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젊은’ 페인터에게서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면 단연코 에어브러시의 사용일 것이다. 물론 에어브러시라는 재료 자체는 이전부터 프라모델, 네일아트 외에도 그래픽 작업과 회화 도구로로써도 쓰여왔지만, 요즘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식은 이전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것 또한 확실하다. 에어브러시는 저마다 다른 방법론으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우선, 국내외로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이러한 경향을 살펴보고 감상해 보자.
한지형
한지형은 가상 환경을 기반으로 미래를 탐구하며 형태를 가리지 않는, 주로 회화작업을 전개하는 작가이다. 에어브러시를 통해 매끈하게 표현된 화면 속 초상은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아볼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경향은 가장 최근에 바이파운드리(Byfoundry)에서 진행된 전시인 ‘Them So Good’ 속 작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뚜렷한 초점이 존재하지 않으며 형체도 모호한 ‘퍼리(Furry)’들의 초상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들이 인간인지 동물인지, 또는 어떤 젠더를 가졌는지 추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특성은 디지털 특성에서 쉽게 획득할 수 있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낯설게 된 존재는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박가희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를 결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요인도, 사회적 이념도, 정치적 조건도 아닌 당신 그 자신임을, 자신이어야 함을 주장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한지형 작가는 에어브러시의 사용을 통해 형체를 흐리고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오히려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뿌리(안태원)
‘뿌리’라고도 많이들 알고 있는 안태원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와 밈(meme)을 적극 활용해 회화 및 입체 형태의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다. 작가는 본인 스스로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 없기에 에어브러시 사용을 시도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디지털 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지점을 포인트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이미지를 체득하고 현실에서 더욱 적극적인 왜곡을 취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익숙함을 벗어났을 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 언캐니(Uncanny)함에 집중한다. 작가에게 디지털 세상은 현실의 연장선이다. 3D 모델의 표면에 2D 이미지 파일을 적용하는 ‘텍스처 매핑’과 유사한 기법을 활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작가가 자주 채집하는 밈 이미지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기에 그 인과관계를 유추하기 쉽지 않다. 답을 찾기 쉽지 않은 상식 밖의 일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작가는 주목하며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안태원 작가에게 에어브러시는 디지털 세상의 텍스처를 구현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Machine
인스타그램에서 자꾸만 눈길을 끄는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머신(Machine)이다. 칸예 웨스트부터 푸틴까지, 여러 유명인의 초상을 포함해 다양한 대상을 에어브러시로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를 “전통적인 디지털 NFT 작가이자 시각 디자이너”라고 밝히는 그는 어찌 보면 미스터리하면서 가장 ‘요즘 시대’적이다. 인스타그램이 곧 그의 포트폴리오나 다름없다는 점과 그 외의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갤러리에서 행한 인터뷰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그렇다.
정보가 많지 않다는 점은 오로지 작업물만을 살펴보며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지점도 존재한다. 빠르게 도는 밈과 바이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특징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에어브러시를 통해 사랑스럽고 웃긴 것 같으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주는 요소들을 부각한다. 에어브러시가 주는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특성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때문에 이런 점이 더욱 돋보인다. 대개 작가한테 기대하는 정제된 작업 노트나 포트폴리오 사이트, 혹은 실제 갤러리에서의 전시 전경을 구경하기 힘들긴 하지만 그러므로 그에게 붙는 ‘디지털 미술계 언더그라운드의 개척자’라는 수식어가 탁월하다는 인상이 든다.
결국, 근래 증가하고 있는 미술 세계에서 에어브러시의 사용은 현실과 먼 느낌을 부여하고 디지털의 미감을 구현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도구이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포토샵을 비롯한 그래픽 편집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디지털 세대에게는 비슷한 미감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용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형태인 붓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적어도 회화의 영역에서 다룰 때는 앞으로 많은 논의가 오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 중인 것은 확실하다.
한지형 인스타그램 계정
뿌리(안태원) 인스타그램 계정
Machine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한지형, 뿌리, Mac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