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session with LMC :우리가 좋아하는 스트리트 패션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이라는 용어는 패션 업계가 지닌 부담스러운 이미지를 상쇄하면서도 어딘지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것은 바로 ‘길거리(Street)’가 지닌 원초적인 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스트리트 패션은 애초에 소수의 문화이자 기존 패션 시스템 밖에서 만들어진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하위문화에 일정 부분 기댄 패션 장르의 한 갈래였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더는 그들만의 코드로 통용될 수 없으며 따라서 ‘길거리만의 정체성’을 지키자고 목 놓아 외치는 순수주의자 또한 그 수가 줄었을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굳이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패션계가 줄기차게 뽑아먹는 소스가 바로 ‘길거리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패션 명문 학교가 아닌 밑바닥에서부터 커리어를 시작한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루이뷔통(Louis Vuitton) 디렉터로 선임된 전후로 소위 ‘이 바닥’의 지형은 좋든 싫든 간에 꽤 바뀌었다.

시간은 흐르고, 지는 별이 있으면 떠오르는 별도 있기 마련. 빨리 변하는 세상보다 더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 업계 안에서 우리는 눈을 잠시 근처로 돌려 몇 년 내 국내에서 굳건히 자리 잡은 스트리트 브랜드 LMC(Lost Management Cities)의 디렉터 김태훈과 MD 김대현을 만났다. 스트리트웨어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가 왜 그렇게 열광해왔는지, 국내 스트리트 패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두루 이야기해 보았다. 길거리 문화를 사랑한 이들이 실제 업계에서 일하면서 느낀 바와 지금의 현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확인해 보자.

권혁인: 처음 스트리트 패션에 빠져든 시기를 기억하나요?

김태훈: 저는 이쪽 업계에서 일하던 다른 분들하고는 다르게 비교적 늦게 접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라이풀(LIFUL)에서 일하던 남무현 디자이너가 재밌는 거 한번 해볼 의향이 있냐며 제안했어요. 그때부터 도메스틱 브랜드를 찾아봤습니다. 기성 브랜드 회사에서 인턴으로 생활할 때는 느끼지 못한 신세계였어요. 그때 마침 포트폴리오를 얼추 완성해놓아서 바로 면접 보고 일을 시작했죠.

김대현: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뉴욕에 유학 가서 자연스레 길거리 문화를 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신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은 돈으로 조던 사려고 줄 서고 그랬죠. 비보잉을 좋아해서 춤도 췄습니다. 그렇게 스며든 거 같네요. 바지 사이즈도 36 사이즈에 고무줄 끼워서 입었어요.

권혁인: 그때 뉴욕의 거리 패션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김대현: 일단 노스페이스 패딩, 올백 포스, 팀버랜드, 에비수 청바지 정도는 하나쯤 갖춰놓았던 것 같은데요? 한참 뉴욕에 있다가 한국에 와보니 노스페이스가 한국 학생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했죠.

오욱석: 저는 어렸을 때 친구들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보통 학교에 선구자 같은 친구 한 명씩은 있잖아요. 어렸을 때야 그냥 엄마 따라가서 쇼핑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주욕(Zoo York) 후드를 입고 BMX 타던 친구가 되게 멋있게 보였어요. 그 친구와 친해지고 나서 집에도 놀러 가곤 했는데, 아버지가 출장 갈 때마다 옷을 사다 주시더라고요. 무역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권혁인: 스트리트 브랜드가 동대문을 통해서 간헐적으로 들어오던 때가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인터넷조차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이전이었죠. 그 당시 패션이나 문화에 관한 정보는 어떤 매체를 통해 접했나요?

김태훈: 집에 잡지가 많았어요. 작은누나가 패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누나가 중학생이었는데, 힙합 바지에 뽈록이 포스를 신고 다녔죠. 그때는 보이시하게 입는 여학생도 많았잖아요. 작은누나는 워낙 크게 입고 다녀서 폴로 스포츠 피케셔츠 같은 걸 나한테 입으라고 줬죠. 사이즈도 잘 맞았어요.

김대현: 잡지도 잡진데, 미국에서는 아무래도 학교에서 옷 잘 입는 친구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욱석: 일본 잡지를 많이 봤어요. 사실 잡지보다는 부록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 사은품 같은 게 수록되어있어서 놓치지 않고 모았죠. 그때 명동 중국 대사관 거리에서 해외 패션 잡지를 많이 팔았는데. 그 외에는 힙합퍼(Hiphoper)나 무신사(Musinsa) 같은 웹사이트에서 거리 패션을 많이 봤어요.

권혁인: 그때는 힙합퍼나 무신사 모두 지금의 쇼핑몰의 형태를 갖췄기보다는 길거리 패션의 정보지 같은 형태였습니다. 아마 옷에 관심 좀 있다는 이들은 모두 봤을 거 같은데요. 당시 프리챌이나 싸이월드, 다음 카페 등지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패션 커뮤니티도 기억납니다. 그때 ‘니뽄필’, ‘유로필’ 같은 말이 유행했죠.

오욱석: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잡지에 나오는 이들의 스타일을 따라 하면서부터 ‘일본인처럼 입는다’의 의미로 ‘니뽄필’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로 기억합니다. 쿠보즈카 요스케, 나카타 히데토시, 후루야 켄지와 같은 패션 스타들이 한국까지 이름을 떨쳤죠.

김대현: 지금 봐도 멋진 스타일이죠. 국내에서는 배정남 또한 인기가 높았죠. 당시에는 연예인도 아니었는데, 그를 따라한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았잖아요.

오욱석: 저는 힙합퍼에서 처음 본 제이에스(Jayass)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덩크 SB를 신은 것까지 기억하네요.

권혁인: 그렇게 2000년대 중반을 지날 때, 제가 기억하기론 국내에서도 길거리 문화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저보다 윗세대에게는 틴틴(TinTin)으로 더 유명한 다코너(Dakorner)에서 자이언트 바스타드(Giant Bastard)나 부루마불 하우스(Burumarbul House) 티셔츠를 팔고, 아프로킹 파티(Afroking Party)를 지나 360사운즈 파티가 본격적인 막을 열고, 베리드 얼라이브(Buried Alive)가 첫 룩북을 개시하던 그 몇 년 사이의 흐름. 연예인도 아닌데 블로그에서 얼굴을 자주 비추던 길거리 멋쟁이들.

김태훈: 나는 그 시작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자세히는 잘 모르겠네요. 2000년대 후반부터 신(Scene)에 들어와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피부로 체감한 거 같습니다. 그때는 압구정에 뭐가 많았죠. 카시나(Kasina), 휴먼트리(Humantree) 등등 주변에서 자기 걸 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어울렸어요.

권혁인: 제이에스는 그 시절, 국내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없던 해외 스트리트 브랜드를 들여오고, 자체적인 브랜드인 베리드 얼라이브까지 성공적으로 런칭했죠. 그의 블로그는 당시 길거리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자주 들어가던 곳이었습니다. 글도 맛깔나게 썼는데.

오욱석: 저는 제이에스가 휴먼트리를 열기 전 거평프레야에서 ‘가라사대’라는 편집숍을 운영할 때부터 찾아가곤 했습니다. 아마도 2004년 무렵부터 카시나에서 나이키를 정식으로 수입하고, 압구정에 주욕 매장이 생기는 등 스트리트 패션의 출구가 하나둘씩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압구정에는 웍스아웃(Worksout)을 비롯한 각종 편집숍이 즐비했습니다. 이전에는 스트리트 브랜드를 사려고 하면 동대문에서 가짜인지 진짜인지도 모르는 물건을 비싸게 구해야만 했는데, 이제 믿을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거죠. 그때부터 압구정에 자주 갔습니다. 마치 오사카 오렌지 스트리트 같은 분위기였어요.

권혁인: 지금의 조용한 압구정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어요. 당시에 멋쟁이들은 다 그 동네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

김태훈: 휴먼트리에는 당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던 미국 떼기들이 정말 많았죠.

권혁인: 많은 이들에게 휴먼트리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난 2016년 쇼룸이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을 때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오욱석: 제이에스의 블로그를 샅샅이 보고, 가라시대 시절부터 놀러 가서 구경한 저로서는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베리드 얼라이브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고, 국내 로컬 문화를 서포트하는 한 축으로서 많은 일을 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숍은 작았지만, 휴먼트리라는 이름의 영향력은 컸죠.

권혁인: 많은 이들이 베리드 얼라이브를 최고의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로 꼽을 만큼 BA는 당시 스트리트 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티셔츠 하나쯤 가지고 있었죠.

김태훈: 처음에는 외국 브랜드인 줄 알았어요. 펑크 음악을 좋아하는 제가 열광할 요소가 많았죠. 휴먼트리 쇼룸은 더욱더 놀라웠어요. 별천지라고 해야 하나. 그냥 구경만 가도 기분 좋은 곳이었습니다. 특히 제이에스의 책상은 마치 작은 박물관 같았어요. 그런 휴먼트리 쇼룸이 끝났다니 정말 충격이었죠. 누군가 이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권혁인: 그럼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다시 새로운 흐름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현재 국내 길거리 문화 또는 스트리트 패션의 모습이라면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오욱석: 나라별로 스트리트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고유한 스타일이 떠오릅니다. 디자인이나 정체성 등 다양한 요소에서 자국 내 브랜드끼리는 일정 부분 동질성을 띠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일본으로 치면 일련의 우라하라 열풍, 베이프(A Bathing Ape)와 언더커버(UNDERCOVER)를 필두로 마스터피스(Masterpiece)나 리얼 매드 헥틱(Real Mad Hectic) 그리고 뒤를 이은 바운티 헌터나 스와거(Swagger) 같은 스타일이 강세인 시절이 있었고, 미국은 두말할 필요 없이 슈프림(Supreme)과 스투시(Stussy) 사이에서 무수한 브랜드가 생기고 사라졌습니다. 한국은 지금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과 LMC 그리고 미스치프(Mischief)를 필두로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듯합니다.

김대현: 지금의 패션 신은 굉장히 빠른 것 같습니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비교적 덜 발전했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죠. 지금은 엄청나게 빠르게 패션을 접할 수 있고, 유입과 동시에 사라지는 속도도 빠르죠. 세대가 완전히 바뀐 것 같다는 인상입니다. 브랜드 측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전략보다는 꾸준히 변화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같고요. 전체적으로 빠른 흐름이 지금과 같은 시장 형태를 만든 것 같네요.

김태훈: 단순히 ‘스트리트웨어’만을 두고 이야기하기에는 그 의미가 확장된 것 같습니다. 그 구분을 유의미하기 위해 문화에 코어를 둔 여러 브랜드가 분발하는 중이고요. 어쨌든 스트리트 브랜드라고 한다면 그 배경에 특정한 문화를 둔 의류의 한 장르인데, 지금은 그 개념이 하이패션이나 디자이너 브랜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하나의 현상처럼 이어지고 있죠.

권혁인: 문화의 저변은 취약한데 덩그러니 패션만 남은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것이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텐데 아무래도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기형적인 형태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김태훈: 사상누각이라고, 문화를 좋아하고 신 내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만들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패션으로 접근한 경향이 있죠. 분명 생산 공정, 유통 쪽에서 메리트는 있지만, 정작 알맹이가 없는 케이스.

권혁인: 어렸을 때부터 제가 멋지다고 생각한 건 일종의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친구들이 티셔츠를 찍어내고, 그림을 그려서 진(Zine)으로 엮고, 그래피티를 티셔츠에 찍는 일련의 놀이에 가까운 것? 단순하지만 쿨하잖아요.

오욱석: 브랜드를 보고 문화 저변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겨나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10대 소비자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브랜드고, 그런 이들이 더 많아져야 토대도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니까.

권혁인: 아카이브가 부족한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전에는 몇몇 권위 있는 커뮤니티에 양질의 정보가 집중되면서 담론 비슷한 게 생겨나며 활발하게 의견이 오갈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분산된 것 같네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인상은 아닙니다.

오욱석: 뭐랄까. 이미지에서 그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권혁인: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많은 이들이 인정하듯 굉장히 매력적인 매체죠. 각종 패션 관련 계정을 보면서 저도 많은 걸 느끼는 편인데, 지금 시대의 소셜 미디어가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김태훈: ‘@supremecopies’를 되게 재밌게 보고 있어요. 이 계정은 슈프림이 어디서 모티브를 따왔는지 상세하게 기술해놨죠. 슈프림 자체가 대중문화를 비롯해 현대미술, 사회적인 이슈 등을 재료로 ‘Sarcasm’을 표현한 브랜드라 그런지 외려 카피를 지적한다기보다는 그들의 배경을 잘 설명해놓은 느낌이더라고요.

권혁인: 아, 저도 봅니다. 마치 힙합 트랙의 원곡을 알려주는 ‘Who Sampled’ 같은 느낌이던데요.

김대현: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마녀사냥이 조금 걱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시대고, 그 수위에 검열 기준이 없다 보니 그 영향이 패션에도 미치는 것 같네요.

김태훈: 디자인팀 또한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권혁인: 첫플의 중요성이라고 하잖아요. 하하.

김태훈: 제작자 입장에서는 좋은 점도 있지만 그만큼 욕먹기도 쉬워진 시대인 것 같네요.

권혁인: 국내 소비자의 동향이라고 한다면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김태훈: 유행이 빠르다는 말을 실제 일하면서 체감합니다. 특정 아이템이나 스타일에 휩쓸리는 성향이 강한 것 같네요. 매출을 고려하면 개인적인 취향에 어긋나더라도 유행하는 아이템을 컬렉션에 포함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됩니다. 어떤 인플루언서가 입었느냐도 중요한 지표인 것 같아요. 업계에서부터 소비자까지 트렌드가 자연스레 스며드는 느낌은 아닙니다. 글로벌 트렌드와 한국에는 일정한 온도 차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제작자로서는 재밌는 걸 시도하려고 해도 대중의 기호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죠. 위험한 일입니다.

오욱석: 인플루언서의 영향이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수준이라고 느낍니다. 불과 작년만 해도 테크웨어 부류의 옷이 인기를 끌었는데, 어느샌가부터 확 사라진 걸 보면서 그들의 영향이 정말로 강력하다는 걸 느끼죠. 개인적으로는 애롤슨 휴(Errolson Hugh)와 같은 디자이너를 좋아하는데, 다양한 스타일이 사랑받는 것 같지 않아서 아쉽죠.

김대현: 빨리 달아난 패션 아이템만 모아서 기사로 내보내도 좋을 것 같은데요.

김태훈: 소비자를 탓하면 안 되지만 한국의 답답한 실정을 겪다 보면 괜히 불특정 다수가 원망스러운 순간이 올 때도 있습니다. 하하.

권혁인: 리셀(Resell) 문화가 근 몇 년 사이에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리셀이 업계에 주는 영향이라고 한다면요?

김대현: 브랜드 측에서는 너무 과하지만, 않는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태훈: 슈프림 같은 경우는 소수 아이템이 아닌 전체 컬렉션이 리셀의 대상이 된 듯한 분위기라 브랜드로서는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 같은데. 소소한 리셀이라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권혁인: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리셀이 브랜드에도,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네요.

오욱석: 기본적으로 정식으로 구매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리셀을 통해야만 구할 수 있다면 그 브랜드의 고객으로서는 정말 짜증 나는 일이죠. 특히 스니커의 경우에는 다른 브랜드와 협업하거나 한정판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마니아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다 보니 리셀이 그만큼 활성화됐죠. 예전에는 한정판이라는 게 손에 꼽았는데 지금은 되게 흔한 현상이 되어버렸어요.

권혁인: 한정판이나 협업 등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브랜드 또한 리셀 현상을 가속한 데 일조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대현: 스니커 헤드(Sneakerhead)라는 말도 있잖아요? ‘한 사람의 패션을 볼 때 신발부터 본다’, ‘패션은 신발에서 완성된다’는 말이 있듯 그만큼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이 스니커를 중요하게 여기는 측면이 있죠.

권혁인: 현재 웝트(Warped.), 하이츠(HEIGHTS.)를 비롯한 개성 있는 편집숍이 해외 브랜드와의 가교 또는 로컬 문화의 출구로서 기능하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압구정 일대의 여러 숍이 비슷한 역할을 자처했죠.

김대현: 다양한 공간에서 문화적인 콘텐츠를 선보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정판에 집중한 운영 방식은 조금 소비 지향적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언급하신 숍 같은 경우에는 패션과 문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놀러 와서 숍의 방향성을 즐긴다는 면에서 긍정적입니다. 지금의 압구정은 이전처럼 어떤 문화적인 흐름을 느끼기에는 영향력이 조금 줄어든 게 아닐까 합니다.

김태훈: 최근 ‘굿넥’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조승훈이 프레드 페리(Fred Perry) 매장에서 겪은 일화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그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매장에 디스플레이된 책을 읽고 있는데, 점원이 와서 만지면 안 되는 거라고 제지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는 공간에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다소 강경하게 매장 측을 비난했죠.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더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브랜드를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다는 건 되게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이 더 커진 게 아닐까 합니다. 인터넷에서 직접 체감할 수 없는 브랜드의 분위기를 소비자들은 매장에 가서 인테리어도 보고, 점원에게 설명도 듣고, 아카이브 북도 읽어보면서 느낄 수 있는 거죠.

권혁인: 역설적으로 오프라인 숍의 상징성이 더 강해진 것 같네요.

김태훈: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가 그런 측면으로 봤을 때, 자신들의 매장에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해주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모토, 아카이브를 전달할 수 있고, 고객의 궁금증을 채워줄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워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오욱석: 오프라인에서 브랜드나 숍이 선보이는 움직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휴먼트리 초창기에 ‘라 파밀리아(La Familia)’라는 브랜드가 있었는데, 압구정 일대에서 자신의 숍을 운영하는 이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명맥이 오래 이어진 브랜드는 아닌데, 로컬 브랜드끼리 협업한 긍정적인 초기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자연스러운 방향성이 느껴지니까. 한국은 워낙 시장이 작아서 서로 경쟁 업체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는 거 같은데, 더 나은 방향을 찾는 해결책으로써 오히려 협업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요.

권혁인: 그래서 웝트 매장 안에서 진행하는 퍼피라디오(Puppy Radio) 같은 협업 콘텐츠는 서로에게 득이 되는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현: 미스치프 역시 로컬의 문화적인 움직임을 브랜드에 잘 녹여내는 것 같습니다. 협업을 굉장히 잘하는 브랜드인 것 같아요.

권혁인: 잠시 LMC 이야기를 해볼까요. 브랜드의 초기 방향성은 무엇이었나요?

김태훈: LMC는 사실 라이풀 미니멀 시티(Liful Minimal City)라는 이름으로 시작됐어요. 당시 라이풀은 컨템포러리 패션 무드의 깔끔한 디자인 의류를 선보이는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래픽 위주의 패션이 트렌드를 이루게 됐죠. 브랜드 정체성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래픽을 과감하게 활용한 라벨을 만들어 보자고 전개했던 게 LMC의 전신이라고 들었어요. 라이풀 미니멀 시티를 진행할 때는 제가 개입하기 전이어서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김대현: 그 무렵 라이풀의 시즌 타이틀을 ‘Liful Minimal City’로 진행했어요. 이 라인이 수면 위로 올라가면서, 지금의 LMC, 즉 ‘Lost Management Cities’로 전향한 거죠.

권혁인: 언제쯤 레이어에 합류하셨나요?

김대현: 그때는 에이랜드(A-LAND)라는 패션 편집 스토어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라이풀과는 거래처로 처음 인연을 맺었고. 에이랜드와 라이풀이 두 번 정도 협업을 진행했는데, 그때마다 제가 미팅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제안을 받아 함께하게 되었죠.

권혁인: 이후 LMC가 독자적인 라인으로 독립했을 때, 어떤 방향성을 지향했는지 궁금합니다.

김태훈: 지금의 LMC는 한 시즌의 콘셉트가 타이틀에 국한되는 걸 지양하기 위해 시즌 타이틀을 없앴어요. 초기에는 시즌마다 다른 소재로 컬렉션을 진행했습니다.

김대현: 초창기 LMC는 세계 각 도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나의 컬렉션을 진행할 때 도시 하나를 모티브로 삼았죠.

김태훈: 사실 스트리트 컬처에도 카테고리가 나뉘잖아요. LMC를 진행할 때는 제가 좋아하는 요소를 많이 집어넣으려고 해요. 스케이트보드라든가, 음악, 영화에서 영감받아 컬렉션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권혁인: 최근 소셜 스터디(Social Study)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업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이 보였어요. 이 캠페인의 출발점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김대현: 여름 시즌이 길어지다 보니 LMC가 준비한 정규 시즌이 끝나고 다음 F/W가 오기 전까지 새로운 콘텐츠를 준비할 시간이 넉넉했어요. 아까 언급한 휴먼트리나 주변 브랜드 디렉터와 같은, 흔히 말하는 OG와 지금의 영 제너레이션을 조화롭게 섭외해서 캠페인을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어요. 지금 스트리트 신의 새로운 얼굴과 그 시작을 봤던 인물이 엮이면 재미있는 이미지가 나올 것 같았거든요.

김태훈: 이 캠페인 역시 이전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지금의 스트리트 신에 문화적으로 결여된 부분을 느꼈으니까. 그렇게 소셜 스터디라는 이름 아래 콘텐츠를 완성하면 많은 이들이 그 주인공이 누군지 찾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캠페인을 전파의 일환으로 생각한 거예요.

권혁인: 그래서 소셜 스터디군요. 이외에도 각 브랜드는 전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고려하고 있을 텐데, 어떤 방식으로 로컬 신이나 문화를 지지할 수 있을까요?

김대현: 일단 각자의 일을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동시에 주변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은 브랜드 혹은 아티스트의 행보를 지켜보고 때로는 참여함으로써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협업으로 이어지기도 하겠죠.

김태훈: 우리가 그 영역의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규모가 크지 않아도 신 안에서 재미있는 걸 만들어 내는 사람이나 브랜드는 항상 있잖아요. 하지만, 서포트가 없으면 또 쉽게 죽어버리는 경우도 잦으니, 계속해서 지지하는 거죠. 요즘에는 아무리 멋있어도 규모가 작으면 제풀에 지쳐 사라지는 경우를 많이 봐도 그런 실정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권혁인: 한순간에 붐업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학습하고 쌓였을 때 비로소 문화라는 형태로 형성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한 브랜드가 지지하는 방향성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패션 에디터로서 여러 브랜드를 지켜본 지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인상적인 콘텐츠가 있었나요?

오욱석: LMC에서 해외 힙합 뮤지션을 데려와 내한 공연을 진행하는 게 신기했죠. 패션 브랜드에서 마땅히 할 수 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 이런 이벤트를 성사시키고,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프로덕트를 완성하는 모습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웍스아웃 또한 아티스트와의 협업 프로덕트를 선보이고 있잖아요. 이러한 방식이 브랜드 차원에서 지지하는 아티스트를 더 널리 알리는 방법이 아닐까요. 디스이즈네버댓도 뉴욕의 힙합, 비보이 문화를 소재로 컬렉션 영상을 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문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대현: 여러 국내 브랜드가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콘텐츠를 완성하는 모양새가 좋은 것 같네요. 미스치프는 로컬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인 데드맨 콜링(Dead Man Calling)과 함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죠. 언제나 이런 무브먼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수많은 도메스틱 브랜드 중에서 돋보이는 차별성이기도 하고, 문화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느낍니다.

오욱석: 서브컬처나 스트리트웨어가 점차 더 수면 위로 나옴과 동시에 나이키와 같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또한 이를 놓치지 않고 국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 함께 쇼를 진행하는 풍경은 분명 생경합니다. 예전에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니까. 국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저변 자체는 넓어진 것 같습니다.

권혁인: 대형 스포츠 브랜드 역시 이미지가 고정되기 쉬우니 코어한 정체성을 지닌 브랜드나 아티스트를 엮어서 변화를 주려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스트리트 브랜드를 바라보는 고질적인 시선이 하나 있어요. 낮은 품질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르는데, 이런 부정적인 평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

김대현: LMC 같은 경우에는 제품 대부분을 국내 생산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따라서 해외 생산 브랜드보다는 품질 검사 및 피드백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제작 오류가 있어도 빠른 수정이 가능하고요.

김태훈: 품질로 큰 이슈가 생긴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김대현: CS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이에요. 디자인팀에서 어떤 원단을 사용하려고 할 때 CS팀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묻죠. 국내에서는 작은 부분에서도 금방 클레임을 걸 수 있으니까, 제작 전에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해요. 모 브랜드인 라이풀이 14년간 브랜드를 진행했고, LMC도 같은 생산 라인을 공유하고 있어요. 업력에서 오는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죠.  

권혁인: 라이풀에서 시작해 지금의 레이어까지 회사의 규모가 상당히 확대됐는데, 여러 브랜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대표와 어떤 의견을 주고받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대현: 대표의 경우에는 일을 지시하기보다는 한 명의 직원으로서 아이디어를 낼 때가 많아요.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시즌 컬렉션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과정에서도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직원보다는 반론하는 이를 선호하죠. 그래서 일을 진행할 때도 편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조언을 주는 입장이랄까.

김태훈: 그의 안목으로 결정한 부분이 결국은 그게 한 시즌을 좌우하는 히트 아이템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단 일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이쯤 되면 이미 수년 전에 손을 떼고 사업만 운영하려는 대표도 많은데, 아직도 계속 현역으로 일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나중에는 우리가 억지로 일을 떼게 했죠.

권혁인: 이제 LMC의 오프라인 스토어가 오픈을 앞두고 있는데, 특별히 염두에 둔 장소가 있을까요? 숍 내부의 인테리어라든지 어떤 콘셉트를 구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대현: LMC 주 고객층이 가장 선호하는 위치는 아마도 홍대일 겁니다. 아무래도 LMC를 좋아하는 연령대가 10~20대고, 해외 고객도 무시할 수 없어서 첫 플래그십 스토어는 홍대로 낙점했죠. 주변에 디스이즈네버댓 스토어도 있고, 조금 더 골목으로 들어가면 하이츠 스토어가 있어요. LMC가 그 동선을 이어 마치 도쿄의 캣 스트리트처럼 패션 브랜드로 이루어진 거리를 형성하면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또 서로 친분이 있는 곳들이라 경쟁보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나중에는 그 거리에서 재미있는 이벤트도 열 수 있지 않을까요.

권혁인: 근 몇 년간 약진했던 디스이즈네버댓, 미스치프와 같은 로컬 브랜드가 최근 연이어 오프라인 스토어를 열었죠. 브랜드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김대현: 매장의 인테리어나 스태프, 작은 쇼핑백 하나마저 그 브랜드를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요소를 봤을 때 언급하신 브랜드는 스토어를 굉장히 잘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고, LMC 또한 브랜드 정체성을 개성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스토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욱석: 이미 많은 패션 브랜드가 각자의 숍을 잘 꾸려나가고 있죠. 사실 제품은 전부 온라인을 통해 다 볼 수 있어요. 그럼에도 직접 스토어로 발걸음을 옮기는 건 다른 이유에서잖아요. 슈프림 스토어 내부의 마크 곤잘레스(Mark Gonzales) 조각상이나 퍽킹어썸(Fucking Awesome) 천장의 경찰차처럼 브랜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오브제를 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스케이트보드 스토어도 그 손잡이가 트럭으로 바뀌어 있을 때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처럼, 브랜드가 이야기하려는 바가 확실하게 느껴지죠. 

권혁인: 근 몇 년간의 패션계 흐름에서 흥미로운 지점이나 사건이 있었다면요?

김대현: 큰 이슈라면, 루이뷔통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버질 아블로를 영입한 일 아닐까요. 그 이전에는 절대 일어날 수 없던 장면이었죠.

권혁인: 패션 업계에 속한 이들에게 뭔가 가능성을 열어준 사건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김태훈: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 버질 아블로가 펜디(Fendi)에서 상당히 낮은 임금을 받고 인턴으로 일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커리어의 시작이었네요. 그 이전이라면, 슈프림과 루이뷔통의 협업이 기억에 남아요. 상징적인 의미를 남긴 것 같습니다.

김대현: 결과적으로는 루이뷔통이 패션계에 큰 변화를 일으킨 것 같네요.

김태훈: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죠. 다른 브랜드도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니 그런 흐름을 보는 일도 되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전통을 중시하는 버버리(Burberry)도 최근 산세리프 서체로 로고를 바꿨죠. 굳이 패션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다음 시대가 열린 듯한 기분입니다.

권혁인: 하위문화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브랜드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초창기 베트멍(Vetements)이나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를 비롯해 그가 전개하는 또 다른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라스벳(Rassvet)까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던 패션계도 점차 변화하는 듯합니다.

김태훈: 처음에는 거부감이 먼저 들었죠.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브랜드가 본질을 배제하고 스트리트 컬처의 외형만 차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그들을 보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죠.

오욱석: 버질 아블로를 루이뷔통의 디렉터로 앉히는 결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죠.

권혁인: 최근 하이엔드 브랜드, 디자이너의 행보도 주목하고 있나요?

김태훈: 점점 더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스트리트와 하이엔드의 경계도 이전처럼 엄격하지는 않은 것 같고 단순히 옷의 복식으로 장르를 나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부분이 더 커진 것 같네요.

김대현: 생각해보니 제품 외적으로 본다면, 다른 브랜드의 캠페인 이미지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디자이너 젠더 주(Xander Zhou)가 런웨이에서 보여주는 시각적인 모습이랄까요. 이번에도 모델 없이 LED 화면만으로 쇼를 보여줬습니다, 뭔가 계속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는 브랜드 MD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스트리트 신에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권혁인: 모두 새로운 걸 찾는 데 혈안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새로운 것이란 결국 과거의 창작물일 텐데.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분산된 과거의 자료를 디깅해서 현시대의 좌표를 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 주로 어떤 걸 찾아보시나요?

김대현: 저는 아카이브를 많이 보고 있어요. 90년대 일본 패션을 견인한 노웨어(NOWHERE)나 언더커버, 황금기의 베이프 같은 것. 그때 그들이 내놓았던 결과물이 지금 봤을 때 더 멋지게 느껴져요. 최근 힙합 아티스트만 봐도 쿠반 체인 같은 화려한 액세서리를 많이 착용하는데, 사실 이 문화도 이미 90년대에 말도 안 되는 비주얼로 선보인 것 중 하나였죠. 그중 한 명으로 니고(Nigo)의 결과물이 많아서 당시의 패션과 작업물을 자주 찾아보고 있어요.

오욱석: 인디펜던트 브랜드에 계속해서 눈이 가는 것 같아요. 작더라도 내실 있게 운영하는 브랜드가 많아졌잖아요. 웝트에서 취급하는 브랜드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부틀렉 브랜드의 신선한 결과물도 지금 세대에게 잘 부합하는 것 같아요.

권혁인: 패션을 즐기는 이들의 독특한 스타일링이라고 한다면요? 이제는 단순히 옷을 조합해서 입는 재미를 넘어 각자의 개성을 살린 커스텀도 조금 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은데.

오욱석: 맞아요. 최근 많은 이들이 기성 제품을 그대로 입는 게 아니라 개인 취향에 맞게 커스텀을 하거나 이미 커스텀, 리폼 과정을 거친 의류를 많이 입고 있잖아요. 실제 그런 형태의 브랜드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최근 커스텀을 활용한 브랜드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들 역시 이런 흐름을 직접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소수가 즐기던 의복 문화였다면, 지금은 빠르게 대중에게 퍼지고 있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 역시 부틀렉 컬처의 흐름에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이전에는 그러한 커스텀이 조악한 가짜로 치부됐다면, 이제는 색다른 스타일로 인정받는 느낌입니다. 다만 요즘에는 특정 스타일이 일종의 공식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정해진 스타일로 완성해야 할 것 같은 불필요한 매뉴얼이 생긴 것 같아서.

김대현: 스니커만 봐도 머리에 떠오르는 패션이 몇몇 있죠. 어느 순간부터 많은 사람이 그 공식에 얽매여 있는 느낌, 그런 게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권혁인: 패션 외 분야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대현: 아무래도 책이나 여행이 가장 큰 영감인 것 같아요. 이상하게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아이디어가 계속 떠올라서 바로 적어놓기도 하고. 하하.

오욱석: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특히 일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흥미로운 일을 벌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태훈: 영화 볼 때? 사실 영화를 보는 데 들이는 시간이 두 시간 남짓인데, 그 시간에 형편없는 영화를 보면 괜히 짜증 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를 고르는 것부터 심사숙고하죠. 보통은 옛날 영화를 자주 봐요. 시대적인 디테일을 느낄 수 있어서.

권혁인: 복식의 디테일이 강조된 영화도 있으니까요.

김태훈: 영화 속에서 복식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가지각색이죠. 사람의 성격이라든가, 습관에 따라 옷을 입히는 방식도 달라지죠.

권혁인: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에서 트래비스 비클(Travis Bickle)이 점차 변하는 과정이 복식에서도 드러나는 점이 흥미로웠죠. 모히칸이라니. 하하.

김태훈: 사람 만나는 일도 좋아해요. 비슷한 문화를 좋아하되 취향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재미를 느껴요. 그 사람이 추천하는 음악이나 비주얼에 영감을 받을 때도 있고. 결국 패션과 결부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동시에 음악도 많이 듣고, 공연 실황도 자주 보는 것 같네요. 단순히 그들이 보여주는 비주얼 이외에도 관객의 패션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타이포그래피를 잘 활용한 책이나 타이포그래피의 뿌리를 설명하는 책도 자주 읽어요. 서체라는 건 모든 디자인의 근간이자 기초처럼 느껴져서요.

권혁인: 옷은 결국 행동 양식이나 습관, 지역적인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슈프림이 일본이 아닌 뉴욕에서 나왔듯, 와코마리아(Wacko Maria)가 뉴욕이 아닌 일본에서 나왔듯 말이죠. 그런 게 곧 브랜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한국에 도드라진 문화적 특징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오욱석: 저는 을지로가 흥미롭습니다. 이제는 홍대보다 을지로에서 더 개성이 강한 이들이 많은 것 같네요. 홍대나 이태원은 예전부터 젊은 세대가 많았지만, 을지로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김태훈: 지금 갓 20대가 된 세대는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수순으로 꼭 자신의 진로를 정하려고 하는 것 같진 않아요. 최근에는 스트리트 신에서도 이런 현상이 흔하게 보이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영상 스튜디오를 만든다거나 QH(Quispiamhabilis)처럼 각자의 능력을 합해 재밌는 결과를 만들기도 하고.

권혁인: 디지털을 통해 소통이 굉장히 빠르고 광역적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오욱석: 과거에는 한 분야의 ‘선배’들을 따라가야 하는 도제 제도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모든 분야에 존재했던 것 같은데 지금 막 성인이 된 세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끼리 새로운 리그를 만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앞선 세대가 만들어놓은 풀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 거겠죠.

김태훈: 훨씬 더 주도적이죠. 새로운 걸 시도하는 데 더 적극적이고. 여기에는 소셜 미디어가 되게 큰 영향을 주고 있죠. 옛날에는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어도 루트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신에서 활동하는 형들을 찾아가는 일이 필수적인 순서였는데, 지금은 자신을 알릴 출구가 많죠.

권혁인: 점점 더 개인적인 맥락에서 창조적인 활동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대현: 창작자들이 소규모 그룹을 만든 형태도 유독 많이 보입니다. 굳이 거창한 회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작은 영상 프로덕션이나 아트 콜렉티브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많고 다양해진 것 같네요.

LMC 공식 웹사이트


진행 / 글 │ 권혁인 오욱석
사진 │ 김용식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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