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거듭하며 서울의 타투이스트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왔다. 그들의 입에서 유독 반복적으로 거론되던 이름이 있으니 바로 범상치 않은 비주얼의 작업자 배볼수(Baebolsu). 밀라노에서 서울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그와 그간의 작업 그리고 서울 타투 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음미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그림그리고 타투하는 배볼수라고 한다. 타투는 2015년부터 하고 있으니 10년차다.
어떻게 타투를 시작하게 됐나, 처음 타투에 끌린 이유와 타투이스트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궁금한데.
첫 직장이 북 디자인 스튜디오였다. 근데 일을 하면서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아 7개월 만에 그만두게 됐다. 자의는 아니었고. 그때부터 그림은 그리면서 살고 싶은데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타투를 조금씩 받기 시작하던 때였고 작업자 분들의 스튜디오에 놀러 가보니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에 타투를 하게 됐지.
처음 타투이스트가 되겠다고 생각한 게 2009년쯤인데 당시만 해도 한국에 타투이스트가 많지도 않았고 타투에 대한 인식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근데 호주에 가 보니 경찰들도 양팔에 가득 타투를 했더라. 그래서 “아 이게 별 게 아니구나” 싶었다. 시작은 단순했던 것 같다.
자신 작업했던 첫 타투를 기억하는지.
아는 형을 불러서 망치와 너구리 세 마리가 있는 그림을 그려달라 해서 해줬던 기억이 있다. 손님으로는 역시 아는 친구의 동생이었는데 어깨에 작은 구름 같은 걸 새겨줬었지.
책 디자인 회사에 다녔다고 했는데,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는지. 타투이스트 말고 다른 직업을 꿈꿨었나.
일러스트레이터.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는 걸 좋아해 그림으로 밥벌이할 생각이었다.
현재 강렬한 스타일의 타투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는데, 작업 스타일에 대해서 소개한다면? 본인의 작업물에 등장하는 그림은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하나.
어떤 주제를 그려야겠다는 큰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재밌겠다고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걸 그리는 편이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군대에 있을 때부터다. 그 폐쇄적인 공간에서 딱히 할 것도 없고 괴로우니까, 어떤 내면의 괴로움을 그림으로 풀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연습장 같은 곳에 볼펜으로 일기처럼 매일 그렸다. 제대하고 나서는 학원이나 화방도 좀 다녀봤는데 3개월을 못 넘기더라.
오랜 시간 작업하며 스타일도 꽤 진화했을 것 같은데.
예전에는 폭력적인 상황이나 성적인 묘사가 많았다. 예를 들어 그림에 무조건 성기를 넣는다든지. 그때는 그릇된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삶이 좀 힘들었다. 근데 그 시기를 지나오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다 보니 서서히 바뀐 것 같다.
그럼 요즘 가장 재밌게 작업한 건 뭔가.
이게 참 애매하다. 나는 캔버스에 좀 큰 그림을 그리면서 최대한 시간을 쏟고 싶은데 타투는 어쨌든 일이지 않나. 일이 들어오면 작업해야 하는 식이니까. 내가 성격이 좀 급해서 작업을 계속 쳐내고 있다. 그래서 딱히 너무 좋다 할 만한 건 없는 것 같고 되게 많이 그리고 있기는 하다.
보통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안을 완성하나.
그림 같은 경우는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충동적으로 내가 재밌는 것들로 작업하는 편이지만 타투는 손님과 결부되어 있지 않나.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내가 막 던져 놓은 것들 중에 골라주시는 분이 계시면 그걸 최대한 옮겨보려고 한다.
현재 속해 있는 ‘Igloo Shop’에 대해서도 소개해 달라.
타투이스트들이 모여 만든 오래된 스튜디오다. 나는 중간에 합류하게 됐다. 친구 성재의 헌신으로 운영되는 평화로운 창작 집단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작업실을 쉐어하면서 각자 개인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 꽤 오래 있기도 했고 게스트 워크로 여행을 자주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억에 남은 도시나 경험이 있을까?
아무래도 밀라노에 1년 반 정도를 있다 보니, 밀라노가 가장 기억에 남긴 한다. 아내 덕분에 가게 됐는데 유럽에 있다 보니 현지 작업자들과 교류가 정말 많았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 작업자들과 만나면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작업도 많이 했고 스타일도 더 발전한 것 같다.
몸에 새긴 것 중 가장 좋아하는 타투를 꼽는다면?
타투에 딱히 애정을 가지고 있진 않아서 좋아하는 걸 꼽긴 어렵고, 가장 최근에 받은 거라면 젖꼭지에 있는 호랑이 발바닥. 이것도 충동적으로 받았다.
본인이 처음 받은 타투를 소개해 달라.
팔에 있는 이 타투인데 지금은 덮어서 안보일 거다. 2009년에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갔었는데 한글 레터링 타투를 받았었다. 근데 한국에 돌아오니 사람들이 이걸 읽으려 하더라. 그게 싫어서 덮어버렸다.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 타투 업계 안팎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알려달라.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은 아내다. 아내가 없었으면 아마 나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작업을 처음 시작하고 생계유지가 안 되는 시점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유럽이나 다른 나라로 나가서 배워오라고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은 지지를 보내줬다. 다행히 다녀오고 나서는 문의도 많이 오기 시작했고 밥벌이를 하고 있다. 사실 타투를 독학으로 배워서 기술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고, 친구들 만나면서 물어보고, 알려주면서 조금씩 실력을 늘려 갔지.
많은 로컬 타투이스트들이 좋아하는 타투이스트로 배볼수를 꼽았다. 오랜 시간 좋은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비결이 뭔가.
비결이라기보다 그냥 재미로 접근해서 인 것 같다. 조금 옆길로 새자면 20대 때는 정말 게임만 하며 살았다. 서른 살이 딱 될 때까지도. 당시에 “롤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에 인생을 얼마나 허비했는지 통계를 내주는 웹사이트가 있었는데 내가 한국 500위였다. 근데 등급은 겨우 골드였고. 문득 순간 삶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구한 직장이 북 디자인 회사였다. 타투는 서른 넘어서 시작한 거다. 그냥 정말 즐기면서 하려고 한다.
요새 타투 외에는 어떤 걸 즐기나. 최근 관심사가 무엇인가.
보다시피 더 이상 청년의 나이가 아니다 보니 예전에는 안 아프던 곳들이 아프더라. 일어났을 때 회복도 안된 느낌이고. 그런 거 알지 않나? 그래서 요즘에는 체육관도 가보고 근육들이 왜 아픈지 찾아보는 거에 재미 들렸다. 밤새는 버릇도 고쳐보려고 하고.
타투 외에도 헤어스타일이 예사롭지 않다. 직접 땋은 건가?
자주 가는 단골 미용실에 했다. 전에는 가모도 붙여보고 했는데 지금은 순수한 내 머리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타투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나. 현재 서울 타투 신에 대한 생각을 알려달라.
내가 사람을 만나거나 여기저기 쏘다니는 성격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근데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본다면 물 웅덩이 같은 느낌이다. 여름에 웅덩이를 보면 개구리들이 막 알을 낳아놓지 않나. 거기서 올챙이가 엄청 태어나고. 서울도 그렇고 타투 신도 그렇고 되게 작은 시장 같이 느껴지는데, 원래 하던 사람들이나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도 많고 그중에서도 잘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Editor | 장재혁
Interviewer│장재혁, Abeer
Photographer |김엑스
Image | Baebol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