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ght It! / 2022. Nov

올 봄 첫 시작을 알린 VISLA 매거진의 소비 보고서 ‘바웃잇’이 어느덧 겨울의 문턱앞에 섰다. 그만큼 에디터의 주머니에서 쉴 틈 없이 빠져나갔다는 사실. 11월 또한 예외는 없다. 사고 또 사고, 올해의 막바지 지출 보고서를 지금 시작한다.


장재혁 / 에디터 – McDonald’s 1994 USA WORLD CUP Wrinkled T-shirts

‘ebay everyday #3 – 월드컵 특집’을 기획하다 찐 보물을 발견했다. 행여나 누가 채갈까 콘텐츠 내 소개하지 못했던 녀석을 이 자리를 빌려 내보이고자 한다. 올해도 벌써 저물어가는 만큼 얄팍하고 간사한 마음에도 양해를 구하며…

맥도날드(McDonald’s)는 매 월드컵마다 온갖 독특한 머천다이즈를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1994년에는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맞아 더욱 다채로운 아이템을 생산해냈다. 오늘 소개할 ‘McDonald’s 1994 USA WORLD CUP Wrinkled T-shirts’ 역시 그중 하나. 혹자는 요즘 시대에 무슨 빨랫 비누를 샀나 하겠지만, 이래 봬도 티셔츠를 사각형 모양으로 압축해 목, 소매할 것 없이 옷 전체에 자글자글한 잔주름을 ‘일부러’ 설계한 맥도날드의 획기적 아이템이다.

압착된 본 티셔츠를 입기 위해서는 비닐 패키징을 뜯는 것 외에 추가적인 과정이 필하다. 라면을 끓는 물에 흐물거리게 풀 듯 이 티셔츠 역시 물에 담가 압축된 소재가 이완될 시간을 줘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상태로 짜서 말리면 끝. 단, 없어 보이게 왜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니냐며 다리미를 집어들 우리들의 어머니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 두는 것도 잊지 말자.

물론 필자는 당분간 해당 티셔츠를 뜯어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판매자 vintagemania10이 자신이 가진 제품 중 하나를 개봉해 판매 게시물에 업로드해 둔 덕분에 간신히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필자가 구매한 제품은 1994 미국 월드컵 마스코트 스트라이커(Striker)가 그리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디자인으로, 그리스를 상징하는 푸른색이 붉은색과 노란색 조합으로 굳어진 맥도날드 굿즈에 신선함을 더한다. 현재 이베이에서는 해당 티셔츠의 판매자가 1994 월드컵 참가국을 전면에 프린팅한 압축 티셔츠 역시 판매하고 있는데 티셔츠 중앙에 자리한 태극기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함께 확인해 보자.

본 티셔츠는 1994년부터 자그마치 28년간 압축된 채로 보존돼 왔다. 옷의 본질적 기능을 상실한 이상 티셔츠라기 보다 장식품에 가까울 테지만 한번 열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이 그 존재를 마냥 긍정하는 듯하다. 과연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될 날이 올지는 미지수지만, 볼 때마다 묘한 상상과 흥분을 일으키는 압축 티셔츠를 감상하며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즐겨보련다.


오욱석 / 에디터 –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조깅의 기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퇴근 후 밖에 나가 저녁 조깅을 한다.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을 조금이나마 기르기 위함으로 누군가 채근하거나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스스로의 약속이기에 운동을 마치고 나면 일과는 또 다른 형태의 만족감이 느껴진다. 주로 집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불광천 입구에서 시작해 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린다.

매번 같은 코스를 반복하는 운동이니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1킬로미터를 몇 분 안에 달렸는지, 일정한 페이스로 쭉 달리고 있는지 측정해주는 러닝 애플리케이션을 보면서 수치를 확인하는 게 그나마의 동력이다. 하루를 보람차게 보냈다는 충족감도 좋지만, 그보다는 부단히 달릴 수 있도록 조깅에 흥미를 붙여보고 싶어서 달리기에 관한 책을 두 권 샀다.

한 권은 누구라도 알 법한 유명 작가이자 마라톤 애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이고, 또 다른 한 권은 미국 육상 코치이자 나이키 공동창업자 빌 바우어만(BilI Bowerman)의 “조깅의 기초”라는 책이다. 달리기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 트레이닝을 한 번에 채워보겠다는 알량한 생각으로 나름의 꾀를 부린 것이다.

하루키가 달리기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낸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리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데 제격이었다. 달리기의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유사한 루틴을 반복하는 항상심에 관한 내용이 좋은 동기부여가 됐다.

의외로 내게 가장 큰 감명을 준 책은 작가가 이닌 달리기 전문가가 쓴 “조깅의 기초”였다. 사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을지, 부족한 기록을 향상할 수 있을지 조언을 얻고자 읽었으나 달리기보다는 내 마음에 울림을 주더라. “훈련이지, 혹사가 아니다”라는 구절이 몇 번이나 등장하는데, 요는 단시간에 좋은 기록을 내는 러너가 되는 것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달리는 러너가 되는 게 ‘러닝의 기초’라는 거다. 우리의 삶도 비슷한 것 같다. 혹사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조금 더 힘을 빼고 느긋하게 달려봐도 좋겠다.


황선웅 / 에디터 – Hiroshi Fujiwara – [Hiroshi Fujiwara In Dub Conference] LP

날로 쌓여가는만 디스콕스(Discogs) 원트 리스트. 이제는 너무 쌓이다 보니 저장한 음반이 어떤 음악이었는지, 왜 원트 리스트에 넣어놨는지조차 잊어버린 것도 몇몇 있다.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의 [Hiroshi Fujiwara In Dub Conference]도 내 원트 리스트 중 하나였다. 정확하게 내 취향을 저격한 음반이었지만, 너무 비싸서 일단 킵해뒀던, 그리고 그 후로는 찾아 들은 적 없어서 잊혀졌던 레코드. 까마득했던 이 앨범을 최근 구매하게 된 계기는 단지 싸게 올라왔어서.

작년 초쯤인가, 레코드숍 알루엣에서 처음 [Hiroshi Fujiwara In Dub Conference]을 접했다. 알루엣 아저씨의 음반 소개 글이 구매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건 딱히 소개 글을 보고 찾아들었던 레코드는 아니었다. 내 호기심은 오로지 후지와라 히로시라는 이름이었다. 사실 나는 VISLA에서 글을 쓰기 전까지 후지와라 히로시가 누군지도 몰랐다. 근데 지난 4년 8개월 동안 VISLA에서 가장 많이 접했던 이름 중 하나가 후지와라 히로시다. 때문에 이제는 정말 모를 수가 없다. 아참, 2년 전에 후지와라 히로시에 관한 기사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앨범 [Slumbers2]이 공개되며 앨범을 소개하는 짤막한 기사였다. 당시 후지와라 히로시를 전천후 뮤지션이라 소개했었는데, 사실은 그 기사를 쓸 때도 후지와라 히로시가 과거 어떤 프로듀서였는지 잘 몰랐다…

아무튼 2년 전 기억으로 [Slumbers2]은 경쾌한 비트와 노래가 가미된 팝이었다. 반면 [Hiroshi Fujiwara In Dub Conference]은 피아노 연주곡 네 개와 이를 기반으로 더비한 비트가 첨가된 트랙 둘까지, 총 여섯 트랙의 고요한 기악이 전부다. 여기서 피아노 멜로디가 아주 일품. 청아한 피아노 터치가 어째선지 글렌 굴드(Glenn Gould)를 연상시키기도, 또 어떨 때는 게임 “동물의 숲” 사운드트랙들이 가끔 스쳐가기도. “Natural Born Dub”은 “K.K. Dub”을, “Five X Dub”은 “Museum”과 무드가 비슷해 토타카 카즈미(Kazumi Totaka)의 레퍼런스였을까라는 상상도 하게 된다.

구매한 참에 요즘은 한창 이 앨범만 듣고 있다. 바이닐은 최근에 받아봤기에 턴테이블 위에서보다는 애플뮤직과 헤드폰으로, 출근길에 많이 재생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따릉이로 30분, 이 앨범의 러닝타임 역시 딱 30분이다. 날이 많이 추워졌지만 미세먼지가 아주 없어 하늘은 높고 청명하다. 유유히 따릉이를 타며 한강과 하늘을 바라볼 때 듣기 좋은 청아하고 로멘틱한 피아노 멜로디의 앨범. 매번 감동한다.


박진우 / 디자이너 – Asics Magic Speed

‘산책할 때 신던 아식스 런닝화가 찢어졌다. 어디 걸려서 찢어진 건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정도였을까. 친구가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신발 앞코 부분을 땅에 찍으면서 걷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리 걷느냐 물으니.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사고 싶은 신발이 생겼는데,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을 빨리 닳게 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게”.

조금 충격이었다. 아무리 새 신발이 갖고 싶어도 그렇지. 멀쩡한 신발을 닳게 하다니… 부모님이 피땀 흘려 번 돈을…

그렇다.
그때는 멀쩡한 한 켤레가 있으면, 새로운 한 켤레를 갖는 건 금지된 거였다.

그리고 수십 년의 흐른 지금. 지금은 새 신발을 살 때 기존의 신발이 닳았는지 어쨌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심지어 신발장에서 수십 켤레의 신발이 있고 그중 안 신는 게 수십 켤레지만, 닳아 있는 신발은 찾기 힘들다. 환경 파괴를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서 신발을 보니 밑창이 엄청 닳고 찢어져 있었다. 신발을 이 상태까지 신었던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사실 산책할 때 신을 수 있는 편한 신발은 여러 가지가 있다. 뉴발란스도 있고. 나이키도 있고. 호카도 있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산책하러 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아식스… 그 녀석에게 발을 꼽게 되더라.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이렇게 신발이 닳아 버린 거다.

왠지 뿌듯했다. 슈퍼 소비 세대인 내가 슈퍼 소비 시대에 살면서 신발을 닳을 때까지 신다니… 새로운 런닝화를 살 명분이 생겼다고 바로 생각이 드는 현실이 슬프지만. 명확한 명분이긴 해서… 나는 나의 다음 런닝화를 찾아 나섰다. 기존에 신던 게 아식스 ‘젤 카야노 24’였는데. 너무 잘 신었으니 똑같은 모델을 다른 컬러로 사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재미없는 것 같아 아식스만 유지하되 다른 모델을 찾기로 했다.

신발들을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하이테크 런닝화였던 게 패션화(?)가 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지금 농구를 한다고 에어 조던 1을 신는 사람은 드무니까. 지금 런닝한다고 코르테즈를 신는 사람도 드문 것처럼. 이제는 불과 5~10년 전만 해도 하이테크 런닝화 취급을 받던 것이 지금은 다 올검으로 재발매되며 패션화(?)가 되는 듯하다. 기술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그 주기는 더 빨라지는 듯 하다. 이미 수년 전부터 한남동 이태원에는 검은색 런닝화를 신은 사람이 많다.

이번에는 지금 시점에서 하이테크 런닝화라는 동시대성을 획득한 신발에 도전해보자. 현직 런닝맨들이 신는 신발. 이렇게 저렇게 찾다 보니. 런닝클럽 고인물 회원들이 신을법한 중창이 매우 두꺼운 형광색 친구가 있었다. 설명에 카본이 들어가 띠용띠용 하다고 쓰여 있는 것 같지만. 대충 읽고 일단 주문했다. 신고 나가보니 엄청나게 편해서. 무릎 관절의 건강함 유지는 신발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 정도로 편했다. 이 친구도 닳을 때까지 신어보자.


Editor│오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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