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 │ 2020년 11월호

뉴 노멀. 뉴 노멀이란 상황은 뭐같지만, 단어 자체는 왠지 에반게리온 같고 멋지다. 이 단어를 쓰면 왠지 깨어있고, 진보적이고, 미래를 현명하게 대비하는 느낌이 난다. 확진자가 300명씩 나오고 있지만, 코로나가 퍼진 이후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인지 사람들의 흥분과 두려움은 지난 몇 개월 전과 비교하면 줄어든 듯하다. 길거리의 마스크 쓴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본 ‘소리없는 아우성’이 이건가 싶기도 하다.

그 와중에, 과거와 조금 바뀌었다 하더라도 뉴 노멀에 적응한 도시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루틴으로 하루를 살고, 저마다의 뉴 노멀한 영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11월의 월간 영감은 뮤지션 진실과 워크맨십의 드러머 송재영이 도움을 줬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월간 영감은 사실 2명의 VISLA 에디터와 2명의 컨트리뷰터가 함께하는 콘텐츠다. VISLA에서는 김용식, 강재욱 에디터가 함께했다. 지금 확인해 보자.


김용식 – STUSSY 40TH ANNIVERSARY IST JACKET

올해가 스투시(Stussy) 창립 40주년이였단다. 전혀 몰랐다. 40주년 기념 IST 바시티 자켓, 일명 ‘스잠’이 나오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스지의 반열에 선 조던 비코스(Jordan Vickors)가 선물 받은 자켓을 언박싱하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보며 가슴 한 켠이 왠지 들뜨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하입비스트였던 모양이다. 확실한 것은 이렇게 느낀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평소 한정판이나 콜라보레이션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지인들 마저 단톡방에 자켓 얘기를 한 두 마디 툭툭 던지기 시작했고, 발매가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해보는 이들이 나타났다. 짐작컨대, 아니 확실히 우리 모두 ‘이건 그저 그런 것들과는 다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멋진 디자인과 비싼 리셀가는 둘째 치고 다들 자켓이 인증하는 ‘인터내셔널 탑 클라스 스지’ 혹은 그 비슷한 것으로 보이고 싶었을 테다. 결국 우리는 모두 한 때 멋진 형들 무리에 끼고 싶어 안달난 꼬맹이들이였으니까. 남들 앞에서 으스대기 좋은 ‘스펙’이나 타이틀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 바닥에서 자켓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 꽤 근사하다. 

멋있는 거 만들었으면 자기들끼리 나눠 입고 끝낼 것이지, 굳이 또 판매해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나같은 사람들은 사도 못 사도 괴롭다. 발매 당일, 틈만 나면 스투시 웹 스토어를 들락날락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소식을 체크하며 보냈지만 역시 구하지 못했다. 뭐, 애초에 구매에 성공했다면 이런 글은 쓰지도 않았겠지만. 하지만 크게 아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한 손에 카드를 들고 분주히 스토어를 새로고침하는 내 모습도, 누구는 자켓을 선물 받았는데 누구는 못 받았네 떠들며 자켓의 ‘자격’을 논하는 이들의 대화도 모두 재미있는 한 편의 촌극이였다. 모두를 한남동 꼼데 매장 앞에 줄 선 어린 학생 마냥 한껏 들뜨게 만든 이번 해프닝이야말로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생일 잔치 아닐까.         


강재욱 – 퀸스 갬빗

코로나 덕분에 넷플릭스를 볼 일이 많아진 요즘, 넷플릭스가 없던 어릴 적에는 알 수 없었던 ‘정주행’ 할 일이 많아졌다. 볼 게 뭐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한창 핫하다는 “퀸스 갬빗”을 발견했다. 원래 플랫폼에서 1위로 추천하는 것들에 관심이 없긴 하지만 조금 짧게 정주행을 끝내고 싶었던 차에 7부작 드라마인 걸 알고는 꽤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별생각 없이 버튼을 눌러 하루 만에 빠르게 감상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1950~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9세 소녀 베스 허먼(안야 테일러 조이 분)이 보육원에 들어가 우연히 만난 건물 관리인에게 체스를 배운 후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체스 천재로 이름을 알리는 이야기다. 특별한 액션이랄 것이 없는 정적인 스포츠인 ‘체스’를 다루는데도 빠른 전개로,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여러 가지 포인트로 이 드라마가 눈길을 끌었지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역시 아주 잘 빠진 영상미였다. 초반의 허름한 보육원에서는 세피아 톤인 데 반해 입양된 켄터키의 한 가정을 거쳐 신시내티, 뉴욕, 파리, 멕시코, 러시아(소련)의 체스 대회로 이어질수록 배경 화면의 톤과 색 대비가 화사해졌다. 또한 체스 대회를 연전연승하며 받는 상금에 따라 달라지는 주인공 베스 허먼의 50년~60년대 패션 스타일 고증 또한 눈길을 끌었다. 극 초반에는 보육원의 방침에 따라 수수한 리넨 드레스와 기묘한 뱅 헤어 단발 스타일로 등장하더니, 이내 중반에는 마치 오드리 햅번 같은 곱슬머리 단발, 허리를 잔뜩 조인 플레어스커트,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티셔츠로 관능미까지 뽐낸다.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가 본디 모델로 활동했던 터라 더욱 부각되어서 그런 것일 터. 당시의 거리 풍경과 의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이 드라마를 완벽한 시대극으로 만든다.

내가 신기함을 느낀 건 이런 모던한 감각의 영상과 비교했을 때 “퀸스 갬빗”의 플롯은 1983년 출간된 서구권의 동명 소설이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협지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스승을 만나 무공을 전수받고, 지역의 고수들과 대결하며 성장하고, 큰 패배에 좌절하고 방황하다가, 마침내는 지금껏 만났던 동료들과 함께 최고수와의 대결을 펼친다는 아주 왕도적이지만 비현실적인 플롯. 

그럼에도 드라마는 여러 가지 장치를 부여하여 사실성을 확 끌어올리고 있다. 가장 주된 것은 역시 약물 중독의 위험성이 덜 알려진 시대의 보육원에서 베스에게 필수로 복용하게 한 안정제일 것이다. 베스는 처음엔 무엇인지도 몰랐던 안정제를 통해 실제 체스판도 천장에 체스판을 상상하며 밤새 시뮬레이션을 하고, 몇 수를 앞서 나가 상대를 이긴다. 나중에 베스가 안정제를 극복하는 묘사가 나오긴 하지만, 중반에 약물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꽤 길게 보여준다. 이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공감을 살 만한 모습이다.

이외에도 이 시대극의 설정은 매우 현실적이다. 작품의 제목인 “퀸스 갬빗”을 포함한 각종 체스 용어는 물론이고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체스계에 뛰어든 베스를 향한 사회적인 시선, 체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베스를 달리 바라보며 엄마의 역할을 배우는 새엄마, 미국의 개인주의와 대비되는 소련의 철저한 팀 의식을 경계하는 베스의 동료들… 왠지 정말 저런 실화가 있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구음진경’을 익혀 천하오절이 된 곽정이나 양과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그런 현실감이 이 뻔한 플롯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 메시지를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한다. “퀸스 갬빗”이 올해 하반기 넷플릭스의 명작으로 꼽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나는 어떤 우연한 순간을 기회로 만들고, 스승 삼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만날 사람들을 어떻게 내 소중한 동료로 만들 수 있을까. 상대의 예상치 못한 행마로 좌절감이 들 때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든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비록 내가 저 정도의 천재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선배들의 기보를 달달 익히는 만큼은 노력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무서울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공격적으로 기물을 놓는 베스 허먼처럼 흔들리지 않고.


진실 – 개

1. 인정

인스타그램 짤을 보던 중 모 래퍼가 인정에 목말라있다며 마이크를 던져가며 랩을 하더라. 조회 수로 그가 받은 인정의 정도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뮤지션으로 생활하며 꽤 인정에 집착한다. 인정이 오랜 시간 내 밥그릇과 정신을 좌우했다.

2. 알고리즘

사람보다 알고리즘한테 잘 보여야 된다는 말이 돈다. 주변에 나를 포함해 요즘 거르고 걸림 당하는 상황들이 많이 생기는 건 정보와 관계가 한계를 넘어서일까? 그러고 보니 알고리즘이 하는 일이 비슷해 보인다. 

3. 루카

루카는 루카를 구조하고 보호해 주시던 분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루카 모드리치를 좋아해서 그 이름 그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명절에 낚시터에 버려졌다고 했다. 알고리즘은 그런 게 제일 흔하다고 알려줬고 루카는 그래서인지 분리불안이 심하다. 하지만 나한테 꼭 붙어 있으려는 루카 때문에 루카의 결핍을 채워주고 서로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데 더 수월했다.

4. 1500만

매일 혐오를 접한다. 혐오는 결핍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할아버지 때는 전쟁으로 사람이 죽었고 이젠 아예 태어나지도 못한다. 국민 1/3, 1500만이 개를 키운다고 한다. 사람이 충분히 주고 받아야 할 사랑과 신뢰가 짐승에게 더 기대가 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송재영GMV

브릿팝 밴드 블러(BLUR)를 이끌던 데이먼 알반은 자신들의 음악이 팝으로 불리길 원했다.

“팝은 가장 위대한 음악이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아우를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 하였고 이 멘트는 지금까지도 내가 음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우연히 3인조 보이밴드 핸슨(Hanson)의 “mmmbop”이라는 노래를 듣고 팝 음악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처럼 온라인 웹진의 시대가 아니었던 때라 문방구에 가면 매달 나온 잡지들을 디피해 놓곤 했는데 GMV라는 음악잡지의 커버로 핸슨이 모델로 있길래 여학생들이 H.O.T가 커버로 있는 잡지를 팬심에 구입하는 느낌으로 나도 구매했고 GMV라는 잡지를 통해 그달에 나온 신보 및 팝 스타와 록 스타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핸슨과는 상관없이 매달 GMV를 사다 보니 어느새 정기구독을 하게 되었고 평소에 팝 음악을 많이 듣던 나에게 록 음악만을 즐겨 듣던 친구가 이게 진짜라고 하면서 핫 뮤직(HOT MUSIC)이라는 잡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당시 커버는 메가데스(Megadeath)였고 나와 친구는 서로 잡지를 교환하면서 보곤 했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가장이 되었지만 가끔씩 본집에 가서 내 방에 가면 색이 바랜 GMV 잡지를 보곤 한다. 이 잡지가 없었으면 내가 음악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락이 되지 않는 그 친구도 보고 싶은 하루다.


에디터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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