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YL & Chill ep1. SOUNDS GOOD

매달 몇 명의 해외 딜러와 바이닐 레코드를 몇 장씩 거래하며 배송비가 너무 아깝다는 걸 느낀다. 어떨 때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있다. LP 한 장 가격보다 배송비가 더 큰 경우 말이다. 이럴 때는 주변인들과 공동 구매로 절약하거나, 저렴한 배송 옵션을 이용하는 대신 한 달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한 명의 딜러에게 되도록 많은 판을 구매하는 것으로 배송비를 방어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과도한 지출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하고, 어떻든 간에 배송비는 피할 수 없으니 원… 이 아까운 지출을 극단적으로 없앨 방법이 하나 있다면 레코드숍을 직접 방문해서 거래하는 것이다.

다행히 서울에는 레코드숍이 정말 많다. 디깅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소중함이 배가되는 법. 시간 대비 미지의 음악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숍을 찾는 편이며 또 기껏 찾아온 손님을 못마땅하게 보는 곳은 패스한다. 합의라도 한 듯 서로서로 똑같은 음반을 판매하는 듯한 레코드숍도 제외한다.

이번에 VISLA가 기획한 ‘Vinyl & Chill’은 바이닐 레코드 디깅의 새로운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가 좋아하고 자주 가는 레코드숍 다섯 곳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VISLA 내부에서 판을 가장 공격적으로 모으는 편집장 권혁인과 에디터 황선웅 본인이 평소 자주 찾는 서울의 레코드숍 다섯 곳을 선정해 소개하고, 오너와 나눈 인터뷰를 비롯해 그들에게서 ‘연말에 듣고 싶은 레코드’를 추천받았다. 우리가 레코드숍을 선정한 기준은 오프라인 매장이 존재하는 곳, 새로운 음반 업데이트가 활발해서 꾸준하게 방문해야 참 맛이 우러나는 곳 그리고 과거 VISLA에서 소개하고 언급한 가게가 아닌 곳이다.


SOUNDS GOOD(서울특별시 마포구 성미산로29길 26)

그 첫 번째 시리즈는 연남동 어귀에 자리한 정감 가는 레코드 스토어 사운즈 굿(Sounds Good). 반지하 공간임에도 쨍한 자연광이 드는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인센스 스틱의 향과 빈티지 LP의 퀴퀴한 냄새, 커피 원두가 은은하게 뒤섞인 공기를 마주하고, 큼지막한 15인치 알텍(Altec) 스피커 사이로 그득한 음악이 흐르는 숍. 주력 장르 섹션은 재즈로 트래디셔널, 컨템포러리 등 시대를 가리지 않고 소개한다. 아크 로웰 덴톤(Aaron Lowell Denton) 이 제작한 로고 그래픽 기반의 머천다이즈 발매, 인근 숍과 함께 협업 컬렉션을 공개하는 등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굿즈를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사운즈 굿을 열게 된 계기는?

정덕환: 준오 형과 함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에서 함께 일을 하다가 음악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그렇고 준오 형도 레코드 수집가라거나 디제이가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레코드숍을 열자는 의도는 없었고, 그보다는 우리의 음악 콘텐츠나 관심사를 알리는 공간이라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그런데 음악과 레코드 콘텐츠에 집중하다 보니까 점점 레코드 문화에 관심이 커지면서 문화에 빠져들게 됐다. 레코드숍으로의 확장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2019년에 사업장을 지금 장소로 옮겼다. 연남동에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김준오: 매장을 확장해보고 싶어서 넓은 자리를 찾아봤는데, 역시 연남동이 익숙했다. 함께 다니던 회사도 홍대 쪽이었고 자연스럽게 로컬 문화나 여러 가지 라이프 스타일과 시간을 고려했을 때 연남동이 적당했고 따라서 이곳에서 사업을 지속했다.

정덕환: 오픈 당시에는 연남동에 문화적 씨앗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도 주변에 있었고. 덕분에 많은 아티스트와 교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매장을 오픈할 시기 목표가 있었다면?

정덕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라는 목표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굉장히 허공에 떠 있는 말 같지만 정말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준오 형과 레코드 문화를 향유하고 또 나름의 공급자로서 역할을 하며 상당히 큰 만족감과 즐거움을 얻고 있는데, 그만큼 현실의 생활도 이 문화와 동반할 수 있는 방향이 되면 좋을 거 같다. 여전히 그러한 목표로 일하고 있다.

‘Monday Mix’라는 믹스셋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어떤 콘텐츠인가?

정덕환: 레코드숍이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 중 일반적으로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진행할 수 있는 콘텐츠가 믹스셋과 플레이리스트다. 일단 우리 내부에서도 제작할 수도 있고 협업 아티스트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믹스 프로그램에 관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준오 형이 ‘월요일’이라는 주제를 말했다. 월요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없을 테니 우리의 플레이리스트나 믹스셋 프로그램을 통해 월요일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이나마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지.

김준오: 또 우리가 다루고 있는 레코드가 주류 음악은 아니다 보니까 그 매력을 소개하는 방법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생각했다. 숍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제한적이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제안할 방법은 월요일 주기의 믹스셋이 되었다.

숍에서 보유한 장르 중 가장 주요하게 관리하는 섹션과 이유는?

정덕환: 역시나 재즈다. 회사에 다닐 때 준오 형과 재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개인적으로 재즈는 마치 축구와 같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변수가 생기는 스포츠라는 점이 재즈와 닮았다. 또 다른 레코드숍이 많은 장르와 음악을 다루지만 재즈에 특화되어 깊이 있게 다루는 레코드숍은 많이 없다고 생각한다.

레코드숍을 운영하는 주인장은 당연히 레코드 마니아라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오랜 내공으로부터 비롯된 레코드 관리 팁을 알려줄 수 있을까?

김준오: 손님들에게 아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먼지를 털거나 포멀한 팁보다는 개인적인 팁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빈티지와 신보를 나눠서 관리하는 것. 그리고 장에 넣을 때 겉 비닐을 잘 씌운다거나, 너무 빽빽하게 꽂지 않는다. 링 웨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습도가 높은 날에는 선풍기를 틀어준다거나, 그 정도?

정덕환: 레코드를 테마로 나누어 수납하는 것도 관리의 개념을 확장하여 수집의 즐거움을 느낄 방법이다. 음악 스타일에 관해서는 개인마다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테마와 카테고리로 나누어 관리하면 레코드에 좀 더 애정이 가는 것 같다.

매력적인 레코드숍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준오: 오너의 프라이빗한 취향이 많이 보이면 보일수록 더욱더 매력적인 것 같다. 꼭 많은 소비를 이끌지 않더라도 그 공간 자체의 매력이 발산하게 되는 것 같더라.

사운즈 굿이 더 보완하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정덕환: 레코드의 수량이다. 근데 이거는 그냥 우리의 바람이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면이 많다.

김준오: 아무리 앞서 이야기한 프라이빗한 것을 잘 드러내는 매력적인 숍이라고 해도 그 공간에서 소비가 일어나지 않으면 운영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그런 부분이 매우 아쉬운 점이다. 우린 레코드숍 운영자로서 레코드의 수량과 현실적인 면이 충돌되는 지점에서 균형을 맞춰가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며 운영하고 있다.

정덕환: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항상 레코드가 숍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LP는 부활한 것일까 혹은 일시적인 유행일까?

정덕환: 전 세계적으로 보면 부활의 측면에 있다고 보지만, 패션처럼 일종의 흐름에 가까운 것 같다. 근데 부활이라는 키워드도 약간 유행에 포섭된 느낌이 들지 않나. 하하. 개인적으로는 바이닐의 즐거움에는 매우 많은 다양성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한국에서 바이닐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은 그러한 다양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큰 사이즈가 확보될 수 있는 타이틀을 물어서 그걸 많이 생산하는, 일종의 팬덤 비즈니스의 형태로 키우고 있는 것 같다. 바이닐 문화가 그렇게 일차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다양성을 가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피지컬 음반 문화뿐만이 아니라 한국 음악 시장이 전체적으로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부활과 유행이 어느 정도 섞여 있지만, 부활이라는 의미조차도 좀 더 유행에 포섭된 것이 아닌가 싶다.

김준오: 요새 메타버스와 온라인 세상의 비중이 커지며 그곳에서 비롯된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있지만, 인간은 결국 동물이기 때문에 서로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바이닐 매체와 음악도 마찬가지다. 점점 작아지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바뀌었다가 다시 커다란 매체로 돌아왔다. 결국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에게 LP는 경험적인 도구로 더욱더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다.

원초적인 질문이다. 바이닐 레코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정덕환: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내 수고가 좀 더 들어간다는 것이 큰 매력인 것 같다. 굉장히 편리한 세상이기에 노력이 덜 들어가면 그 결과물도 좀 가볍게 느껴진다. 어쨌든 레코드는 나의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이고 디깅이라는 행위에 기반해서 수확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을 많은 사람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Sounds Good’s Heavy Choice

Duke Pearson – [Merry Ole Soul]

블루노트 레코드(Blue Note Records)의 산타클로스, 듀크 피어슨(Duke Pearson)의 크리스마스 재즈 캐럴. 작곡, 프로듀싱은 물론, A&R 맨으로서 블루노트의 60년대를 이끈 피아니스트 듀크 피어슨이 69년에 발표한 작품. 편곡 장인의 손을 거친 스페셜 캐럴 스탠더드의 결정판. 무엇보다, 업라이트 피아노 계열의 건반악기 첼레스타(Celesta)의 소리 하나만으로 연말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 70년대 이후 최초의 바이닐 리이슈가 올해 발매되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Various – [Home Alone Christmas]

팬데믹 시대에 걸맞은 최고의 연말 영화가 아닐까?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진한 향수를 풍기며, 우리를 유년 시절로 돌려보낸다. 될 듯 말 듯 희망 고문하는 시기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집 밖을 나서는 것보다, 케빈과 함께 이 앨범을 듣는 편을 권장한다.


Palomo Wendel – [Morning Glow] (2019, HHV Records)

새해의 해돋이와 함께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하는 것보다, 연말의 일출을 보며 한 해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베를린 로컬 뮤지션 팔로모 웬델(Palomo Wendel)의 데뷔작은 한 해의 성찰을 도와줄 완벽한 다운 템포 사운드를 담고 있다. 새벽녘 바이브로 심박을 차분히 가라앉히다가, 섬세한 사운드 레이어링으로 청자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Sounds Good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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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황선웅
Photographer│유지민

*해당 에세이는 지난 VISLA 매거진 18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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