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2020년 2월호

2017년, VISLA 매거진의 독자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했던 월간 영감이 돌아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생충이 득세한 2020년의 시작점, 우린 어떤 영감 속에서 살고 있나. 새롭게 돌아온 월간 영감 2월호는 스타일리스트 권순환, 아트 디렉터 옥근남이 함께했다.

Painting by Rinalds Vanadziņš

베니스 비치

월간 영감이라는 주제로 글을 몇 번 쓰긴 했지만 영감이라는 것이 사실 막상 떠올리고자 하면, 머릿속에 잡히는 게 통 없을 때가 많다. 그만큼 영감이라는 말은 어딘지 과장되었거나 반대로 스스로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그래도 이번 달에 그리 어렵지 않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지난 연말, 생애 처음으로 미 대륙을 밟았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든 내게 꽤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게 아닐까 한다.

이번에도 새로운 경험의 단초가 되었던 이는 VISLA를 통해 몇 번 언급한 적 있는 단짝이자 파트너인 최장민이다. 몇 년 전부터 미국에 가자고 운을 띄워도 무덤덤한 내 반응에 최장민 또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올해만큼은 이상하게도 어떤 확신이 있었는지 끈질기게 날 설득했다. 결국, 우리는 다시 함께 비행기를 탔다.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대 공항을 떠날 때만 해도 미국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VISLA의 일이 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 2주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집과 사무실을 떠난다는 게 썩 내키지 않은 탓이었다. 게다가 기나긴 비행시간은 찝찝한 기분을 더욱 부채질했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것이 기우였다는 생각조차 낭비일 정도로 머릿속에서 휙하며 사라지고 말았다. 각종 매체를 통해 접했던 미국 문화의 면면은 실제 내가 겪고 나서야 비로소 마지막 퍼즐을 맞추듯, 잠시나마 ‘체화’했다는 멋쩍은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데 이곳을 통해서 이야기를 다 풀어놓기는 어려울 듯하니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 바로 베니스 비치에서의 몇 시간을 기억하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애초에 열심히 계획하지 않았던 만큼 특별히 구글 맵에 표시한 장소가 몇 없기도 했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그저 기분에 따라 걸어다니고 싶었다. 뭔가를 열심히 쇼핑할 줄도 모르고, 인파가 몰리는 곳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닌 탓에 그런 나와 캘리포니아를 잘 아는 최장민 역시 꼭 가볼 만한 몇 군데를 안내하는 일 외에는 서로 그때그때 결정해서 돌아다니는 쪽을 택했다. 다만 몇 군데 표시하지 않은 북마크 중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은 의외로(?) 바닷가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 서울의 지난 몇 년이 어지간히도 지겨웠는지, 도시의 빽빽한 매력보다는 아무래도 텅 빈 곳에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우리는 LA 다운타운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베니스 비치에 가자고 합의를 보았고, 곧바로 우버를 불러서 쭉 남향했다. 해변 입구에 내리고 나니 LA의 상징과도 같은 높이 솟은 야자수 뒤로 태양이 막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해변가 스케이트 파크에서 보드를 열심히 타는 젊은이들부터 90년대 소울풍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노인들까지 다채롭게 모여 베니스 비치를 즐기는 모습을 최장민과 나는 관광객처럼 바라보았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해가 제법 빨리 떨어졌는데, 4시만 지나도 어느새 어둑어둑해지려는 낌새가 보였다. 베니스 비치에 모인 인파를 구경한 지 한 시간이나 됐을까. 하늘은 짙은 붉은빛을 띠었고, 그때 우린 별 대화도 없이 바다 쪽으로 더 깊게 걸어갔다. 어느 정도 들어가다 백사장에 털썩하고 앉아서 두 팔을 뒤로 기댄 채 그저 눈앞의 풍경만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았다. 저만치 앞에서 방파제 위에 올라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검은 형체가 어느새 분홍빛으로 변한 노을과 대비되어 어딘지 아득히 먼 세계에 당도한 것처럼 보였다. 불길한 기운의 거대한 먹구름은 군대의 일사불란한 제식처럼 흩어졌다 다시 모이며 천천히 석양으로 향했다. 나는 뒤로 뻗은 손으로 모래를 만지작대며 구름이 이동하는 경로를 온몸으로 따라가려 했다. 분홍빛의 노을은 곧 얇고 가는 실처럼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새로운 세계로의 출입구는 그렇게 단 몇 분 만에 닫히고 말았다. 석양을 삼킨 하늘과 바다는 닮은꼴의 데칼코마니처럼 이어졌다. 어두운 푸른색의 바다는 하늘이었고, 육지는 구름이었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평소 자연을 묘사하는 일을 껄끄럽게 느끼곤 했다. 이미 수많은 예술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드러내 놓았기에 내가 하는 일은 결국 그것을 답습하는 일에 지나지 않거나 그들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한평생 촘촘한 도시에서 살아온 내가 낯설고 광활한 자연을 선택하는 일은 얄팍한 도피가 아닐까 하는 께름칙한 의문으로 남은 탓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결국,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자연은 인간의 필연적인 회귀이자 생명력의 근원이라는 것을, 언젠가 돌아가야 할 그곳을 향해 펄떡이며 헤엄을 쳐야 한다는 것을. 나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계속해서 자연을 찾아갈 것이다. 다양한 스케줄러로 효율성의 각도를 더욱 세밀하게 조정하던 내게 졸속한 몇 줄의 글을 남길 수 있도록 다시금 감정을 상기시켜 준 베니스 비치 어딘가 외딴섬 같았던 백사장과 그 옆에서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던 오랜 친구, 최장민이 근래의 영감이다.

권혁인(VISLA Editor-in-Chief)


조커

유년기 시절, 만화나 영화를 보며 또래 친구들은 주인공을 응원할 때 나는 유독 악당의 편을 들었다. 주인공이 변신할 때 친절하게 기다려 준다든지, 주인공에게 수없이 패배하고 돌아오는 부하들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며 챙겨주는 악당들의 수장 그리고 주인공 5명이서 악당 한 명을 후드려 패는 모습을 봤을 땐 솔직히 선과 악이 뒤바뀐 게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악당’이라고 정해진 저들 또한 저마다의 명분이 있었다. 결국은 이념의 차이 때문에 그들은 그저 대립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DC보다 마블을 좋아하는 이유 또한 DC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긋는 반면에, 마블은 히어로와 빌런의 영역을 분명하게 긋지 않는 점이 맘에 들어서다. 그들은 때때로 오히려 빌런보다 더 빌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히어로 코믹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DC의 조커다.

서론이 길었지만, 사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얘기는 조커보다는 그 전의 아서 플렉에 관해서다. 작년에 개봉한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Joker)”는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영화였다, 이전까지 나에게 최고의 조커는 “다크나이트(Dark Knight)”의 히스 레저였는데, 새로운 조커를 본 후 그 순서를 정하기 어려워졌다. 각자 다른 매력이 존재하더라도 “조커”라는 영화에선 아서 플렉이 왜 조커가 됐는지 명분을 알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이다. 물론 테러를 일삼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의 인생은 나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살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지금껏 행복하기 위해 살아왔지만, 언제나 힘들고 개 같은 하루하루가 대부분이고 잠깐씩만 행복했다. 은연중에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바랐지만, 이제와 보니 10대 때의 나도, 20대 때의 나도, 30대인 지금도, 이유가 다를 뿐 힘들고 개 같은 일은 항상 일어나고 그건 내가 어떻게 하려고 해도 불가항력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개 같은 일들은 항상 내 도처에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아서 플렉과 달리 조커가 될 수 없는 점은 나는 이 개 같은 일들이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시브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든 적든 얼굴이 잘생기건 못생기건 그들 저마다의 개 같은 일은 항상 벌어질 거고 다만 다른 건 얼마나 그 개 같음을 잘 버티고 이겨내느냐, 그 문제인 것 같다. 행복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소중한 이유는 매일매일 개 같은 일만 겪다가 가끔씩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인 것처럼. 늘 발생하는 개 같은 일을 잘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아닐까?

권순환(Stylist)


The Decline of Western Civilization

다큐멘터리 필름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진척은 1도 없고 때려죽여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억지로라도 작업 데스크에 앉아있기 위해서 의식처럼 하는 행동이 있다. 유튜브에 접속해서 생각나는 대로 기록형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최대한 멍 때리며 감상하는 것이다. 예외도 있지만 기록형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념, 허구적인 해석을 넣으려 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려 한다는 점이 내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 앞서 행하는 부팅 세리모니(?)에 적합했던 것 같다.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서 수많은 ‘In Put’을 시도하는 타입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멍 때리며 조금 비워두어야 하는 타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전, 밴드 사이에서는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해외 펑크, 하드코어 다큐멘터리, 라이브 영상, 앨범 파일이 복제된 CD를 손에서 손으로 돌려보곤 했고, 그것은 유일하게 해외 언더그라운드의 실제 기록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어디에나 있듯 중간에 짬 시키는 얄궂은 친구들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소수 커뮤니티여서 그런지 서로 책임감 있게 공유를 체크하며 나중에 합주실에서 만나면 이에 관해 짤막하게 감상평을 나누곤 했다. 여담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디에 있는 어느 누가 그 구하기 힘든 양질의 자료를 공 CD에 일일이 복사하는 수고를 해가며 아무 대가 없이 반포(?)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생각해보면 그때 이루어졌던 수많은 ‘In Put’이 지금도 나의 ‘Out Put’에 상당히 크게 관여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뇌 용량이 적어서 그런지, 더 많이 집어넣기보다는 기록형 다큐멘터리를 멍 때리면서 보는 행위를 통해서 내가 무엇에서 영감을 받는지, 왜 영감을 받았는지 다시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위 다큐는 이 글을 쓰기 전 내가 무엇에서 영감을 받는지 생각하기 전 멍 때리면서 틀어놨던 영상이다. 즐겁게 감상하기를 바란다.

옥근남(Art Director / Illustrator)


인체

녹사평역에서 경리단길로 가는 길, ‘외국책’이라고 큼지막하게 써둔 작은 가게. 그 가게 앞에는 두서없이 선택된 책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내 발걸음은 조금씩 느려져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진열되었는지 호기심 가득 살펴보게 된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가지각색의 소우주가 책장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그중 ‘인체’는 가게 입구 옆에 놓여 겨울 도시의 먼지를 맞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차가운 코팅재의 표지를 쥐었다.

“You cannot see inside your body, yet it is a fascinating universe”.
“당신은 몸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요, 그런데도 그것은 매혹적인 우주랍니다”.

대화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명랑한 문장이 또 있을까? 나는 낯선 우주에 선뜻 호감을 느꼈다. 유쾌한 첫인상을 선사하는 이들이 그렇듯 그는 알아갈수록 근사했다.

“With this book, you will be able to observe your body as if it were transparent”.
“이 책과 함께라면, 당신은 자신의 몸을 투명한 것처럼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작은 종이 손전등이 필요한데, 이는 책의 마지막 장에 부록으로 딸려 있었다. 그러나 헌책이라서인지 마법의 손전등은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손전등 없이도 투명한 몸은 특별했다. 투명 필름에 인쇄된 삽화가 중간중간 끼어있다는 간단하고도 과감한 선택. 투명 필름에 그려진 뼈와 장기가 인체 표면을 그린 종이 위에 얹힐 때, 인체의 구조는 역전된다. 살갗 위로 드러난 뼈의 구조는 단순화되어 있으며 색은 추상화되어있다. 사이안 색 두개골을 장난스러운 아이의 표정 위에 띄워보자. 이제 아이는 밝은 파랑의 문신을 뒤덮은 사람 같다.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축제의 해골 의상을 입은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몸은 불현듯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When you look at parts of the body under a microscope, you discover an extraordinary world”.
“몸의 부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때, 당신은 기이한 세상을 발견합니다”.

“A microscope makes very tiny things appear large”.
“현미경은 아주 작은 것들을 크게 보이게 만들죠”.

“White blood cells, a section of skin with a hair, red blood cells, striated muscle, bone, brain cells, egg and sperm cells”.
“털이 있는 피부 한 구역, 백혈구, 적혈구, 가로무늬근, 뼈, 뇌세포, 난자와 정자”.

동그랗게 확대된 피부는 표면이 초록으로 물결치는 붉은 바다처럼 보인다. 멀리 진홍빛 석양이 드리우고 바다 한가운데에는 노란 털이 푹 박혀있다. 백혈구는 이름과 달리 노란색을 띠며 보송보송한 털 인형 모양이다. 가로무늬근은 누군가 오랜 시간을 들여 짜낸 바늘땀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듯하다. 뇌세포는 용암 속에 춤을 추고 정자는 유성처럼 떨어진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세상이 현미경을 통해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소화 과정을 설명할 때 ‘인체’는 추상적인 시각 전략을 사용한다. 신체는 주황색 그림자처럼 평면적으로 단순화되어있다. 다리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잘린 옆모습은 얼핏 체스 말 같다. 음식물은 소화 과정에서 물리적 변화를 체험하지만 그림에서는 일관적으로 파란색 동그라미로 그린다. 흡수의 과정은 작은 파란색 동그라미가 균일하게 퍼져 있는 형태로, 직관적인 상상을 유도한다. 이 모든 개별적인 현상이 사실 소화라는 하나의 과정임을 알려주는 반복적인 인체의 실루엣이다. 제한된 시각 요소로 각기 다른 개념의 공통 성질을 끌어내는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움직이고 있는 인체 내부의 우주는 시각 정보로 가공되어 전달된다. 인체 내부의 물리적 원리를 이해하면 인체를 더 잘 이해하고 상상하게 될 것이다. ‘인체’는 인간의 몸을 과학적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몸을 이해하면 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책은 마침내 외부에 드러나는 신체적 특징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내부가 같은 인간임을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Although we may have different hair, eyes, skin, or shapes…… on the inside we are all the same”.
“우리는 서로 다른 털, 눈, 혹은 체형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은 모두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인체 내부의 구성 원리는 같다. 그 마법과도 같은 사실을 ‘인체’는 과학적 관점에서 간결하고도 아름답게 그린다. 지식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이념으로 확장된다. 이것이 내가 녹사평으로 가는 길에 발견한 작은 세계다.

조해인(Contribute Writer)


달아나는 근본의 고급

영감, 영감, 영감… 영감이란 뭘까. 나무위키에서는 영감을 ‘갑자기 떠오른 기발한 생각’, ‘뭔가를 창작하게 되는 계기’라고 적어놓았다.

최근에 자주 한 일이라 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들을 다시 본다던가, 파스타를 만들어본다던가 하는 그런 일이었다. 이번 ‘월간 영감’에는 그런 걸 적당히 쓰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몇 문장 적다 생각해보니 그건 영감은 아니었다. 그냥 최근 관심사에 불과했더라고. 그럼 왜 그런 관심사가 생겼나 생각해보니 그 끝에는 ‘고급짐’이라는 허망한 영감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그 ‘고급짐’은 고급 헬스장이 아니라 고급스러움이다. 기준 없는 허영이 깃들어 슬퍼진 단어 ‘고급’스러움. ‘높을 고’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순간 계급이 생겨버리는, 이 세상 뭐든 ‘급’이 있다고 규정짓는 듯한 띠꺼움이 묻어나는 단어다.

지금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고급은 꼭 비싸고 사치스러운 물건, 단지 럭셔리 브랜드 등과는 약간은 다른 부분이 있다. 비싼 것 중 대부분은 고급이지만 모든 고급이 비싼 건 아니니까. 역사, 이야기를 간직하고, 뿌리를 계속해서 탐구하다가 이 세상으로 튀어나온 근본 있는 것들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고급의 범주에 속한다. 계속해서 쿨한 감도를 유지하면서 근본을 생각하는 제작자는 많지 않다. 현실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인정해주는 사람도 잘 없다. 심지어 ‘인정받기’가 주된 목적이면 곤란하잖어. ‘근본 있는 진정한 고급’, 여기서 쓰인 두 단어인 ‘진정’이라던가 ‘근본’이란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비웃는 사람조차도 자신들이 멋지다고 생각하거나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 브랜드, 콘텐츠 등은 아마도 근본과 진정성을 끊임없이 탐구한 경우가 분명 대부분일 것이다.

과거엔 ‘근본을 품은 고급’은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미디어 덕에 인터넷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우리는 어지간한 건 다 알 수 있게 되었고, 살 수 있게 되었고,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한번 유행이 오면 크게 불어닥치는 한국에서 인스타그램은 서로의 계급을 감시하고 평가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즉각적인 반응에 집중하는, 가볍고, 피곤한 무한 경쟁 신자유주의의 노예 같은 K-스타일의 최저가 비교 같은 껍데기적 합리성에 목매게끔 설계된 K-시스템이 개탄스럽다. SNS용 셀피를 위해 누구나 같은 외모로 만드는 사진 이펙트를 매번 넣다가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두 개의 자아가 형성돼서 병원을 찾아가는 일이 없기 바란다. 아쉽게도, ‘고급’은 모두가 전유할 수 있는 그런 카테고리가 아니다. 내가 흉내를 내려하면 또 어디론가 달아날 것이다. 외형이 아닌 내적 근본(?)을 위해 지식을 탐구하면 좋겠지만 오늘도 집에 가서 TV나 보겠지.

박진우(VISLA Graphic Designer)


진행 │ 박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