록 신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것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남의 눈에는 별것 아니더라도 나에게 의미가 있다면 보물이니까.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간단히 소개해줄 수 있을까.

놀 만큼 많이 놀았다. 본업을 소홀히 한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약간 위기감이 들기도 한다. 더 시간이 가기 전에 이맘때 낼 수 있는 금자탑을 세우고 싶다. 솔로 작업과 함께 밴드도 구상하고 있으니, 솔로로 만들 수 있는 음악과 밴드로 할 수 있는 공연, 두 가지 활동을 병행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쿨하고 칠한 음악보다 록이 가지고 있는 야성을 잘 살린 무언가를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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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포토그래퍼 │ 김용식

*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