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THE RECORD – #4 ASIA

서울에 살고, 한국 사람이고, 아시아인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서울이 못생겨서, 한국이 불합리해서, 주변국이 우리와 달라서 도망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싫은 게 많은 사람이고, 당연히 그런 건 주변부터 보입니다. 처음 음악을 좋아할 때는 부럽기만 했습니다. 영미권 음악의 역사를 살피고, 그곳의 아티스트들을 보며 나는 왜 이렇게 멀리 있나 아쉬워한 적도 많습니다. 물론 정말 멀긴 했던 것 같네요. 사는 곳에 따른 정보의 격차가 현격한 시기였으니까요.

단어의 본래 의미에선 다소 벗어나지만 ‘로컬’이나 지역의 범위는 정하기 나름입니다. 이태원과 홍대의 지역색이 있다면, 아시아와 유럽의 차이도 말할 수 있겠죠. 이것은 DNA나 모국어에 대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 또한 의미 있는 논의거리지만, 그보다 물리적 거리와 환경에 대한 얘기에 가깝습니다. 예컨대 스페인 이비자의 발레아릭 비트는 온갖 여행객이 모이는 섬에서 별의별 것이 섞이다 탄생했습니다. 꼭 이비자인들이 바다 건너 바르셀로나 사람들과 대단히 달라서 그런 건 아닐 테고요. 전통음악에서 기인했다 보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발레아릭 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DJ 알프레도는 아르헨티나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로컬이 아니라 말할 순 없습니다. 동시대 문화에 관한 ‘로컬’을 말할 땐 이런 관점이 뿌리에 대한 담론만큼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믿습니다.

여전히 댄스 음악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미국을 제외하면, 거대한 유럽 신은 하나의 덩어리로 보입니다. 베를린과 암스테르담과 키예프의 밤은 모두 다르겠지만, 디제이와 프로듀서와 레이블의 생태계를 살펴보면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댄스 뮤직 애호가로서 그런 관계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이후, 아시아라는 넓은 ‘로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섬이나 마찬가지인 한국 포함 섬나라가 많고 EU 같은 정치 경제 공동체도 아니라 유럽만큼 끈끈하긴 어렵겠지만, 미국처럼 국내 이동에도 긴 시간이 소요되거나 생경한 문화권과 붙어 있진 않으니 그보단 나은 조건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코로나 전, 십 년 좀 못 되는 시간 동안 아시아를 부쩍 돌아다녔습니다. 궁금해서 ‘내돈내산’으로 가기도 했고, 운 좋게 페스티벌과 클럽 등에 초청받아 음악을 틀기도 했습니다.

이미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는 페스티벌의 분위기는 꼭 그 지역만큼 달랐습니다. 태국 Wonderfruit 페스티벌은 휴양도시 파타야 근교에서 열리는 만큼 컬러풀하고 평화롭습니다. 여러 스테이지의 음악이 섞이는 잔디밭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며칠이 금방 지납니다. 대만의 Spectrum Formosus 페스티벌은 산 중턱에 자리 잡았습니다. 타이베이를 빠져나오는 차에서는 곧장 대만의 압도적 산세가 보입니다. 대만은 섬의 무려 64퍼센트가 산지입니다. 도시에만 머물렀다면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없는 일이죠. 대만의 Organic 페스티벌도 산과 바다가 만나는 절경과 테크노의 조화로 유명하다던데, 아직 가보진 못했습니다. 며칠 전엔 베트남의 Equation 페스티벌이 다시 열린다는 반가운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예전엔 호수에서 열렸고, 이번엔 동굴입니다. 베트남은 항손둥 동굴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이 있는 나라입니다. 동굴 하우스와 동굴 테크노라니 대체 어떤 울림, 잔향, 빛과 더불어 춤출 수 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도시의 나이트라이프 풍경도 제각기 다릅니다. 클럽만큼 흥미로운 ‘애프터’를 기준삼자면, 클럽이 2시쯤 마감하는 방콕은 한국처럼 뒤풀이를 즐겨 갑니다. 다 같이 태국식 전골을 둘러앉아 먹곤 했습니다. 하노이에서는 뜨는 해를 보며 막 개시한 쌀국수 가게에서 시원한 국물을 마셨습니다. 상하이에선 노점상 로띠 비슷한 걸 먹었는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습니다. 물론 유럽과 미국 클럽에서 생긴 일도 전부 즐거웠지만, 이 ‘어쩐지 알 것 같은데 은근히 다른’ 풍경이 아시아 음악 신과 그 주변을 겪으며 얻는 특별한 재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산지 비율이 높은 서울과 대만 숲의 미묘한 차이, 방콕 에까마이 뒷골목과 이태원 일송정 전골 사이 간장 맛의 다름 같은 것 말이죠. 비슷한 점이 있지만 결코 똑같진 않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주는 재미라면 이미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음악 덕에 배웠습니다. 디제이라면 믹스를 구성할 때 자주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서로 어울리지만, 똑같지 않은 아티스트나 레이블 혹은 시대의 음악을 연결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런 믹스를 들으며 디제이의 고유한 색을 가늠합니다. 아시아의 ‘로컬’ 음악 신이 가진 매력처럼, 중간중간 한 곡 한 곡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디제이의 배경과 의도가 그 맥락과 행간에 있겠죠. 꼭 디제이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컬렉션’이 결국 그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공통점과 차이를 따르며 모은 물건들의 집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레코드를 살 때도 지역별 특징을 살펴보곤 합니다. 홍콩섬과 구룡 반도의 레코드 가게별 차이는 꼭 서울의 레코드 가게 지형도와 비슷합니다. 홍콩섬의 가게들이 2010년 이후 생긴 서울의 젊고 색깔 확실한 장르 레코드 가게라면, 터널 너머 구룡 반도의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가게들은 동묘를 닮았죠. 일본에서 날아온 레코드는 꼭 덮개가 있는 얇은 비닐에 담겨 있습니다. 호불호가 확실한 포장 방식인데, 저는 그게 물리적으로 연약한 오비까지 꼼꼼히 챙기는 일본반엔 더 알맞은 것 같아 불편해도 그대로 둡니다. 인도네시아 레코드엔 카세트테이프 속지가 붙어 있곤 합니다. 방송국 홍보용이 아니면 바이닐로 존재하지 않는 음반이 꽤 있는데, 거기엔 커버 디자인이 없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의 ‘믹스 팩토리’로 대표되는 PR판에 타이틀곡을 표기해둔 마킹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우리도 특정 시기의 음반이나 싱글은 PR판이 아니면 아예 생산되지 않았다는 등의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물론 영미권 문화와의 큰 차이 또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12인치 싱글은 책등이 없는 아주 얇은 커버를 즐겨 씁니다. 아무래도 그 어떤 나라보다도 레이브 문화가 발달해서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USB가 없던 과거에 레코드의 기동성은 중요한 요소였을 테니까요. 가방 하나에 한 장이라도 더 넣으려면 그편이 유리하지 않았을까요? 한국엔 싱글 시장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추측할 뿐 피부로 와닿진 않습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그보다 가까운 차이를 살펴봅니다.

본격 음악에 관한 화제로 돌아가면, 아직 아시아 신의 현장 소통은 완벽히 복구되지 않았지만, 레이블과 아티스트 사이의 교류는 서서히 더욱 피치를 올리는 인상입니다. 지난해 태국 More Rice 레코즈를 통해 발매된 도일도시의 <Invisible Threat>의 수록곡 ‘Forest Illumination’은 2022 한국대중음악상 부문별 후보에 올랐습니다. 때마침 예츠비의 새 EP <JIN06>이 대만 禁 (JIN) 레코즈에서 나옵니다. 전통의 강자 Cabaret Recordings의 영역 확장, 싱가포르에 전초기지를 두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Darker Than Wax의 전방위적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울의 Walls And Pals 또한 여러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릴리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레코드 가게의 ‘아시아’ 섹션에서 오래된 레코드를 찾는 것도 좋지만, 이런 흐름과 함께 ‘로컬’ 아시아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듣는 기쁨은 무척 동시대적입니다.

싫은 건 잘 보이는데 좋은 건 쉽게 안 보입니다. 주변의 뭔가는 항상 그렇습니다. 멀리 동경하는 대상에게선 대체로 좋은 게 눈에 들어오는 것 같고요. 물론 한국은 특수합니다. 지리적으로 동북아 3국 중에선 중간이지만, 전체 아시아 기준으론 상당히 치우쳐 있죠. 육로 이동이 불가하고 언어의 범용성도 떨어집니다. 반대로 웹에선 어디든 닿을 수 있고요. 그러니 주변보다 멀리 보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댄스 음악은 현장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라고 만든 음악이고요. 꼭 댄스 음악이 아니더라도, 라이브 무대가 어떤 음악에 대한 경험을 완전히 바꾸기도 합니다. 이것은 댄스 음악 애호가로서 전적으로 보고 들은 일에 의존한 이야기입니다. 몇 년을 서울에서만 지냈더니 다소 희미해진 감각이기도 하고요. 2022년 2월 발표된 Equation의 귀환과 예츠비의 신보 소식 덕분에 다시금 선명해지는 기분으로, 아시아 댄스 및 전자음악가들의 곡을 엮은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했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가깝고, 그래도 비슷하고, 그 와중에 달라서 재미있습니다.


Writer │유지성(Jesse You)

*해당 에세이는 지난 VISLA 매거진 19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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