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굴레에 갇힌 인간의 공포를 담은 Terayama Shūji의 초기 단편 “죄수(檻囚)”

한 남자가 열리지 않는 단테의 지옥문 같은 철문을 두드리고 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또 다른 두 남성은 근육으로 단련된 육체로 반복적인 움직이고 있다. 젊은 여성은 어린 염소를 산책시키고, 늙은 여성은 시계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늘에선 커다란 시계추가 움직이고 있고, 거리에는 한 남성이 시계 축이 된 해시계가 놓여있다.

연관성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미지의 배열이 이어지는 가운데, 늙은 여성이 어느새 시계를 버리고 들판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노인의 춤이 끝날 때, 시계 축이 된 남성은 누워있고, 염소는 거리를 배회하며, 시계는 부서져 있다. 그 사이로 두 남성의 근육과 노인의 미소 그리고 염소의 배회가 스쳐 지나가면 다시 시계는 복구되어 있다.

테라야마 슈지

초록빛의 기괴한 영상들로 이뤄진 이 10분짜리 단편 영화는 일본 예술계의 독보적인 올라운더 플레이어, 테라야마 슈지(Terayama Shūji)의 1962년에 제작한 초기 단편작 “죄수(檻囚)”다. 테리야마 슈지는 영화, 시, 연극, 방송, 소설, 음악 등 60~80년대 일본 문화 예술 전반의 큰 영향을 미친 존재다. 특히 그의 소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와 동명의 영화는 당대에 많은 파장을 몰고 온 작품이다.

그의 후기작에 비해 초기작은 다소 산만하고 정돈되지 않았다는 평도 있지만, 산만하게 배열된 그의 영화 속 이미지들은 오히려 일본 실험영화의 자취를 쫓을 단초를 제공한다. “죄수” 속 시간에 종속된 인간들이 끝내 시계를 박살 내지만, 그럼에도 그 시계는 부활하고 만다는 영화의 짧은 내용은 시간의 굴레에 갇힌 존재들이 느끼는 선천적인 공포를 다루고 있다. 시간으로부터 인간이 영원히 자유로울 방법은 오로지 죽음뿐이다.

초록빛 필름 아래 시간에 얽매인 인간의 공포를 담은 단편 “죄수”가 궁금하다면, 하단 유튜브 영상을 감상하자.


이미지 출처 | 文藝春秋digital,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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