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 선수의 유쾌한 패션 아이템, 케쇼-마와시

야후! 재팬(Yahoo! JAPAN)의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을 훑는 건 필자의 취미다. 여느 때처럼 야후 재팬을 구경하며 짧디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기사 제목을 살피던 와중, 몹시 깜찍한 곰 인형 패치의 경기복을 장착한 스모 선수의 사진과 마주했다. 그 예상치 못한 귀여움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관련 기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아하게도 우리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스포츠 스모보다 한층 익숙한 캐릭터 패턴과 패치가 그들의 경기복을 장식한다는 사실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곰 인형 그리고 그와는 사뭇 다른 우람한 외형의 스모 선수, 두 조합이 어색하게 느껴져서인지 살색의 향연 속에서 뜸하게 보이는 커다란 눈망울의 캐릭터들은 마치 AI(인공지능) 생성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모 선수는 입장 시 착용하는 경기복에 협찬받는 기업이나 지역 협회를 홍보하는 것이 관례로, 다수의 스모 경기복에서 귀여운 외형을 찾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전통 속옷인 ‘훈도시’ 중 ‘마와시’가 바로 스모 선수가 착용하는 경기복을 뜻하는데, 입장 경기복인 ‘케쇼-마와시(けしょうまわし)’는 일부 선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스모 사회는 철저한 계급 제도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상위 리그에 속한 소수의 선수에 한해서 후원사로부터 케쇼-마와시를 받을 수 있다. 수공예 방식으로 제작된 케쇼-마와시는 주로 후원사의 로고나 출신 지역의 자연 풍경을 패턴으로 사용하곤 했는데, 최근 들어 귀여운 느낌의 캐릭터 IP에 대한 활용도도 높아졌다. 좋은 것은 같이 보자는 말이 있지 않나,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케쇼 마와시를 아래와 같이 모아보았으니 전통 스포츠 의복을 귀여운 현대 캐릭터로 장식한 모습을 함께 살펴보자.


1. 젤라또피케(Gelato Pique)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곰 인형 패치가 장착된 케쇼-마와시로, 이는 1996년 효고현 출신의 타카케이쇼(Takakeisho) 선수의 마와시인 것으로 확인된다. 타카케이쇼의 본명은 사토 타카노부로 아버지의 열렬한 성원과 격려하에 동네 스모 도장에서 활발히 연습하고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주 식단으로 하여 초등학교 6학년에 80킬로그램을 도달하는 등 어린 나이부터 밝은 전망을 보였다고 한다. 2014년에 프로 선수로 데뷔한 후 채 2년도 안 됐을 시점에 주료 등급으로 승진하여 상위 리그에 속하게 되었으며 약 2021년 1월부터 가장 최고위의 계급인 ‘요코즈나에 진급하려고 했으나 여러 차례의 부상으로 인해 가장 최근에 주어졌던 좋은 기회마저 놓치게 되었다. 

일본의 유명한 룸웨어 브랜드 젤라또피케의 후원 소식은 이러한 비보 속에서 발표되었다. 타카케이쇼는 자신만을 위해 특별 제작된 케쇼-마와시를 수령하고 “젤라또피케만의 유일무이한 입체적이고 복슬복슬한 3D 소재를 착용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젤라또피케 측에서 이번 마와시 후원과 함께 약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곰 인형도 선물로 준비했다고 하니, 본인보다 20센티미터나 큰 인형이 듬직하게 느껴져 현관이나 거실에 꼭 비치하면 좋겠다고 한 것은 덤. 타카케이쇼는 작년부터 보도된 목 부상으로 인해 올해 1월에 열렸던 정규 대회에서 자진으로 중퇴했으나 곧 오사카에서 개최될 3월 대회에서는 모습을 비출 예정이라고 한다. 해당 경기에서도 복슬복슬한 곰돌이를 보게 될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2. 후지야(Fujiya)

두 번째는 미야기현 출신의 토키하야테(Tokihayate) 선수가 착용한 후지야 케쇼-마와시이다. 토키하야테는 어렸을 때부터 동급생보다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스모를 시작했지만, 본래 선생님이 될 계획으로 도쿄농업대학에 입학해 학업과 스모 선수 생활을 병행하기도 했다. 결국 대학 졸업 이후 일본의 명문 스모 선수촌인 토키츠카제베야에 입성했고 프로 데뷔 약 4년 후 주료 등급으로 승진했다. 작년 9월 정규 대회에서 패율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한 후 아래 사진에서 나타나는 후지야 케쇼-마와시를 공식 수령한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에겐 발그레한 볼과 어딘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도 잘 알려진 ‘페코짱’과 ‘포코짱’은 일본 제과업체인 후지야(Fujiya)의 마스코트이자 대표적인 연유맛 사탕 ‘밀키(Milky)’의 브랜드 캐릭터인데, 이들에게 귀여운 반려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가? 페코짱과 마찬가지로 혀를 내밀고 있는 귀여운 강아지 캐릭터의 이름은 도그로, 이번 마와시를 받으며 토키하야테 선수는 ‘스승으로부터 좀 닮았네, 라고 들었다’라며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고도 한다. 

이번 케쇼-마와시가 후지야의 첫 번째 스모 선수 후원이 아니라는 사실은 놀랍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도그 케쇼-마와시에 이르기 전까지 페코짱과 포코짱이 그려진 케쇼-마와시를 입고 경기장에 들어선 스모 선수들이 이미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현역 선수 쇼다이 나오야와 2022년에 은퇴한 유타카야마 료타이다. 세계 최대의 분화구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한 구마모토현 출신의 쇼다이를 위해 그의 마와시는 빨간색을 배경으로 한 페코짱이 채택된 반면에, 유타카야마를 위한 마와시는 그의 출생지 니가타현이 홋카이도마저 능가할 정도의 다설지라는 점을 감안하여 파란색을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후지야의 후원을 받은 이 세 선수가 지닌 공통점은 모두 도쿄농업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 후지야의 고위 직급자 다수가 도쿄농업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이 강한 인연으로 작용해서 이러한 후원이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3. 쿠마몬(Kumamon)

국내 지역별 홍보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지자체 캐릭터를 최근에 들어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하며 일본의 유루캬라, 즉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마스코트 캐릭터 문화가 조명받았다. 유수한 유루카랴 중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마스코트는 구마모토현의 ‘쿠마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캐릭터에 익숙하지 않아도 인터넷 서핑에 익숙하다면 어딘가 미세한 광기가 서린 눈에 빨간 홍조를 띤 검은 곰 쿠마몬을 한 번쯤은 마주쳤을 테니 말이다. 쿠마몬이 그려진 특별한 마와시도 존재하는데, 이 마와시는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다노우미 타카시(Sadanoumi Takashi) 선수에게 주어졌다. 사다노우미는 1980년대 왕성한 활동을 뒤로 은퇴한 후 스모 도장의 스승으로 지내고 있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스모의 세상에 들어섰다고 한다.

스모 등급 중 최상위에 해당하는 ‘마쿠우치’로 승진한 2014년에 구마모토현에서 준비한 쿠마몬 케쇼-마와시를 착용하고 여러 대회에 입장한 것으로 확인된다. 구마모토현 대지진이 일어났던 2016년에는 구마모토 지방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의미로 금해 5월 대회에서도 케쇼-마와시를 다시 착용했다고. 쿠마몬 외에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의 마스코트 토코롱이나 치바현 사카에정의 마스코트 도라무 쿤이 그려진 케쇼-마와시도 찾아볼 수 있듯, 선수별 특징에 따라 다양한 유루카랴가 케쇼-마와시에 활용됐을 것. 또한 쿠마몬을 비롯한 지역별 유루카랴는 각종 스모 경기에 방문하거나 연계 행사에 참석하는 등 스모 연계 활동에 자주 참여하곤 한다. 이것이야말로 지자체가 전통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관중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훌륭한 방향이 아닐까. 

페코짱 케쇼-마와시의 주인인 쇼다이 선수와도 만난 쿠마몬.

4. 북두의 권(Fist of the North Star)

마지막으로 소개할 케쇼-마와시는 앞서 본 귀엽고 앙증맞은 마와시보다 다소 그윽한 인상의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위 이미지에서 기세노사토 유타카(Kisenosato Yutaka) 선수가 입은 케쇼-마와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무협 만화 “북두의 권(北斗の拳)”의 장식을 선보이고 있다. 해당 마와시는 기세노사토의 기념비적인 요코즈나 지명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일본인 스모 선수들이 점점 줄고 몽골 출신 선수들이 연이어 요코즈나에 지명되며 일본 스모계는 거의 20년간 순수 일본인 요코즈나를 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몽골 선수들이 어느 정도의 선천적인 괴력과 속도를 선보일 때마다 일본 토종의 요코즈나는 언제쯤 다시 등장할지 걱정하기도 했다는데, 기세노사토가 바로 이런 아쉬움을 해소해 준 것이다. 

기세노사토는 평소에 북두의 권의 팬임을 밝히기도 했었는데, 2017년에 요코즈나로 지명된 직후 해당 만화를 출판하는 코어믹스(Coamix)에서 그를 위해 손수 케쇼-마와시를 제작해 준 듯하다. 인기 캐릭터 3명마다 각 다른 버전을 준비했지만 기세노사토는 자신의 ‘최애’ 캐릭터 라오우 케쇼-마와시를 택했다고 한다. 신의 영역으로 불리는 요코즈나에 오른 기세노사토를 위한 장풍의 신 라오우 케쇼-마와시인 셈. 그러나 기세노사토는 요코즈나에 등극한 지 불과 2년 만에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2019년에 은퇴 의사를 밝혔고, 73대 요코즈나로 몽골 출신의 하쿠호 쇼 선수가 지명되면서 요코즈나는 다시금 몽골 출신들의 차지가 됐다. 기세노사토는 은퇴 의사를 전하면서 요코즈나로서 대중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것은 매우 후회되지만, 라오우의 명대사 “내 생애에 한 점의 후회도 없다!”를 차용하며 경기장에서 보낸 세월에 있어서 한 점의 후회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밖의 유쾌한 케쇼-마와시도 마저 즐겨보자.


이미지 출처 | 産経ニュース, Sumo Wrestling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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