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Playlist : Airplane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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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을 거의 뜬눈으로 보내다시피 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동안 속에 묵혀왔던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덜그럭 거린다. 누군가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걸음을 뗄 것이며 또 어떤 이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먼 길을 택할 것이다. 흥미로우나 외로운 여정이 될 터. 이제 내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일 시간이다. 

 

1. 조광훈 (Skater) :     Woods – Pushing only

새벽 여섯시 반. 주무시는 부모님께 조용히 인사를 드린 뒤, 설렘으로 가득 찬 여행가방을 끌고 문밖을 나섰다. 버스 뒷자리에 몸을 실은 채 햇살에 비친 밀물을 바라보며 공항으로 달린다. 혼자여서일까? 설레던 마음은 어느새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애써 여유로운 척 행동하지만 서툰 몸놀림은 모두가 나를 비웃는 듯하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는 그저 고막의 문을 두들기기만 할뿐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나는 열쇠가 필요했다. Woods의 “Pushing only”.  Brooklyn 태생의 이 작은 포크밴드는 기계적이고 매끈한 사운드를 들려주진 않지만 한적한 바닷가의 캠프파이어같은 푸근함으로 가슴을 뛰게 하기엔 충분한 멜로디였다. 곧 비행기가 뜨는 것을 느끼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핑계들을 잠시 궤적과 함께 놓아두고 천천히 잠을 청한다.

 

2. DJ Soulscape (DJ, Producer)  :    Stereolab – Dots and loops


비행기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시간을 평온히 보내는 것이다. 장애 요소로는 비행기 내에서의 소음을 꼽을 수 있는데, 굳이 노이즈 캔슬 헤드폰이 아니더라도 음악 선곡만 잘 한다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음악을 선곡함에 있어서 첫 번째 요건은 화이트 노이즈에 가까운 비행 소음에 얹어져 더욱 심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음악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사실 요즘 음악들의 대부분은 음량이 거의 끝까지 채워진 형태로 마스터링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피곤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stereolab의 97년 작인 앨범 [dots and loops]는 앨범 전체가 풍부한 다이나믹과 질서 정연한 소리들, 반면에 따뜻하고 풍부한 감성과 서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특히 장거리 여행이나 운전할 때 필수로 듣는 음악이다. 발매 일에 맞춰서 주문해서 살 정도로 좋아했고, 지금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듣는 앨범이다. [dots and loop]는 모든 트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diagonals’의 입체적 배열이나 ‘miss modular’의 서정적인 분위기는 일품이라 할 수 있다.

 

3. Moodschula  (Producer)  :   Global Communication – 14:31

개인적으로 요란한 계획의 여행보단 한적하고 풍경 좋은 곳에 가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모험에 대한 설렘을 표현하는 음악보단 조금 더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음악, Global Communication의 “14:31″을 추천하고자 한다. 14분 31초의 러닝타임을 그대로 타이틀로 한 이 트랙을 여행의 지친 일정 중에 잠시 걸터앉아 아름다운 대자연을 맛보면서 즐긴다면 국내에서 느낄 수 없었던 묘한 정서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을 안 간지도 꽤 오래된 듯하다. 오늘은 또 날씨가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고요한 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VISLA 매거진이 감사의 표시로 티켓을 보내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글을 마친다.

 

4. 박지훈 (VISLA Contributor Editor)  :    Dred Scott – Check the vibe

힙합과 1994년.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입니다. 더 이상의 무슨 수식이 필요할까요. 지금 소개할 곡인 “Check the vibe:는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랩퍼 겸 프로듀서, Dred Scott의 앨범 [Breakin’ Combs] 의 수록곡입니다. 94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지는 못했으나 작품의 뛰어난 완성도로 팬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회자 되어 왔습니다. 이후 그러한 성원에 힘입어 꽤나 수요가 있었는지, 일본에서 리이슈반이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힙합 음악의 특징인 붐뱁 사운드, 재즈 샘플의 차용 등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이 앨범에서 백미는 단연 이 곡, “Check the vibe”라고 생각합니다. Q-Tip을 연상시키는 레이드백한 랩 스타일, 절로 끄덕여지는 리듬감, 보컬 Adriana Evans와 보여주는 찰떡궁합은 과연 백언이 불여일문입니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 비행기 안에서’ 홀로 하는 즐거운 공상과 함께 즐겨주세요.

조광훈 사진 출처 ㅣ photographer 조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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