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otr Pavlensky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개의 예술 작품은 대중의 감탄과 경외심을 자양분 삼아 그 생명을 이어간다. 하지만 러시아 출신의 아티스트 피요트르 파블렌스키(Pyotr Pavlensky)가 구축해 온 예술 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상식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그가 양산해내는 이미지와 작품을 마주하는 일은 꽤나 고통스럽다. 두 입술을 단단히 꿰맨 이미지를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면 피요트르의 의도가 제법 잘 들어맞았다고 하겠다. 단순히 자신의 고통을 전하는 것이 아닌 ‘고통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가 해온 작업이니 말이다.

고통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피요트르는 예술 이벤트를 완성하기 위해 한 가지 독특한 방식을 취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술을 위해 권력이라는 톱니바퀴를 작동시키는 ‘주체-객체 예술(Subject-Object Art)’이다. 그가 모스크바 붉은 광장 돌바닥에 자신의 음낭을 못으로 박아 고정시켰을 때, 세르브스키 옥상에 앉아 자신의 귓불을 잘랐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회 정문 앞에서 철조망 안으로 들어갔을 때, 러시아 연방보안국 건물에 불을 놓았을 때 모두 경찰이 개입해 그를 행동을 저지해야만 했고, 그때야 비로소 그의 이벤트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이에 그치지 않고 기나긴 재판과 투옥 등 권력과 질긴 상관관계를 맺으며 완성된다. 지난 2020년 파리 시장 후보였던 벤자민 그리보(Benjamin Griveaux)의 문란한 성생활을 고발하며 프랑스 정치판에 뜨거운 이슈를 낳았던 이벤트 ‘포르노폴리틱스(Pornopolitics)’로 최근까지 재판을 이어가고 있는 그와 ‘주체-객체 예술’ 그리고 고통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단에서 함께해 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 부탁한다.

‘주체-객체 예술’을 실천하고 있는 아티스트 피요트르 파블렌스키다. 주체-객체 예술이란 권력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의 한 형태다. 여기서 권력은 통제와 관리를 의미하는데, 이 두 가지를 잃은 권력은 더는 권력이 아니게 된다. 또한 권력이 존재하려면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인데, 이 두 구성 요소를 ‘권력의 주체(Subject of power)’와 ‘종속의 대상(Object of subordination)’이라고 부른다.

모든 권력 주체는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행사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더는 권력의 주체가 아니게 되고, 그들이 대표하는 권력은 더는 실재적이지 않게 되니까. 권력의 주체가 끊임없이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이 필연성이야말로 주체-객체 예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본질적으로 정부 기관 산하의 공무원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작가의 생각을 실현하도록 하는 거다. 쉽게 말해 예술을 위해 권력을 작동시키는 거지. 권력의 주체는 예술의 대상이 되는 거고, 그들을 대상으로 만드는 게 그들이 가진 권위인 거다.

현재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나.

현재 파리에서 올가을 출판될 디지털 책을 준비하고 있다. 종이 버전은 내년 1~2월쯤 준비될 것 같다. 네 명의 미술사학자와 한 명의 갤러리스트가 내 작품 ‘포르노폴리틱스’를 변호하기 위해 쓴 텍스트를 모은 작품이다. 정말 흥미롭고 가치가 있는 텍스트들로 채워졌다.

지난 6월 28일, 파리 시장 후보의 성생활을 고발했던 당신의 작품 ‘포르노폴리틱스’와 관련해 파리 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현재 재판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사실 재판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주체-객체 예술의 논리 외에 내가 작업할 때 가장 좋아하는 움직임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을 변호인으로 초대해 내 작품의 의미론적 내용을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품 ‘자유(Freedom)’와 관련해서는 세 명의 여성 성노동자가 법정에서 창작의 자유와 예술의 경계를 이야기했으며, ‘위협(Threat)’에 관한 재판에서는 소련 수용소에서 수십 년을 복무한 소련 반체제 인사들이 증인으로 초청되어 중앙 FSB 건물(이전 KGB*)이 문화 기념물인지에 관해 논의했다. 또한 ‘조명(Lighting)’에 관해서는 한 맹인이 미술에서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포르노폴리틱스’ 재판에서는 세 명의 배우가 몰리에르(Moliere)의 ‘타르튀프(Tartuffe)’ 일부를 연기하기도 했다.

‘포르노폴리틱스’를 세상에 공개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 달라.

2014년에 이미 포르노에 관한 작품을 계획하고 있었다. 당시 여성과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에 대해 실험하고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한동안은 두 명의 여성과 동거했다. 동시에, 그들과 다큐멘터리용 포르노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게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섹스를 생각했다. 다큐멘터리, 개인의 삶, 여성과는 무관하게 주체-객체 예술과 관련된 섹스를 고민해 봤는데, 당시에는 내 아이디어를 실현할 적절한 형태를 찾지 못했다. 친구 역시 이미 모든 종류의 포르노가 존재하고, 인간의 판타지를 표현하는 분야는 이미 포화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6년 간의 고심 끝에 마침내 적절한 형태를 찾아냈지. 그게 ‘포르노폴리틱스’다. 이 이벤트를 통해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을 끌어들이는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것. 동물, 식물, 시체에 관한 수만 가지의 포르노가 존재했지만 정부 권력을 건드리는 사이트는 그때까지 단 한 곳도 없었다. 예술가는 세상의 눈이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내야 하는데, 포르노그라피는 전적으로 시각적인 영역에 속한다. 운 좋게 파리 시장 후보였던 벤자민의 포르노 몇 편을 구할 수 있었고, 그가 이 포르노의 배우이자 카메라맨이자 감독이었지.

이 이벤트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미학적인 부분에서 ‘고급과 저급 스타일의 병치’라는 매우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고급 스타일을 기대하는 정치인의 초상화에 저급한 남성 성기를 추가한 것과 같다. 지금은 18세기가 아니라 21세기다. 그렇기에 권력자들의 초상화는 더 이상 유화 물감이 아닌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다. ‘포르노폴리틱스’는 내가 ‘예술의 마법’이라 부르는 행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벤트이며, 고급과 저속의 결합을 통해 수많은 프랑스 정치인들의 인간적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 이벤트로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물질적 공공의 공간이 아닌 디지털 공간에서 실현했다는 점이다. 두 공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나. 내 예술적 실천과 논리를 두 공간 사이에서 전환시킨 것은 분명 놀라운 성취다. ‘포르노폴리틱스’를 행하는 것은 매우 기뻤지만 동시에 그 결과를 감당하는 건 꽤 고달팠다.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마치 배고픈 개처럼 송곳니로 날 물어뜯었거든.

입을 꿰맸던 작품 ‘봉합(The Seam)’으로 본격적인 정치적 이벤트를 시작했다. 푸시 라이엇(Pussy Riot)이 공연 중 제지당한 것에 메시지를 표하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는데, 당시 어떤 감정이었나.

2012년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티글리츠 스테이트 아카데미(Stieglitz State Academy)와 프로-아르테 현대미술 학교(Pro-Arte School of Contemporary Art)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었다. 순수예술을 공부한 지 딱 10년째 되는 해였지. 그간 공부하며 느낀 게 있다면, 어느 교육 기관도 학생들이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있지 않다는 거다. 그들은 단지 우리를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훈련시켰을 뿐이다. 학생들은 주립 아카데미에서 주립 기관이나 교회 등에 속한 부유한 이들의 개인 인테리어를 위해 훈련받았다. 한편, 현대 미술 학교에서는 다양한 재단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맞춰졌다. 나는 단순 스태프가 아닌 독립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친구들이 없었던 것 같다.

국가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는 예술가들의 작품, 퍼포먼스의 경우 푸시 라이엇의 경우처럼 아티스트가 기소되거나 투옥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의 내 첫 작품 ‘봉합’을 촉발했다. 당시 모든 예술가들이 직면해야 했던 공포를 예술적 수단을 통해 표현해야만 했는데,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작품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의 공포 말이다. 말하고 싶은 걸 말하지 못하고 외치고 싶은 걸 외치지 못하는 상황. 입이 꿰매어진 삶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나.

당시 고려했던 다른 반항의 표출 방법도 있었는지. 

‘저항’에 관한 건 아니었다. 그게 고려 대상도 아니었고. ‘봉합’을 준비하면서는 단순히 어떤 이미지를 생성하려고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은유적인 것이었지만,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봉합’의 가치는 무엇보다 예술가로서 전통적인 작품 전시 공간, 이를 테면 갤러리나 박물관 등의 공공 기관과 큐레이터, 관리자의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데에 있다. 이게 내가 진정한 독립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매우 중요한 단계였다고 하겠다.

이외에도 음낭을 길바닥에 못으로 박거나, 철조망 안에 맨살로 누워 있거나, 귓불을 자르는 등 자신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퍼포먼스로 주목을 끌어왔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인가.

얘기한 모든 퍼포먼스에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단순히 피부가 찢어지는 정도였을 뿐이다. 이 정도로 심각한 통증이 유발되지는 않는다. 만약 더 큰 고통을 경험하고 싶다면 뼈를 부러뜨리거나 힘줄 또는 신경을 손상시켜야겠지. 그건 분명히 더 큰 고통을 유발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종류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될지는 의문이다. 예술가가 스스로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그게 예술 작품이 될 거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더욱이 그런 접근이 시작 예술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은 겪을 수 없다. 내 작품의 목적이 고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다. 내 목표는 단지 고통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다. 즉, 관객이 작품을 관찰할 때 느끼는 고통 말이다. 실제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며 꽤 심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지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고통을 느낀다는 말이다. 아티스트는 이미지를 통해 그 스스로 경험한 것보다 수백에서 수천 배 더 강한 감정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이것이 이미지와 미술이 가진 힘이다.

퍼포먼스를 행할 때, 경찰이 와서 본인을 제지하기 전까지 보통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우선 공공장소에서 경찰을 비롯한 여느 권력이 참여하는 행위는 ‘퍼포먼스’가 아닌 ‘이벤트’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여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퍼포먼스는 현대적이며 일종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퍼포먼스에는 준비된 내, 외부 공간과 초대된 관객이 존재하며, 이들을 위한 특정 장면이 행해진다. 부서진 피아노와 피로 둔갑한 케첩 등의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고 관객은 자신이 보는 것에 감정적으로 관여하고 심지어 퍼포먼스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사전 합의로 이루어지며 미리 공지된 시간에 쇼가 끝나고 모두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반면 이벤트의 경우, 그 결과와 규모 면에서 다른 예술 양식과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아티스트는 혼자서 이벤트를 만들 수 없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주제넘은 일이지. 단지 상황을 만들 수 있을 뿐, 그 결과에 의해 이벤트가 도출되는 거다. 모든 상황에는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의 크기가 결과를 결정하는데, 잠재력에 관해서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도, 측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아티스트는 오직 직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 직관이 맞다면 의미 있는 이벤트가 만들어지는 거고, 직관을 속인다면 그 정도에 따라 의미 없는 이벤트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의미 있는 이벤트는 예술과와 관객의 삶 모두에 큰 격변을 수반한다. 심지어는 이벤트에 꽤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의 삶까지도. 이벤트가 있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까지의 모든 내 이벤트는 모두 다르게 흘러갔다. 어떤 때는 20초 만에 체포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몇 시간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행사가 시작될 때쯤이면 이미 내게 달려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 또한 내 이벤트의 관중이 된다. 물론, 반 고흐(Van Gogh)처럼 내 귀 일부를 떼어냈던 ‘Segregation’ 이벤트 같이 추운 겨울날 옷을 입지 않고 밖에 장시간 있어야 한다면 더욱 힘들긴 하다. 하지만 나 혼자서 이벤트를 완료할 수 없다. 결국 당국의 개입이 있어야 하고, 그게 이벤트의 전환점이 된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바쁘게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작품을 통해 계속해서 러시아 정부의 감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왔다. 지금은 러시아에 살고 있지 않지만, 본인이 작품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그리고 지금의 러시아 상황을 알고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러시아에는 당국에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으로 방해가 되는 예술가, 작가 및 지식인을 감시하는 특수 경찰과 FSB 기관이 있다. 물론 프랑스에도 비슷한 기관이 존재하지만, 러시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러시아 기관들은 이를 숨기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시 대상은 큰 심리적 압박을 받는데, 이때 당황하거나, 실수하거나, 심지어는 겁을 먹고 러시아를 떠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나를 수사하던 담당관은 내가 핸드폰으로 친구, 가족과 나눈 대화 내용을 모두 알고 있더라. 또 야외 감시를 당할 수도 있는데, 집 밖에 사복 차림의 남성 여럿이 눈에 띄지 않게 집 창문 앞을 배회하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2016년까지의 이야기이고, 그 이후에는 러시아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모든 게 은밀하다. 기소된 후에야 내가 도청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심지어는 미디어에 녹취록이 갑자기 공개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프랑스로 망명하고 나서부터는 작품 활동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주제-객체 예술을 계속해왔을 뿐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불행히도 그게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모두에서 많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다. 오늘날의 예술가는 보통 당국 혹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이익에 봉사해야 하지 않나. 그게 의무가 된 것 같다. 그게 아티스트의 국가가 됐든, 다른 국가가 됐건.

당국은 종종 다양한 정당, 비영리 단체, 활동가 협회 등이 될 수 있는데, 이들은 일련의 이데올로기적 도그마를 가진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 도그마에 참여하도록 강요한다. 그렇게 겁에 질린 예술가들이 사방에서 자신 삶의 목표가 여성의 자유, 종교의 자유, 성 소수자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정작 예술의 자유를 위해서는 누가 싸우고 있나, 예술가들을 제외하면 싸울 사람이 있기라도 한가? 예술의 자유는 예술 자체의 존재와 발전의 근간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발전의 기초이기도 하다. 창의적 사고야말로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 아닌가. 정치, 경제, 군사 문제에 관해서는 사실 인관과 곤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개미를 봐라.

프랑스에서의 활동에 제약이 있는 편인가?

그렇다. 벌써 프랑스에 온 지도 6년이 넘었지만 법원의 허가 없이 자유롭게 출국할 수 있던 기간은 1년 3개월에 불과했다. 첫 5개월은 망명 절차를 밟는라 움직일 수 없었고, 그 이후에는 적절한 서류가 없어서, 그리고 2017년 10월에는 투옥되어 이후 활동이 제한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경찰서로 출석해야 했고, 법원의 허가 없이 여행도 할 수 없었다. ‘조명’ 이벤트를 시도한 2019년 1월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됐다. 재판이 끝나고 2020년 1월까지는 자유의 몸이었지만, 이후 다시 체포되어 법정에 섰다. 이후 같은 패턴을 따랐지. 수감된 이후에는 내 전시회 오프닝에 가기 위해 잠시 나가는 것을 요청했지만 판사는 항상 법정 회의를 여러 이를 거부할 이유를 찾더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내 마지막 전시회의 경우, 전시회 개막일과 다음날 재심리 날짜가 잡혔다. 재심리에서는 보통 내가 전시회에 가는 것을 허용하지만, 이 ‘Yes’는 항상 ‘No’를 뜻한다.

본인의 이벤트로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 조금 설명해 달라.

‘위협’ 이후 러시아에서 7개월, ‘조명’ 이후 프랑스에서 11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 시간에 대해서는 따로 인터뷰해야 할 만큼 이야기가 많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이동의 자유가 수감자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비록 짧게 에둘러 설명하지만 정말 심각하게 제한된 상황이다. 하지만 단어 그대로의 그 ‘감옥’이 우리가 매일매일을 살고 있는 일상의 감옥보다 더 무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본인이 수감 생활을 하는 만큼 퍼포먼스를 펼치지 못하지 않나. 계속해서 막대한 벌금도 내야 하는도 불구하고 계속 위험한 퍼포먼스를 이어나가는 이유가 있다면? 반정부적인 성향을 줄이고 좀 더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를 보일 생각도 해봤는지.

내 작품은 반정부적이지 않다. 오히려 정부와 그 권력 기관을 필요로 한다. 주체-객체 예술의 존재가 그들에 달려있기 때문에. 난 정부에 반대하는 일을 한 바가 없다. 단지 권력이 예술을 위해 작동하도록 한 것뿐이지. 다만, 나는 내 작품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꽤 귀찮은 존재일 거다.

최근 많은 환경 단체가 최근 유명 예술품을 훼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하다는 의견이, 일각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당신의 의견은 어떠한가.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그들의 권리다.

Ph. The New York Times Magazine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전체주의식’ 사고다. 앞으로 더 본격적인 전체주의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제거(Cancellation)’ 문화가 그 대표적 예다.

제거. 즉,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 이는 어떤 문제에 관해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함을 거부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대화나 논쟁도 거부한다. ‘일치’와 ‘불일치’, 단순히 이분법적인 두 가지 기준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거지. 만약, 대게의 의견과 ‘불일치’한다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야 하는 게 요즘 시대다. 수도사 사보나롤라가(Savonarola)가 허영으로 간주되던 수많은 작품을 거대한 모닥불에 던져 넣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통용되는 도덕에 부합하지 않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박물관에서 제거하거나, 문화에 대한 기여도가 너무 막대해 결코 지울 수 없다면, 그들의 작품 옆에 도덕에서 벗어난 모든 일을 나열해 장식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거’의 진짜 문제는 특정 국가에 만연한 이국적인 전체주의가 아니라는 거다. 우리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전체주의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테라리움 밖에서 뱀이 다른 생물을 사냥하는 걸 지켜보는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현대 사회를 한 문장 혹은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전 세계가 동일한 사회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난 6년간 내가 지내온 프랑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프랑스 사회는 마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성(The Castle)”과 같다.

당신이 지향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주체-객체 예술에 대한 경계와 형식을 확고히 하는 것.

앞으로의 목표는?

19살에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난 20년 동안 이 결정에 충실했고, 어떤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나아갈 거다.

Pyotr Pavlensky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Pyotr Pavlensky


Editor | 장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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