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4일, 압구정 로데오에 있는 갤러리 징크(Zinc)에서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크루 1UP(1 United Power)의 전시회가 열렸다. 도시 곳곳의 건물 외벽은 물론, 지하철 역사, 열차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한 스케일의 그래피티를 그려내는 1UP은 자신들의 그래피티 여정을 기록하기 위해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70년대 서브컬처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도시의 여러 하위문화를 카메라에 담아온 전설적인 포토그래퍼 마사 쿠퍼(Martha Cooper), 베를린 출신 포토그래퍼 닌자 K(Ninja K)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팀은 ‘ONE WEEK WITH 1UP’이라는 예술 프로젝트로 일주일간 1UP의 그래피티 행적을 사진과 영상으로 낱낱이 기록했다.
이번 징크에서 연 ‘ONE WEEK WITH 1UP’ 전시 역시 갤러리 내부에 1UP이 직접 그린 작업과 함께 사진집에 수록된 여러 사진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번 1UP 전시의 재미있는 요소라면, 일반 관객에게 갤러리 내부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해놓았다는 것. 이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크루로, 스스로의 보안을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카메라보다는 눈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더욱 가까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의도 역시 숨어있다.
전시를 주관한 칼하트 WIP 코리아(Carhartt WIP Korea)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협업 티셔츠를 제작, ‘ONE WEEK WITH 1UP’ 사진집과 더불어 그들의 로고와 그래픽이 새겨진 티셔츠를 선보였다.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니, 아직 방문하지 못했다면 시간을 내어 그래피티 컬처를 몸소 느껴보자. 더불어 VISLA 매거진은 1UP과의 짤막한 인터뷰를 통해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생각하는 스트리트 아트, 그래피티 컬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우리는 독일 베를린에서 온 1UP 크루다.
마사 쿠퍼와의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그 첫 만남이 궁금하다.
마사와는 베를린의 한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다. 알다시피, 마사 쿠퍼는 현재의 그래피티 신(Scene)을 있게 한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그래피티를 진지하게 촬영하지 않았던 70년대부터 그래피티를 촬영하고, 아카이빙했다. 그녀의 사진집은 당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지금도 여전히 그래피티의 성경이라고 불릴만하다.
언제부턴가 그녀가 우리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당연히 우리도 그녀와의 작업에 관심이 있었고, 먼저 연락을 취했다. 이후 우리는 베를린에서 종종 만났고, 마사는 노인이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쿨하고 에너지 넘치는 멋진 사람이기에 우린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어울릴 수 있었다. 만남을 이어가며 자연스레 작업을 진행했고 결국, 지금 이 프로젝트까지 이어졌지.
협업 과정 속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없었나?
알다시피, 그래피티는 종종 위험한 신체활동과 동작을 수반한다. 전차가 역에 잠시 정차해 있는 찰나에 크루 모두가 그 위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백점프(Backjump)’ 액션을 계획하고 이를 마사에게 이야기해줬다. 마사는 즉시 관심을 보이며 그녀의 첫 번째 백점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점프는 완전히 정차한 전차 위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것이 아니기에 선로 위를 건너거나 몸에 로프를 묶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등 위험한 동작이 필요한 작업이다. 솔직히 그녀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그녀에게 정말 괜찮겠냐고 물어봤을 때, 그녀는 너무나도 쿨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우리에게 백점프 중에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정말 멋진 죽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우리는 몇 번의 정신 나간 작업을 함께했다.
국가 별로 그래피티에 대응하는 법이 다르다고 알고 있다. 베를린은 어떤가?
그래피티 자체가 어느 나라에서도 안전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행동에 옮기기 전 철저한 계획을 짜는 편이다. 다행히도, 독일의 그래피티 처벌 관련법은 일본이나 한국보다 훨씬 유연한 듯하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그래피티 작업 중 잡혀도 체포나 조사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벌금은 좀 내야겠지만, 그게 전부다. 한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재빠르고 강렬하게 작업을 해야 하지만, 독일에서는 조금 더 어슬렁거리면서 법을 가지고 놀 수 있다고 할까. 물론, 전과가 화려하거나 대형 작업 중에 잡히면 일이 조금 심각해질 수 있기에, 우리도 항상 이름을 숨기고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는 등 조심성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은 법률의 차이는 그래피티를 예술로 존중하는 사회적 수준의 합의에 달린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했을 때, 현지인은 우리가 그들의 집이나 건물에 그림 그리는 것을 반겼다. 그래피티를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들의 집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 싱가포르에서는 아티스트가 그래피티 작업 중에 발각되면 몽둥이로 제압당하고, 체포된다고 들었다. 두 나라의 예만 보더라도 베를린에서 우리에게 주는 형벌은 비교적 가벼운 수준인 것 같다. 적어도 때리진 않거든.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도 존재하는지?
‘규칙’이라고 부를 만큼 엄격한 것은 아니지만, 베를린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교회와 병원 그리고 개인 소유의 자가용이나 건물에는 그래피티를 그리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공공의 재산과 장소 그리고 벽에만 작업한다.
최근, 서울의 한 아티스트가 2005년 독일 정부로부터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 일부에 그래피티를 그렸다. 작업물에 뚜렷한 의미나 메시지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더욱 큰 질타를 받았는데, 한동안 그의 행동을 두고 수많은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안 됐지만,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게 이 게임의 방식이다(That’s the game). 어쨌든, 이 사건을 두고 많은 논의가 벌어졌다는 일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래피티에 관심을 보인다는 뜻이니까.
마지막 질문이다. 좋은 그래피티란 무엇인가?
우리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모든 아티스트가 좋은 그래피티를 향한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테크닉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이는 사회적인 제도에 충격을 주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굳이 얘기해보자면, 좋은 그래피티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메시지나 테크닉, 혹은 퍼포먼스까지 결국 그래피티는 대중에게 충격과 영감을 줘야 한다. 1UP 크루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작업을 남긴 크루는 아니지만, 언제나 강한 임팩트를 준다. 우리는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하고, 우리가 바로 그들의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인터뷰 │ 김용식, 오욱석
사진 │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