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 │2017년 12월호 │정재석 기고

영감 [令監]

생성시기 - 조선, 1392년(태조 1년)
유래

조선시대에 정3품과 종2품의 당상관을 높여 부르던 말이다. 벼슬이 그 이상일 때는 대감(大監)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 중기에 80세 이상의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명예직으로 수직(壽職)이라는 벼슬을 주었는데 그들까지도 영감이라고 높여 불렀다.

이 어휘의 생성 시기는 조선시대 건국 연도로 잡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감 [令監]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2012. 1. 20., 예담(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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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에게 헌정하는 배리 해리스의 “Fukai Aijo”

배리 해리스(Barry Harris). 그는 40년대 중반 미국에서 유행한 비밥(Bebop, 복잡하고 빠른 템포의 멜로디와 즉흥연주가 특징인 재즈 연주법)을 대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다. 1950년대에 접어들며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등 재즈계 거물들과 합주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1976년에 도쿄로 첫 공연을 떠나는데, 이때 일본의 신예 재즈 피아니스트 료 후쿠이(Ryo Fukui, 福居良)를 필연처럼 만나게 된다. 둘은 얼마 되지 않아 음악적으로 소통하는 사이로 발전했지만, 배리 해리스는 짧은 일정이 끝난 뒤 뉴욕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얼마 뒤 배리 해리스는 료에게 헌정하는 “Fukai Aijo(深い愛情)”를 작곡한다. ‘깊은 애정’을 의미하는 이 곡, 전체적으로 침착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동시에 비밥의 흥이 여실히 담긴 곡이다. 장중하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의 “Fukai Aijo”는 창작 배경을 알지 못해도 충분히 음미할 만하다.

2016년 3월, 료는 갑작스러운 림프종으로 사망한다. 오랜 시간 친우로 지내온 배리 해리스는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나머지, 뉴욕의 어느 한 워크숍 세션에서 “Fukai Aijo(深い愛情)”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며 료를 추모한다. 40여 년 전의 모습은 아니지만, 백발의 그는 다시금 그때 당시 감정을 상기하는 듯 보인다. 영상 초반 희미하게 들려오는 “어떻게 연주하는지 까먹었다(I forgot how to play the thing)”라는 말이 우습게 배리 해리스는 결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완주를 선보인다. 1976년에 처음 만나 2016년에 사망한 료, 40년의 우정과 료를 향한 진실한 감정이 함께했기 때문이 아닐까.

VISLA 에디터 이준용 

모듬 사시미

육고기를 회보다 더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어릴 적부터 가족 외식 장소는 대부분 고깃집이었다. 심지어 나는 술을 자주 즐기지 않아서 국내에서 대부분 소주와 함께 소비되는 회를 접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20대 초중반,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사시미 종류보다는 저렴한 안주를 찾았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자 술자리에서 슬슬 ‘회’가 등장했다.

이자카야의 ‘모듬 사시미’라는 존재를 파악한 건 불과 몇 개월 전. 우니니, 참치니, 전복이니, 개불이니 하는 낯선 친구들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소주 소비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자극적인 볶음류, 소주를 마실 때 빠지지 않던 탕류 안주는 만취행 급행열차의 연료처럼 보였다. 마포의 한 이자카야에서 처음 접한 모듬 사시미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용히 4인 이하의 인원이 봉뚜소(봉창 뚜드리는 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기분 좋게 취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술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회는 날 것이기에 허구한 날 케미컬 탄산음료, 햄버거나 처먹던 나에게 정신적, 육체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적절한 올가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세련된 작품처럼 차려진 모듬 사시미는 괜시리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향한 내 가슴 속의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모듬 사시미는 자극적이고 기름진 것들로 얼룩진, 진득함이 부족한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화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올가닉한 영감이다.

VISLA 그래픽 디자이너 박진우

톰 웨이츠와 피아노

그런 날이 있다. ‘내일부터 완전히 새롭게 태어날 거야’라고 되뇌는, 실제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할 리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어떤 확신에 찬 기대감이 나를 떠밀어 그 말을 기어이 내뱉게 만드는. 그런 날은 꼭 술에 취해있다. 다음날이면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나서 ‘어제 분명 무슨 결심을 했는데’라며 고개 한 번 갸웃거리다 다시 일상을 파고드는 나 자신을 본다. 안타깝게도. 그날도 술기운을 빌어 휘적거리며 걸었다. 세상 다 산 사람마냥 푸념도 뇌까려보다가 어린아이처럼 히죽거리기도 하다가 문득 톰 웨이츠(Tom Waits)를 떠올렸다. 꼭 들어야만 하는 노래가 있어야 하듯이 “Piano Has Been Drinking (Not Me)”를 골랐다.

“피아노가 술에 취했네. 넥타이 놈은 졸고 있고, 밴드 녀석들은 뉴욕으로 돌아가 버렸어. 주크박스는 물 좀 빼러 가야 할 거야. 카펫은 머리를 좀 다듬어야 할 것 같고, 조명은 감옥의 감시탑 같네. 전화기는 담배가 떨어져서 안절부절못하고, 발코니 놈은 여자에 정신 팔렸네. 피아노가 취했다고. 피아노가 마신 거라니까”.

톰 웨이츠가 걸쭉한 목소리로 읊는 이 노래는 알코올중독자가 내뱉는 헛소리와 진배없다. 매일 술 마시는 사람이 뻔한 핑계를 대듯, 그는 주변 친구들을 놀리며 정작 자신은 취하지 않았다고 둘러댄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톰이 언급하는 친구들이 사실 주변에 보이는 집기라는 점이다. 술에 취한 나머지 사물을 의인화해서 그들의 행동을 묘사하는 상황이 익숙하면서도 퍽 재밌다. 노가리 하나에 소주 댓 병 시켜놓고 퍼마시다 취해서 혼자 이상한 소리나 하는 아저씨들이 떠오르다가도 노래의 왜곡된 풍경이 초현실주의의 달리나 마그리트를 펼쳐놓는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곡은 거나하게 취한 이가 친구의 부축을 받고 질질 끌려나가면서 내뱉는 헛소리다. “야, 나 안 취했다니까. 그 새끼 취한 거 봤어? 여자나 꼬시고 있던데?”. 그는 애꿎은 피아노에 책임을 전가한다. 친구를 부축하고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의 역할은 곡에서 피아노가 대신한다. 가래 한 번 탁 뱉고,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는 톰의 걸음걸이에 한 발씩 리듬을 맞추며 동행하는 피아노는 이 곡의 또 다른 주인이다. “피아노가 취했다고”. “알아, 인마”. “내가 아니라”. “알아, 인마”.

스스로 꿈꿔왔던 삶이든, 운명의 손길에 이끌렸든 톰 웨이츠는 젊은 시절, 오랜 시간을 방랑했다. 그 경험이 오롯이 담긴 그의 목소리에는 고독한 냄새가 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이 곡을 쓴 배경에는 지독한 회한이 서려 있을 지도 모르나 천상 예술가였던 톰이기에 그 기억은 한바탕 희극 같은 시 한 편으로 귀결한다. 이름 모를 술집에서 엉망이 되도록 취한 그가 노래하던 1976년의 엘에이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서울 길거리에서 나는 이 곡을 들으며 촛불 같은 위안을 얻는다. 많은 것을 바랐지만 그만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발짝 더 디뎌야 하기에. 안타깝게도.

VISLA 편집장 권혁인

왕 카레 돈가스 덮밥

나 같은 허접자취인의 수많은 걱정 중 하나라면, 단연코 먹는 일이다. 실내 생활이야 추우면 보일러를 켜면 되는 것이고, 더우면 더운 대로 선풍기나 에어컨으로 몸을 식히면 되니 큰 문제는 아니다. 입는 일 역시 버튼 하나면, 세탁기가 다 해주는데 뭘. 바야흐로 버튼 하나면 만사 오케이인 세상이다. 그런데 음식은 좀 다르다. 마트에 가서 손수 식재료를 사야하고, 손질하고, 불을 켜서 지지고 볶고, 준비하는 데만도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먹고 난 뒤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올해로 방 한 칸을 구해 자취를 시작한 지 4년을 넘겼지만, 이 먹고 사는 일에는 여러모로 적응이 안 된다. 먹고 사는 게 인생의 가장 큰 미션이라고 하지만, 잘 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꾸역꾸역 하다 보면, 엄마가 있는 서남쪽으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절로 든다.

그렇게 음식을 하지 않게 된 게 3년째,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갖가지 식재료를 본 이후부터는 무조건 완성된 음식을 사 먹는다. 불행 중 다행은 자취방 반경 5분 거리에 국민 도시락 브랜드인 ‘한솥 도시락’이 있다는 사실이다. 유명 연예인을 위시한 갑작스러운 편의점 도시락의 약진, 그리고 다양한 도시락 브랜드의 출범과 함께 도시락 춘추전국시대 속에서 그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국내 도시락 산업의 중심은 언제나 한솥이었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겠지. 그렇게 특별한 약속 없는 무료한 주말 홀로 점심을 먹을 때면 무조건 한솥으로 돌진했다.

지불하는 가격에 매번 ‘0’ 네 개를 더 붙여 말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시시껄렁한 농에 익숙해져 갈 때쯤 그간 나의 올타임 넘버 원 메뉴였던 돈가스 카레도 싫증났다. 메뉴판 앞에서 곰곰이 고민하는 찰나 주인아주머니가 추천한 한솥의 신메뉴, 그게 바로 오늘의 주인공 ‘왕카레돈가스덮밥’ 되시겠다. 그간 한솥에서 판매하던 일반적인 ‘카레 밥+돈가스’ 조합을 상상했다면 굉장한 오산이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매콤한 일본식 카레와 달달한 돈부리 소스가 정확히 반씩 나뉜 그 비주얼부터가 만점이거니와 그것을 잘 비벼 한 숟갈 떴을 때 거짓말을 조금 보태 약간의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그런 맛. 일종의 혁명이라 불러도 나쁘지 않은 맛이다. 더욱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직접 음미해보고 이 감동을 나누길 바란다.

기껏 5,500원짜리 음식에 얼마나 큰 영감이 있겠냐만, 도시락 외길 24년의 어엿한 중견 요식기업이 이런 발상을 해냈다는 것에 감동했다. 일본식 카레를 좋아한다면, 자연스레 돈부리도 좋아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경(?)일식집에 가면 항상 이 두 메뉴를 고민하곤 했었지. 이런 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새해 3일 전에 하고 있다. 도대체 짬짜면 이후로 이런 혁신이 또 어디 있냐고…….

VISLA 에디터 오욱석

인테리어 사진

7년간의 외국 생활 동안 생겨난 작은 취미는 인테리어 사진을 찾고 모으는 일이다. 처음에는 예쁘고 분위기 있거나 야한 사진을 구경하는 일로 텀블러를 접했다가 단숨에 목적이 바뀌었다. 인테리어 사진으로 도배된 여러 텀블러에서부터, 나중엔 ‘Yatzer’나 ‘Ignant’와 같은 큐레이션 페이지, 심지어 한국에서 전시를 연 적 있는 ‘Selby’의 블로그만 뒤적여도 적게는 서너 시간 많게는 반나절이 훌쩍 가곤 했다. 관련 전공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사실 공부할 엄두조차 나지 않지만, 자주 뒤적거리다 보니 이젠 제법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이 만든 공간이구나’ 혹은 ‘어떤 목적의 공간이구나’라는 걸 사진 한 장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 아지트, 작업실 혹은 사무실이 생긴다면 갖가지 상상을 하지 않는가. 특정 공간 사진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이 이 공간을 만들었고, 또 이런저런 사람들이 이 공간을 이렇게 쓰겠구나, 여기에선 이런 일도 벌어질 거고, 저렇게 공간을 쓸 수도 있겠지, 내가 이 공간에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와 같은 상상을 사진 한 장만으로도 온종일 할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결국 다양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색과 모양을 의도와 취향에 맞게 조합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마치 어릴 때 하던 레고와 비슷한 느낌이다. 발품을 팔 수 있는 여유, 확고한 취향, 두둑한 주머니만 있다면 이만큼 매력적인 일도 없다. 근데 보통 이 셋을 다 갖추는 게 제일 어렵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상상하는 일쯤이야 몇 시간이고 투자할 수 있으니까.

발품을 팔 여유도 없고 두둑한 주머니는 더더욱 없지만, 어설프게라도 만들어진 취향으로 6개월 전 한남동에 공간을 하나 만들었다. 프리랜서나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작업을 하거나, 미팅하거나, 늘어져있거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코워킹 스페이스라고 설명은 하지만, 그러기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다. 그래도 순전히 내 취향으로만 만든 공간을 더 많은 사람이 찾아주면서 이곳이 다양하게 활용되는 모습을 최대한 숨어서, 몰래 흐뭇해하고 좋아하면서 지켜보는 게 요즘 내 행복이다. 그렇기에 난 또 다른 공간도 만들 계획이고, 오늘도 난 또 부지런히 레퍼런스를 위해 인테리어 사진을 찾아야 한다.

한남동 코워킹 스페이스 ‘윌로비’ 주인 정재석

글 │ VISLA, 정재석
커버 이미지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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