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 개인전 ‘염원’ 리뷰 + 작가 인터뷰

VISLA를 꾸준히 체크해 온 이들에게 조대의 이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서울을 대표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된 그는 어쩌면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스타일의 소유자다. 이는 다른 이들이 해외를 바라보며 타자의 시선을 연구할 때 한국의 유산과 그에 연결된 자신의 정체성을 꾸준히 탐구해 온 결과일 터. 부적이나 탱화(幀畵)를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힘 있는 선과 면으로 강렬한 중압감, 혹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인상적인 조대의 작품을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지난 7월 31일부터 마포구의 서드뮤지엄(Third Museum)에서 진행 중인 그의 개인전 ‘염원’이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가 활동해 온 10년 이상의 세월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본 전시는 조대의 과거와 오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로 채워져 작가가 나아가는 미래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염원’까지 하나의 연결된 풍경처럼 제시한다. 이에 VISLA는 직접 전시장을 방문, 특유의 에너지로 가득한 그의 작품 사이를 거닐며 작가의 시간을 함께 더듬어 보았다. 그와 나눈 짧은 대화가 이미 전시장을 방문한이에게는 영감의 확장, 아직 방문하지 않은 이에게는 친절한 길잡이가 되길 희망해본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활동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골고루 소개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회인데, 개최 소감이 궁금하다. 

앞서 소개해주었듯,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거진 10년간 쌓아온 작업물을 전시하다 보니 그래피티 뿐 아니라 판화, 한지에 그림 먹그림, 아크릴화 등 쌓인 작업물이 너무 많은데, 지난 작품들을 한번 정리하고 새로운 발돋움을 준비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모두 내 에이전시 하이픈(Hyphen)의 한규진 디렉터가 서드뮤지엄과 함께 노력해준 결과다.

자기 과시적 표현이나 집단 정체성 표현 등 개인적 욕구 표출에 주로 집중하던 그래피티가 토속 신앙과 만나 공동체 및 사회적 염원으로 발전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흥미롭다.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그래피티에 대한 생각이나 접근하는 개인적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을까?

활동 초기 수파서커스(SUPACRQS)라는 아트 크루에서 활동했는데, 단순히 그래피티를  좋아하고 놀이로서 즐기는 나와 달리 크루의 친구와 형들은 항상 한 차원 너머의 일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깊은 고민과 의미를 담아 작품을 만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 작업 방식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했지. 그래서 나도 한동안 의미와 주제에 집착하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고민이 지나치게 많아지니 손이 멈추더라. 고민만 하느라 멈춰있으니, 앞으로 전혀 나아갈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아예 고민을 다 지워버리고 감각과 행위 자체에 집중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 마음이 들어간 작품이 전시장 입구를 장식한 그림 중 가장 윗단에 있는 그림인데, 모든 일에 의미도 중요하지만, 재미가 없으면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그래피티 신(Scene)을 바라보는 태도도 꽤 달라졌다. 그래피티 라이터도 각자 성향이 다 다르다. 소위 말하는 ‘시골 쥐’, ‘서울 쥐’가 그래피티를 보는 방식도 다르고, 누구는 경쟁을 통해 ‘짱’이 되고 싶어 하지만 다른 누구는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지. 과거의 나는 과시하고자 하는 이들을 꽤 부정적으로 봤는데, 이젠 그들의 방식도 부정하지 않는다. 각자 생각의 차이가 있는 법이고,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있겠지. 중요한 것은 모두의 생각과 가치관을 수용하면서 이 신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손을 잡게 되면 공간은 작지만, 모든 사람이 손을 맞잡을 때 우리는 훨씬 넓고 거대한 원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과거에 제작한 작품과 최근 완성한 작품 사이에 스타일적 차이도 있을까?

초창기에는 그래피티에서 파생된 선과 패턴으로 면을 만들어 이미지를 완성했는데, 그렇게 그린 그림은 굉장히 원초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볼수록 멕시코나 아프리카 미술 느낌이 나더라. 그래피티가 외국에서 시작된 예술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에 익숙한 외국 미술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은데, 한국적인 요소를 차용하는 아티스트 대부분에게서 이와 같은 경향을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예술적인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이익을 위해 한국적인 요소를 차용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보이는데, 중국이나 일본에는 자국의 전통 미술 양식을 멋지게 활용하는 아티스트가 너무나 많은 반면 한국은 촌스럽다는 인식 하에 이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촌스러운 게 아니라 노력 없이 팔아먹으려고 하는 자들이 센스가 부족한 거지. 나는 오랜 시간 하나의 목적을 위해 노력을 쌓아가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남들과 겹치지 않는 나만의 요소를 찾기 위해 조금 덜 정돈되어 보이더라도 다양한 선과 면을 시도하며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수파서커스 땐 하회탈 이미지와 단청 등을 내 캐릭터에 활용했고, 이후에는 동양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원 모티브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작업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지. 최근 작품이 내가 느끼기엔 더 동양적인 요소가 강하다.

관객들이 이를 어떻게 체험하게 될까작품이 제작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나?

제작연도뿐만 아니라 콘셉트나 작품 크기 등 최종적으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배치했고, 시간순으로 감상 가능하게도 만들어놨다. 또한 필요하다면 내가 도슨트로 충분히 작품 설명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배치도 중요하지만, 결국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종종 느낀다. 어떤 전시회든 진짜 미술을 체험하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있고, 그냥 5분 들렀다 떠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이 눈에 띈다. 관객에게도 새로운 감흥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지면을 통해 특별히 소개해 줄 작품이 있을까?

지난 킵 인 스텝(Keep in Step)’ 전시를 위해 임지빈 작가와 협업한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최근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동안 작업을 쉬었는데,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금 작업을 재개하고 ‘킵 인 스텝’까지 이어가게 됐거든. 작품의 초반 계획은 대형 벌룬(Balloon)에 작업하는 것이었는데, 우리 둘 각자의 사정이 겹치며 계획이 조금 지연되었다. 그러자 임지빈 작가가 저 모형을 주며 우선 그 위에 시안 삼아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는데, 재밌게도 그 느낌이 썩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전시하게 되었다. 임지빈 작가를 시작으로 총 9명의 작가와의 협업 작품을 전시한 ‘킵 인 스텝’ 전시회는 개인적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다른 작가와의 협업은 의견을 조율하고 다투며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연애와 흡사한데, 다른 점이라면 감정이 아닌 최종 결과물이 그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9명의 작가와 호흡을 맞추어 작업하는 과정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미 서울의 거리 곳곳에서 조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거리에서 만나는 작품과 전시회장에서 만나는 작품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거리 위에 그려진 작품은 마치 나 자신 같다. 투박하고, 거칠고, 무신경하고. 거리에서 휘파람을 불며 시간을 때우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각과 철학을 담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스프레이를 사용하니까 작업시간이 그나마 단축되었지만, 야외에서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지치게 된다. 복잡한 의미나 생각을 담기 어려운 환경이지. 그래서 거리에 그려진 그림은 보통 단순한 이미지 노출을 목적으로 한다. 내 작업과 나를 보여주는 모종의 간판이라고 할까. 반면 전시회는 그 간판을 만든 사람의 작품과 생각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거리의 작업은 투박하지만, 여기 개인전에 있는 작품들은 좀 더 정리정돈되어 있겠지.

이번 전시회에서 도슨트도 직접 진행하고 있다. 그래피티 라이터로서 미술관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도슨트는 새로운 경험일 것 같다. 어떤가.

관객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 다른 관객과 달리 독특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들과 소통할 땐 나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내 생각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서로의 생각으로 이어지는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할까. 이런 느낌은 ‘킵 인 스텝’ 전시회 중에도 많이 느꼈는데, 한번은 길을 잃은 사람을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자 길을 찾고 난 뒤를 다룬 작품은 안 나오냐고 되물은 분이 있었다.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기에 굉장히 흥미로웠지. 이번 전시회에서 의도한 것이 바로 이런 공감과 순환이다. 소통을 통해 생각이 쉬지 않고 흐르게 되는 것.

최근 코로나19(COVID-19)로 한산해진 뉴욕의 거리를 그래피티가 다시금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의 그래피티 신에는 최근 어떤 이슈가 있었나? 

한때 활발했던 서울의 그래피티 신은 요즈음 세대가 끊겼다. 그래피티를 잘하고 열심히 하던 친구들이 타투이스트로 많이 전향했고, 한 세대가 끊기면 그다음 세대의 라이터들도 그 모습을 보고 쉽게 다른 길로 전향한다. 물론 나도 100퍼센트 이해한다. 돈이 안 되거든. 이 분야에 욕심을 가지려 하다가도 돈이 안 되니까 욕심이 생기지 않는 거다. 나도 그래피티를 했고 지금도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나를 정의하지만, 이건 라이프스타일에 가깝기 때문에 직업이라고 소개하기에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래피티를 할 때도 있지만 하지 않을 때도 있는 거고, 이걸 그만둘 수도 없지만 또 열심히 한다고 내가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기성 라이터들은 지금의 신을 보며 쓴소리를 하거나 자기 할 일에만 집중하고, 새로 시작한 라이터들은 불쾌한 일을 마주쳤을 때 밀도 없는 말과 태도로 이를 외면한다. 지금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열심히 잘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서로 북돋우며 같이 나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은 전염병, 폭우, 그리고 다양한 비상식적인 사회적 이슈로 다사다난했다. 너무 기이해서 심지어 주술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샤머니즘과 토속 신앙 그리고 염원이 꽤 절실하게 다가온다. 관객에게 어떤 영감 혹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아래층 전시장에 “흙으로 돌아가다”라는 이름의 작품이 있다. 자연스러운 순리로서 죽음을 다룬 작품인데, 내 포인트는 흙에 있다. 결국 우리의 몸이 분해되고 흡수되는 종착지인 흙은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의 상처가 많았던 시기에 쓰레기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의식적으로 쓰레기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가 배출하는 쓰레기가 상상 이상으로 많더라. 알다시피 재활용이 엄청 힘들지 않나. 재활용이 아예 불가능한 물건도 말도 안 되게 많다. 그런 물건들은 결국 집안에서 쓰레기로 쌓이게 되는데, 우리 집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밖에 나가면 자연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하자 관심이 자연스레 환경으로 옮겨 갔고 자연 보호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전시회를 방문한 이들은 알겠지만 2018년까지 내 작품은 주로 사람에 관한 염원을 다뤄왔는데, 그 이후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것이 많다. 사람들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이 높아졌으니 이젠 환경 보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아티스트 조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기존에 하던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의 방식과 계속 자연을 다룬 작업을 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가능하면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려고 하는 편인데, 내 주위에 쓰레기를 모아두다 보면 언젠가 이를 새롭게 활용할 방법도 찾게 될 것 같다. 지금도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 있고, 계획하고 있는 작업도 있으니 기대해 달라. 


*조대 개인전 염원은 8 30일까지 마포구 서드뮤지엄에서 관람할 수 있다이번 주말이 그의 전시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흥미가 생긴다면 늦지 않게 방문할 것을 권한다물론코로나19 발생 현황에 따른 철저한 방역 지침 준수는 필수다.   

조대 인스타그램 계정
Third Museum 공식 웹사이트


에디터│ James Kim Junior
포토그래퍼│ James Kim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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