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하늘의 흐릿한 경계가 보이는 짧은 벽 앞에 중절모를 쓴 한 남자가 서 있다. 남자의 얼굴은 떠다니는 녹색 사과로 대부분 가려져 있지만 가장자리 너머로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라는 이름이 익숙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 기묘한 그림이 그저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화상으로 완성된 ‘Son of Man’은 초현실주의 운동의 가장 잘 알려진 그림 중 하나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을 현실 세계의 일부로 일깨워 준다. 벨기에 아티스트 르네 마그리트는 이 그림에서 보여주듯 개별 요소는 전부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이들을 하나의 프레임 속에서 재조립하면서 전체적인 맥락을 정상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이외에도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프리다 칼로 등 주요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저마다 자기 탐구의 수단을 찾으면서 초현실주의의 범위를 넓혀갔다.
초현실주의란?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유럽에서 번성하기 시작한 시각 예술과 문학 운동이다.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은 과거 유럽 문화와 정치를 이끌고 끝내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재앙까지 이르게 한 것이 ‘이성주의’라고 판단했다. 무의식적인 사고 과정으로 이어진 결정을 통해서 기존의 이성주의에 저항하는 것을 예술 활동의 큰 목표로 삼게 되었다.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출판하며 이데올로기의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비평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은 초현실주의를 ‘꿈과 환상의 세계를 일상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에 합류하게 만드는 수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말은 실로 당시 음울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예술가들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는 선언과도 같았다.
우리 모두 삶에서 ‘무의식’의 힘을 경험해 본 적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하기 싫은 유산소 운동을 강행해야 할 때 신체적 움직임에서 의식을 거두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는 그런 경험 말이다. 이러한 무의식은 특히 창작 활동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히트곡을 30분 만에 완성했다는 작곡가들도 대개 이성적 사고에 크게 의지하지 않았기에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일 터.
신(新) 초현실주의란?
그렇다면 신(新) 초현실주의는 무엇일까? 사실 이는 학문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은 아니다. 공통 목표도, 선언도, 철학적 의식도 없는 이것은 사회적 변화에 따른 움직임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무의식을 기반으로 창작하는 기존의 해석과 여전히 동일하므로 신 초현실주의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그 기원과 평행선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둘을 완전히 어긋나게 하는 것 또한 당연히 존재하는데, 바로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변화한 창작의 매체, 그리고 그것이 부여해 준 동시대적 의미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비단 예술에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때로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인터넷은 접근성이 용이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용의 경계 또한 흐릿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관점, 가치관 그리고 취향에 따라 모든 것을 감상 및 업로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 세계다. 현실은 의식을 변화시키고, 의식은 자연스레 잠재의식을 변화시킨다. 다시 말해, 서신을 전하기 위해 몇 날을 기다리거나 살롱에 가서 작품을 보는 20세기 인간의 무의식과, 이름 모를 누군가와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기상천외한 콘텐츠를 보는 21세기 인간의 무의식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 초현실주의의 출현을 기술의 발전과 연결시키는 것이 가장 논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새로운 디지털 시각화 플랫폼, 예로 디지털 페인팅, 편집된 사진, 입체적 그래픽, 컴퓨터 게임 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미지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확장시켰고, 이는 자연스레 우리의 의식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다.
모션 아트로 유명한 조 피스(Joe Pease)는 신 초현실주의의 정의와 가장 근접한 예시일 것. 그는 포토샵과 애프터 이펙트로 존재하는 평범한 영상들을 잘라내고 레이어링하면서 아름답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피드백 시스템’을 완성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의 이미지를 결합하고 재구성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앞서 언급했던 르네 마그리트를 떠오르게끔 한다. 다른 점은 이 일련의 과정들이 전부 디지털 세상에서 이뤄진다는 것.
‘틱톡’은 어떻게 신 초현실주의의 예시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신 초현실주의적 디지털 이미지 혹은 영상들이 라이브 액션으로 뻗어나가게 된 계기에는 틱톡의 영향이 가장 컸다. 특히 2021년 7월을 기점으로, 최대 60초까지 업로드할 수 있던 영상 길이가 3분으로 늘어난 이후 기존에 볼 수 없던 류의 영상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신 초현실주의에 대한 레퍼런스가 조금씩 생겨났다.
@tik_tok_bhadie things aren’t always what they seem 😎
♬ original sound – grantbeans
@tik_tok_bhadie라는 아이디로 꾸준히 영상을 제작하는 이 틱톡커는 mz 세대들에게 대표적인 신 초현실주의 ‘아티스트’일 것이다. 그의 영상은 항상 평범한 콩트인 것처럼 시작하지만 점차 예상할 수 없는 기괴한 내용으로 흘러간다. 낯선 외부인의 신출귀몰한 모습이나, 순식간에 이뤄진 장소 전환, 심지어 문을 여는 행위마저도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촬영 컷과 영상 편집을 했는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비논리적임’을 그대로 연출한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 아니 ‘무의식’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이 영상은 미스터리한 배경 음악과 어우러져 우리가 가장 처음 초현실주의 페인팅을 마주했을 때의 이상야릇한 기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savanahmosss Would you like that toasted??😳❄️🥪 #foryou #feverdream #backrooms #AXERatioChallenge #subway ♬ original sound – Savanah Moss
또 다른 틱톡커는 @savanahmosss. 그녀 역시 감상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아리송하게 한다. 앞서 소개한 계정과 비교했을 때 뭔지 모를 하드코어함이 느껴지는 그녀는, 시종일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기이한 행위의 연속을 주로 어두운 환경에서 촬영하기 때문인지 기괴함을 넘어 일종의 불쾌한 골짜기를 경험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jercho1 I can finally retire😭🙌 w/ @grantbeans & @tyler funke ! ♬ original sound – Jericho Mencke
@alejwho ♬ original sound – Alejandro
@degoboop Bro thought he caught me @agc.andy @ygnazz #fyp #foryou #skit ♬ original sound – Dego Boop
이런 트렌드가 특히 10대, 20대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는 와중에, 생각보다 초현실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지 어설픈 계정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으로 인해서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무언가를 표현하는 곳엔 창의와 예술이 필연적으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순수예술과 문화 콘텐츠 사이의 선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단순히 엘리트로부터 승인을 받거나 평가되는 것을 거부하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그 선은 조금씩 구겨지고 지워져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엔터테인먼트 역할에 그치는 틱톡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예술적 표현을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예술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매체를 포용한다는 의식이 점점 강해지는 만큼, 머지않아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우리의 ‘무의식’에도 자리 잡지 않을까.
Joe Pease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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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Wikipedia, Gagos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