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ght It! / 2022. July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마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니 이제는 본격적인 폭염, 무더위가 시작됐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기분까지 오르내리지만, 이럴 때일수록 화끈한 소비로 마음을 달래보는 건 어떨지. 본격 소비 조장 콘텐츠, 여섯 번째 ‘Bought It!’을 만나보자.


장재혁 / 에디터 – Piano Music of Friedrich Nietzsche

드.디.어. 올 놈이 왔다. 니체가 어릴 적 작곡했던 피아노 연주곡을 모아 둔 CD, ’Piano Music of Friedrich Nietzsche’. 사실 작년부터 눈독 들이던 녀석이지만 구매를 마음먹기까지 장장 1년의 세월이 흘렀다. 클래식 팬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보다 복합적인 현실의 문제가 결제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아 왔다. 이번 바웃잇에서는 만 원 남짓한 이 낡은 CD 한 장을 손에 넣기까지 넘어야 했던 난관을 읊어 보며 그렇기에 조금은 더 특별해진 구매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1. CD 플레이어
    독립한 이래 CD 플레이어를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CD를 구매한 일 또한 전무하다. 물론 몇 번이고 플레이어를 구매해 보리라 다짐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간 바라왔던 이상적인 플레이어를 찾기가 어디 쉬운가. 디자인, 상태, 가격 어디 하나 뒤처지지 않은 그런 CD 플레이어를 찾는 일. 아, 벌써 피로하다. 게다가 ‘레트로 감성’ 값이 매겨진 CD플레이어는 가격 또한 만만치 않으니 디깅에 들인 시간이 아까워지기 전에 지레 포기하는 편이 차라리 속 편할 지경이다. 소를 탐하기 위해 대를 탐해야 하는, 그렇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이 피로한 과정의 악순환을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까.
  2. 바이닐
    바이닐의 존재도 구매를 늦추는 데 한 몫 거들었다. 쇠퇴해 가는 CD 시장과는 다르게 고급 취향의 전유물로 인정받으며 나날이 그 영향력을 넓혀가는 바이닐 아니던가. 음악을 틀던 인테리어가 되던, 어디를 가나 상전 대접 제대로 받는 이 물건을 내심 갖고 싶었는지 CD의 배가 넘는 가격에도 고민의 시간은 날로 길어졌다. 다만 어릴 적 함께한 기억이 더 많다는 이유로 결과적으로 CD의 손을 들어주는 했지만 여전히 애매한 판정승 같은 이 기분은 뭘까. 물론 턴테이블 역시 없는 건 이하동문.
  3. 아주머니
    물론 아주머니가 직접 구매를 가로막은 것은 아니고, 그녀가 남긴 말 한마디가 그랬다. 말인즉슨, 직각 형태의 파형을 가진 CD의 소리는 몸을 굳게 만들고 부드러운 곡선 파형의 LP가 몸을 이완시켜 준다는 것. 정확한 사실 여부를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뇌리에 박힌 말 한마디가 족쇄가 된 셈이다. 다행히 음질이나 몸의 반응을 세심히 살피며 감상할 수준은 못 되는 탓에 이 부분은 애써 모른척하기로 했다.
  4. 배보다 배꼽
    $24.89. 애리조나에서 보광동까지의 아마존 배송료다. 지구 반 반 바퀴를 돌아오는 걸 생각하면 싼값이라 여겨지면서도 $9.79라는 CD 가격을 고려해 볼 때 여간 억울한 게 아니다. 금전의 문제가 감정의 문제로 전이 되는 순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CD 케이스를 열자 곧장 뚜껑이 떨어져 나갔다. 뭐, 애초에 음악은 유튜브로 재생 예정이니 상관은 없다. 당분간은 신발장 위에 고이 모셔둘 예정이지만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구매에 대한 깊은 고찰을 안겨준 이 친구에게 그 쓰임을 다할 기회를 줄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약속해 본다.


오욱석 / 에디터 – Birthincage, Welcome The Night of SEOUL, People & Print & Papers

지지난 주 주말, 그러니까 16일과 17일에는 꽤나 분주했다. 동갑내기 친구의 결혼식을 시작으로 몇 가지의 크고 작은 행사가 이어졌는데, 어찌어찌 시간을 잘 분배해 클리어할 수 있었다.

토요일에는 한남동 웝트(Warped.)에서 레어버스의 야심 찬 프로젝트인 벌스인케이지(BirthinCage)의 팝업에 방문했다. 지금껏 여러 브랜드에 그래픽만 제공해봤지, 실제 의류를 제작해보는 건 처음이라고 엄살을 부렸던 것 같은데, 직접 보니 야,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해놨더라. 노련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원숙미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티셔츠를 두 장 샀다. 지금 웝트 온,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모양이니 관심이 있다면 이곳으로…

다음날에는 조금 더 바쁜 일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VISLA 매거진과 함께하고 있는 포토그래퍼 윤범이 형의 사진전 ‘Welcome The Night of SEOUL’을 구경하러 웰컴 레코드(Welcome Records)로. 전시명 그대로 근 몇 년간 서울의 파티, 나이트 라이프를 기록한 사진을 감상하고 시원한 커피도 한잔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전시와 함께 윤범이 형이 몇 가지의 굿즈를 준비했길래 여기서도 티셔츠를 한 장 샀다.

일요일의 마지막 행선지는 삼각지의 차일드후드홈(The Childhood Home). 로컬 진 페어 ‘People & Print & Papers’에 들렀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 각자의 재능을 담은 잡지를 탐독하며, 창작에는 한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튼, 타원형의 테이블을 구심점 삼아 빙글빙글 돌며 잡지를 살펴보는 사람들을 보니 컨베이어 위의 회전 초밥같이 보이는 게 참 귀엽더라. 잡지 몇 권을 집고 뭐가 더 있나 매장을 슬쩍 둘러보니 미니 진 사이즈에 맞춘 앙증맞은 크기의 에코백이 있기에 같이 집었다.

이렇게 주말 간의 문화 나들이를 마무리, 몇 장의 티셔츠와 가방, 잡지가 남았다. 입고, 매고, 볼 수 있는 사물을 구매하는 것도 즐겁지만, 주변 창작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결과물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에 비할 수 있을까. 모쪼록 우리 동네 이런 크고 작은 행사가 끊이지 않길 바라며, 7월의 소비 이야기를 마친다.


황선웅 / 에디터 –  귀퉁이가 박살난 Burial의 [Antidawn] Vinyl

VISLA 애독자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올해 초부터 VISLA는 QUEST라는 바를 오픈하여 운영하고 있다. QUEST에서는 바이닐 레코드도 판매하는 중. 필자는 음반 사입과 라벨 관리, 그리고 인스타그램 업로드, ‘니들 드랍’ 플레이리스트 촬영 등의 일을 맡아 진행한다. 그리고 이달에 구매한 베리얼(Burial)의 EP [Antidawn]은 필자가 QUEST에 직접 입고하여 낼름한 레코드다. 또한 이는 이번 달 유일하게 구매한 음반이기도 하다.

구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6월 29일, QUEST 인스타그램 피드에 입고된 음반을 소개하기 위해 음반을 꺼냈다. 인스타그램에는 음반의 커버 아트와 1분짜리 영상을 촬영하고 곡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작성하여 올린다. 촬영 당시에 비가 많이 왔고 QUEST 운영자이자 VISLA 편집장인 혁인 형도 ‘장마’에 알맞는 음반 셀렉을 부탁했기에 삭막한 베리얼의 음반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이닐에 바늘을 올려 1분의 영상을 촬영한 후 커버아트를 촬영하는데, 음악뿐만이 아니라 이미지도 ‘장마’에 걸맞게 연출하고 싶더라. 그때 촉촉하게 물방울이 맺힌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창틀에 올려두고 사진 촬영을 하는 순간! 아차! 레코드 알맹이가 ‘쏘옥’하고 빠져나와 바닥에 수직으로 꽂혔다. 찰칵 소리와 거의 동시에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소리가 났다. ‘와장창!’은 아니고 ‘파악!’하는 둔탁한 소리. 레코드가 깨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후에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단순했다. 바로 계산대로 향하는 것…

사실 [Antidawn]은 본인의 Discogs 계정에 Wantlist로 넣어둔 음반 중 하나다. 그런데 아쉽게도 바이닐 알맹이의 귀퉁이를 깨먹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 레코드는 온전히 재생할 수가 없다. A, B면 첫 순서의 곡은 감상이 불가하다. 첫 시작에서부터 천천히 빌드업되는 과정이 중요한 체크 포인트일 수 있는데, 슬프게도 나의 레코드로는 이를 감상할 수 없다. 불행 중 다행은 양면의 두 번째 곡부터는 재생에 전혀 문제가 없고 필자는 [Antidawn]에서 마지막 곡인 “Upstairs Flat”을 좋아한다는 사실. 깨진 부분이 해당 트랙에 걸쳐있지 않아서 문제없이 청취가 가능하다.

“Upstairs Flat”이 각별한 이유는 [Antidawn]이 발매된 날, 이를 감상하며 독특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날 음악을 들으며 따릉이를 타고 성동구 일대를 돌아다녔는데, 뚝도시장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Upstairs Flat”을 듣고 그 자리에서 멍때린 기억이 있다. 마치 이토 아키라(Akira Ito)의 “山上のやすらぎ”, 아니면 레이 린치(Ray Lynch)의 “The Oh Of Pleasure” 만큼이나 압도되는 긴 파동의 음악. 머리끝까지 닭살이 돋아버리고 두 눈의 초점이 사라져 머리가 하얘지는, 그런 황홀한 파동과 진한 여운을 주는 곡. 혹시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 지금 “Upstairs Flat”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하겠다.


한지은 / 에디터 – Hello Kitty Hawaii Strap

고등학교 때 내 짝은 헬로키티 캐릭터의 물품을 종류별로 사 모으는 아이였다. 종종 그걸 덕후라고 놀리는 부류의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왜인지 그 녀석이 멋진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건 이번 달에 구매한 휴대폰 고리 하나를 자랑하는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케케묵은 기억을 끄집어낸 것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시절에도 키티는 뭔가 존재만으로도 반박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캐릭터였다.

그런 키티를 지금에 와 가지고 싶어진 계기는 어쩌면 얼마 전에 국내에서 개최된 톰 삭스의 전시였을까? 아니 트위터에서 접한 이미지들과 y2k 패션의 유행? 그러한 알고리즘이 돌고 돌아 생겨난 욕구가 아닌가 싶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언제 봐도 키티는 귀여움을 넘어 멋진 캐릭터라고 생각되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중고품 사이트 곳곳에 made in hawaii 키티 티셔츠를 검색해 찜 리스트에 추가해놓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보니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물건이 품절된 것이 아니겠나. 그게 다른 누군가도 이 물건을 원했던 것이고, 나도 그 어떤 유행의 흐름으로 티셔츠를 사려 했다는 점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티셔츠에 대한 구매욕이 시들어 버렸다.

이렇게 된 거 들여다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뭔가 하나 사야겠다 싶어 핸드폰 고리 하나를 골랐다. 하와이나 괌에 자리한 체인 ABC 스토어에서 파는 이 액세서리는 더운 나라 특성에 맞게 색상이 콜라 수육처럼 익은 것이 매력적이다. 얼마 전에 콜라 수육을 만들어 먹어서 이런 비유가 생각난 걸까 아님 그 반대일까? 핸드폰에 걸 수 있는 고리가 여전히 존재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기에 키링처럼 지갑에나 달고 다니는 중.


Editor│오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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