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ELL / SIBIL

9월의 마지막 날, 클럽 모데시(MODECi)의 5주년을 축하하는 첫 금요일. 이미 땀과 발자국, 열기가 가득한 플로어 앞에 화려한 패턴의 셔츠를 입은 마옐(Mayell)이 등장했다. 단전에서 올라오는 묘한 긴장감과 더불어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움을 향한 기대. 우리가 슬로베니아 신(Scene)을 떠올릴 때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처럼, 슬로베니아에서 온 디제이가 한국 땅을 밟았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여기, 한국에서 활동하는 독일 디제이 틸로 디트리히(Thilo Dietrich)의 초대로 오게 된 두 아티스트가 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슬로베니아 신의 선구자 마옐 그리고 베를린에서 커리어를 개척해나가는 시빌(Sibil)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류블랴나, 트빌리시, 베를린, 부다페스트를 넘나들며 사랑이 담긴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Mayell(이하 M): 마옐, 실명은 ‘Maj’으로 슬로베니아의 산과 같은 이름이다. 지금 28살이고 처음으로 레이빙을 한 게 13살이니까 말하자면 그때부터 음악 신에 있었다. 슬로베니아는 그때 하드 테크노 신밖에 없었다. 15살에 레코드를 모으기 시작하며 디제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결국 카지노에서 돈을 따서 운좋게 장비를 살 수 있었지.

Sibil(이하 S): 시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7살이다. 클래식과 재즈를 전공했지만 21살에 전자음악의 세계를 발견하게 됐다. 4년간 플레잉했지만 아직 배울 것이 더 많다. 현재는 기존의 커리어도 정리하고서 디제잉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사실 베를린의 ‘호페토세(Hoppetosse)’나 ‘클럽 데어 비져네어(Club der Visionäre, 이하 CDV)’에 가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놀랐다.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나?

M: 거리가 있다 보니 한국 신은 나에게 미스테리 그 자체였다. 친분이 깊은 틸로가 항상 한국 신이 얼마나 멋진지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초대를 받았을 때 그를 믿고 먼 길을 떠날 수 있었다. 틸로가 모든 것을 기획했다. 심지어 에이전시도 통하지 않고서.

S: 마옐은 본래 아시아 투어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을 관두고 갑자기 한국에 올 수 있게 되면서 일정을 변경했다. 우리는 유럽에서 여름 내내 주말마다, 거의 20주 연속으로 플레잉했다. 이처럼 미친 듯이 바쁜 여름을 보냈기에 휴식이 필요했다. 마침 둘다 처음 방문하게 된 한국이 좋은 기회였다.

마옐은 모데시, 볼레로, 그리고 다시 모데시에서 플레이했다. 한국 신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가?

M: 모데시는 정말 멋진 클럽이다. 나는 모데시처럼 관중과 밀착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너무 큰 클럽에서는 관중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느낌이 다르다. 2,000명이 가득 찬 클럽의 덱 위에서 첫 줄의 댄서와 10m 정도 떨어져서 플레잉하다 보면 혼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관중과 바이브가 연결되기 어렵다. 모데시는 플로어 위에서 춤추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모데시의 사운드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S: 나는 한국에 조금 늦게 도착했기에 첫 파티가 볼레로였다. 볼레로는 캬바레를 모티브로 한 다이닝 바라고 들었는데 거의 클럽 같았다. 마지막에는 마옐과 틸로의 음악에 모든 이가 일어나 춤을 추고 있었다. 친밀한 바이브로 함께한 즐거운 밤이었다. 모든 것이 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다음에는 모데시에서 아침의 루프탑 뷰를 보고 싶다.

고유한 바이브의 비결은 ‘ProTools’를 이용하여 에딧한 트랙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에딧하는지 알려 달라.

M: 에딧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영혼이랄까. 트랙을 수집하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 않나. 그럴 땐 나만의 바이브를 따라 에딧을 한다. 자르고, 이어붙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빼고, 여러 사운드를 집어넣고, 보컬을 넣고, 드럼을 넣고 등등. 그렇게 하다 보면 완전히 바뀐 나만의 트랙이 탄생한다. 나는 처음부터 에딧을 해왔다. 내 셋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비결이다.

볼레로에서는 주로 디지털 트랙 위주로 플레잉했는데 그때도 에딧한 트랙을 틀었나.

M: 물론이다. 굳이 바이닐이라는 형태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바이닐로 한정하면 풀이 좁아지니까. 그보다는 사운드를 따라가는 편이다. 사운드에 집착하는 괴짜(Sound Freak)랄까. 바이닐의 아날로그 사운드만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디지털이든 바이닐이든 결국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프랭키 너클즈(Frankie Knuckles)의 시대에는 카세트테이프를 에딧했다고 하지만 바이닐은 에딧이 거의 불가능하다. 해봤자 원곡처럼 좋게 들리지도 않을 테고.

한국에 오기 전에는 조지아 트빌리시(Tbilisi)에서 B2B를 했다. 트빌리시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가?

S: 사실 트빌리시는 나에게 특별한 곳이다. 록다운 기간 동안 트빌리시에 갇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부다페스트에서 살고 있던 나는 여행차 트빌리시를 방문했다.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새벽 4시였다. 그런데 자정부터 하늘길이 막혔다. 결국 옷 몇 벌이 담긴 백팩만 가지고 3개월을 지냈지. 하지만 귀중한 시간이었다. 트빌리시의 레코드숍 ‘Small Moves’를 운영하는 이카(Ika Berdzenishvli)와 알렉스(Alex Usherenko)도 만나고. 거기에서 베를린으로 이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찌 보면 디제이 커리어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도시다.

M: 트빌리시는 놀라운 신이다. 하우스보다는 테크노에 훨씬 가깝지만 아직까지 투어리즘에 물들지 않았고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 해서 새로운 베뉴가 생겨나고 있다. 트빌리시는 작은 클럽조차도 제대로 된 사운드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클럽의 기본은 역시 사운드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마옐의 고향인 슬로베니아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신은 어떠한가? 생동감 넘치는 지역으로 보인다.

M: 사운드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게 되는데, 슬로베니아의 자랑으로 보리스 사운드시스템(Boris Soundsystem)이 있다. 내가 이렇게 사운드에 까다로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형편없는 사운드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음악을 틀더라도 혼란스럽기만 할 뿐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다. 보리스 사운드시스템은 최근에 베를린의 선상 클럽 호페토세에도 설치되었으니 한번 경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S: 보리스 사운드시스템을 한번 들어보면 높은 기준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6월에 프랑스의 한 페스티벌에서 경험해 본 이후로는 나도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하하.

M: 10년 전을 생각해보면 슬로베니아 신은 제로에서 시작했다. 우리 장르는 슬로베니아에서 신이라고 부를 만한 기반이 없었다. 지금처럼 몇 백 명의 사람들이 꾸준히 파티에 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전까지는 파티를 열수록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일 정도였으니까.

슬로베니아 신은 규모는 작아도 ‘Simm.’, ‘Nikolaj’ 등 실력있는 디제이와 프로듀서가 많다. 최근에 런던의 레이블 ‘Cartulis’에서 음반을 발매한 ‘Eliaz’가 강력한 클럽 툴 트랙들을 만든다. 슬로베니안 레이블 중에는 테크노와 일렉트로를 다루는 ‘PHI’, 아날로그 머신으로 앰비언트와 덥 테크노를 만드는 ‘Chilli Space’, 그리고 훌륭한 음악을 만들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Rite of Passage’를 추천하고 싶다.

클럽은 ‘Klub K4’가 현재로서는 우리 장르의 유일한 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ZOO’에서 레지던트 디제이로 활동하며 부킹뿐만 아니라 사운드시스템을 총괄했다. 150여 명의 아담한 규모에 보리스의 커스텀 사운드시스템과 함께 미친 듯한 파티를 여는 멋진 클럽이었지만 3년 전쯤 문을 닫았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클럽이 아닌 곳에서 파티를 열고, 사실 그게 슬로베니아 신의 포인트다. 웨어하우스, 숲속 등 형식적인 베뉴에서 벗어난 파티 말이다. 숲속으로 보리스 사운드시스템을 들고 가서 3일 내내 레이브를 한다. 슬로베니아는 특히 여름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진정한 신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때가 바로 방문해야 하는 때다. ‘Butik’과 ‘od:vod’ 역시 모두 자연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이다.

파티 레이블이자 레코드 레이블인 ‘LuckIsOn’은 미스테리한 느낌이다. 2017년에 ‘Evan Baggs’와 첫 파티를 열었고 그 이후로 ‘Hoppetosse’, ‘CDV’에서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고 있다. 누구와 어떻게 레이블을 시작하게 되었나?

M: 나의 친구들이자 실력있는 디제이, 이안 에프(Ian F.), 팀 컨(Tim Kern), 체나(Tzena), 그리고 발렌티노 칸지아니(Valentino Kanzyani)와 함께 팀을 꾸렸다. 특히 발렌티노가 처음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90년대 후반부터 활동했던,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디제이다. 처음에는 하드 테크노 디제이였지만 조금 더 딥한 스타일로 장르를 바꿀 무렵 우리와 만나게 됐다. 현재는 나, 팀, 체나 이렇게 셋이 ‘LuckIsOn’의 프론트맨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전에도 ‘Lose Control’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파티를 열다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즉흥적으로 ‘LuckIsOn’을 만들게 되었다. 2017년 10월, 이반 백스(Evan Baggs)와 함께한 파티가 ‘LuckIsOn’의 이름으로 연 공식적인 첫 파티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반은 심지어 그 파티에 오지도 못했다. 그는 그전에 모스크바에서 플레이했는데 여권에 문제가 생겼는지 러시아 공항을 통과하지 못했고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하하.

“After years of dedicated watering, fertilizing and grooming, we’ve come to the conclusion that our ideas are ripe enough for us to share them with you.”

“몇 년 동안 물을 주고 가꾼 결과, 드디어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아이디어가 무르익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LuckIsOn’ 오프닝 파티 소개글 중

M: 미스테리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사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프로모션에 별로 집중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서 자랐으니까. 인스타그램에 영상 클립을 올리기보다는 베뉴에서 잘 틀면 공연을 따내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개개인보다는 레이블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이 마음 편하다. 그래서 바이닐을 발매할 때에도 처음에는 프로듀서의 이름을 올리지 않고 [LuckIsOn001]처럼 번호만 붙였다. 때로는 주어진 정보가 선입견을 줄 수 있으니. 디깅을 하다 보면 아티스트의 이름을 보게 되고, 그러면 이 음악은 어떨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게 되지 않나? 하지만 프로듀서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으면 리스너가 그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다.

‘LuckIsOn’의 파티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M: 어느 파티가 최고였다고 꼽기가 어렵군. 파티의 에피소드라면 밤을 새워서 내일까지도 말해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파티가 새로운 형태의 특별한 감정을 안겨주어서 하나만을 말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항상 끝내주는 파티를 여니까 슬로베니아에 와서 직접 경험해 본다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 말로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베를린에서도 보통 1년에 호페토세에서 1~2번, CDV에서는 2~3번 정도의 파티를 연다.

2020년부터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어떻게 지냈나?

M: 감사하게도 최악의 시기는 아니었다. 나는 류블랴나에서 지낼 집이 있고, 슬로베니아의 물가는 그리 비싸지 않다. 국경이 열린 나라에서 몇 개의 작은 공연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싱에 집중했다. 슬로베니아도 록다운에 들어갔지만 우리는 지하실에 보리스 사운드시스템을 놓고서 친구들과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열기도 했다. 하하.

S: 충동적으로 베를린으로 이사했다. 트빌리시의 3개월 록다운 뒤에 가족 일로 프랑스에 다녀왔더니 이번엔 내가 살고 있던 부다페스트의 국경이 닫혀서 헝가리 시민이 아니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비행기를 물색했고, 그게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여름 옷가지만 싸들고 어둡고 비 내리는 베를린에 도착한 것이다. 두 달 동안 집을 찾기 위해 다섯 번을 이사했지만 모든 것이 잘 풀렸다.

디제이 및 프로듀서인 알렉 팔코너(Alec Falconer), 키조쿠(Kizoku)와 친해져서 교외에 있는 그들의 스튜디오에서 크게 음악을 틀고 놀 수 있었다. 당시 음악을 크게 틀면 경찰이 와서 3명 이상 모여있지 않은지 확인하곤 했는데, 그 스튜디오는 워낙 외곽에 있는지라 경찰도 오지 않았다. 매주 파티를 열고 서로 플레이하며 배울 수 있는 최고의 록다운 기간이었다.

그게 내가 베를린에서 디제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프로모터들이 파티에 놀러와서 내 플레잉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Low Money Music Love’의 모제스(Moses Mawila) 덕이 크다. 그는 베를린에 새로 온 디제이들, 특히 여성 디제이들을 많이 밀어준다. “이번 여름에 기대해”라는 그의 말대로 바쁜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CDV에서의 첫 공연을 잡아주기도 했다. 나를 믿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팬데믹 전에 호페토세나 CDV는 주로 잘 알려진 디제이들만 플레이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로 해외 디제이 섭외가 어려워지자 로컬 디제이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렸다. 전화위복이었지.

디제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특히 마옐은 카지노에서 돈을 따서 첫 장비를 샀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M: 15살 때 카지노에서 돈을 따서 첫 장비와 레코드를 샀다. 당시 카지노 중독자 친구가 있어서 나는 사촌의 신분증을 빌려 카지노에 가게 됐다. 그날이 사촌의 생일이라 카지노 측에서 10유로를 주었다. 그게 20유로가 되고, 40유로가 되었다. 몇 십 분만에 돈은 100유로로 불어났고 계속해서 운이 따랐다. 결국 1,800유로 정도를 순식간에 따버렸다.

친구가 한 판만 더 하자고 졸라대서 그에게 돈을 조금 떼어주고 나는 카지노를 빠져나왔다. 그 길로 2대의 테크닉스 턴테이블, 헤드쉘, 카트리지와 믹서를 샀지. 아직도 나의 첫 믹서가 기억난다. 알렌 앤 히스(Allen & Heath)의 존92(Xone:92)였다.

S: 베를린에 처음 방문했을 때 클럽 트레조어(Tresor)에 놀러갔다. 어느 디제이와 친해져서 장비로 가득 찬 그의 스튜디오에 가게 됐는데 그게 전자음악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피아노만을 연주했다. 여러 모듈러 장비와 전선이 만들어내는 전자음에 흠뻑 빠졌다. 그가 버리려고 했던 것이라며 트랙터(Traktor) 하나를 주었다. 수하물 규정이 까다로운 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로도 문제 없을 만큼 작은 컨트롤러였다. 부다페스트로 돌아와서 집에서 가지고 놀곤 했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디제잉 하다가 얼떨결에 당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클럽 ‘Corvin’에서 음악을 틀게 되었다. 여기도 망할 정부의 규제로 몇 년 전 닫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곧바로 클럽이라는 환경에서 플레잉하는 걸 배우게 되었다. 관중과 호흡을 맞춰가며 트는 방법 말이다.

2018년부터 진지하게 음악을 디깅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다페스트-베를린 왕복 비행기표가 인터넷 배송비보다 저렴했다. 그래서 베를린으로 가서 디깅하고, 파티하고, 잠은 비행기에서 자고, 학교로 돌아오곤 했다. 결국 베를린으로 이사한 뒤로부터 나의 스타일을 찾으며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된 것 같다. 베를린에서는 레코드숍도, 영감을 주는 사람도, 배울 것도 많으니까.

그렇다면 시빌이 디제잉을 시작할 때 마옐이 영향을 준 부분이 있는가.

S: 사실 우리는 내가 디제이 커리어를 시작한 뒤에 만났다. 이미 신에서 활동하고 있던 마옐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나의 팟캐스트에 댓글을 달았다. 그의 사운드클라우드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오로지 내 셋에만 댓글을 달았더라.

M: 그동안 내 셋 외에는 어떤 것에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그런데 시빌의 선다우너(Sundowner) 팟캐스트를 듣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찾아왔던 셋임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좋은 팟캐스트를 찾기 어려워 잘 듣지 않았는데 우연히 찾아낸 셋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시빌이 어디에서 활동하는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다가 같은 페스티벌에 부킹되어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S: 그 페스티벌에서 마옐이 플레잉할 때가 생각난다. 그의 플레이를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나를 포함한 크라우드는 마치 야생동물처럼 플로어 위를 구르는 등 분위기가 엄청났다. 마옐은 6시간이 넘는 롱 셋을 들려주었고 난 마지막 트랙에 도달해서도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심지어 그때는 디제이 덱에 있는 그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마지막 날 내가 플레잉할 때 그가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M: “안녕, 나 그때 너 팟캐스트에 댓글 달았던 그 사람이야”라고 말을 텄지. 하하.

S: 우리는 음악적으로도, 음악 외적으로도 소울메이트 같다고 느낀다. 강렬한 감정이다. 음악이 영혼을 이어준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마옐의 아버지는 뮤지션이었고, 시빌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 디제이로서 음악적 뿌리의 근원은?

M: 아버지는 슬로베니아에서 유명한 락앤롤 밴드에 10년 넘게 몸담으셨다. 밴드는 해체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밴드나 영화, 커머셜 음악 등을 만드신다. 그러니 말 그대로 내 피에 음악이 흐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클래식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나를 여러 콘서트에 데려가시곤 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많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깨달았지.

유년 시절을 떠올려 보면 항상 거실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팻 마티노(Pat Martino), 스팅(Sting)부터 브라질리언 삼바, 보사노바, 재즈⋯. 그 속에서 내 취향을 찾기 시작했다. 영혼을 열어주는 음악,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음악을 찾았다. 전자음악만이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장르는 아니다. 나의 취향은 수많은 장르가 뒤섞여 있다.

S: 다섯 살 때부터 클래식을 배웠고 덕분에 화성학을 익혔다. 나의 스타일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오는 것 같다. 처음 전자음악을 접했을 때에는 자유로운 소리에 놀랐다. 나 역시도 덥, 일렉트로, 테크노, 디스코, 하우스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고 또 플레이하지만 주로 멜로디가 있는 음악에 끌린다. 어떤 장르를 틀든지 나만의 사운드를 가지고 싶다. 어떤 디제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이 있어 셋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나.

마옐은 영감을 받은 디제이로 프란체스코 델 가르다(Francesco Del Garda)를 꼽았다. 그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2018년 호페토세에서 함께 플레이하기도 했는데.

M: 프란체스코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 10년 전쯤일까. 슬로베니아로 부킹해서 애프터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이안이 이탈리아 공연에서 그를 만나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그때가 사실 프란체스코의 첫 이탈리아 밖 해외 공연이었다고. 그날 그는 미친 셋을 들려줬고 나는 “이 개쩌는 음악은 뭐야?” 싶었다. 엄청난 밤이었지.

나는 당시 하우지한 사운드를 디깅하고 있었는데, 케리 챈들러(Kerri Chandler) 풍의 클래식 하우스는 아니고, 조금 더 딥한 바이브의 하우스. 그리고 프란체스코는 이 바이브에서 정점을 찍은 디제이다. 그뒤로 우리는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고 여러 번 함께 덱에 섰다. 내 음악적 뿌리가 부모님이라면 나를 이 길로 인도한 것은 프란체스코라고 할 수 있다.

10월 8일에 프랑크푸르트의 ‘Traffic Records’에서 마옐의 [Zreducirirka]가 발매되었다. EP를 소개해줄 수 있나. 또한 트랙을 만들 때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M: 슬로베니아어로 만든 언어유희라서 뜻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Completely smashed’, ‘Completely fucked up’ 정도일까.

전에도 ‘LuckIsOn’ 크루와 함께 프로듀싱을 하기는 했지만 [Zreducirirka]는 공식적으로 나의 첫 솔로 EP다. 트래픽 레코드에서 내 트랙을 듣고 너무나 맘에 든다며 발매를 요청했다. 말했듯이 나는 사운드 프릭으로서 완벽한 사운드를 추구하는데, 만약에 내 귀에 좋게 들리지 않는다면 발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냐고?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일단 좋은 음악을 깔아 놓는다. 재즈, 보사노바, 하우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바이브에 빠져들다 보면 내 안에서 음악적 영감이 솟아난다. 그걸 잘 녹여내면 자연스레 트랙이 나온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M: 베를린으로 돌아간다. 12월에는 미국에서 공연하며 한 해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앞으로 ‘LuckIsOn’에서 발매될 트랙도 있고 예닐곱 군데의 레이블에서 내 트랙을 발매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겨울에는 슬로베니아의 스튜디오에서 트랙을 만들어야지. 2023년 4월이나 5월쯤에는 다시 한번 아시아로 돌아오지 않을까.

S: 이제 또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지난 해에는 끊임없이 부킹이 들어와 디제이 커리어에 더 시간을 쏟기 위해 이전에 하던 일을 관둘 정도였으니. 나조차도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지금은 프로듀싱을 배우는 터라 마옐과 함께 슬로베니아의 스튜디오에서 겨울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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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진영
Photographer │강지훈

이미지 출처 │ LuckIsOn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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