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스카우트(Vintage Scout): 자고로 진정 멋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주장 강한 신식 아이템들 사이 ‘빈티지’라는 존재를 슬며시 끼워 넣어 줄 알아야 할 것. 허나 어느새부터인가 대두된 ‘프리미엄 빈티지’의 거센 물결에 빈티지라는 카테고리조차 고급스러운 사치품으로 격상된 것도 사실. 우리가 추억하던 빈티지라 함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거나 정말 희귀하거나 아니면 값이 싼 무언가가 아니던가. 빈티지 스카우트는 그러한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 숍을 소개하기 위해 꾸려진 원정대다.
빈티지 스카우트의 두 번째 주자는 지금 서울 내 가장 뜨거운 팝업의 격전지 성수동 인근의 파브리크 스토어(Fabrique Store). 빈티지에 일가견이 있는 주인장이 엄선한 좋은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보물과도 같은 빈티지 숍이다.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부터 아웃도어, 유니크한 소품이 가득한 곳으로,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뭐라도 하나 집어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녔다. 빈티지 스카우트의 의도를 완벽히 부합하는 파브리크 스토어에는 어떤 빈티지가 숨어 있을지, 지금 바로 확인해 보자.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6년째 파브리크 스토어를 운영 중인 윤종원이다.
파브리크 스토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중고등학교 때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 CD나 카세트테이프를 실컷 듣고 난 뒤 질리면 옥션에 팔고 그랬지.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이것저것 많이 사고팔았다. 난 옷장을 마치 축구팀처럼 운영한다. 옷을 하나 사면, 이제 방출해야 할 친구가 생기는 거지. 그렇게 계속 사고팔고를 반복하다 보니 그게 하나의 재주 아닌 재주가 됐다. 하하. 원래 해외에서 미술 공부를 하다가 한국에 들어와 미술학원 강사도 해보고, 작가 어시스턴트도 하면서 여기저기 일을 많이 했다. 부업으로 중고 거래도 하고 있었는데, 내 작업에 집중하려면 내가 잘하고 재미있는 걸로 돈을 버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아 재미 반 진심 반으로 온라인 빈티지 숍을 열었다. 근데, 그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빈티지 숍 사장이 본업이 된 거다.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숍으로 유명한데, 처음 숍을 오픈할 때 본인이 설정한 콘셉트는 무엇이었나?
지금은 오프라인 스토어로도 운영 중이지만, 태생이 온라인 스토어였기에 이런 콘셉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빈티지 숍은 꾸준히 상품이 업데이트되어야 해서 판매의 골든타임인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곧바로 재고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보통 판매되는 시장가에서 만 원에서 이만 원 정도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다. 온라인 숍은 고객이 직접 숍에 방문해 옷을 입어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리스크 또한 가격에 녹여내 좀 더 가격을 깎았다. 이런 게 파브리크 스토어의 콘셉트 아닌 콘셉트이지 않을까. 다만,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니까 오히려 홍보가 안 되더라. 다들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꼭꼭 숨겨두는 것 같다. 하하.
‘파브리크’라는 숍 이름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짓고 싶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어렵더라. 어감도 좋아야 하고, 검색엔진에 동일한 단어가 걸리면 안 되고, 도메인도 중복되면 그것도 곤란하니까. 이것저것 고민하던 중 내가 런던에 있을 때 자주 가던 빵집이었던 파브리크 베이커리가 생각났다. 그곳에서 파는 시나몬 롤을 정말 좋아했거든. 굴다리 아래 허름한 빵집인데, 빈티지한 매력도 있고, 어감도 좋지 않나. 뜻을 찾아보니 프랑스어로 ‘만듦새’, ‘품질’ 이런 뜻이 있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아 숍 이름을 파브리크로 정했다.
오프라인 스토어는 언제, 어떻게 오픈하게 되었나.
온라인 숍을 하면서 고객에게 직접 사무실에 방문해 입어 보고 싶다는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때는 내가 사는 원룸 한구석에 창고처럼 옷을 쌓아두면서 일하고 있었기에 손님이 오면 화장실을 탈의실처럼 쓰고 그랬다. 하하. 그러던 와중 집 근처에 괜찮은 자리가 나와 첫 오프라인 스토어를 냈다. 그렇게 2년 정도 문정동에서 숍을 운영하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지금 이 자리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파브리크의 타깃, 그리고 주요 구매층은 어떻게 되는지.
온라인 스토어만 운영할 때는 옷을 깊이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왔던 것 같다. 그때는 고객의 80% 이상이 남성이었다. 오프라인 스토어를 연 뒤로는 여성 고객 비중이 차츰 늘어나더니 이제는 반 정도까지 올랐다. 주로 캐주얼한 옷을 많이 찾는 고객이 많다. 가끔 우리 숍과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의 손님도 오는데, 어떻게 또 귀신같이 본인과 어울리는 옷을 찾아 구매해 가더라.
빈티지 또한 여타 패션 마켓처럼 트렌드가 존재하지 않나, 실제로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지.
따로 그런 트렌드를 열심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옷을 팔고 있는 거지. 나부터도 스무 살 때 좋아하던 옷을 계속 입고 있는 스타일이라, 본능적으로 고르고, 안 팔리면 내가 입는다는 생각으로 바잉한다. 그래도 핏이라든가, 사이즈는 지금의 유행에 조금이라도 맞춰가려고 한다.
오랜 시간 빈티지를 수집하고, 빈티지 스토어를 운영 중인 입장에서 좋은 빈티지를 선별하는 본인만의 팁이 있다면.
누군가는 상품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제품에서 나만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취향을 많이 기르는 게 좋겠지. 나는 빈티지 숍에 방문했을 때 행거에 걸린 모든 옷을 본다. 가격이나 상태나 다 비슷한데, 유독 싼 제품이 있다. 가격을 책정하는 사람 눈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옷이겠지. 그런 걸 위주로 구매하는 편이다. 네 취향은 아닌데, 내 취향인 것, 조금의 흠이나 하자가 있더라도 내가 감수할 수 있는 것이면 주저하지 않고 사는 편이다.
숍 바로 옆 지하 공간에 갤러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빈티지 숍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미술 작업에 손을 놓게 되더라. 전시 가는 것도 힘들어지고. 지금쯤 나에게도 환기가 필요하다고 느껴 바로 아래 지하 공간을 계약했다. 미술계 여기저기 갤러리가 많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카르텔처럼 느껴졌다. 전시가 권위 있는 사람과 권위를 원하는 사람만이 만들어 가고, 정작 정말 재능 있고 번뜩이는 젊은 창작자가 전시할 만한 공간이 없더라. 그래서 멋진 창작자가 합리적인 가격에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운영해보기로 해서 연 갤러리다. 갤러리 이름은 프로젝트 스페이스 큐(Project Space Queue)다. 갤러리라고 해서 미술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시낭송회를 해도 되고, 상영회를 해도 된다. 댄스 배틀까지도 열려 있으니 많은 문의 바란다. 하하.
숍 내 판매하는 제품 중 추천하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제품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이고, 금방 팔려버리니 뭔가 하나 짚어서 고르기가 어렵다. 지금까지는 내가 바잉한 빈티지 의류를 판매했는데, 최근 파브리크에서 판매하는 아이템과 매치할 수 있는 액세서리나 소품 브랜드 입점을 고려하고 있다. 그중 처음으로 입점한 브랜드가 ‘하이 데저트(High Desert)’라는 실버 주얼리 브랜드다. 젠더리스한 디자인으로 파브리크와의 콘셉트와도 잘 맞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입점을 기념해서 파브리크 익스클루시브 디자인의 주얼리도 있으니 매장에 방문해 옷과 함께 매치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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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오욱석
Photographer |전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