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프로듀서 이수호가 [Entertain] 이후 3년 만에 앨범 [Monika]로 돌아왔다. 변주와 변칙, 여전히 예사롭지 않은 음악으로 무장한 앨범 [Monika]지만, 날카롭고 거칠기 그지없던 부분만큼은 3년의 인고로 보다 더 완곡하게 다듬어졌다. 둘을 비교하자면 흑과 백, 그야말로 아주 극적인 대비. 과거 사회의 부조리와 편법을 향한 분노를 앨범 [Entertain]에 꿰어냈던 이수호는 이번 [Monika]에는 어떤 내용과 감정을 담아낸 것일까. 그 힌트를 하단의 대화를 읽으며 찾아보길 바란다.

3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이다. 첫 번째 앨범 [entertain] 후의 행보에 관해서 묻고 싶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최근에 발매된 [Monika] 작업을 2018년부터 꾸준히 해왔다. 그 와중에 작년부터 뮤직비디오 디렉터로 일이 늘어나서 음악, 영상 두 가지를 작업하느라 개인 시간을 거의 챙기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남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궁금하다. [Entertain], [Monika]로 프로듀서로 입지를 탄탄히 다진 한편 영상 디렉터로도 업계에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예전부터 “음악도 만들고 영상도 만드는 이수호입니다”라고 소개해왔는데 지금도 똑같은 것 같다. 입지가 생겼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근데 사실 입지가 생긴 건지도 잘 모르겠다. 최근에 만난 사람 대부분이 나를 영상 디렉터로 알고 있어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나를 음악 하는 사람으로 알아주면 좋겠다. 둘 다 재밌지만, 나에겐 아직까진 음악이 조금 더 재밌다.

3년간 외모도 많이 바뀌었다. 머리와 수염을 기르게 된 이유가 있나?

정신없이 살다 보니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나를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최근 고향 집을 내려가서 거울을 봤는데 스스로 인지하던 내가 아닌 웬 아저씨가 서 있는 걸 보고 관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ntertain]을 온라인으로 공개한 뒤 CD 포맷의 피지컬로 판매했다. 구매자가 직접 음반의 가격을 매기는 것이 인상 깊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 프로모션 방법을 택하게 됐는가?

당시에 많은 레코드숍, 스토어에 판매 문의를 넣어봤지만 한 군데도 답장이 안 왔고 DIY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판매 가격을 매기는 과정에서 앨범의 가격이 보통 1~2만 원 사이로 책정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한텐 1~2만 원보다 훨씬 더 값진 데…’ 라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내 음악의 가격을 정말 모르겠으니 가치를 당신들이 매겨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팔았다.

[Entertain]은 한국힙합어워즈에 과소평가된 앨범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과소평가 됐다는 평단의 피드백은 어떻게 다가왔는지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 상이 왜 존재하는지 애초에 의문이다. 누군가는 ‘올해의 과소평가된 앨범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걸까?

바밍타이거(Balming Tiger)의 파티에서 디제이로 스테이지에 오르거나 오메가사피엔의 “Pop The Tag”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등 바밍타이거와 오래전부터 교류해왔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 합류를 결정했다.

바밍타이거의 디렉터 산얀(San Yawn)과 몇 년 전부터 얘기를 나눠왔다. 서로 조심스러운 단계였던 것 같다. 이번 앨범 역시 산얀이 초기 단계부터 크리에이티브에 많은 도움을 줬고 앨범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함께해야겠단 생각을 굳히게 된 것 같다.

지난 인터뷰에서 멕시코에서 잠깐 생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 해외 생활이 지금 이수호의 음악이나 비디오 디렉팅에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나?

멕시코에서 생활하기 전, 운동 말고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아이돌, 가수들에 대해서도 모를 정도로 음악에 무지했다. 멕시코에서 만나게 된 친구 프란시스코 발데스(Franciso Valdes)와 인터넷의 영향으로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상 작업으로 이어진 계기는?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음악과 같이 병행할 수 있을 법한 대학 과목이 뭐가 있을까 서칭하다 영상을 공부하면 나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겠단 생각으로 영상을 처음 접했다.

이수호의 첫 뮤직비디오 “we make noise not music”에서 폐기물 소각 과정과 요양병원 장면을 교차하여 노파가 느낄 공포를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또한 그러한 묘사법이 이수호가 영상을 만드는 데 즐거움을 불어넣는 동기부여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어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

요즘은 조금 더 과감하게 충돌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작업했던 CL의 “Spicy” 뮤직비디오에서 피카츄와 람보르기니의 조합이라던가. 멋을 챙기면서도 밈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들. 이해를 돕고자 당장 떠오르는 키워드만 적자면 키티와 기관총, 스파게티와 식혜와 같은…

본격적으로 최근 앨범 [Monika]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먼저 [Monika]라는 앨범명에 관한 질문이다.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뜻이고 이렇게 명명한 이유는?

우선 [Monika]는 특정된 인물의 이름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여러 아름다운 이름 중 하나일 뿐이며 많은 사람이 불쾌하다 느낄 이 앨범에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이번 [Monika]는 지난 [Entertain]에 비교적 밝다고 느껴졌다. 색으로 비유하자면 [Entertain]이 흑색이라면 [Monika]는 백색이라 생각될 정도로 대비적이었다. 과거 변칙의 이유가 분노와 반항에서 비롯됐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그 분노와 열등감이 사라진 상태인가?

음악의 의도를 정말 잘 들어준 것 같다. 이번 앨범 역시 많은 사람들이 어둡다고 생각하던데 사실은 결과적으로 희망적이다. 분열 다음에 찾아오는 희열. 이번 앨범을 통한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듣는 이들의 신체와 외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희열감을 청자들도 느끼길 원했고 그 느낌은 몸을 가득 채우는 아주 밝은 흰색 빛이었다. 직접적으로 밝은 음악을 만들진 않았음에도 의도를 파악한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반갑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많은 이들이 혼자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을 거라 생각한다. 코로나는 인류의 큰 비극이지만 나에 한정 지어 생각했을 때 20대 중반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나의 정신, 육신, ‘나’와 세계의 관계에 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고 내가 내린 결론은 육체는 나의 정신과 주변 세계를 구분 짓는 벽이고 이 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편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개념적, 추상적인 말이지만. 이 초월적인 느낌을 최대한 앨범에 담으려고 했다.

프로듀싱에 사용되는 악기와 DAW에 관한 소개를 부탁한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다 보니 악기보다는 음 단위의 샘플들의 배치하는 작업이다. 가끔 FX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미니로그를 사용한다. DAW는 큐베이스를 쓰다 몇 년 전 에이블톤으로 옮겨왔는데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때문인지 사운드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접근성이 월등히 좋은 것 같다.

앨범 트랙 러닝타임이 짧아 아쉽기도 했다.

긴 앨범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실력도 아직은 없다. 물론 긴 호흡의 곡 또는 앨범이 지니는 가치와 감상을 잘 알지만, 곡들의 호흡을 짧게 가져가는 것을 선호하고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언젠가 긴 앨범을 만들고 싶단 확신이 들 때가 오지 않을까.

[Monika]는 D&B(“몸”), 하이퍼팝(“Lights”), 디컨스트럭티드 클럽(“Kick Back”), 딥레게톤(“Idol”) 등 넓은 스펙트럼의 장르적 특징을 찾을 수 있었던 앨범이다. 한편 상술된 장르 모두 공통으로 2010년대 영국을 주축으로 새롭게 등장했거나 혹은 ‘포스트’라는 수식으로 리바이벌된 전자음악이다 싶었다. 실제 그 시대의 영국 전자음악에 영감을 얻은 편인가?

영국의 ‘워프 레코드(Warp records)’의 음악을 즐겨 듣긴 하지만 인터넷을 필두로 지역적 특성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런던뿐만 아니라 상하이의 언더그라운드 레이블 ‘svbkvlt’ 음악에서도 영향을 받았고 베를린의 ‘PAN’에서 릴리즈되는 음악들도 나에게 적잖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특정 지역을 언급하기보다는 인터넷에서 영향을 얻었다고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또한 과거 필자와 사담으로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이하 OPN)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현재 운영 중인 ‘보링 스튜디오(Boring Studio)’ 인스타 계정에 올린 첫 영상 음악 역시 OPN의 “Boring Angel”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기도 하는데, 이번 앨범에 그의 영향이 있었는지?

OPN의 음악에서 배우고 가져올 점들이야 너무 많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그의 FX의 사용 방식을 어느 정도 차용해서 작업했다. 실리카겔(Silica Gel)의 보컬 김한주와 함께 작업한 트랙 “Lights”에서 후렴 다음에 빠진 보컬을 대체하며 등장하는 노이즈, FX들이 대표적인 예다.

해체적이며 실험적인 인상에 피처링 아티스트 역시 예사롭지 않은 리듬을 잘 헤아리는 뮤지션으로 포진된 것 같다. 때문에 함께 작업 당시 그들과 음악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나 가이드 등을 제시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려고 했다. 같이 작업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내 음악을 좋아해 주고 먼저 선뜻 나에게 같이 작업을 해보자고 손을 내밀어줬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큰 틀로서의 가이드만 제시하고 디테일은 최대한 참여해준 뮤지션들에게 맡겼다. 작업하기 전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다양한 뮤지션이 참여한 만큼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달라.

“Ninja Sports” 제작 당시가 생각난다. “Ninja Sports”는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큰 곡이다. 우선 10대 때 음악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 인터넷을 통해 만나게 된 친구들이자 현재에도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인 cjb95, 김도언, ccr, 김심야와 함께 곡을 만들었다. 트랙을 만들 때 그 당시 우리가 좋아했던 디트로이트 뮤직을 생각하며 작업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 시모(Simo) 형이 참여했다.

시모 형의 가사를 듣는 순간 어릴 적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시모 & 무드 슐라(Simo & Mood Schula)의 곡 “The Deee”의 벌스를 바꿔 부른 구절이 있는데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정말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벅차다. 그 느낌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향후 어떤 계획이 있는지?

내 삶에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계획을 짜도 결국 변수가 발생하고 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인생은 손에 쥔 모래 알갱이처럼 꽉 쥘수록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더라. 꿈을 느슨하게 쥐고 있어야 내 손에 남아있다. 그러니 소소하게 십 년 뒤에도 친구들과 이것저것 만들며 살고 있으면 좋겠다. 이번 앨범에 관련된 계획은 곧 몇 편의 라이브클립과 뮤직비디오가 더 공개될 것이고 곧 피지컬 앨범으로 바이닐을 공개할 예정. 바이닐은 이미 해외에서 제작 단계에 들어갔다. 아마 내년 초에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이수호 인스타그램 계정
Balming Tiger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Boring Studio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황선웅
Photographer│유지민
Stylist│Recyde
Hair, Make Up│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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