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LA가 기획한 ‘Vinyl & Chill’은 바이닐 레코드 디깅의 새로운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가 좋아하고 자주 가는 레코드숍 다섯 곳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VISLA 내부에서 판을 가장 공격적으로 모으는 편집장 권혁인과 에디터 황선웅 본인이 평소 자주 찾는 서울의 레코드숍 다섯 곳을 선정해 소개하고, 오너와 나눈 인터뷰를 비롯해 그들에게서 ‘연말에 듣고 싶은 레코드’를 추천받았다. 우리가 레코드숍을 선정한 기준은 오프라인 매장이 존재하는 곳, 새로운 음반 업데이트가 활발해서 꾸준하게 방문해야 참 맛이 우러나는 곳 그리고 과거 VISLA에서 소개하고 언급한 가게가 아닌 곳이다.
Dive Records(서울시 중구 을지로3가 충무로 55-1 2층)
힙합을 위시한 음악 신(Scene)과 그 주변부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던 권영진이 을지로에 문을 연 다이브 레코드(Dive Records)는 물량보다는 명확한 취향을 기준점으로 주인장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 있게 소개하는 소량의 레코드를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다양한 목적과 방향성을 지닌 레코드숍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실 판을 모으는 마니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 레코드 더미에서 다량의 보석을 채굴하려는 이들보다는 외려 자신의 취향 이외 새로운 발견을 꿈꾸는 이들이 교보재처럼 삼을 음반이 필요할 때 아마도 다이브는 숍의 셀렉션을 통해 간결하게 그 지침을 전달해줄 것이다.
다이브를 열게 된 계기는?
사실 처음부터 레코드숍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찾아 듣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들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최근 레코드로 음악을 듣는 경험 자체를 신기하게 받아들이고,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이럴 때 누군가 잘 끌어주고 가이드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이 무한하게 펼쳐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면 좋을 거 같았다.
로컬 레코드숍이 지역 문화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묻고 싶다.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경험한 입장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영국이나 일본을 예로 들자면, 동네마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작은 레코드숍이 있고, 로컬 사람들이 자주 찾는 단골 음반 가게는 곧 음악 동호회이자 사랑방 역할을 했다. 조용히 음악과 교감하면서 멋진 취향을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레코드숍이 소개하는 음악이 곧 연결해 주는 거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함께 쌓아가는 레코드숍이 늘 부러웠다.
어떤 목표로 다이브를 열었는지 궁금하다.
영국 유학 시절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직접 몸으로 느끼고 그들과 파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훌륭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덕분에 그들과 교류하며 일종의 좋은 영향을 받았다. 서로 음악 취향을 공유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지닌 엄청난 힘을 느끼게 되었다. ‘정직하게 만든 음악을 제대로 들려주고 싶은 레코드숍’. 내가 생각하는 ‘정직함’이라는 건 미련할 만큼 뚝심 있게 음악을 만드는 태도인데 그런 음악을 온전히 서포트하는 독립 레이블과 그들이 소개하는 아티스트의 특별함을 소개하고 싶었다.
지금 젊은 층이 바이닐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이 현상은 디지털 네이티브의 결핍을 찌르는 물리적인 파도처럼 다가온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레코드숍 운영자로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바이닐 레코드는 물리적으로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고, 턴테이블을 비롯한 툴이 없으면 경험을 완성할 수 없기에 이 시대에 정말 안 어울리는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젊은 세대가 반응하는 걸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우선 소셜 미디어에서 보여주기 위해 한두 장씩 사는 소비층이 있다.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맛을 알아가면서 레코드 문화를 계속해서 즐기고 알리는 단계로 더 깊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취향을 내 안에서 발견하고 가꿔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문화인데 사실 이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편한 일이거든.
그러나 그 긴 과정 자체가 곧 취향을 의미하는 것이라 애초에 레코드 수집의 방점이 다른 데 찍힌 친구들은 어떻게 해도 들어올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음악을 좋아해야 시작할 수 있는 취미니까. 우리가 책을 함부로 사지 않듯이 레코드 또한 굳이 돈을 내고 판으로 듣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는 의미가 판을 사는 행위 자체에 내포하기에 지금 시대에서는 오히려 스트리밍 플랫폼과 비교되면서 서로 장점이 더 부각되는 듯하다. 시행착오도 겪고, 커버만 보고 사기도 하는 등의 재미는 사실 인터넷에는 없지 않나. 그건 마치 우리가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그 온도와 비슷한 것 같다.
좋은 레코드숍의 조건은 무엇인가?
정해진 조건이라는 게 있을까. 지금 서울엔 이미 운영자들의 철학이 확고한 레코드숍들이 많다. 모든 레코드숍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이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레코드숍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편이다. 대중이 선택하는 폭이 넓어지다 보면 또 각자가 선호하는 숍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목적을 갖고 재방문하시는 손님을 다시 만날 때가 제일 반갑다.
레코드의 품귀로, 희귀한 음반은 가격이 치솟고 디스콕스는 마치 실시간 주식 현황처럼 오르내리는 가격을 표기한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차이를 메꿀 수 있는 리이슈반은 외려 컬렉터에게 외면받는 것 같은데, 오리지널 프레싱을 고집하는 컬렉팅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음악을 물건의 소유가 아닌 향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 더 좋은 레퍼런스를 열어주는 지금 시대의 흐름이 매우 반갑다. 좋은 음악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어야 더 많은 이들이 레코드 문화를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
Dive’s Heavy Choice
Don Blackman – “Holding You, Loving You”
한 해 동안 고생한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라는 말과 함께 따뜻한 포옹을 건네며 듣고 싶은 노래다.
Hiroshi Fujiwara – “The Faintest Sign”
누구에게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절로 미소 지어지는 시절이 있을 텐데, 나에게 그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Kiina & Goya Gumnbani – “Same Strings, Pt. 1 (feat. Lojii)”
개인적으로 동경하는 힙합의 무드와 이상적인 질감의 사운드를 완벽한 밸런스로 표현한 센세이션한 앨범이다. 100장 한정 수량으로 자체 제작한 앨범 중 20장을 다이브에서 소개한 바 있다.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고, 좀 더 완성도 높은 앨범을 선보이기 위해 기존 수록 곡을 리마스터링하고 보너스 트랙을 추가해 내년 상반기 다이브에서 앨범의 정식 발매를 목표로 현재 작업 중이다.
Editor│권혁인
Photographer│유지민
VINYL & Chill ep1. SOUNDS GOOD
VINYL & Chill ep2. Welcome Records
VINYL & Chill ep3. Junction
VINYL & Chill ep4. Mio Records
*해당 기획 기사는 지난 VISLA 매거진 18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