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이 온 세상에서 더욱 돋보이는 디지털 아티스트

19세기말 영국에서 활동한 삽화가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는 자신만의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흑백 삽화를 두고 “만약 나는 그로테스크하지 않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을 남겼다. 비어즐리가 노골적이고 파격적인 에로티시즘으로 유명세에 오른 지 100년도 넘게 지난 지금, 그로테스크한 예술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예상치 못한 부흥을 맞이하고 있다. 각종 3D 그래픽 소프트웨어와 AI 프로그램을 활용한 디지털 예술 작가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컬트적인 명성을 누리며 새로운 그로테스크 예술 유행의 전선에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19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잭 맥비(Jack McVeigh)가 있다. 3D 그래픽 제작 소프트웨어인 블렌더(Blender) 예술을 표방하는 맥비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90년대 초반 3D 기술이 비교적 새로웠을 때 만들어진 레트로 이미지에 대한 향수를 자아낸다. 낮은 해상도와 불규칙하게 깨지는 화면 안에 등장하는 가로형 본체 컴퓨터와 구식 소프트웨어나 인터넷 창의 UI를 활용한 작업 방식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실제 모습과 어설프게 닮은 불쾌한 골짜기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맥비는 그림 속 형질의 모양보다는 해당 기표가 뜻하는 문화-사회적 의미에서 핍진성을 구현한다. 그 예시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첫 듀얼쇼크 컨트롤러와 철권 시리즈의 3번째 타이틀인 “철권 3” 디스크가 무심하게 구현된 ‘Final Round’가 있다. 저화질을 뚫고 나타나는 상징적인 형상을 통해 각종 기념비적인 콘솔 게임 작품이 발표된 Y2K 시대를 직접 살았던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자극하는 것이다.  

90년대에 대한 향수는 맥비의 작품 전반에 깔린 기조이기도 하다. 또 다른 작품 ‘Deliver the Food’는 왕가위의 1995년 작품 “타락천사” 속 배우 금성무가 담배를 물고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장면을 모티프로 삼았는데, 인물과 배경 모두 텍스처링으로 처리되어 투박한 질감과 밀도 표현은 2D에서 3D로 넘어가던 격변기의 비디오 게임 내 아트와도 비슷하다. 마치 GTA(Grand Theft Auto) 3의 시대적 한계로 인해 엉성한 모델링을 의도적으로 구현한 느낌. 전반적으로 90년대의 영향은 농후하게 느껴지지만 그림 너머 담긴 세계의 정확한 시간과 공간 자체는 꽤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모습이라는 점에서 맥비만의 기이한 초현실성이 느껴진다. 맥비가 인스타그램에서 단면적인 인기만을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소위 돈 되는 예술의 세계에도 입성했다는 점은 그의 작품이 NFT 거래 플랫폼인 오픈씨(OpenSea)와 파운데이션(Foundation)에서 1.00 ETH(Ethereum, 이더리움)이라는 약 300만 원에 달하는 가격에 거래된 사실로 입증할 수 있다. 

맥비와 마찬가지로 NFT 신(Scene)에서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 오즈브렌(OZBREN)의 작품 세계도 주목할 만하다. 오즈브렌은 맥비보다 더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뒤틀린 세상을 구현하곤 하는데, 그는 의도적으로 “추잡한(ugly)” 모습을 표현하려 노력한다고 밝힌 바 있다. 블렌더뿐만 아니라 프로크리에이트(Procreate)와 포토샵을 통해 원본 그림을 조작하고 왜곡함으로써 만들어진 사이키델릭한 초상화와 정물화. 오즈브렌의 그림에서 무명의 대머리 캐릭터들을 반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과거에 사용했던 구형 노트북이 머리카락 입자 시스템을 처리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인물의 일관적인 대머리 표현을 받아들인 후 자신만의 스타일로 갖추게 되었다. 실제로 오즈브렌은 영국의 나이트라이프를 주된 주제로 삼는데, 대머리 캐릭터는 이러한 주제 표현과 굉장히 잘 어울리면서 담배와 알약, 전자 음악 등 영국의 밤거리를 상징하는 요소들과 결합하여 더더욱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지막으로 AI 소프트웨어를 기용하는 베스 프라이(Beth Frey)는 맥비나 오즈브렌과 달리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챗지피티(ChatGPT)를 만든 오픈에이아이(OpenAI)에서 서비스하는 DALL-E 2를 통해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다소 우스꽝스럽고 찝찝한 일관성을 지닌다. 파스타 접시 속으로 울부짖는 토마토 머리 여성이나 거대한 입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미인대회 참가자 모두 기괴하게 변형된 인간의 신체를 통해 그로테스크한 감성을 자아낸다. 빈번히 대상화되고 통제되는 여성의 신체에 특히나 주목하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거부한다는 면에서 꽤 정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앞서 소개한 이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다양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자신만의 기이한 작품 세계를 자랑하는 아티스트들은 주제 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로테스크함 너머 담아내고자 하는 각자만의 뚜렷한 세계관과 의식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세상에는 더욱 많은 동시대의 비장한 디지털 예술 작가들이 그들의 꿈 같은 세계를 펼치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겼다면 탐험을 떠나봐도 좋을 것.


이미지 출처 | OZBREN, Beth Frey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