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번성해 온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타투 문화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흥미로운 세계를 조명하는 ‘Seoul Ink Chronicles’의 세 번째 주인공은 피부가 훤히 드러나는 낙서 같은 그림, 그러나 러시안 크리미널을 바탕으로 다소 과격한 주제도 서슴지 않고 담아 온 타투이스트 춘 춘(Chun chun).
마치 홍콩 지하 세계의 은밀한 사무실 방불케 하는 그의 작업실에서 그가 타투와 함께 보낸 10년이 넘는 세월 그리고 그의 작업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직하게 한 길만을 걸어온 춘 춘의 이야기를 함께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타투이스트 춘 춘이라고 한다. 춘 춘은 고등학생 때 별명이다. 원래는 ‘Chun Beer’라는 이름을 썼었다. 그전에는 ‘Chun Poke’였는데 그랬더니 사람들이 핸드포크 타투인 줄 알더라. 그래서 당시에 맥주를 엄청 먹고 다녀서 ‘Chun Beer’라는 이름을 10년 가까이 썼지.
타투이스트로 활동한 지는 얼마나 됐나.
이 기간을 얼마로 정해야 할지가 애매하긴 한데, 배우기 시작한 지는 13년 됐고, 고객을 받은 지는 10년 된 것 같다.
첫 고객은 어떤 사람이었나.
대부분의 타투이스트가 그렇듯 나도 처음에는 손님이 없으니 친구들을 꼬셔 연습을 했다. 돈을 받았던 첫 고객은 내가 평택에 있을 때, 러시안 크리미널 타투를 받으러 온 사람이었다. 견장 타투 같은 걸 했던 것 같다.
어떤 계기로 타투이스트가 됐나.
내 타투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선생님 노보(Nobo)다. 군대에 있을 때 우연히 잡지에서 본 바디페인팅이 너무 멋있더라. 그래서 이걸 그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찾아보니 그였다. 그때 몸에 그림을 그리는 게 멋진 거구나 깨달았지.
어떤 주제를 타투로 그리고 어디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
몸과의 자연스러운 조화?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밀도가 작은 그림들. 너무 타투가 강조되기보다는 피부도 보이고 타투도 보이는 작업물들.
본인의 작업 스타일은 어디서 영감을 얻은 결과인지.
너무 많다.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이 없었다. 그래서 타투 이미지들을 접하기 꽤 힘들었는데, 구글에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많이 봤다. 꼭 집에서 했을 것 같고, 너무 잘하는 타투이스트 작업물이 아닌 것 같은 자연스러운 타투들. 친구들끼리 서로 해줬을 것 같은 스타일 있지 않나. 처음엔 그런 걸 따라 하려고 했다.
최근에는 선이 얇은 작업물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맞다. 아까 얘기했듯 피부가 많이 보이는 게 좋더라. 그래서 점점 더 선이 얇아지는 것 같다. 색이 많이 들어가서 떠 보이는 그림들이 싫다.
전사, 전갈, 자살을 주제로 한 강렬한 작업들이 보이는데, 보통 작업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는 편인가.
다양한 소재를 찾으려고 한다. 어떤 작업이 계속 진행이 안된다 싶으면 주변에 있는 의자를 그렸다가 그것도 안되면 다른 것도 그렸다가, 이런 식이다. 그러다가 정 생각이 안 난다 싶으면 대부분의 타투이스트들 하고 있는 강한 주제를 택하기도 한다. ‘러시안 크리미널’ 같은 책을 보면 그런 그림이 많다. 악마, 해골, 칼 같은 것들. 그런 책이 옆에 있으니 계속 그런 것들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볼 수도 있을까?
취향이라기보다는 처음 타투를 시작할 때 봤던 것들이 영향을 준 것 같다. 타투 관력 서적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도 ‘러시안 크리미널’은 한국에 있었다. 그래서 항상 가까이에 두고 보다 보니 그런 것 아닐까.
타투를 하면서 가장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고객이 뿌듯해했을 때? 그거보다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계속하도록 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사실 너무 어려서부터 이 길만 파왔기 때문에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 누구든지 다 그럴 거다. 10년 정도를 내 틀 안에서 살아오다 보니 가끔은 이 틀을 깨고, 다 버리고 다른 걸 하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고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약속이 있지 않나. 내 타투를 받은 고객이 내가 더 이상 타투이스트가 아니게 됐을 때, 그럼 그 고객은 더 이상 아티스트가 아닌 사람의 타투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걸 지키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렇다면 타투를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서 삼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 계기가 궁금한데.
타투가 취미였던 적은 없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무조건 직업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사실 타투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스물두 살이었는데, 스물다섯이 될 때까지는 손등이나 목에 타투를 하진 않았다. 그때까지 직업적 제약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고,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고. 이후에 내가 좀 더 제대로 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인 뒤에 본격적으로 목이나 손등에도 타투를 했지.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눈에 있는 이 점 같은 별 하나,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지금까지 돈 줄 테니 지우라고 하신다. 지금에야 이렇지 그전에는 얼마나 심했겠나.
작업하기 힘들지만 특별히 보람을 느끼는 테마 혹은 디자인이 있을까?
어찌 됐건 자기 그림을 그리는 일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딱히 힘든 건 없다. 오히려 더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오히려 고객이 오기 전에 그림을 더 많이 그려 놓을 때도 있다.
현재까지의 커리어를 되돌아봤을 때 본인의 타투 스타일이 확립된 시기는 언제인 것 같나. 중요한 시기가 있었는지.
스타일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계속해서 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계속 변화하려고 한다. 강한 그림이 멋있다고 느껴지면 강하게 그리고, 귀여운 게 좋은 시기에는 귀여운 그림을 그린다. 내 눈이 달라지는데 계속 똑같은 것만 그릴 순 없지 않나. 내 눈을 따라가려고 한다.
타투이스트로서 상업과 예술의 밸런스가 상당히 중요할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
상업적인 면은 타투이스트로서 어쩔 수 없이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지만, 나 같은 경우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 벌자’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밀어붙이긴 했다. 내 걸 지키려고 무진장 노력하는 편이다. 조금 불안정한 사람들이 간혹 타투로 그 불안을 해소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되도록 받지 않으려고도 하고. 그리고 하면 무조건 후회할 것 같은 사람들도.
본인의 몸에 새긴 것 중 가장 의미가 있는 타투가 있다면 꼽아달라.
예전에는 요건 조금 이랬으면, 저건 조금 저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타투가 너무 많아져서 다 좋은 것 같다. 사실 커버업을 원하는 고객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한다. 어차피 남겨진 타투인데 자신의 생각을 컨트롤해서 그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 계속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타투로 온몸을 덮은 사람들 보다 타투를 하나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강박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더 집중해서 보게 되니까.
그렇다면 본인 작업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타투가 있다면?
아무래도 최근 작업물들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좀 전 이야기처럼 내 눈은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요즘 본 것들.
최근 트렌드라 할 수 있는 ‘트라이벌’ 타투에 이어 다음 트렌드를 예측해 본다면?
트라이벌이 스멀스멀 인기를 끈지도 7년이 넘었다. 유럽에서부터 그런 날카로운 선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나는 투박한 게 더 좋다. 그래서 부족문신 같은 약간 투박한 트라이벌이 트렌드가 됐으면 한다.
타투가 한국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나.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확실히 인식이 좋아졌다. 불필요한 이미지 소비가 좀 있지만.
서울 타투 신에 대해서도 한마디 부탁한다.
그냥 다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타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다. 딱히 싫어하는 장르도 없기도 하고 지금 상태는 상당히 좋은 것 같다.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을 남긴다면.
내가 원래 클래식 악기를 했었다. 클래식 악기는 하루라도 쉬면 안 된다. 정말 매일매일 반복의 연속이다. 타투도 마찬가지다. 타투이스트도 그림을 그리는 직업이다 보니 매일매일 그려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다.
Editor | 장재혁, Abeer
Interviewer│Abeer
Photographer | 김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