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솟은 남산의 정기가 내리 꽂히는 명동역 인근에 자리한 디제이들의 요람, 스튜디오 남산(Studio Namsan). 본명 이환, DJ FFAN을 필두로 서울의 유능한 디제이, 프로듀서가 튜터로서 향후 신(Scene)을 이끌어갈 디제이를 양성한다. 디제이 교육업으로 본격 확장한 지 약 1년을 맞이한 시점, 또한 유튜브 믹스셋 시리즈 ‘Live at Studio Namsan’의 촬영 장소로 익숙한 스튜디오를 노크하여 FFAN과 남산의 운영 방향에 관하여 짧은 대화를 나눴다.
남산을 직접 소개하자면?
디제이들의 좌충우돌 2022.
스튜디오 남산을 운영하게 된 계기와 배경이 궁금하다.
한평생 디제이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수많은 디제이 중 한 명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대안을 세상에 내놓아야 하고, 분명히 이뤄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아직도 밥집에선 말도 안 되는 음악이 나오고 디제이를 클럽 밖에선 볼 수 없다. 이 단순한 괴리를 해결할 브로커가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건 디제이를 세상에 소개하고, 세상을 디제이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스튜디오 남산을 개업하기 전부터 ‘믹스믹스TV(MIXMIX TV)’를 통해 남산 쉐퍼드(Namsan Shepherd)라는 믹스 콘텐츠의 호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남산에 각별한 기억을 가졌을 것이라 예상했다. 남산 인근 명동에 자리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13년 전 현재 믹스믹스의 스튜디오는 나의 스승과도 같은 디제이 스워브(DJ swerve) 형의 집이었다. 이후 집을 다 뜯어내고 스튜디오로 개조했지. 20대 초반부터 자주 왕래하던 곳이었고 남산의 작은 방에서 레슨을 시작하게 됐다.
스튜디오 남산은 ‘Live at Studio Namsan’ 시리즈의 촬영 장소기도 하다. 믹스셋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어떠한가?
상술했듯 나는 멋진 친구들을 세상에 소개하고 싶었다. 나는 영상보다는 그냥 믹스 듣는 걸 더 좋아하는데 어떤 새로운 유입을 위해 한발 내밀었다.
명동 주변 자주 방문하는 곳이 있나?
최근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멘텐과 한국 최고의 설렁탕 미성옥을 자주 방문한다. 또 근처에서 운동도 하고 있고.
FFAN의 하루가 궁금하다. 보통 어떤 하루를 보내는가?
아침에 일어나 5분 안에 커피를 마시고 담배 피운다. 기상 30분 이내에 나가서 운동한다. 요즘은 미팅이 많아서 오전에 미팅하는 날도 적지 않다. 주로 사운드시스템 관련 미팅이나 매장 음악 관련 미팅이 많다. 그리고 남산에는 1시에 출근한다. 레슨도 매우 많아서 일이 끝나면 10~12시 정도가 된다. 플레이리스트도 한 달에 150곡 정도는 골라야 하니 쉬는 시간, 운동할 때 퇴근할 때 정말 하루 종일 틈틈이 찾고 있다. 금요일 하루가 유일한 휴일인데 역시나 미팅이 많아서 미용실 가거나 운동만 해도 성공한 하루로 친다. 밤에는 반려견 랭보와 산책을 하고 여자친구와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고 디깅을 하고 책을 읽는다. 3~5시쯤 침대에 눕는다.
한편 스튜디오 남산은 서울 디제이의 요람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릴 적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FFAN의 강의 원칙과 커리큘럼을 소개해줄 수 있나?
글쎄 말로 설명하기 굉장히 어렵다. 음악을 가지고 누가 누구한테 뭐라 할 수 있겠나. 다만 나는 디테일 하게 상황을 주려고 한다. 지금 네가 어디에 있고 시간대는 언제고, 사람은 얼마나 있다든지 등 제한된 상황을 제시한다. 그렇게 되면 조언이 쉬워지고 질문이 생기고 답변이 생긴다. 많은 믹스를 추천하고 아티스트에 관해 설명한다. 핫한 신보도 좋지만, 클래식 트랙들을 조금 더 알려주고 두꺼운 뿌리에서 디깅을 시작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뻔한 요즘 나오는 그런 거 말고 어떤 내면의 스타일을 꺼낼 수 있도록 돕는다. 아주 드물게 못 찾는 사람들도 있다. 얼만큼 열심히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또 나의 경험을 떠들고 그들의 경험을 묻는다. 어렸을 적 나 역시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노력이 굉장히 소모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누적 코스트가 너무 적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몇 주 지나면 나는 다시 원점에 와있고 또 그만큼 노력해야 했고 틀지도 않을 판도 많이 샀던 것 같다. 남산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내가 경험했던 소모적인 것들을 겪는 일이 없도록, ‘레슨이 차라리 돈을 아끼는 거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려 노력한다.
디제이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과 역량이 있다면?
그런 건 없다. 누구나 좋은 디제이가 될 수 있다. 다만 본인 생각에 본인이 트는 음악이 가장 멋져야 하고, 동시에 다른 디제이의 음악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디제이가 된다.
남산 강사진의 소개를 부탁한다.
디구루(Dguru), Y.T.S.T, 디제이 와우(DJ Wow), 자넥스(Xanexx), 케비넷(Cabinett), 준철(Juncheol), 코스모(Cosmo) 그리고 나까지 총 8명의 튜터가 있다. 모두 스타일이 다르고 커리큘럼도 다르다. 나는 남산의 그리핀도르를 맡고 있다.
아버지가 한국 최초의 클럽 디제이인 이진이다. 그에게 받은 가르침은?
아버지는 뭔가를 알려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고 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작곡을 전공한 아버지는 수많은 악기들과 책과 음악 안에서 사는 분이다. 매일 화장실 문 열어놓고 변기에 앉아서 악보 보며 노래 부르는 그런 할아버지인데, 몇 년 전에는 내게 시창 청음 학원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나이 여든 드신 분이 무슨 취업을 하려고 하냐 물었지만, 아버지는 요즘 시창 청음이 잘 안돼서 학원에 다니고 싶으신 거라고 말씀하셨다. 여전히 가끔 집에 가면 본인이 만든 노래 들려주시고 좋다 하면 몇 시간이고 내 디제이 친구들처럼 그 이야기만 하신다. 나이도 많고 혼자 지내시는데, 음악 덕에 치매는 피하셨지 싶다. 오랜 시간 외로우셨을 텐데도 음악이 그 외로움의 독에 큰 구멍 하나 내어준 것 같다. 이게 내게는 삶의 큰 배움이었다.
먼저 원생 한 명이 디제이로 성장하기까지 보통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글쎄, 어디까지 묻냐가 중요하다.
스튜디오 남산을 거쳐간 디제이 중 신(Scene)에서 활동중인 디제이도 있는가?
처음 신에 머리를 내민 건 함께 덥플레이트를 하던 나원(Naone)와 몽키 비즈니스(Monkey Business)의 형민(Hyungmin)이라는 친구가 있었고, 이후에는 현재 남산의 튜터인 코스모와 준철 형 그리고 민규(Minkyu)와 줄라이(July), 마키(Maki)가 있었고 시티보이(Cityboy)형과 시나힐(Sinahill) 등 모두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최근 1주년을 맞이하여 클럽 모데시(MODECi)에서 1주년 파티를 열었는데 어땠나?
즐거웠다. 완전히 새로운 라인업이었지만 이전 비슷한 라인업에서 느꼈던 그런 밤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도에는 넓은 마음과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그날의 관객들은 모두 멋진 마인드였고 우리는 모두 멋진 시야와 마인드로 임했다. 사운드가 좋았으면 해서 믹서도 들고 가고 케이블도 모조리 바꿔 끼웠다. 멀티탭도 챙겨가고 70킬로가 넘는 트랜스도 들고 갔다. 캔들도 들고 갔고 음향을 위해 가습기도 들고 가려 했는데 직원 친구가 말려서 못 들고 갔다. 비록 가습기는 못 챙겼지만 사운드는 아주 좋았다.
스튜디오 남산을 운영한 지난 1년 동안 가장 보람찬 순간?
작년에 ‘How to Start DJ’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 너무 가깝지만 또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내 마음속 히어로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다. 다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응해줬는데 그때 내 안에서 어떤 열등감이 많이 녹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자신감이 서른셋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 인터뷰에 응한 디제이는 치다(Chida)도 있고 다니엘 왕(Daniel Wang)도 있고 에릭 던칸(Eric Duncan)도 있다. 내용 중에는 ‘파라다이스 개러지(Paradise Garage)’에서 음악 틀다가 장 미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를 만난 이야기도 있다.
디제이를 꿈꾸는 지금의 원생들과 곧 남산을 찾게될 원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경험하고 배워가는 과정이 예술이랍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일은 없어요. 언제고 도착한다면 분명 도태되었단 이야기고 손 놓았다는 거니 지금을 즐기고 기록하세요.
한국 디제이, 클럽 신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한 구역 안에 너무나 다양한 스타일의 클럽들. 한국이 제일 멋진 것 중 하나다. 새로 나타나는 디제이들의 어떤 뉴 스탠다드는 이전 세대의 스탠다드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레코드 숍들이 잘해줬고, 새로 생긴 멋진 클럽이 크게 한방 해줬다. 다만 아쉬운 건 멋진 사람들은 더 멋진 모습이 되었지만 이외의 것들은 멋진 유행을 탄 것뿐이다. 또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 돈을 쓰고 땀을 뿌린다. 내추럴 와인 바는 맥도날드보다 많아졌고, 디스코 디제이는 전멸했다. 2022년 로타리믹서가 제일 많은 나라가 됐고.
이런 식이라면 오징어 게임 이후 달고나 장사하는 거랑 뭐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다. 새로워진 게 아니고 새로운 힙스터가 나왔을 뿐이다. 한곳으로 몰리면 빠른 시간에 고갈된다. 박수 받아야 할 리더들의 에너지를 달고나 장사꾼들이 고갈시키는 셈이다. 유독 지독하게 한국에서만 반복되는 이 굴레를 빠른 시간 안에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향후 스튜디오 남산의 목표는?
Good music everywhere.
Editor│황선웅
Photographer│오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