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오카와라 켄타로(Kentaro Okawara)는 일상을 비롯한 주변의 작은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굳이 언어가 아니더라도 그림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과 세상으로 통한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인 아내와 함께 서울에 정착한 켄타로가 11월 25일부터 12월 20일까지 서울 한남동 갤러리, 워킹 위드 프렌드(Working With Friend)에서 전시 ‘Fly With our Wings’를 선보인다. 팬데믹 이후 다시 부지런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보낸 일상에서 그는 다시금 가족, 친구들, 동료 아티스트들과 뒤섞이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그 변화를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행위에 친숙했던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그림에 빠지게 되었는가?
친구들과 노는 게 전부였던 고등학생 시절, 그저 낙서가 좋아서 뭐가 뭔지도 모른 채로 도쿄에 있는 한 예술 대학에 아무 목표도 없이 입학했다. 여차저차 2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던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에서 ‘다음 주제를 나답게 해석해서 자유롭게 표현하라’라는 과제를 받았다. 그때까지는 별 신경 쓰지 않던 ‘나다운 표현’이라는 질문에 직면한 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바스키아의 도록을 보고 나서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술에 관한 지식은 전무했으니까.
완전히 내 인생에 정면 돌파하거나 가진 게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그저 상식이라 생각하고 그걸 남에게 강요하던 때가 있었다. 나 자신과 다른 걸 부정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편협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 자신과 타인에게 불성실했는지 깨닫게 되었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동시에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무언가를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여 그때부터는 집착하듯이 낮에는 도서관에서 마치 좋아하는 음악의 레이블, 아티스트, 참여 세션 등을 파헤치듯, 중고 CD를 사 모으던 때와 같은 에너지로 동시대 작가, 그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와 운동, 사상, 서양미술사를 나름대로 해석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했다. 밤에는 아틀리에에 틀어박혀서 다양한 화구와 화풍을 시도하고 그림에 몰두했다. 뜻깊은 나날이었고, 그 시절의 열정과 그림을 대하는 방식은 지금에 와 스타일이 조금 달라졌지만 지금까지도 내 창작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다.
본인의 유년기에 관해 떠오르는 기억 몇 가지를 말해 달라.
예전부터 그림뿐 아니라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 그 시절 ‘숲’이라고 불렀던 공원에서 주워 온 것들을 모아 나만의 기지를 만들기도 하고, 활과 화살, 칼, 총을 만들어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기도 했다.
유치원 때부터 네 정거장 떨어진 동네에 혼자 사는 우리 할머니에게 ‘혼자서 외롭지 않으세요?’라며 그림엽서를 드렸고, 할머니도 그림으로 화답했다. 그 엽서 교환은 약 5년간 지속되었다. 이외에도 할머니는 나와 함께 공예품을 만들거나, 보물 찾기를 하러 동네 공터나 공원에 가서 거기서 집은 예쁜 돌을 주웠고 그 돌을 담을 보석함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무언가 만드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며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주셨다. 그녀와 함께 보낸 유년기는 지금도 내 창작에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한국에서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갑작스레 한국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며 무엇을 느꼈는지?
여러 나라에서 전시를 진행하거나 다른 환경에 체류하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한국에서의 활동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전시에만 집중하고 그것만 생각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아내와 함께 삶을 꾸려가야 했기에 처음에는 그 변화가 힘들었다. 그러나 적응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마음가짐을 배웠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느끼는 감정에 관해 묻고 싶다. 사람과 문화, 음식 등 많은 것이 비슷하지만 다르다.
많은 면에서 차이를 느낀다. 소통, 사고방식, 일반적인 상식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특별히 내 감정에 변화는 없고, 깨달음을 통해 자연스레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분이다. 무엇이 더 낫거나 옳다는 식이 아니다. 음식은 정말 최고지.
실제 아트 신(Scene) 안의 사람들이나 경향에서 다른점을 발견했는가.
사실 일본도 한국도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느끼는 일본은 작은 나라에 많은 커뮤니티가 있고 각자 자부심과 스타일을 지니고 있으며 모두 그 환경을 동료와 함께 지키면서 만들어가는 인상이다. 한국 또한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고 각자 자부심이 있지만, 비교적 모두가 오픈마인드로, 서로 다른 신이나 커뮤니티와 크로스오버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듯하다. 예술과 패션, 음악을 접목한 대규모 행사를 만드는 데도 적극적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항상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특정한 계통으로 구분되고 싶지 않다. 그림과 감상자 외에는 그 아무것도 끼우고 싶지 않다. 다만 좋아하는 사람들, 존경하는 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한국살이하며 말 못 할 고충 같은 건 없는가?
있다. 그러나 파트너가 있기에 괜찮다.
한국 외에도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얻은 경험과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얻은 아이디어는 모두 그림 속에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역시 다양한 도시, 문화, 사람을 접하며 내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런 발견과 깨달음을 잊고 싶지도 않고, 무시하고 싶지도 않다.
서울에 작업실을 구했다고 들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는가?
집으로부터 걸어서 3분 거리. 작지만 마음에 든다. 이번 전시를 위해 1달 정도만 빌렸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두 배 넓은 곳을 찾고 있다.
붓에서부터 물감, 캔버스까지, 화구를 구비하면서 일본과 차이점을 느낀 게 있는지.
보통 코팅되지 않은 회화용 원단에 그림을 그리는데, 한국 화방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겨우 찾았다.
혹시 눈여겨보는 한국 작가가 있나.
정말 훌륭한 작가들이 많다. 모두 만나서 대화해보고 싶다. 최근에는 ‘Ppuri’와 ‘Pip Archive’는 좋아하는 작가이자 멋진 사람인데 올해 초, 도쿄에서 열린 두 분의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디렉터인 카토 씨가 친절하게 소개해줬다. 두 사람은 작품을 대하는 방식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매력적이며, 젊고 패기가 넘치기에 앞으로 세계에서 활약할 거라 기대한다.
그림 그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꼽는다면.
성실함. “Sincerity”.
작업할 때 음악을 듣나? 듣는다면 무슨 음악을 듣나?
R&B부터 힙합을 시작으로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는다. 그때 컨디션에 따라 음악을 바꾸는데, 가끔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음악이나 클래식을 듣고 그릴 때도 있다.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마음이나 감정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내 주변에서 발견한 것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걸 그린다. 이건 거대한 세상을 이해하는 나만의 방식이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주 개인적인 것, 마치 피카소가 좋아하는 이를 그리고 반 고흐가 자신의 방을 그린 그림이 세대와 문화를 넘어 다양한 소통을 낳고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끼쳤듯이. 누군가 그림을 마주하고, 새로운 걸 발견해서 자신의 삶에 새로운 감각이 생기길 바란다.
그림을 그리며 본인에게 영향을 준 작가가 있다면?
과거의 전설, 현대의 영웅이 너무 많아 일일이 말하기 힘들다.
영감을 얻는 대중문화가 있다면.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본다. 서스펜스, 드라마의 구성과 전개까지 모두 대단하다. 매번 충격을 받는다.
켄타로의 과거 작업에서는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무드를 느끼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커리어 도중 감정이나 개인적인 변화를 겪은 건지. 아니면 그때그때 표현하는 것이 다를 뿐인지?
당시에는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즈, 전시를 통해 다양한 걸 보여주려고 의식하고 있다. 인생에도, 한 가지 감정에도 굉장히 복잡한 것들이 섞여 있지 않나. 슬픔 위 기쁨, 미움 속 사랑 같이. 말은 직선이지만 그림은 유연해서 좋다.
개인적으로는 켄타로의 그림을 보면 사랑, 가족, 친구, 어린아이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그것들은 켄타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내가 세상을 알아가는 방식.
평면 작업뿐 아니라 입체적인 작업, 3D그래픽, 혹은 또 다른 무언가에도 관심이 있는지.
조각, 도자기, 가구도 만든다. 앞으로도 입체, 조형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이나 기능을 부여하는 등의 재미도 추구해보고 싶다.
이번 전시 ‘Fly With Our Wings’에 관한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이번 전시가 켄타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던 내 파트너와 올해부터 함께 한 집에서 생활하고 여행하며 다시금 느낀 것들이 주를 이룬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솔직해짐으로써 관객과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
2024년의 계획과 그 이후 좀 더 장기적인 계획. 꼭 작가로서의 계획이나 목표가 아니어도 좋다.
몇 개의 전시와 프로젝트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 또한 도쿄의 작업실과 창고를 정리해야 한다. 한국어 공부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게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좋아하는 작품을 많이 보고 다양한 환경에서 많은 걸 느끼고, 주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매일 감사하며 진심으로 작품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류에게 하고 싶은 말.
사랑합니다. 어딘가에서 만나요.
Editor │권혁인
Interviewer │박진우
Translator | 전솔지
Photographer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