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거의 노래: MIMI

현대는 과거와 달리 LP가 유일한 음악 매체가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 클릭 한 번으로 음악을 감상하며, 또한 손쉽게 레코드도 받아볼 수 있는 그러한 편리의 시대. VISLA 시리즈 ‘디거의 노래’는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것에 저항하고, 간과된 음악에서 역사, 문화를 탐구하며 바이닐 레코드를 쫓는 이들을 다룬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디거는 미미(MIMI). 그는 아시아의 음악들을 쫓는 레코드 컬렉터이자 DJ다.

미미는 아시아 각국의 레코드 숍을 돌며 좋아하는 음악을 끊임없이 발굴한다. 이번 ‘디거의 노래’에서는 미미가 아시아 각국을 투어하고 그곳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며 경험한 독특한 디깅 여정을 음악과 함께 소개했다. 해맑게 촬영된 사진의 한편, 미미의 이야기는 음악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소비체가 아니라 인류의 경험과 역사, 그리고 예술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깊은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니, 그가 추천한 음악과 함께 찬찬히 살피길 바란다.


바이닐 레코드를 수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작의 특별한 순간이나 이유가 있을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고모가 시집갔는데, 그때 고모가 쓰던 물건들을 방에 두고 갔었다. 거기에 LP가 몇 장 있었지. 자켓도 큼직하고 커버 아트의 그림도 멋져서 호기심이 생겼고, LP 플레이어도 집에 있었지만 카세트 테이프 외에는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지. 그러다가 스무 살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자취를 시작했는데, 침대와 책상, 컴퓨터만 있어서 자취방이 매우 휑했다. 그때 고모의 LP와 LP 플레이어가 생각나서 그걸 내 자취방에 가져왔다. 그때 LP를 처음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조금씩 구매한 것이 시작이었다.

고모가 남기고 간 LP는 어떤 것이었나?

“그로잉 업”이라는 영화의 OST를 담은 LP였다. 스무 살 당시 로커빌리(Rockabilly)와 로큰롤 장르를 좋아했는데, 그런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로커빌리, 로큰롤에서 지금의 아시아 음악에 초점을 둔 디깅 여정은 어떻게 이어졌나?

로커빌리, 로큰롤, 개러지(Garage), 핫로드, 모드(Mod), 노던 소울 같은 60년대 서브컬처 음악을 많이 듣던 중에 일본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르 음악을 테마로 한 이벤트가 열린다고 해서 놀러 갔다가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그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인도네시아 친구들도 소개받았고, 그들과 친해지던 와중에 인도네시아 DJ 투어 제안을 받아 가게 됐는데, 인도네시아 친구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거치는 투어 일정까지 짜주었다. 그 투어에서 인도네시아 인디 레이블 운영자, 레코드숍 사장님 등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때 동남아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기념품으로 사장님과 친구들이 추천하는 아시아의 음악을 구매했지. 그때가 스물네 살이었으니까 그때부터 아시아 음악을 본격적으로 모으게 되었다. 사실 아시아 음악만큼이나 50, 60년대의 로큰롤도 똑같이 좋아한다. 그러나 로큰롤은 틀 만한 장소가 많이 없지.

그렇다면 DJ 데뷔는 스물네 살에 인도네시아에서 한 것인가?

아니다. 그때의 나를 DJ라 칭하기엔 좀 민망하다. 여전히 취미기도 하고. 사실 스물네 살 당시 베스파를 타는 친구들과 모여 모드 음악과 노던 소울을 트는 이벤트를 만들면서 직접 음악을 틀기도 했다. 그러다가 망원에 ‘만평’이 오픈하면서 그동안 모아왔던 판을 위주로 음악을 틀었고, 만평 사장님인 뽀삐와 친해지며 슈가석율을 소개받았다. 당시 나는 7인치를 주로 플레이했었고, 석율도 7인치를 수집하고 플레이하니까 함께 파티 크루를 만들어 보자는 논의를 거쳐 ‘7545’를 시작했지. 그게 내 DJ 활동의 시작이었다. 여담이지만, 모드, 노던 소울을 트던 당시, 이벤트 중에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한국인 같은데도 발음이 한국인 같지 않은 사람과 모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사람이 DJ 에어베어(Airbear)였다.

디깅할 때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보나? 음반의 음악성, 희귀성, 혹은 개인적 취향과의 연관성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들었을 때 좋으면 된다. 나에게 맞는 음악. 너무 좋다고 느껴지면 사는 편이다. 딱히 유명세나 희귀도를 보진 않는다. 그냥 취향에 맞는 것을 산다.

그러나 레코드숍에 가면 턴테이블을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텍스트나 이미지에 의존해 모험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 고려하는 요소가 있는가?

첫 번째로는 작곡가를 본다. 옛날 레코드는 밴드 셋의 악기 구성과 누가 참여했는지 모두 적혀있어서 그런 정보를 쫓아본다. 악기 중에는 브라스가 들어가면 확실히 내 취향이라 구매한다. 브라스가 밴드 음악에 첨가되면 음악이 풍부해지니까.

Transs – [Hotel San Vicente]

이제 음악을 하나씩 소개받고자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음반은?

트랜스(Transs)의 [Hotel San Vicente]. 밴드의 키보드리스트이자 보컬인 파리즈 알엠(Fariz RM)은 1981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Inter Band High School Festival’에 참가한 뮤지션 중 연주 실력이 뛰어난 멤버를 직접 발굴해 그룹 트랜스를 결성했다. 그해 재즈 천재들이 모여 만든 [Hotel San Vicente]는 그들의 유일한 발매작이자 인도네시아 퓨전 음악에 위대한 영향을 준 앨범이다. 오리지널은 카세트 테이프로 발매됐고 바이닐은 2018년 프랑스의 ‘그루비 레코드(Groovyrecords)’에서 발매했다. 그루비의 수장과 친구라 SNS에 올라온 예약 판매 글을 보고 ‘사고 싶다’라고 DM을 보내자 직접 파리즈 알엠의 친필 사인과 함께 부끄럽지만 최고의 칭찬 글귀를 적어 선물로 주었다.

앨범에서 가장 인상 깊은 한 곡을 꼽자면?

“Senja Dan Kahlua”. 사실 모든 곡이 좋아서 한 곡을 꼽기가 너무 어려웠지만, “Senja Dan Kahlua”의 도입부가 너무 설레고 두근거려서 이 곡을 가장 추천하고 싶다. 파리즈 알엠의 보컬도 너무 부드럽고, 가사도 달콤한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라 사랑스럽다.

[Hotel San Vicente]은 해외에 있는 친구를 통해 구했다고 말했다. 당신의 수납장에 있는 다른 인도네시아 레코드는 어떤가? 자주 가는 만큼 오프라인으로 구매하는 레코드의 수량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인도네시아 레코드 중 다수는 블록엠(Blok M)이라는 곳에서 구매한다. 블록엠은 자카르타 남부 케바요란 바루(Kebayoran Baru)에 위치한 복합쇼핑몰로, 수많은 레코드숍이 몰려 있다. 터미널이 생기면서 지어진 복합쇼핑몰로 우리나라 용산 전자상가와 흡사하다. 또 다른 디깅 스팟으로 잘란 수라바야(JL.Surabaya)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과 골동품을 볼 수 있어 동묘와 비슷하다. 이 거리에도 꽤 많은 레코드 숍이 있다.

80년대 인도네시아에도 서구권의 도회적 재즈 퓨전과 훵크 음악이 발전한 것이 흥미롭다. 그들의 음악적 환경에 관해 좀 더 아는 게 있다면?

80년대 인도네시아 음악 신(scene)에서도 스무스 재즈나 삼바, 보사노바를 더한 퓨전 팝과 AOR이 성행했고, 저렴하고 콤팩트한 카세트테이프가 더해져 음악 산업이 한층 더 발전했다. 앞서 이야기한 파리즈 알엠을 선두로 Utha Likumahuwa, Henry Manuputty, January Christy, Katara Singer, Bagoes AA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생겨나기도 했다.

[Hotel San Vicente]의 사례와 같이 카세트테이프, CD 등으로만 존재하던 음악이 바이닐로 재발매되는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너무 좋다. 카세트로 듣는 것도 좋지만, LP로도 듣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Ong-Ard Jirabhand – [Siamese Boxing]

두 번째로 소개할 음반은?

Ong-Ard Jirabhand의 [Siamese Boxing]. 1980년대 태국에서 제작된 7인치 레코드다. 아시아 나라 중 가장 독특한 음악을 뽐내는 나라는 태국이 아닐까 싶다. [Siamese Boxing] 또한 전통악기와 서양 음악이 만난 신기한 태국 훵크인데, 라오스와 인접한 태국 북동부 이싼(Issan)의 전통 민요 몰람(Molam)에 서양 훵크를 섞어 토속적이면서도 흥겨운 리듬을 들려준다. 이 레코드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타이 복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곡명처럼 무에타이에 관련된 음악으로 A면에는 태국어 버전, B면에는 영어 버전이 각 면에 수록돼 있다. 이 연주곡은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코치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춤을 출 때 나오는 음악이라고 한다. 음악 중간중간 입으로 내는 효과음이라든지 ‘타이 복싱이 세계 최고다’라는 가사가 유머러스해서 마음에 든다.

[Siamese Boxing]을 구매하기까지의 여정도 궁금하다.

태국에 알고 있던 셀러가 갖고 있어서 인터넷으로 구매하게 됐다. 인도네시아와 동남아를 처음 투어할 때는 내가 원하는 음반을 모두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이닐은 딱히 인기 있는 매체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내가 원하는 레코드를 사려면 인터넷으로 개인 셀러들에게 연락해야 겨우 구할 수 있다.

吳大衛 – [一線之間]

세 번째로 소개할 음반은?

우다웨이(吳大衛)의 [一線之間]. 우다웨이는 90년대 대만 만도팝(Mando pop)의 역사를 써내려간 뮤지션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대만의 간판스타였던 장혜매(A-Mei), 장위성(張雨生), 이넝징(伊能靜) 등의 음악뿐만 아니라 홍콩의 4대천왕 곽부성 등의 음악을 제작했다. 대만 TBS에서 방영된 “시대의 노래를 듣는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80년대 대만에서 LD(Laser Disc)와 CD가 출시되면서 홍콩의 다수 가수가 대만 프로듀서와 함께 앨범을 제작하거나 홍콩의 음반사와의 교류도 활발했다고 한다. 작년 대만으로 DJ를 하러 갔을 때 가오슝에 위치한 ‘MLD Reading Vinyl’ 레코드숍에서 구매했는데, 표지가 올드했지만 색상과 폰트가 90년대 느낌이 물씬 나서 들어보았는데 너무 좋았다.

추천할 곡은?

“會不會還是個錯”. 아쉽게도 가사를 찾지 못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으나, 경쾌하고 맑은 기타 솔로로 시작되는 이 곡은 일요일 오후 나즈막한 시간에 잘 어울린다.

앞서 소개한 음악도 마찬가지고 만도팝 역시 가사의 의미를 알 수가 없는데. 그러한 곡들이 주는 특별한 감정이 있는가?

요즘 시대가 좋아져서 인터넷 검색하면 웬만한 곡의 가사는 찾아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곡들도 많다. 그래서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곡도 많고. 다만 음악적으로 곡의 흐름과 감정 자체를 좋아해서 가사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Adnan Othman, The Rhythm Boys – [Bila-Kah Gembira]

네 번째로 소개할 음반은?

아드난 오스만(Adnan Othman)과 The Rhythm Boys의 [Bila-Kah Gembira]. 2016년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산 7인치다. 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 투어 중 마지막 나라였던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첫날 저녁, 이벤트 주최자의 친구였던 셀러에게서 구매했다. 셀러가 이벤트 장에서 나를 데리고 나와 자신의 차로 인도하더니 트렁크를 열어 7인치 레코드가 담긴 박스 대여섯 개를 꺼냈다. 나는 그 박스를 쪼그려 앉아 디깅하는데 말레이시아 음악에 관해 전혀 몰랐던 때라 표지만 보고 멋진 밴드 그림과 사진이 있는 7인치를 골랐다. 그게 [Bila-Kah Gembira]이었다. 이를 고르자 셀러가 “내일 암콜몰(Amcorp Mall)에 오면 이 뮤지션을 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곳에서 뮤지션을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자켓에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 그 뮤지션이 바로 아드난 오스만(Adnan Othman)이다.

아드난 오스만은 1960년대 말레이어로 부른 로큰롤인 ‘팝 예 예(Pop Yeh Yeh)’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작곡가다. [Bila-Kah Gembira]는 아드난 오스만과 즉흥 연주 밴드 The Rhythm Boys가 함께한 앨범으로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Hamba Terima” 곡을 추천한다. 당시 나는 미국 개러지와 서프 락 음악을 중심으로 플레이했는데, 이 곡 자체가 본토 음악과 유사해서 좋아한다. 아드난 오스만은 70년대 디스코 음악이 한창 유행일 때도 변함없이 로큰롤에 충실한 뮤지션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아드난 오스만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

그냥 팬이다, 한국에서 왔다, [Bila-Kah Gembira]를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가 “사인해줄게”라며 사인도 해주고 같이 사진도 찍고, 밥도 먹었다. 원래는 미대 출신인데 음악도 잘해서 앨범을 냈다가 활동을 접고 신발 디자이너로 직업을 바꾸어 활동했다고 들었다.

차 트렁크를 열어 레코드를 판매하는 방식이 아주 신선하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인데, 말레이시아의 레코드 시장은 어떤가?

다민족 국가라서 그런지 자국의 음악뿐만 아니라 중화권, 인도, 아랍 등의 음반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가끔 필리핀 음반도 보인다. 다양한 음반이 많은 만큼 부틀렉도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잘 찾아보면 오리지널보다 음질이 훨씬 좋은 부틀렉도 발견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디깅의 장점 하나를 꼽으라면 레코드 페이가 의미 없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암콜몰에서 매주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무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많은 셀러가 참여한다. 개인 셀러가 판매하는 레코드가 일반 레코드숍보다 훨씬 저렴하고, 그들과 친해지면 다른 셀러를 소개해줘 직접 셀러의 집에서도 디깅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TootArd – [Migrant Birds]

마지막으로 소개할 레코드는?

투트아르드(TootArd)의 [Migrant Birds]. 투트아르드는 하산(Hasan)과 라미 나클레(Rami Nakhleh)로 이루어진 듀오이자 형제로, 시리아의 골란 고원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신디사이저로 80년대 중동 디스코 음악을 따라 치는 것을 좋아한 덕에 [Migrant Birds]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앨범에 수록된 [Moonlight]란 곡은 아랍 특유의 쿼터톤(Quartertone) 멜로디에 훵키한 디스코 리듬이 중독적이다. 그래서 DJ로 활동할 때 자주 틀기도 하는데, 국적과 음악적 편견을 버리고 모두가 흥겨운 아랍 리듬에 맞춰 춤추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하다. 투트아르드는 현재 유럽으로 이주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 중이다. 작년에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라인업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일 때문에 라이브를 못 봐서 속상했다. 하지만 지난 7월 몽골에서 열린 ‘Playtime 페스티벌’에 음악을 틀러 갔을 때, 식당 앞에서 우연히 만났지. 난 성덕이다. 하하.

그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나 너네 알아, 팬이야”라고 말하며 갖고 있던 LP를 보여주고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다. 투트아르드는 한국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내가 관심 있게 듣던 아랍, 중동 가수들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때 우연히 만났던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마치 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아시아 음악을 플레이할 때 관객 반응은 어떤가?

장소의 성향에 따라 반응이 다르긴 했지만, 대부분은 다 좋아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나라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국가라서 편의점에서 술을 팔지는 않는데 클럽에서는 술을 판다. 젊은 친구들의 종교적 가치관과 규율에 엄격하지도 않은 것 같았고, 우리가 TV에서 보던 인도네시아의 모습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잘 놀더라. 궁금해서 인도네시아 인디 레이블 매니저로 일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부모님 세대는 무슬림이지만 자식들은 선택적으로 종교를 믿는 정도라고 하더라. 그리고 일도 매우 힘들다고. 아침 9시에 일을 시작하면 밤 10시에 끝난다더라. 노동 강도가 너무 높으니까 주말에 에너지를 클럽에서 푸는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 음악을 깊이 있게 다루는 컬렉터나 DJ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음악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것 같다. 아시아 음악을 다루는 컬렉터로서 이러한 환경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 또, 자신만의 음악적 여정을 이어가는 데 커뮤니티의 부재 혹은 부족함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난 단체 생활을 정말 못한다. 그리고 DJ는 어디까지나 취미라서 혼자서도 너무 잘 즐기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애니메이션 학과를 다녔다 보니까 원래 혼자 노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그런데 나와 공통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즐겁기도 하다. 실제 DJ를 하러 갔을 때 몇 분이 내가 선곡한 필리핀 음악을 매우 좋아해 주어서 그들과 필리핀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내가 아시아 음악을 주제로 믹스 CD를 만든 걸 구매하신 분이 나타나 내 믹스 CD를 듣고 말레이시아에 직접 가서 디깅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너무 재밌게 들었다. 그런데 아시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자신만의 공간에서 소비하는 것 같아서 흩어져 있다. 언젠가 한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도 희망 사항이다.

해외에서 음악을 디깅하는 경험은 단순히 음반을 수집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외에서 직접 손가락에 먼지를 묻혀가며 디깅하는 과정을 통해 본인이 느낀 것이 있다면?

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것. 우리나라도 5.18 민주화운동 때는 포크가 유행했고, 60년대에는 미군 부대에 의해 로큰롤과 신중현이 등장했지 않나. 각 나라마다 스토리가 있고 역사가 있다 보니 그 역사에 의해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를 알 수 있더라. 그래서 나라의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종종 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캄보디아의 경우 학살 사건이 있었던 당시에는 디스코가 발매되지 않았다. 그 당시 서양 문물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디스코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아랍의 경우도 미국과 사이가 좋았던 시기에 레코드에 성조기가 등장하기도 하고 미국에서 녹음한 아티스트도 있었다. 그 이후 미국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디스코와 훵크 같은 서구권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없게 되었지. 알제리는 프랑스에 오랜 기간 식민지로 있어서 프랑스 음악을 좋아한다면 알제리에서도 비슷한 결의 음악을 찾아볼 수 있다. 단지 프랑스와 언어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그런 역사적 정보와 맥락을 알고 나면 연도만 알아도 디깅이 더 쉽더라.

오늘 소개한 레코드들은 어떤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가?

오늘 소개한 레코드들이 담고 있는 시대적 맥락은 없다. 하하.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독자들이 아시아 음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을 위주로 골랐다. 아시아 음악이라고 해서 너무 어렵고 따분하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미에게 있어 ‘디깅’은 단순히 음반을 모으는 것 이상의 의미일 것 같은데, 디깅이 당신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스트레스 해소, 그리고 영원한 취미.

앞으로 디깅을 해보고 싶은 새로운 지역이나 장르가 있다면?

사실 재작년에 필리핀을 가고 싶었는데 가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 코로나 때문에, 바쁘기도 해서 못 갔는데 내년에는 필리핀을 꼭 가려고 한다. 필리핀 음반을 구하고 싶은데 하필 필리핀 사람들은 디스콕스(Discogs)를 잘 안 해서 직접 가야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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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황선웅
Photographer │장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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