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스트리트웨어 신(Scene)의 한 축으로 오랜 시간 로컬의 지지를 받고 있는 패션 브랜드 ‘4DIMENSION’이 한국을 찾았다. 아시아의 수많은 브랜드가 약진하는 가운데, 10년이라는 긴 시간 묵묵히 그들의 터전에서 다양한 일을 꾸며낸 4DIMENSION은 그 무대를 세계로 확장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4DIMENSION의 디렉터 케빈 린(Kevin Lin)의 하루 역시 바삐 흘러간다. 브랜드의 운영은 물론, DJ로도 활동 중인 그는 긴 시간 대만 타이베이 속 켜켜이 쌓여가는 하위문화의 장 속에서 종횡무진 활동 중이다. 본 인터뷰를 통해 대만의 패션 브랜드, 나아가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 조금이나마 호기심이 일길 바라며, 케빈 린과의 대화를 아래에 기록해둔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타이베이 기반의 패션 브랜드 4DIMENSION과 nul1org의 설립자 케빈 린이라고 한다. 두 브랜드의 그래픽 디자인과 생산 관리 등 운영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4DIMENSION의 브랜드 콘셉트는 무엇인가?
일상에서 착용할 수 있는 기능적인 의류를 선보이려 한다.
브랜드 네임을 4DIMENSION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가 검색 시 잘 노출되기 위해 고유명사로 짓는 걸 선호하지 않나?
10년 전쯤 유튜브에서 우연히 양자역학에 관한 동영상을 보고 별생각 없이 이 이름을 택했다. 거창한 의도는 없었다.
컬렉션을 전개할 때 주로 어디서 많은 영감을 얻나.
평소 여러 플랫폼에서 다양한 용도의 옷을 많이 구매해 연구하고 개선한 후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재창조하는 걸 즐긴다. 4DIMENSION의 영감은 의복과 그 저변의 문화 그 자체다.
컬렉션 아이템 중 상당수가 소재와 절개 등 많은 디테일을 지니고 있다. 심도 있게 패션을 공부한 것 같은데.
대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실제 브랜드를 꾸리고, 업계에서 일하며 의류의 생산 과정에 대해 더 깊게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다양한 브랜드의 옷을 사고 공부하며, 그 수준을 높여갔다.
서울은 도심 내 의류 원단 시장과 제작 공장이 있어 의류 제작의 접근성이 쉬운 편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이런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하던데, 타이베이의 의류 생산 시스템은 어떤가?
타이베이에서 브랜드를 시작하는 건 쉽지 않다. 공장 대부분이 수도 외곽에 있어 다른 도시까지 가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 요즘에도 타이베이를 기반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가 꾸준히 생겨나고는 있지만, 대만의 의류 공장이 그 수혜를 입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생산 시스템이 주변의 베트남이나 중국에 있는 의류 공장으로 대체되면서 대만의 의류 생산업은 점차 사양 산업으로 접어드는 추세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케빈과 4DIMENSION을 만든 자양분은 무엇이었나?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자랐다. 성장하는 동안 두 나라의 문화를 골고루 흡수할 수 있었지. 우리 가족은 학구적인 분위기의 매우 평범한 집안이다. 부모님 모두 굉장히 이성적인 분인데, 그런 것들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생활 양식부터 브랜드의 톤, 심지어는 그래픽 디자인에서도 그런 성향이 묻어 나오고 있다.
타이베이의 많은 젊은이가 4DIMENSION의 의류를 즐겨 입는다고 들었다. 더 큰 시장에 대한 욕심도 생겨날 텐데,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면?
내년부터 한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를 시작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열 예정이다. 이런 활동으로 전 세계의 더 많은 고객에게 다가가려 한다.
꽤 오랜 시간 브랜드를 전개했음에도 당신의 인터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평소 인터뷰를 꺼리는 편인가.
조금 그런 편이다. 하하. 내 인터뷰를 찾고 싶다면, 중국어로 검색하는 게 빠를 거다.
이번에 서울의 패션 브랜드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과의 협업을 진행했다, 둘은 어떻게 이어진 사이인가?
앨런 훵(Allen Huang)이라는 친구의 소개로 처음 인터내셔널을 알게 됐다. 그가 우리 둘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이야기해줬거든. 그렇게 ‘Win53’이라는 바에서 첫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고, 파이널(Final)이라는 클럽에서 파티까지 열었다.
이번 협업은 어떻게 준비했나, 동시에 컬렉션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이야기해 달라.
우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어떤 컬렉션을 전개할지 계속해 이야기했고, 동시에 나는 인터내셔널의 멤버인 임솔과 비전, 예츠비의 스타일을 꾸준히 관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아이템과 디테일을 디자인할 수 있었지.
인터내셔널이 레이브와 파티 컬처를 바탕으로 하는 브랜드인 만큼 플로어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했고, 전체적인 실루엣 또한 한국과 대만의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을 반영했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서울 곳곳에서 룩북까지 촬영했다. 로케이션도 직접 선정했나?
서울에 도착한 첫날 숙소 근처인 신설동역 부근에서 협업 컬렉션 룩북을 촬영했다. 서울은 김기덕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언덕이 많아 좋더라. 그 주변의 종로도 멋진 곳이다. 타이베이에 있는 우리 스튜디오 주변과 비슷한 느낌이라 편안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 또한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그 며칠간 서울에서 어떤 걸 느꼈는지 궁금하다.
서울은 커다란 타이베이 같다는 것?
대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지금, 대만의 서브컬처 신은 어떤 모습인가? 지금 유행하고 있는 패션이나 음악 장르를 알려줄 수 있나.
다양한 문화가 점차 세분화되는 형세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스타일의 브랜드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3~4년 전만 해도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세 개 정도 있었다면,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아졌다. 타이베이뿐 아니라 다른 도시 타이중에서도 그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발전하는 중이다. 지금 대만의 유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여러 젊은이가 새롭고도 다채로운 문화를 탐구하고,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느낌이다.
브랜드 운영과 함께 DJ로도 활동 중이다. 평소 어떤 음악을 플레이하는지 궁금하다.
BPM 130~140 정도의 1시간 세트에 힙합이 섞인 댄스 음악을 주로 플레이한다.
이러한 음악적 성향이 당신의 의류 컬렉션, 작업에도 녹여져 있나?
4DIMENSION보다는 nul1org에 음악적 영감을 반영하고 있다.
본인이 주로 음악을 트는 타이베이의 베뉴를 소개해달라.
파이널 타이베이, 여기는 장르 제한이 없어 정말 많은 장르의 아티스트가 뒤섞여 자신의 음악을 들려준다. 타이베이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는 걸 권하고 싶다.
같은 아시아권에 있지만, 한국과 대만의 문화적 교류는 그리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패션은 더욱 그렇고, 그 이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쎄, 대만에게 한국은 엄청난 문화 수출국이다. 많은 대만인이 한국 드라마나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와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며, K-팝 역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 e스포츠 팬 중 상당수가 T1과 Gen.G를 응원하지. 나 또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이나 엑슬림(Xlim), 산산기어(San San Gear), 보이롱페이스(Boylongface), 떠그클럽(Thug Club)과 같은 한국 브랜드의 소식을 찾아보고, 한국 래퍼의 음악도 자주 듣는다. 대만도 이러한 문화가 이제 막 일어나기 시작한 단계이기에 앞으로 우리의 문화를 한국의 알릴 기회가 생길 거라 믿고 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이 과거의 스트리트웨어 마켓을 주름 잡고 있었다면, 이제는 여러 아시아 국가의 패션 브랜드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흥미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한국 브랜드의 행보가 재미있다. 앞서 몇 가지 한국의 패션 브랜드를 언급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각각의 브랜드가 또렷한 스타일을 지닌 것 같다고 느꼈는데, 내가 관찰한 바와 실제 한국에 방문해 바라본 모습이 일치해 더욱 흥미로웠다.
올해 대만 서브컬처 신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인가?
11월 11일에 전자음악 축제인 일 페스티벌(Eel Festival)이 열린다. 국내외 전자음악 뮤지션이 모이는 행사인데, 정말 기대된다.
당신의 또 다른 브랜드 ‘nul1org’에 대해서도 소개해줄 수 있나? 4DIMENSION에 비해서 조금 더 캐주얼한 분위기로 전개되는 것 같은데.
4DIMENSION이 내가 선호하는 옷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브랜드라면, nul1org는 옷 이외 내가 좋아하는 것을 녹이는 브랜드다. 여러 이슈와 정치적 입장, 추억 등 내 내면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려 한다. 더불어, 다양한 실루엣이나 실험적인 옷을 만들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
두 개의 브랜드를 동시에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브랜드 사이에서 업무와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고 있나.
지난 1~2년 동안 이 문제에 직면해 왔다. 브랜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정말 힘들었지. 내 연간 일정은 두 브랜드의 컬렉션 출시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사람 대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사람, 당신 어느 쪽에 속하는가?
본능적인 부분은 nul1org, 이성적인 부분은 4DIMENSION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2023년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내년의 계획은 무엇인가?
운영 중인 두 브랜드의 해외 브랜드 협업과 오프라인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어 긴장되고 설렌다. 계획 중인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랄 뿐이다.
Editor | 오욱석
Photographer | 유지민
Special Thanks | The Internatiiio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