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2020년 4월호

코로나는 적어도 나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거스를 수도 없이 국가에 의해 컨트롤되는 상황이니, 지구와 인류가 합작해서 부여한 미묘한 쉬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너무너무 지긋지긋한 ‘코로나’라는 단어지만, 근래 우리의 삶은 코로나 없이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변화를 겪고 있지 않나. 비즐라와 비즐라의 친구들은 전례 없는 이 시간을 보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4월의 영감은 모델이자 필름 메이커인 유킴, VJ 가수가 함께했다.


화초 / 오욱석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독립한 지 어언 10년, 오래도 나와 있었다. 앞으로도 부모님과 함께 한집에서 살 일은 없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동생까지 네 명의 가족이 함께했던 집의 풍경을 찬찬히 떠올려봤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우리 집은 남들의 배 이상으로 잦은 이사를 했는데, 형편이 나아짐에 따라 집 평수가 점점 넓어졌고, 세간 값도 높아져 뭔가 일관된 집의 분위기랄까,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더라.

그 와중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거실에 놓여있던 화분이다. 집 거실, 그리고 베란다에 걸쳐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화분이 즐비했다. 슥 훑어봐도 그 수가 많아 가끔 물을 준답시고 모든 화분을 욕실에 가져다 놓는 날에는 작은 식물원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항상 집에 식물이 있었음에도 화초에 물 한번 준 적이 없었다. 외려 엄마가 화장실로 화분을 옮겨 달라 부탁할 때 짜증을 냈으며, 베란다로 나갈 때마다 이를 치워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성가시게 느껴졌다.

그러던 내가 지금 다섯 종류의 화초를 가꾸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지금 집에 살기 이전 꽤 오랜 시간 해가 잘 들지 않는 지층에 살았기 때문에 기분에 들떠 처음으로 화초를 들였고 2년이 지나도록 이 녀석들이 꽤 잘 자라주고 있다. 각별한 애정을 줬다거나, 정성으로 돌보지 않았음에도 쑥쑥 크고 꽃을 틔우는 걸 보는 재미와 보람이 있다. 자라거나 죽는 것 외 어떤 반응도 기대할 수 없는 심심한 관계지만, 살다 보면 이 기대라는 감정 때문에 지치는 일이 많지 않나. 유일하게 기대하지 않는 우리의 관계가 퍽 편하고 위안된다.

언젠가 부모님 집에 갔을 때도 거실 창 앞으로 화분 여럿이 횡대로 도열하고 있었다. 엄마가 마침 잘 왔다며 화분 좀 욕실로 옮겨 달라고 하기에 무릎도 안 좋으면서 왜 이리 화분을 많이 놓고 고생하느냐고 괜히 핀잔을 줬다. 엄마 왈 그냥 기르는 거라더라. 그때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제 좀 알겠다.


일기 / 가수연

종종 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에 페이지를 열거나 노트를 사곤 했는데 늘 그렇듯 실패한다. 내가 하루에 무엇을 했는지 마주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운 일은 아닌가 보다.

흘려보내진 사건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굉장히 생각보다 자극적인 일이다. 항상 작은 소음이 들리지만 보통의 경우 기억에 새겨지지 않고 그저 지나간다. 내가 무엇을 듣고 있다, 무엇을 들었다,라고 하는 그 무엇을 떠올린다면 아마 그냥 지나가는 소음보다는 조금 더 자극적인 소리일 것이다. 자극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청각기관을 통해 전달된 소리 자극체를 다시 한번 새기는 일과 같다. 사건도 그렇다. 무엇을 보고 듣고 하는 것의 그 무엇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큰 자극체일 것이다. 그 일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은 나 혹은 당신의 정신에 무리를 준다.

꽤 자기중심적인 면모가 큰 사람이라 사람들과 어떠한 상호작용을 한 후면 내가 상대에게 혹은 스스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그 태도의 모양은 어땠는지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서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 즉각적으로 곱씹는다. 그렇게 곱씹은 자국은 생각보다 깊게 파여 은은하게 생각의 몽우리가 피어난다. 잔향으로 남아있는 생각의 뭉치를 다시 한번 사건이라는 객관적인 일로 떠올리며 주관적인 언어로 적는 것은 굉장히 깊은 자국을 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절대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편한 일인가. 누군가가 봐도 상관없는 것도 정말 편한 일이다. 다시 한번 일기가 싫은 징징거릴 이유를 대자면, 혹여나 내가 부주의해서 혹은 누군가가 너무너무 변태적이라 관음적으로 내 일기를 들여다본다고 상상해보면 내 생각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은 일기가 두려워질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들기 전까지 혹은 자면서 꾸었던 꿈 따위들을 모두 적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종이 위에 적힌 오늘의 사건은 그 분량이 그 종이를 다 채우든 넘어가 수많은 장을 적든 간에 그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종이에 적힐 만큼 본인에게 큰 자극일 것이다. 그 많은 자극을 지나쳐 골라낸 자극과 그에 대한 감상은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기에 너무나도 적절하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는 좀 더 많이 찐따라 굳이 보이는 것보다 더 들여다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되었든 당신이 되었든.


선별적 감정이입 / 유 킴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이따금씩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것들이 떠오르는 데는 단지 우연이 아니라 그 기억의 파편들을 이어주는 어떤 무의식의 작용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2015년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샤를리 엡도 사건에 대해 남긴 한마디를 지금도 종종 떠올린다. “전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총을 쏘지 않는 사회의 편입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의 대답을 들었던 때로 돌아간다. 별로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일련의 순간들을 마주할 때 왜 그때의 섬광이 지나가는지. 월간영감의 기회를 빌려 그 생각의 회로를 추적해보려고 한다.

2015년 1월이었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본사에 무장 괴한 2명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전 세계의 미디어들은 앞다투어 이 사건을 유럽에 대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선전포고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폭력으로 다뤘다. 사람들은 SNS에 “나는 샤를리 엡도다”라는 문구와 프랑스 국기를 오버레이한 프로필 사진을 포스트하며 테러로 위협받는 프랑스인들 그리고 무고한 희생자들과 연대했다. 물론 자신의 자리에서 여느 날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희생자와 유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나 끊임없이 쏟아지는 뉴스와 사설, 페이스북 피드를 읽다가 나는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어쩌다 이 사건이 ‘표현의 자유’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가하는 폭력이라는 수사가 되었을까? 같은 시각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의 레반트 지역에서 일어나는 무고한 불특정 다수의 죽음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해치는 일로 여겨지지 않으며 그 피해자 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왜, 그들의 삶은 표현의 자유만큼 위대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는 연대할 수 없나?

무엇보다도, 당시 나는 ‘표현의 자유 침해’가 아닌 다른 서사를 전달하는 기사를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테러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악마의 소행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역사적 인과관계가 있음을 말하는 서사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샤를리 엡도다”라는 말은 즉, ‘삶은 위대하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 연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였기 때문에’라는 보편적인 인류애적 가치로 즉각적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이 가치는 분명 특정한 집단만이 누릴 수 있는 서사이다. 동시에 이 서사는 무엇이 국가 간의 불가피한 ‘전쟁’이고 무엇이 종교 극단주의자의 ‘테러’인지, 어느 살상이 더 인간적이고 더 비인간적인지 순위를 매긴다. 샤를리 엡도를 비롯하여 2010년대 늘어난 테러 사건의 인과관계라 하면 이렇다. 첨단 무기들이 미국, 프랑스 등에서 제조되고 천문학적인 액수로 거래되고 있으며 같은 시각 그 무기들은 레반트 민간 지역에 퍼부어진다는 것.

샤를리 엡도 사건이 있던 같은 달, 알랭 드 보통은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당시 앵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샤를리 엡도입니까, 아니면 그 반대편입니까?” 이 질문을 누가 내게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것도 모두가 지켜보는 뉴스에서? 당연히 모두가 자신을 샤를리 엡도라고 말하는 때에 저 질문이 의도하는 바가 대체 뭘까? 그는 모두가 기대하는 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것인가? 내게 떠오르는 과거의 섬광이라 하면 아마 이 긴장의 순간일 것이다. 어떤 것도 동의할 수 없는데 양자택일의 질문에 당장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전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총을 쏘지 않는 사회의 편입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총을 쏘는 것은 야만적인 일입니다. 계몽이나 현대사상이 모두 그런 걸 막는 것이죠. 내가 샤를리 엡도를 좋은 언론사라고 생각하냐고요? 아뇨.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그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몹시 놀랐다. 동의하지 않는 자, 총을 쏘는 자를 둘 다 언급하면서 결국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답은 ‘나는 샤를리 엡도다’라는 서사가 강요하는 ‘표현의 자유 옹호자인가, 테러 옹호자인가?’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지에서 그 어느 선택도 하지 않음으로 그 지배적인 서사에 저항하고 있다. 나는 이 누군가가 정해놓은 힘의 논리 바깥에 서있겠다는 분명한 제스처다. 

결정적으로, 이 정치적이지 않아 보이는 대답의 서브텍스트는 몹시 정치적이다. 그는 표면적으로 그날 총을 쏘았던 알카에다의 쿠아시 형제를 비판하고 있으나, 동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총을 쏘는’ 행위는 서구사회가 중동에 가하는 폭격을 가리킨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 총을 쏘는 사회’는 유럽과 미국이 중동에 일으키는 전쟁의 본질이다.

전 세계 미디어를 타고 전해진 그 서사는 한쪽으로만 감정이입의 통로를 허락한다. 소수의 유럽인에 공감하고 연대하나, 실제로 한 도시가 한순간에 파괴되고 지금까지 공습이 이어지는 시리아의 현실은 먼 나라의 전설이거나 사상자의 숫자와 같은 기호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도 샤를리 엡도 희생자 개개인의 이름, 그들이 그날 아침에 집을 나서며 배우자에게 했던 말 같은 안타까운 일화를 듣고 나서 911의 순간에 각자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 그만큼 그 사건들을 자신과 가깝게 연관시킨다. 2014년, 페이스북은 ‘Safety Check(또는 Crisis Reponse)’라는 기능을 도입하여 유럽, 미국, 이스라엘 등지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날 때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동시대에 비서구권에서 행해지는 공습과 재난은 ‘Crisis’로서 인식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서 크게 이슈가 된 일련의 사건 때문에 지난 몇 달간 나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비즐라에서 월간영감에 글을 기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몇 달간 나의 유일한 영감은 사회에서 오는 좌절과 분노였다. 선별적으로 감정이입하고 그 밖의 것들은 타자화하는 사회, 공감의 방향에도 힘의 논리가 구조화되어있는 사회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어떤 이들에겐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 ‘앞날이 창창한 젊은 이’등의 살을 붙여 다각적인 감정이입을 가능케 하는 서사를 만들고 그것을 믿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이들에겐 ‘피해자’, ‘이민자’, ‘여성’ 등의 타자화된 기호를 부여하는 것에 그친다. 변방의 희생자들은 어떤 역사를 가진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 바 없고,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호이기에 우리는 그들과 연대할 수 없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방향의 감정이입을 강요하는 사회에 분노하다가도, 동시에 넷플릭스의 살인마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해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하는 나 자신을 본다. 그런 순간들을 작고 크게 마주할 때 “당신은 샤를리입니까, 아니면 그 반대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때의 알랭 드 보통으로 돌아간다.


코로나 / 전호율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 각자의 집에 격리되어 컴퓨터 리베(Liebe)에 빠진 우리들이다. 몇몇은 불안에 떨며 카톡 대학에서 코로나에 관한 논문을 쓰고 몇몇은 도덕적 심판을 내리는 데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음악 디깅을 매일 한다. 남한테 피해 안 주고 혼자서 잘 노는 건 얼마나 고귀한 가치인가. 음악 듣는 일은 정말 너무 즐겁다. 새삼 느낀다, 어쩜 이렇게 항상 재밌을까. 정말 좋은 곡은 블랙스완을 찾아낼 각오로 해야 한다. 지쳐도 한 번만 더. 테이스트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깊어지는 것이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보석을 찾으려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한계를 느끼고 결국 집 밖을 나선다. 레코드 숍에 찾아가 스트리밍 사이트에도 없는 희귀 LP를 찾아낸다. 410.6003. 디스콕스에 입력된 숫자와 라벨의 숫자를 다시 한번 일치시키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들뜬 마음으로 계산대에 가져갔는데 점주가 아니! 이거 모르고 내놓은 거라고 깜짝 놀란다. 팔 것이냐, 자기가 소장할 것이냐 손님과 점주 사이의 보이지 않는 쿠엔틴 타란티노급 서스펜스가 흐른다. 점주는 어떻게 이 LP를 알아봤냐며 함께 깊은 테이스트를 공유하고 싶다며 카톡 아이디를 묻는다. 상황은 이렇게 새로운 인연과 함께 일단락되고 이 값진 전리품엔 더 애정이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깊어지는 테이스트란 오타쿠들을 대면해야 하기에 코로나에 더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아마 코로나 확진자들 중 상당수는 깊은 테이스트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욕심을 부리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키도록 하자.

난 내 취미를 팔기 위해 사지 않는다. 5만 원짜리 LP가 50만 원으로 가격이 오르는 건 하나의 지표에 불과할 뿐이다. 전 세계 친구들이 다 알도록 내 기쁨을 알리겠지만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행동이 무목적이고 무위도식할 때 그제야 놀이가 되는 것이다. LP가 돈으로부터 무관심해지는 순간 걱정에서 해방된다. 이러한 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활동과 같다. 이런 무활동이 필요한 사람들은 경제대공황 위기 속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세계시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형, 누나들이다. 도시의 자유 속에 묶여있던 많은 사람들은 잠시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반강제적으로 디깅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놀이와 놀이를 하는 사람 간의 순환고리는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서 멀리서 보면 코로나의 동태와 같다. 그럴수록 빨라지는 건 범세계적인 테이스트의 숙성이다. 난 이 혁명적 움직임을 코로니즘(Coronism)이라 부르겠다. 코로니스트가 되는 과정은 스트리밍 디깅에 싫증을 느끼는 데서 기원한다.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AI의 추천에 의해 듣게 된다면 재미가 반감된다. 반면 레코드 숍에서 산 LP는 내가 소유하는 것이기에 음악이 별로라도 한 번 더 듣고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음악에서 소유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생각해보자. 르네상스 이전 귀족은 작곡가를 소유했다. 그 후 작곡가가 독립하면서 귀족은 대신 연주자를 소유하게 된다. 축음기가 발명되고 레코드가 보편화되어 음악의 독점권은 귀족으로부터 해방되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귀한 레코드는 ‘1900’과 같은 이야기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후 음악은 CD에 담기고 MP3 파일이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MP3 파일은 하드에 저장되기에 우리는 여전히 소유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스트리밍 시대는 우리가 좋아할 법한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 여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없어지면서 음악의 아우라는 붕괴하고 만다.

작품이 복제될수록 원본성이 없어지면서 아우라는 잇따라 희미해진다. 음악은 무한 복제되다 못해 대기 속 분자처럼 언제 어디서든 부유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 충분히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작품에 관련된 과정을 기억에 담아 소유함으로써 아우라를 얻어냈다. 옛날 한국이 수입을 금지했던 일본 시티팝을 일본 라디오 전파가 잡히는 부산에서 어렵게 녹음한 카세트라든가, 베네수엘라에 서버를 두고 아일랜드에 본체가 있는 국제 범죄 집단이 찍어낸 해적판 컴플레이션 레코드라든가, 트로이목마 바이러스가 내 컴퓨터를 다운시킬지라도 동유럽 언어를 구글 번역해가며 다운로드한 MP3 파일이라든가. 우리에게 이제 그런 과정이란 없는 것이다. 길만 나서면 들리는 아이돌 노래가 재미없는 이유가 있다. 여수에 사는데 대구까지 가서 구매한 VISLA에서 발견한 뮤지션이 더 좋은 이유가, 네가 나에게 소중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냥 우리는 재밌게 놀고 싶을 뿐이다. 그런 최소의 아우라도 없는 음악을 나는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스트리밍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소유의 문화가 위협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볶음밥이라든가, 중고서점 몇 개를 돌아 얻은 절판된 책이라든가, 내가 소유하기에 더 애정이 가는 것들을 생각해보자. 근데 그걸 스트리밍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거다, 쉽게 쟁취한 기쁨이니까. 그리고 소유의 문화가 자본이 있는 귀족만을 위한 거라고 말하지 말자. 소유의 형태가 다를 뿐 귀족은 누구나 될 수 있고, 스트리밍은 그걸 원천적으로 금지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즐겁게 흠뻑 빠질 수 있는 테이스트를 찾아서 코로나의 저기압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디깅의 열정에 둥그런 몸을 떠는 LP의 진동은 우리가 코로나에서 벗어나려는 그리고 재밌게 살려는 놀이의 상징이다.

“나 지금 우울하니까, DJ 시리야, 좋은 음악을 틀어줘.” 인공지능의 적중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 적재적소에 틀어지는 음악은 백설 공주가 지나가는 길에 때마침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 부르는 그런 영화적 연출이 가능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핀 꽃은 쉬이 시들어버린다. 스트리밍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누가 음악을 만들었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단지 노래의 이름은 어떠한 분위기로 불릴 뿐이다. 이렇게 음악에서 작가는 죽게 된다.

60년대 ‘저자의 죽음’이란 에세이를 내놓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 의해 예술계는 이미 작가와 사별을 치렀다. 당시 미술계에서 막 생겨나, 저자의 죽음과 맞물린 미니멀리즘을 생각해보자. 도널드 저드(Donald Judd)는 주로 공장에서 생산된 듯한 반듯한 사물들을 규칙적인 반복성에 따라 배치했다. 대량 생산된 똑같은 사물들이 나타내는 반복성과 보편성, 차가운 단조로움이 주는 비인격성은 마치 작가가 죽은 듯한 익명성을 낳는다. 이런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우린 스트리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비인격성이 각자 어디서 왔는지는 저마다 다르다. 미니멀리즘에서 작품을 공장에서 주문하기 시작하면서 작가 스스로 자살했지만, 음악에선 스트리밍이 작가를 죽인 타살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린 이제 누가 아티스트인지 중요치 않게 된다.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미니멀리즘의 근본이라 말했던 대상화된 객체, 공간, 관객을 스트리밍 음악에 대입해 보자. 우린 음악을 틀 때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은 구리다며 스포티파이를 틀자고 얘기할 것이다. 혹은 비 오는 날 감성 노래 모음이나 씰룩씰룩 엉덩이가 가출하는 파티 음악 모음처럼 분위기에 따라 대상화된 음악을 틀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재생되는 공간과 그 속의 나 그리고 내 친구들이 어떤 상태인지가 음악을 결정한다. 우리가 그저 분위기에 따라 음악을 추천받았을 때, 톰 조빔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보사노바나 아침에 커피 내리면서 듣기 좋은 음악으로 불린다. 작품이 작품이기 이전에 장르일 때, 우린 장르에 가두어지기 쉽다. 이런 장르의 폭력성이란 다양한 것을 그냥 하나로 묶어 버리는 것, 공장에서 찍히는 브랜드의 마크나 제품번호와 같다. 봉준호 감독을 생각해 보자, 장르를 파괴했더니 새로운 게 나오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거라 했다. 이 말은 반대로 장르의 색깔을 위해선 개인적인 것은 희생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 수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대조되는 LP 디거는 결국 보편적인 걸 거부하고 개인의 것을 소유하려고 집 밖을 나왔던 것이다.


에디터│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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