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액션 스포츠 브랜드 반스(Vans)는 ‘디스 이즈 오프 더 월(This is off the wall)’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창조적인 자기표현을 하는 이들의 외침과 이야기를 널리 퍼트렸다. 이에 반스는 ‘The Spirit of DIY’라는 새로운 캠페인을 진행하며, 다시 한번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의 글로벌 커뮤니티를 조명한다. 그들이 직접 원하는 것을 만들고, 개척하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지지하는 문화를 발전시키는 모습은 “DO IT YOURSELF”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 있다.
이에 반스 코리아는 펑크 밴드 파인더스팟(Find the Spot), 타투이스트 임예지, 플라워 그립 테이프(Flower Grip Tape)를 전개하는 스케이터 구현준과 함께한 ‘The Spirit of DIY’ 캠페인을 선보인다. 그들이 전하는 DIY, 그리고 창조적인 자기표현에 귀 기울여 보자.
구현준
플라워 그립 테이프를 소개하자면?
플라워 그립 테이프는 이전까지 내가 취미로 하던 그립 잡─그립 테이프를 활용한 커스터마이징─에서 파생한 브랜드다. 플라워 오브 라이프(Flower of Life)라는 기하학적 문양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이 문양을 좋아해 내 몸에도 이런 타투를 많이 새겼다. 어느 날 그립 테이프에 이 문양을 올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재미로 해본 작업이 그 시작이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른 이들도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국내에도 이런 방법으로 그립 테이프를 꾸미는 사람이 많은가.
외국에서는 가끔 찾아볼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이렇게 직접 그립 테이프를 완성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처음 스텐실 작업을 시작한 때는 언제인가.
작년에 처음 시작했다. 지금 일하는 세이버 스케이트 숍(Savour Skate Shop)이 오픈하고 나서 얼마간은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기는 싫고. 문득, 나도 스텐실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작했다. 숍에 있는 그립 테이프 몇 개를 잘라 작업해보니까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래서 저렴하게 조금씩 팔아볼 생각에 몇 종류를 제작 후 인스타그램에 올려봤는데, 금세 다 팔렸다. 이런 반응이 흥미로워 점점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초창기와 지금, 작업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나.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스프레이도 거의 없어서 작업물 대부분이 무채색이었다. 지금의 파스텔, 형광색은 거의 없었다. 이후 주변 사람이 독특한 컬러의 스프레이를 추천해줬는데, 그렇게 다양한 컬러로 작업하니 나도 재밌게 작업할 수 있고, 사람들 반응도 좋아지니 기분이 좋았다.
스케이트보드는 특히나 다른 문화보다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큰 것 같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고집이 생기는 것 같다. 스스로 취향을 굳혀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문화니까.
국내에서는 트랜지션 스케이터가 그리 많지 않은데, 언제부터 이런 스타일을 구축하게 되었는지.
내가 3년쯤 스케이트보드를 탔을 때 밥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한 사이였지. 어느 날 내 데크가 부서졌을 때 밥에게 데크를 하나 받았다. 그렇게 친해지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트랜지션을 처음 접한 것도 밥 덕분이다. 그렇게 트랜지션 스케이터의 영상을 찾아보다가 직접 그립 테이프 꾸미는 것도 보게 되고, 그때부터 계속 파고들었다.
스케이트보드 데크로 많은 아트워크가 나오고 있는데, 플라워 그립 테이프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그립 잡에 차별점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각자 좋아하는 게 있는 거고, 취향대로 꾸미는 거니까. 시각적으로 봤을 때는 내 작업은 밝다는 것? 그립 테이프가 밝아야 보드를 돌릴 때 더 크게 도는 것처럼 보여서 그립 테이프를 밝게 꾸미는 작업을 선호한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작업물이나 그래픽은 무엇인가.
따로 정해놓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그립 테이프에 낙서하는 걸 즐겼는데, 작업 스타일은 그때그때 바뀌는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그립 테이프를 잘게 잘라서 복잡하게 붙였다면, 지금은 또 단순한 작업이 좋다. 가위로 잘게 잘라서 데크를 빼곡하게 채우는 스타일에서 투명 그립 테이프에 사진을 붙여서 쓰기도 하고, 지금은 손으로 찢어서 붙이거나 예전에 했던 방법을 섞어서 쓰기도 한다.
작업 방식을 간략하게 설명해달라.
일단 데크를 내려놓고 어떻게 꾸밀지 머릿속으로 밑그림을 그린다. 이후 펜으로 데크에 그림을 그린다. 두서없이 낙서하는 거다. 다음에는 데크 컬러를 보고 그립 테이프 컬러를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마음 가는 대로 그립 테이프를 찢어 붙인다.
실제로 스케이트보드가 본인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꾸었나.
그렇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전에는 웃지도 않고, 사람을 많이 피했다. 스케이트보드를 만나고 긍정적인 영향을 꾸준히 받고 있다.
스케이트보드 문화 자체에도 DIY가 많이 녹아있다. 이런 스케이트보드 문화 속 DIY 문화에 관해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는지.
글쎄,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누군가에게 따로 공유하기 어렵다. 모든 스케이터가 엄청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보드를 진득하게 타는 사람을 보면 본인만의 고집이 있다. 각자의 성향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당신이 생각하는 “OFF THE WALL 정신은 무엇인가?
남의 인생에 맞춰 따라가며 살지 말고 자기 삶, 그리고 자기 멋에 사는 것.
파인더스팟
파인더스팟은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의 초창기 모습인 빠른 템포와 시끄럽고 날것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밴드였지만, 요새는 미드 템포의 80년대를 표방하고 있다. 80년대 하드코어 펑크 밴드를 촬영한 사진만 봐도 심장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좋아서 어렸을 때부터 밴드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만든 밴드다. 드럼을 치는 홍구, 보컬의 송찬근, 베이스를 치는 이동혁, 기타를 치는 문경훈까지 모두 넷이다.
펑크에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래 록(Rock)과 팝(Pop) 음악에 관심 있었다. 음악을 깊게 들으면서 메탈(Metal)과 펑크(Punk)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고, 다른 음악과 다르게 펑크 음악 안에 담긴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전까지 집에서만 음악을 듣다가 처음 공연장에서 펑크 음악을 듣고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하게 되었다. ‘럭스(Rux)’라는 밴드를 너무 좋아해서 펑크 신(Scene)에 처음 발을 들였다. 그 뒤로 점점 80년대 펑크 밴드인 데드 케네디스(Dead Kennedys) 등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과 같은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에는 한국에 CST 외에는 유사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밴드가 없었다.
보통 어떤 음악이든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에 벽이 있다. 펑크 같은 경우에는 관객까지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관객이 파티 플라이어나 티셔츠를 만들 수 있고, 공연 기획까지 함께할 수도 있다. 이런 문화가 좋아서 계속해서 펑크를 하고 있다.
어떻게 결성하게 되었나
원래는 베이스 없이 다른 아티스트의 노래를 카피하는 음악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제대로 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지. 이후 나와 동혁, 홍구가 함께 파인더스팟을 결성했다. 이후 경훈이가 들어오며 지금의 파인더스팟이 완성됐다.
밴드 활동을 해온 지 몇 년 정도 되었나.
첫 결성은 2007년, 첫 공연은 2008년 4월이었고, 그다음 해인 2009년에 첫 앨범이 나왔다.
지금 있는 이 공간 GBN의 설명 또한 빠질 수 없는 것 같다.
이 공간을 너무 사랑한다. GBN에서 로컬 펑크 밴드가 수도 없이 많은 공연을 했고, 한국에 오기 힘든 해외 밴드도 많이 불러서 재미있는 공연을 열고 있다. 얼마 전 3주년 기념 공연도 했다. GBN은 우리가 어릴 때 찾던 스컹크헬이 없어지면서 함께 사라진 펑크 아티스트의 아지트를 대신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끼리 하드코어 펑크록 쇼를 기획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랄까. 클럽 샤프(SHARP)와 더불어 펑크 밴드끼리 DIY로 운영하는 펑크 공간이다. 샤프는 신나는 펑크 록부터 스킨헤드 등을 위주로 공연한다면, GBN은 하드코어 펑크에 특화되어 있다.
펑크 뮤지션이 이 공간을 통해 어떤 방식의 DIY를 진행하는지 궁금하다.
아무런 외부의 도움 없이 밴드 섭외부터 홍보, 해외 밴드 케어까지 공연의 모든 것을 우리가 진행하고 있다. 사실, 예전에 예술인 창작지원금 사업에 지원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매주,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해오던 공연은 공인된 협회가 없어서 정식 공연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우리가 하는 DIY는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난 움직임이다. 제도권에서 벗어나야 DIY다.
DIY는 펑크 신에 특화한 문화 같다, 펑크 밴드에게 DIY란 어떤 의미인가.
DIY를 어떻게 규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저 우리가 좋아했던 80년대 하드코어 펑크 밴드의 수많은 움직임이 DIY라고 생각한다. 펑크가 전혀 대중적이지 않던 그 시절에 활동하려면 밴드 멤버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 친구가 차고 같은 곳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앨범을 제작하는 시스템이 당연시되어 왔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자연스러운 펑크의 태도로 작용한다. 과거 우리가 실제로 상황이 어려워서 불가피하게 DIY로 진행했다면, 지금을 일부러라도 DIY를 지향한다. 그게 멋있으니까.
DIY라는 포맷을 통해 많은 완성품을 만들었는데, 음악 외적으로는 어떤 활동이 있을까.
지금에 이르러 다른 나라의 펑크 신과도 공감대가 생기며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었다. 우리가 따로 페이를 챙겨주지 못해도 본인의 사비를 털어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밴드도 있다. 펑크 DIY의 제일 큰 결과물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펑크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슬랜트(SLANT) 같은 밴드가 그 좋은 예다. 홍콩 공항에서 밴드 티셔츠를 보고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이 말을 걸어와 친구가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아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다. 이런 경험 또한 DIY가 있기에 가능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DIY라고 하면 뭔가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이런 관계 역시 DIY 중 하나다. DIY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사귀고 싶은 친구를 사귀고, 열고 싶은 공연을 열고,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드는 거다. 내가 원하는 게 없다면, 그냥 내가 만들어버리면 되는 거지.
파인더스팟은 펑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나.
우리의 음악은 하기 싫은 것을 하기 싫다고 말 못 하는 경직된 한국 사회를 욕하고 화내는 가사가 주를 이룬다. 정치적인 얘기를 하자면 우파가 너무 싫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좋은 것도 아니다. 개인의 인생을 누군가 대신해서 좌지우지 하는 일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담론으로 오가지 않는 현실을 펑크로 푸는 거다.
음악이 아닌 삶의 방식에서도 DIY 정신이 이어지는지?
음악 외적으로는 쓰레기다. 술을 많이 먹는데 안주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이런 것도 DIY 아닌가. 하하. 자유롭게 일하는 게 좋아서 비교적 최대한 조직적이지 않은 곳에서 일하려고 한다. 한때는 NGO를 통한 환경 활동도 했다. 실제 펑크를 하면서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외국의 DIY 펑크 신에는 극단적인 사람도 많은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 음악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DIY를 지키는 게 진짜 펑크처럼 산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하면 굶어 죽기 딱 좋은데.
펑크의 DIY 정신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우리의 것이 아닌 남의 음악을 듣는 것. 구리다고 느끼면 안 하는 것. 큰 권력에서 멀어지는 것. 우리의 삶 그 자체.
예지
본인을 소개하자면?
타투이스트 임예지다. 타투 작업과 함께 하드코어 펑크 밴드 슬랜트(SLANT)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타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이제 타투를 시작한 지 4년 정도 됐다. 원래 그림을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펑크 공연을 많이 다니고, 펑크 역시 타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조금 더 빨리 익숙해졌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타투 스튜디오를 찾아 타투를 받았으니까. 사실 타투를 받기만 했을 때는 올드스쿨(Oldschool)이라는 장르가 주를 이뤄서 타투이스트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내 그림 스타일은 섬세하고 사실적인 느낌이 많아 타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거든. 그러던 중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떤 해외 타투이스트의 작업물을 봤는데, 내 그림 스타일과 비슷하더라. 나도 타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타투를 업으로 삼는 걸 고민했다.
방금 펑크와 타투 간의 밀접한 관련을 이야기했는데.
펑크라는 문화가 아무래도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러면서도 외향적인 모습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타투 또한 외향적인 의미가 많은 행위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거니까. 펑크도 그런 면이 있다. 펑크 음악을 하는 게 가장 큰 골격이지만, 펑크의 이미지가 있지 않나. 아무래도 그런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타투 또한 DIY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무래도 타투 신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회사처럼 일하는 타투 스튜디오도 있고, 개인으로 작업하는 이들도 있다. 결국 본인의 마음가짐의 차이가 아닐까. 타투는 100%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받는 사람의 동의가 우선이고, 그의 의견과 타투를 받을 피부가 필요하기에 작업자와 받는 이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작업이다. 그냥 내가 정한, 원하는 도안을 받는 이에게 해줄 수도 있지만, 서로 의견을 나눴을 때 더 좋은 작업이 나온다. 내가 못 봤던 부분을 그 사람이 알려주기도 하고.
본인 작업물의 특징이 있다면.
블랙워크라는 스타일로 통칭한다. 검은 잉크를 사용해 얇은 라인으로 섬세하게 그리는 거다. 일러스트적인 면을 강조한 타투다. 얇은 라인을 쓴다고 해서 파인 라인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바늘이나 머신이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기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타투 관련 제품이 많이 발전해 이전보다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다. 나 역시 나 자신의 타투 스타일을 정립하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한국의 펑크 신을 지지하고 있는지.
밴드를 안 했을 때는 디자인을 통해 이 신에 참여하고 지지했다. 우리에게는 밴드를 한다는 건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 마치 조기축구회 같은 느낌이랄까. 펑크가 좋아서 모인 친구들이니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우리끼리는 펑크 밴드를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데, 주변의 많은 이들이 우리의 음악 활동을 좋게 봐줘 일본 투어도 돌고, 지금까지도 재미있는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타투나 음악이 본인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내 타투 작업도 지금껏 내가 자라온 주변 환경, 경험이 녹아있다.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펑크도 큰 영향을 끼쳤고, 내 삶의 절반을 펑크를 들으며 살아왔으니까. 모든 음악 장르가 그렇겠지만, 음악에 따라 그 생활이 바뀌는 것 같다. 어떤 가사를 들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게 행동으로도 옮겨지지 않나. 펑크도 이유 없이 분노하고 부조리하다고 욕만 하는 건 아니다. 왜 그런지 스스로 묻고, 해결점을 생각한다. 소수자나 문제점에 집중하는 장르니까.
펑크의 어떤 요소에서 DIY 정신을 엿볼 수 있을까?
우리끼리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면 더는 DIY가 아니지 않나. 펑크라는 문화의 규모가 워낙 작으니 우리끼리 더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펑크라는 음악 장르 자체도 대중적이거나 모두를 환영하는 장르는 아니니까. ‘네가 원하면 와 같이 놀자’ 이런 뉘앙스지. 우리도 우리를 이해하는 이들과 하는 게 편하니까. 우리끼리 하는 게 더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DIY란?
이렇게 이야기해보니 내가 좋아했고, 해왔던 게 DIY였다. 애초에 DIY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진짜 DIY가 아닐까. 내가 하고 싶고, 할 때 즐거워야지 할 수 있는 거니까.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을 때 DIY가 되는 것 같다. 밴드도 돈 한 푼 안 되지만, 다른 도구를 통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니까. 계속 DIY 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OFF THE WALL 정신은 무엇인가?
경계와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