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CINEMA #STEAK FILM

철학자 니체는 수행자가 머무름 없이 떠도는 불교의 수행 의식, 탁발에 아주 높은 평가를 내렸다. 한곳에 머무르며 부패하고 썩는, 권력과 정조를 지키는 자들의 위험성을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번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는 이동식 언더그라운드 시네마, 스테이크 필름(Steak Film)은 한국 영화 신(Scene)에 없어서는 안 될 탁발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퀴어, 트랜스젠더리즘, 사이버펑크 등 기존 시네마가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사회와의 마찰을 시도해 온 스테이크 필름. 고루함이라는 올가미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새 발걸음을 옮기는 운영자 두도욱에게 스테이크 필름과 언더그라운드 영화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현대 상영 체제에 반기를 든 그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영상을 만들다가 이제는 영상을 보여주는 두도욱이라고 한다.

스테이프 필름을 운영하기 전에는 무엇을 공부했나.

영화 이론, 영상, 미디어를 공부했다. 근데 너무 이론적인 일만 하다 보니 실무적인 작업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비디오 만드는 일을 외주 작업으로 진행했다.

스테이크 필름은 어떤 시네마인가. 스테이크의 의미도 궁금하다.

베를린에 있을 때 친구랑 농담 삼아 ‘소셜 스테이크’라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을 차리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긴 탁자 위에 사람들을 앉혀두고 스테이크를 내주는 콘셉트였는데, 이 아이디어가 너무 재밌더라고. 후에 친구가 다시 에이전시를 만들자고 했을 때 스테이크라는 의미가 좋아서 사용했다. 

고기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스테이크로 먹지 않나. 뭔가 중요한 걸 스테이크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 ‘중요하고 맛있는 문화를 다루는 에이전시’가 되고 싶었다. 영상을 서빙하는 일과 스테이크를 서빙하는 일이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고. 

스테이크 필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재정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언더그라운드 영화관을 운영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서울에서 영상을 만들면서 그런 니즈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냥 순수한 개인적 갈망.

게다가 이동식 시네마다. 초기 이태원 클럽을 시작으로 해방촌 신흥시장, 을지로 전기 공방, 개인주택 그리고 머나먼 브뤼셀까지. 거침없이 거처를 옮긴 스테이크 필름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어디인가.

스테이크 필름의 취지와 가장 잘 부합했던 신흥시장과 아조바이아조 지하실. 시장이나 옷 가게같이 일상의 생활이 돌아가는 와중에 뜬금없이 예술영화를 보여준다는 게 웃긴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굳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옮겨 다니는 이유가 있을까?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공간을 1년 정도 지원받기는 했는데 이곳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옮겨 다니는 이유는 지루하지 않으려고? 굳어져 버리면 그 자체가 올가미가 되니까.

을지로 인쇄 골목 사이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곳으로 거처를 정한 이유와 그동안 옮겨 다닌 장소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이야기해 달라.

을지로라는 지역이 지금 사라져 가는 곳일 뿐더러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만선 호프 쪽에도 현재 많은 마찰을 빚고 있다. 을지면옥 같은 역사적인 공간도 없어지면서 점점 대기업화돼가고 있지 않나. 몇 년 있으면 더 많은 것들이 바뀔 공간이라 재미있는 것 같다. 주위가 인쇄소다 보니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서울 중심에 마지막으로 남은 공업단지 아닌가.  

공간 곳곳에 흥미로운 물건들이 눈에 띈다. 몇 가지만 소개해 달라.

  • 코로나 해결: 한동안 길가에 엄청 많이 붙어 있던 ‘코로나 해결’이라는 전단지다. 2018년부터 이런 말을 쓴 게 참 웃긴 것 같다. 
  • THE BLOB: 2000년대 초반에 나온 페이크 뉴스도 있는데 린제이 로한(Lindsay Lohan)이 이마에 나치 사인을 타투로 했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들이 재밌어서 가지고 있다. 
  • 3X3X6: 슈 리 칭(SHU LEA CHEANG)이라는 대만 아티스트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카사노바나 사디스트, 성범죄자들의 얼굴을 기록한 책이다. 스테이크 필름에 꼭 모시고 오고 싶은 분인데 MMCA 정도는 되야 오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모아서 보여주는 행위 자체가 창작인 것 같다. 어떤 물건을 찾아와서 단순히 보여주는 파운드 아트(Found Art)를 행하는 예술가들도 있지 않나. 어찌 됐건 그게 언더그라운드 신에만 존재하는 묘미가 아닐까. 

토탈미술관의 후원으로 정착하게 됐다고 들었는데, 토탈미술관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을까.

토탈미술관 관장님과 우연치 않게 대화하게 됐는데 내가 하면서도 이건 좀 헛소리가 아닌가 싶은 말들도 다 알아들으시더라. 우리가 하는 일을 재밌게 들어주시고 후원도 선뜻 응해주셨다. 

영화 얘기로 넘어가 보면 이제까지는 브루스 라브루스 감독 작품처럼 동성애 색채가 강한 영화를 위주로 상영해 온 것으로 안다. 영화를 선정하는 스테이크 필름만의 기준을 이야기해 달라.

아까 잠깐 언급했던 ‘마찰’, 이 마찰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사회와의 마찰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이질적인 느낌에 흥미를 느낀다. 스테이크 필름을 해오면서 아이덴티티가 그렇게 잡힌 것 같다. 처음부터 동성애나 퀴어를 키워드로 정하진 않았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상영할 때 짜릿짜릿한 전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한국에서 상영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아직까지 비난은 없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대놓고 무언가를 하면 비난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가만히 숨기려고 들면 더 뭐라고 하지. 면전에 대놓고 하던 게 효과를 보지 않았을까.  

지금껏 상영회를 진행해 오면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영화는 무엇인가.

전체적으로 다 무난했던 것 같은데 굳이 뽑자면 “No Skin Off My Ass”.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접하고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또 취미를 넘어서 영화관을 운영하기까지 본인을 움직인 원동력이라면.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정말 어렸을 때부터 사촌들이 불법 복제 비디오 같은 걸 좋아했다. 그래서 나도 그것들을 보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나이 때 봤으면 안 될 것 같은 영화들도 많이 봤더라.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접하면서 흥미도 생기고 좋아하게 됐다. 

아직도 스스로를 영화를 감독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고, 아까는 영화를 만들다가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영화를 보여주는 행위 안에도 약간은 창작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스테이크 필름은 다른 시네마와 달리 단순 영화 상영을 넘어 관객과의 토론, 강연이나 퍼포먼스로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지가 남다른 것 같다. 상영에 그치지 않고 관객을 끌어들이는 시도는 무엇을 위함인가.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영화에는 시각적인 장면이나 사운드 같은 표면적인 요소를 떠나 그 안에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 혹은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근데 이걸 안 보고 넘어가면 그건 그냥 영화를 안 본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메시지를 어떻게든 사람들한테 알려서 그들이 깨어있는 자세로 영화를 보게 하는 게 목표다. 물론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되고, 주로 그렇게 보지도 않지만 ‘살면서 한 번 정도는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도하게 됐다. 

현재 스테이크 필름의 위치를 정의한다면 시네마와 공연장 그리고 토론장 그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면 좋을까.

결국은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이긴 한데 이제는 영화를 보든지, 얘기하든지, 생각하든지, 만들든지 이런 것에 경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단계다. 

올해에는 사이버펑크, 여성 감독, 트랜스젠더리즘에 관한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라 들었다. 관련 영화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는지. 

모니카 트루트(Monika Treut)의 “GENDERNAUTS”. 사이버펑크, 여성 감독, 트랜스젠더리즘을 모두 포함한 작품인데 전에 상영했던 “나쁜 여성들”의 후속편으로 생각해 주면 될 것 같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이버펑크 이론가가 나오는데 그 인물이 사이버 페미니즘 교주가 되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LGBTQ 색채가 워낙 강해서 그런 문화를 아직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아직 접근이 어려운 것 같다.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LGBTQ 문화를 향유한다는 건 그 문화를 즐기는 자신에게 꽂히는 사회적인 시선이 두렵다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흥미 있어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혐오하더라도 좀 뭔가를 찾아보고 나서 혐오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싸잡아서 “LGBTQ는 이런 거다!”라고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그 안에 어떤 문화가 있는지 먼저 알아보길. 그리고 LGBTQ에 속한 사람들도 자기가 L이나 G나 B에 속해 있으면 다른 쪽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더 알아봤으면 한다. 

가장 소프트하게 시작할 수 있는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추천한다면?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영화의 한 장르가 아닌 영화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아이언맨(Iron Man)”을 틀더라도 집에서 스트리밍하는 것과 메가박스에서 관람하는 건 다르지 않나. 예전에는 언더그라운드 영화라는 장르가 확실히 있긴 했는데 지금은 ‘영화를 바라보는 시점’이라고만 이야기해 두고 싶다.

앞으로 스테이크 필름이 기대하고 있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영화 신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스테이크 필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굳이 가오를 잡고 멋있어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신이라는 건 그냥 막 들이대면서 만드는 게 좋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충무로에 ACS라는 클럽 같은 곳이 언더그라운드에 가장 가까운 공간이 아닐까 한다. 미숙하더라도, 멋있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끼지 않아도 그냥 들이대면서 했으면 좋겠다. 꼭 우리가 아니어도 시네마가 됐던, 언더그라운드 파티가 됐던, 섹스 클럽이 됐던, 좀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란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젊은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기들 원하는 일 하는 거. 

마지막으로 스테이크 필름이 그리는 가까운 미래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

앞으로 분명 우리가 원치 않아도 맞닥뜨리게 될 암울한 미래가 있다. 내가 굳이 얘기 안 해도 신문만 펴봐도 알 거다. 그 미래에 대비하려면 우리도 총알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또 요즘 어린애들을 보면 그들이 우리나라를 구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 

Steak Film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장재혁
Photographer │강지훈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