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T: The Magazine of Gourmet Bathing’은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제작된 미학 잡지다. 무엇을 다루냐고? ‘고메 목욕’을 다룬다. 대체 고메 목욕이란 게 뭘까?
잡지를 제작한 레너드 코렌(Leonard Koren)은 샤워, 누드, 미학적인 삶에 유독 관심을 뒀다. 순수예술가로 활동한 레너드는 잡지 WET과 함께 23명의 여성이 목욕을 즐기고 있는 실크스크린 작품 ‘23 Beautiful Women Taking a Bath’나 17명의 남성이 샤워하는 모습을 담은 출판물 ‘17 Beautiful Men Taking a Shower’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건 포르노가 아니다. 섹슈얼리티는 삶의 진실이자 유머로 사용되었을 뿐.”
레너드 코렌은 벌거벗은 몸, 아니 벌거벗은 삶을 마주하는 순간을 찬양했다. 목욕하는 환경이 매우 특별하다고 말이다. 육체적으로나 은유적으로 일단 모두 벗고 있다는 면에서 일종의 친밀감이 생기니까. 미식의 영역만큼 목욕도 철학적, 심미적 취향의 조예를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본 것.
“이 잡지가 강아지 기저귀나 반려 돌처럼 알기 전에는 필요하다는 생각도 못 했지만, 알게 된 이상 삶에 없어선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
레너드 코렌이 WET 창간호에 남긴 말이다.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사람은 발명가와 같다. WET이 만든 ‘고메 목욕’ 문화는 단순히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이물질을 씻어내는 기본적인 목욕 행위와 달랐다. 물이라는 근본적인 물질을 우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새롭게 향유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즐거움에 집중했다. 서른네 권의 잡지가 제작될 때까지 직접 벽돌로 온천탕 만드는 법, (몸 안을 헹구는 관점으로) 물 마시기, 공공장소에서 젖어보기, USC 수영팀 인터뷰, 개를 위한 목욕, 물침대 리뷰 등 축축이 ‘젖은 이야기’라면 가리지 않고 다뤘다.
애초에 고메(프랑스어로 미식가)라는 말이 음식을 즐기는 문화에서 나오긴 했으나, 어디에나 고메의 영역이 있다. 미묘한 차이로 인한 즐거움, 그리고 신선함을 향한 집착(?)만 있다면 말이다. 고메 돌멩이, 고메 걷기, 고메 농담도 가능한 셈.
WET은 잡지 그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전위적인 7080년대 미국 예술계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 미국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활동한 다수의 순수예술가, 사진작가, 배우,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가 객원 작가나 크리에이터로 참여했으며 그러기에 매호 ‘목욕’을 주제로 실험적이고, 유쾌하게 표현된 ‘날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전위적이었던 나머지 네크로필리아(시체 애호) 경험기를 기사로 다뤄 당시 예술계로부터 상당한 혹평과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속 변화하는 WET의 표지 그래픽과 내지 레이아웃은 비대칭적이고, 그리드를 파괴하고자 한 7080년대의 급진적인 뉴웨이브(New Wave)를 상징적으로 느낄 수 있어 수작으로 여겨진다.
전봇대에 붙인 잡지 홍보물이나, 동료 작가와 잡지 구독자를 위한 파티 초대장에서 캘리포니아 도시의 쿨(Cool)함이 넘실댄다. 아쉽게도 WET은 금융 문제로 1981년에 34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MoMA, 하버드와 예일 대학교에서 일부를 소장 중이며, 현재는 2012년에 발행된 ‘Making WET: The Magazine of Gourmet Bathing’만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WET magazine 공식 사이트, GUY WEBSTER 웹사이트, LANVIN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