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 배호의 애절한 탄식만이 남은, ‘비운의 동네’라는 오명은 이제 옛말이다. 서울의 중심이며 서울역과 용산역, 그리고 이태원과 마포를 사이에 둔 입지에 최근 몇 년간 삼각지에 터를 잡기 시작한 신생 업장이 꽤 많아졌다. 비록 삼각지 교차로는 허물어졌지만, 신생 업장들로 인하여 삼각지는 여전히 활발히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VISLA의 새로운 기획 ‘돌아가는 삼각지’는 삼각지에 터를 잡고 업장을 운영하는 이들을 조명하는 시리즈다. 그 첫 주자는 삼각지 2번 출구 바로 앞 지하에 자리한 클럽 쿤스타시(Kunstash). 성일, 영석, 기찬, 세연 총 네 명의 디렉터가 함께 운영 중으로 곧 1주년을 맞이할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네 명의 동업자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인 줄은 몰랐다. 네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기찬: 우린 모두 베를린에서 만났다. 각자 베를린에서 음악과 미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고 베를린이라는 지역적 교집합점으로 친해진 사이다. 그러던 중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터졌고, 그때 베를린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네 명이 모여서 베를린에 거주할 때 재밌다고 생각했던 포인트를 서울에서 연출하면 어떨까 하는 발상으로 쿤스타시를 시작하게 됐다.
영석: 내가 세연이 형을 런던에서 처음 만난 것이 시작인 것 같다. 9년 전쯤의 일이다. 그때 세연이 형과 베를린 클럽에 자주 갔는데, 그 기억이 너무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성일이 형, 기찬이 형을 친구들 소개로 만나게 되어 가게 브랜딩을 해놓은 상태에서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쿤스타시가 탄생하게 됐다.
베를린에서 영감을 얻은 그 포인트를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기찬: 베를린에 가보면 1층에는 카페나 혹은 맥주 하우스 같은 매장이 자신들의 근본을 보여주는 반면 막상 지하의 매장들은 자신들의 분위기를 잘 노출하지 않으려고 하더라. 그런 베를린 지하 매장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고 서울 지하에도 베를린 지하 매장과 같은 장소를 마련하여 전반적인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창고, 혹은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각자 어떤 일을 맡아서 업무를 진행하는지 소개를 부탁한다.
영석: 내가 비주얼과 디자인을 담당하고 성일이 형과 디제이 섭외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성일이 형은 디제잉과 디제이 섭외 등의 음악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세연이 형과 기찬이 형은 업장 내부의 아트 디렉팅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쿤스타시에서는 어떤 장르의 음악이 나오나?
성일: 기본적으로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을 베이스로 한다.
디제이는 어떻게 섭외하고 있나?
성일: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놀러 나가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던 디제이를 접하면 그들에게 따로 연락해 섭외하고 있다. 단, 앞서 말했듯 디제이 섭외는 나 혼자 진행하는 업무가 아니다. 영석과 함께 디제이들의 선곡을 들으며 논의하고 섭외한다. 또 해외 아티스트 쪽으로부터 제안을 받기도 한다. 그런 아티스트들의 경우는 멤버들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일정을 정한다.
인테리어, 비주얼에서 일관되게 초록색을 연출 중인데, 초록색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영석: 색에 관해 고민이 많았다. 주황, 레드 컬러를 생각했으나, 빨강 계열은 멈추라는 의미가 강한 것 같아 활용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적으로 초록색을 컬러를 정한 건 멈추지 말고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또 눈이 편해지는 컬러가 초록색인 이유도 있다.
기찬: 초록색의 이미지가 눈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도 있지만, 중독적인 이미지도 일부 갖고 있다. 쿤스타시는 초록색이 가진 힘 중에서도 중독적인 이미지를 지닐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초록색으로 설정하게 됐다.
영석: 단발적인 이벤트성 파티는 우리의 컬러를 빼고 그 파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플라이어를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파티 팀에 맞는 색깔을 플라이어에 넣는다거나 베뉴의 색을 바꾸는 등 베뉴보다 팀이 부각되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다.
쿤스타시 내부에 전시된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클럽에 그림을 전시하는 계기는 무엇인가?
세연: 쿤스타시는 단지 음악뿐만이 아니라 공간이 줄 수 있는 힘이나, 전시된 그림도 보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전반적인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창고이자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그림을 전시하게 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기찬: ‘쿤스타시’ 라는 의미 자체가 예술이라는 의미의 독일어 ‘Kunst’와 은닉하다라는 의미의 ‘Stash’가 합쳐진 합성어다. 그래서 쿤스타시는 예술을 은닉했다는 의미의 업장, 찾은 관객은 우리가 은닉한 예술을 관음하는 것이다.
세연이 아트 디렉터로, 또 작가로 활동 중인데, 여기 걸려있는 작품 모두 세연이 완성한 그림인가?
세연: 내 그림이 걸려있기도 하지만, 다른 작가의 그림도 있다. 분기별 로테이션으로 그림을 교체하여 전시한다. 갤러리에서 대여하기도 하고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전시할 때도 있다.
포장 박스 모양의 의자와 테이블이 인상 깊다. 이는 어떤 아이디어로 진행된 인테리어인가?
기찬: 테이블과 의자의 박스는 실제 해외로 전시를 나가거나, 혹은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작품을 옮기는 데 사용하는 박스다. 영석의 아이디어에서 인테리어로 활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박스를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니까. 또 장사하는 공간의 느낌보다는 작가의 작업실, 아지트에 놀러 온 느낌도 들 수 있게끔 하는 게 콘셉트였다.
영석: 오래 전 미술관에 갔을 때 아트 크레이트 박스에 작품이 놓인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작품보다 박스에 눈길이 가서 그 아이디어로 박스를 인테리어로 활용하게 되었다.
쿤스타시가 삼각지에 자리잡게 된 이유는?
기찬: 사실 이태원과 압구정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태원에 가면 우리와 친한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고 압구정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우리가 좋아하는 결이 압구정과 잘 맞을지도 의문이 들어서 멤버들과 찬반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찾아본 동네가 을지로였다. 우리가 추구하는 아지트 문화가 을지로와도 잘 맞을 것 같았지만 위치가 좀 아쉬웠다. 이태원의 상권과 마포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모두 찾아올 수 있을 동네를 조건으로 탐방했는데, 삼각지가 신선했다. 또 삼각지는 노후화된 느낌과 뭔가 바뀌려고 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느껴지는 동네다.
삼각지와 신용산 일대 새로운 공간이 열리며 삼각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쿤스타시도 새로운 삼각지 상권의 영향을 받은 편인가?
기찬: 초반에는 점심에 삼각지, 용리단길을 움직이는 인구가 많아서 그 영향으로 저녁에 쿤스타시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쿤스타시만 찾아오는 손님들도 제법 늘었다. 1년 사이에 단골이 꽤나 늘어난 것이다.
Editor │황선웅
Photographer | 전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