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된 범인의 얼굴을 촬영한 사진을 뜻하는 은어, ‘머그샷(MUGSHOT)’. 정식 명칭은 ‘Police Photograph’로, 머그잔에 얼굴 모양 부조를 장식하는 일이 흔했던 18세기에서 유래됐다.
1840년 처음 촬영된 머그샷은 그간 악질 범죄자들의 신상 공개를 위한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통법규를 위반한 빌 게이츠(Bill Gates)의 해맑은 미소나 범죄 영화의 여주인공 같은 린제이 로한(Lindsay Lohan)의 뚱한 표정으로 대표되는 B급 이미지가 섬뜩한 범죄자의 얼굴에 앞서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VISLA 매거진의 신년 맞이 월별 인터뷰 시리즈 ‘MUGSHOT’은 디지털 세상을 유영하다 뇌리에 박힌 개성만점 인물을 조명하는 콘텐츠다. 그 첫 수감자는 향수병을 자극하는 y2k 스타일의 대표 모델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최근에는 음악 활동의 조짐 역시 심상치 않은 인물 묘카하라(Myokahara). 머그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데면데면한 기류에 흐른 삼삼한 대화를 함께 따라가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Myokahar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진 메이커(Zine Maker) 그리고 모델 겸 그래픽 디자이너다.
당신을 일본 사람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한국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주로 활동해서 그런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유니프(UNIF)라는 미국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는데, 유니프를 통해 노출될 기회가 많다 보니 미국과 일본에서 오퍼가 많이 왔다. 그렇게 작업이 이어져 파르코(Parco) 백화점에서 사인회를 하기도 했고, 히스테릭 글래머(Hysteric Glamour)의 35주년 한정판 책 모델에 참여하기도 했다. 발매 행사에서 음악도 틀었으니 히스테릭 글래머와는 인연이 꽤 깊은 편이다.
일본에서의 활동은 절친 이부키와의 인연으로 이어진 것들이 많아 늘 고마운 마음이 크다. 이부키와 함께 츠타야에서 책을 제작하기도 했고, 덕분에 시부야 츠타야의 직원 유니폼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이부키 덕이지.
사실 ‘묘카하라’라는 이름은 일본어도 아니고,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은 단어를 사용한 거다. 순전히 어감이 귀여웠다. 마구 만든 이름이라 나조차도 무슨 뜻이지 모르는 상황, 그게 싫지 않았다.
묘카하라의 일본어 실력은?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하진 못하는데, 일본인 친구들이 많아서 듣는 건 어느 정도 되는 편.
본인을 무직이라 정의한 것에 비해 모델,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최근 보인 음악 작업까지, 상당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너무 다방면에서 작업해왔기 때문에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눈코 뜰 새 없이 계속 일을 처리해야 했다. 내가 준비된 정도에 비해 처음부터 일이 밀려있었던 거지. 어느 순간 보니 내 작업을 못하고 있더라. 그래서 작년부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들 몇 가지를 빼고는 모두 정리 중이다.
몇 가지라 하면?
그림, 음악 그리고 PT 비용을 벌기 위한 모델일? 최근에는 혁오와 봉제인간의 기타리스트 임현제에게 기타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드래곤힐프린트샵의 오프닝 공연에서 그 친구가 기타를 치고 내가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정말 재밌고 든든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친구라, 친구지만 많이 배운다. 지금은 싱글 앨범을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주변에서 곡을 받는 중이다. 일본의 오카모토 레이지(Okamoto Reiji)에게도 한 곡 받아 둔 상태.
음악 활동은 언제부터 결심한 것인지.
옛날부터 음악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전부터 시작하려고는 했는데, 음악을 전업으로 하고 계신 분들한테 괜히 미안하더라. 제대로 할 줄 도 모르면서 뛰어든다는 사실이 실례가 되는 것 같아서, 나중에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하려고 계속 미뤘다. 그런데 그러다간 평생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씩씩하게 용기 내서 시작해 보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면.
밴드로 활동하게 된다면 90년대 펑크 밴드같이 펑크의 정석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 반대로 혼자 음악을 할 때는 좀 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정말 뜬금없이 힙합을 할 수도…
스타일이나 작업물을 살펴보면 90년대 일본 매거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지금의 묘카하라에 영향을 준 계기가 있다면 알려달라.
나보다 6살 많은 오빠가 있는데, 어릴 때 오빠 방에서 만화책을 정말 많이 봤다. 만화책이라는 매체 특성상 오빠도 더 전 세대의 것을 보고 있었겠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2000년대 초반 혹은 90년대 스타일을 접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예전부터 비스티보이즈(Beastie Boys), 스매싱 펌킨즈(Smashing Pumpkins), 린킨파크(Linkin Park), 소닉유스(Sonic Youth) 같은 하드한 음악을 좋아해서인지 당시 유행하던 약간 때탄 듯한 옷을 지금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때 어떤 만화를 봤는지.
‘슬램덩크(Slam Dunk)’, ‘더 파이팅(The Fighting)’, ‘체인지 가이(Change Guy)’. 보통 인기 없는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학가서 싸움으로 평정하는 류의 만화를 좋아했다.
십 대에는 주로 뭐에 빠져 보냈나.
제이팝에 빠져 지냈는데, 나카시마 미카(Nakashima Mika)를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일본 활동을 하다 보니 나카시마 미카와 인연이 닿기도 했고, 심지어 사인도 받았다. 지금 내 아이패드 배경화면도 나카시마 미카카 내 이름을 적어준 앨범을 들고 찍은 사진이다(히스테릭 글래머 디자이너 노부히코 씨가 사인을 받아줬다!). 항상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음악에 대한 갈망도 거기서 시작된 것 같다.
일러스트에 대한 영감도 그 시절에서 받는지.
그림은 단순히 한 장 안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려고 한다. ‘다른 길로 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면 멈춘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게 없는 그림을 원하다 보니 점점 심플해지는 것 같다.
일러스트 작업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이 있다면?
선. 그림, 특히 선을 계속 그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잘 그려지는 때가 온다. 그렇게 프로페셔널해지는 게 싫더라. 애가 그린 것 같은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때로는 왼손으로 선을 그리기도 하고 그게 익숙해졌다 싶으면 다시 오른손으로 그리곤 한다.
평소 쉴 땐 뭘 하는 편인가.
기타 연습? 최근에는 밴드 효도앤베이스가 앨범 작업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 진을 만들기도 하고, 드디어 부품을 다 모은 나만의 자전거를 페인팅 중이기도 하다.
열심히 사는 것 같다.
스스로를 정말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가족력 자체가 그렇다. 타고나길 불만도 크게 없고, 힘든 것도 금방 잊는 긍정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독기가 없다. 늘 긍정, 태평한 핏줄의 DNA를 벗어나려고 노력 중인 거지.
요즘 가장 빠져 있는 게 있다면 알려달라.
역시 기타 연습.
갑작스럽지만 묘카하라가 믿고 사는 한 가지, 묘카하라의 믿음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진실함, 진실함을 믿는다. 그걸 못 믿던 시절도 있었다. 원래는 많은 인간관계를 꾸리던 사람이 아니었고, 항상 혼자만의 굴속에서 뭔가를 하려던 사람이라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다. 사회성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지금은 엄청나게 노력해서 중학생 정도가 된 것 같다. 그전까지는 초등학생 정신에 몸만 큰 상태였지.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나의 시간차가 정말 크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이미 사회화가 돼 있어서 자기를 잘 포장하는 방법을 알았는데, 나만 아직 서투르더라. 어떤 사람이 “나는 A가 좋아”라고 얘기하면 알아서 분위기를 읽고, 사실은 그게 아니란 걸 알아 들어야 하는 게 낯설었다.
그런 상황에서 항상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그 정도는 알아야지’하는 분위기에 맞추려다 보니 점점 힘들어졌다. 그것 때문에 항상 불안하기도 하고. 그런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현제를 비롯해 연수, 윤해, 일준 등 숲속의 동물들 같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무해하고 마음씨 따뜻하고 귀여운 사람들. 그 세상에서는 모든 게 솔직하다.
기타 첫 레슨 날, 현제가 교재를 다양하게 준비해 온 걸 보고 괜히 미안해져서 “나한테 말하지”라고 했는데 “아니 그건 안돼, 내가 직접 보고 뭐가 너한테 도움이 될지 생각해서 하나하나 골라야지. 이건 어차피 내가 해야 될 일이야” 라고 하더라. 말주변이 없어 잘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그 꾸밈없는 말들에 감동받으며 배운다. 좋은 선생님이다. 기타뿐만 아니라 그의 진실한 행동에서 나오는 건강한 힘을 보면서 용감해졌다. 그래서 싫으면 싫구나, 좋으면 좋구나를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됐다. 의심하지 않는다. 만약 의심이 들면 바로 물어보며 소통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말을 믿으니 정말 편하다. 주위에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힘들었던 요소가 모두 빠지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 그로 인해 시간도 훨씬 많아졌다.
2023년의 한 달이 벌써 저물어 가고 있다. 혹시 새해 결심 중 벌써 실패한 일들이 있나.
다른 길로 빠졌다면 멈출 것 그리고 빠르게 빠져나올 것. 이 점을 인지하기.
Editor | 장재혁
Photograpy | 김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