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 │ 2017년 11월호 │ 양경철 양성준 기고

많은 예술가가 예쁘게 포장해서 말하는 영감이라는 것들이 사실 교묘한 레퍼런스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 있다. 미심쩍은 그 의문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연히 찾아온 엉뚱한 상상이 인생을 조금 다르게 만드는 데 일말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영감이라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월간 영감 11월에는 스케이터 양성준과 대학생 양경철이 기고했다.

 

헬요일(Hell Monday)

나는 VISLA 에디터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일종의 괴리감을 느끼지만, 또 이런 모순적인 환경에서 내 나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주말이 끝나는 일요일 새벽, 마음의 평온이 깨지면서 즉시 불안감으로 채워지는 느낌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누군가 그러더라. 월요일은 ‘헬요일’이라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말도 안 되는 합성어가 가슴에 와닿는 거지. 출근길 밤새 쌓인 메일함을 훑으며 이질적인 대리님 코스프레를 하고 또 가용할 수 있는 전투력을 체크한다.

이 변태 같은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 대안이 없는 게 문제. 어쨌든 ‘헬요일’, 딱 버틸 수 있을 만큼만 고통을 가한 후 그 지옥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살아남는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한 건 이 순간이 지나면 주말을 공략할 전술과 일정을 짜기 시작한다. 내 일상을 보상받고 싶어서일까. 꽤 오랜 시간 이 생활을 반복하는데, 언제쯤이면 별것 아닌 게 될까? 언제쯤 이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답 없는 고민에 젖어 드는 월요일. 잠시 비현실적인 상상을 펼쳤다가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충실한 회사원으로 돌아간다. 혼란스러운 월요일 덕분에 다시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이 시간.

VISLA 에디터 이철빈

 

필름(Film)

얼마 전부터 충무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필름 수업을 듣고 있다. 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대략 3년 전부터 시작해 한 해, 두 해를 거쳐 한 롤, 한 롤 필름이 쌓여갔지만, 정작 필름에 관하여 아는 게 많지 않다. 필름을 넣고, 찍고, 다 찍으면 현상소에 맡겨서 스캔한 파일을 받는다. 그것으로 끝. 어느 순간부터 이 방식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것도 별일이 없는 이상 필름만 쓰면서, 심지어는 이걸 팔아서 돈을 버는 데도 어떻게 필름에 상이 맺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눈에 보이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쉽게 말해 리얼하고 싶은 거다. 그놈에 날 것,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라는 단어가 주는 멋을 위한 명분과 사진 속 입자에 취한 감성팔이가 더는 싫었다. 그렇게 아무리 찍어봤자 소셜 미디어에 떠도는 건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의 산물이라는 것을. 주변에 꽤 많은 사람이 필름을 쓰지만, 스캔 어디다 맡기냐는 말을 먼저 듣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웃기면서도 슬프다.

VISLA 포토그래퍼 / 에디터 백윤범

 

빌헬름의 비명(The Wilhelm Scream)

영어로 ‘The Wilhelm Scream’, 독일어로는 ‘Der Wilhelmsschrei’라고 한다. W가 영어의 V로 발음되는 독일어의 특성상 ‘Wilhelm’을 한국에서는 독일식으로 발음하여 ‘빌헬름의 비명’이라고 번역한다. ‘빌헬름의 비명‘은 매우 높은 음으로 “아아아악~” 하고 내지르는 비명 또는 단말마로, 이름 없는 병사가 총을 맞고 죽는 소리, 지나가던 애꿎은 일반인이 갑자기 봉변을 당하는 식으로 영화나 게임에서 주로 엑스트라가 내는 효과음을 의미한다. 그 이름의 유래는 1953년의 영화 ’페더강의 전투(The Charge at Feather River)’에서 ‘빌헬름 일병’이라는 캐릭터가 죽으면서 이 비명을 낸 것이 유명해진 뒤부터다. 재미있는 점은 이 효과음이 원본과 동일하거나 비슷하게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것. 우리가 익히 아는 그 효과음이 바로 그것이며 스타워즈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아이언맨부터 심슨가족과 토이 스토리, GTA와 메탈슬러그 시리즈 그리고 스타크래프트까지 수도 없이 많은 작품에 이 효과음이 사용되었다.

이 효과음이 널리 쓰이게 된 이유는 웃기고, 찰지기 때문이다. 찰지다는 것은 그 인상과 효과가 확실하다는 말이다. 누구나 한 번이라도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 소리. 그 깊은 인상에 어렸을 적 우리는 이 효과음을 한 번쯤 따라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빌헬름의 비명’은 들으면 누구나 알 정도로, 그리고 따라 해봤을 정도로 친숙하지만 그 정확한 명칭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동명으로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노래가 있다. 하지만 제임스 블레이크는 모두에게 친숙하지만 정작 그 이름은 모르는 이 우스운 효과음을 다르게 표현했다. 그는 이 곡에서 ‘The Wilhelm Scream’이라는 제목을 빌려 자신의 꿈과 사랑을 모르겠다며 4분 38초의 플레이 타임 동안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이 노래를 듣고 나서는 빌헬름 일병의 비명이 더는 우습게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빌헬름의 비명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그 후로 이 단말마가 다소 무겁게 들리기까지 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1917년, ‘직업으로서의 학문(Wissenschaft als Beruf)’이라는 대학 강연에서 말하길, 영감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울 때’와 같이 일상에서 그것을 기대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만 영감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영감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지 말고 그 이름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빌헬름의 비명을 내가 새롭게 인식한 것처럼.

대학생 양경철

 

마감(Deadline)

게으른 놈한테는 마감이 영감이다. 채찍을 들어줘야 움직인다. 친구와 약속도, 개인적인 계획도 다 마감이다. 회사도 똑같다. 금요일이 되면 병신같이 그제야 이번 주에 끝냈어야 하는 업무 목록을 꺼낸다. 미리 한 번 열어 볼걸. 뒤늦게 열어 본 계획표에는 각종 마감 목록이 있다. 업무 주간보고도 결국 이번 주와 다음 주의 마감 목록이다. 이번 주에는 이렇게 제 목을 조일게요. 이런 일에 이때까지 한번 시달려 보겠습니다. 그걸 매주 점잖은 말로 정리한다.

오랜만에 P형한테 연락이 왔다.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술 먹고 너 괴롭히던 형’이란다. 결혼이 12월 3일이니까 올 수 있으면 오라는 말이 짠하고 고마웠다. 이 형은 하객 초청 마감 전에 나를 불렀구나. 결혼식 때문에 할 일이 많을 텐데, 결혼 업무 주간보고는 그야말로 치열할 텐데. 신랑 입장하기 전에, 마감 전에 나를 용케 챙겼구나. 식장에서 보면 얼싸안고 울자는 말을 나누고 줄였다.

목요일까지 줘야 하는 이 글도 있다. 용케 마감을 지켜볼 생각이다. 옛날에는 무작위 주제를 잡고 친구들이랑 1시간 동안 써 갈기는 연습도 했다. 뭐가 되려고 그렇게 했을까? 쓰기도 싫은 걸 1시간이라는 가혹한 마감을 스스로 정해놓고 써 갈긴 거다. 그때 질려서 다시는 쓰기 싫은 걸 안 쓰기로 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모든 친구에게 자신을 혹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하긴 떨어진 놈 이야기를 들을 리 있겠냐만.

어제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싸돌아다니다가 밤늦어서야 겨우 사과했다. 여차하면 하루를 넘겨버릴 수도 있었다. 왜 진짜 중요한 일에는 마감이 없을까. 엄마에게 안부 전화하는 것. 여자친구에게 사과하는 것. 평생 안 해도, 쫓아오는 팀장님이 없다. 하긴 마감은 중요하지 않은 일에나 있는 거다. 내가 까먹을 만한 일, 그런 작은 것들에는 일정 관리가 필요하니까. 마감이 있어야만 달리는 어리석음을 탓하면서 엄마에게 안부 전화나 드려야겠다. 벌써 마감이 한참 지났다.

스케이터 양성준

 

괴수(Monster)

여러 괴물딱지 피겨를 종종 사 모은다. 그 대부분은 일본의 유명 특촬물 울트라맨(Ultraman)에 등장하는 괴수인데, 그 수가 많지는 않아도 마음에 드는 걸 하나둘씩 책장에 쌓아둔다. 지금은 한물갔지만, 90년대 번성했던 소프비 ─ 소프트 비닐이라는 합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피겨 ─ 가 주 타깃으로 특유의 싸구려 같은 질감과 팔이나 허리 정도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한정된 움직임이 꽤 매력적이다.

다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우상이 있을 텐데, 내 우상은 울트라맨보다는 그 안에 등장하는 괴수였다. 울트라맨의 초기 기획은 매화 괴수와 괴수가 싸우는 완벽 괴수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울트라맨에서는 유독 많은 괴수가 등장하는데, 울트라맨 마니아끼리도 이게 히어로물이냐 괴수물이냐의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나 역시도 울트라맨은 괴수물이라고 굳게 믿는 괴수파라 괴수에게 요상한 감정이입을 하는 거겠지. 시리즈 속 괴수의 삶은 언제나 비슷하게 흘러간다. 울트라맨에게 매일 같이 존나게 얻어터지고, 응원하는 녀석 하나 없이 믿는 거라고는 제 몸뚱이밖에 없는데도 끈질기게 덤벼댄다.

지구정복과 이를 저지하는 울트라맨을 타도하는 것, 이 단순한 목표 하나로 움직이는 놈들이 밉지 않은 이유는 이 수많은 괴수가 우리 주변이 있기 때문일 거다. 지긋지긋한 영웅담을 듣고 칭송하는 것보다는 치열하게 싸우는 일을 되풀이하는 이를 응원하는 게 더 재밌고 보람차지 않나. 허접한 채색에 어딜 응시하는지도 모를 흐리멍덩한 눈, 무게 중심이 안 맞아 어딘가에 기대놓지 않고서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괴수 피겨를 보노라면, 이놈들이 나와 다를 게 뭐가 있나 한심하게 흘겨보다가도 괜히 한 번 더 보고 만지작거리게 되는 거다. 맨날 두들겨 맞는 게 일상이지만, 어떤 극이든 카운터펀치는 존재하는 법이니까. 언젠가 한 번 세게 쳐볼 날이 오겠지.

VISLA 에디터 오욱석

글 │ VISLA, 양경철, 양성준
커버 이미지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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