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ght It / 2022. June

오래도록 이어진 가뭄에 단비, 장마가 시작됐다. 여름이 무르익어가는 이 시점, ‘Bought It’ 필진의 쇼핑욕 역시 무르익고 있는 중. 6월의 막바지까지, 그들은 뭘 구매하며 기나긴 여름을 대비했을지, 하단의 기사를 통해 확인해보자.


황선웅 / 에디터 – [In The Wake Of Doshin, the GIANT] Original Vinyl

지난 한 달간 무얼 구매했나 돌아보니 사실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 게임칩을 네이버 후불 결제로 삿지만, 아직 칩은 꼽아보지도 않았다. 그런 게임을 소개하긴 뭐하니, 이번 역시 내가 구매했던 음반을 소개하는 수밖에 없겠다…

6월 소개할 음반은 바로! [In The Wake Of Doshin, the GIANT]라는 비디오 게임 음악판이다. 이건 “Doshin, the Giant”라는 ‘닌텐도(Nintendo)’ 게임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인데, 사실 지난 3월에 예약 구매로 결제했었고 최근에 배송비만 지불하여 받아본 음반이다.

“Doshin”의 사례, 그리고 “동숲” 시리즈의 K.K 음악이 LP로 발매되는 등 닌텐도 게임 오리지날 삽입곡이 라이선스 허가를 받아 LP로 발매되는, 그런 예외적인 상황을 항상 예의주시 한다. 늦은 체크는 슬픔뿐이라 프리오더에 동참하는 편. 특히 [In The Wake Of Doshin, the GIANT]의 오리지널 바이닐은 악명이 자자했다. 극소량으로 제작된 프로모션용 바이닐 레코드가 99년에 발매됐고, 워낙 희귀했기에 무시무시한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또 2020년에 소량 제작된 부틀렉은 게임 음악 부틀렉 컬렉터들의 주요 타깃이 되기도 했다는 정보 등 이 음반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필자가 예전에 쓴 발매 뉴스에서 확인하길.

그런데 혹시 필자가 지난 ‘Bought It’ 시리즈를 통해 닌텐도 게임 음악 바이닐에 관한 글을 두 번이나 적은 사실을 아는지? 3월 ‘Bought It’에 [MOTHER 2]를 소개하며 게임 음반 소비 심리는 추억에 기반한다는 글을 적었다. 허나 앞서 밝혔듯 필자와 내 또래의 한국인이라면 콘솔 게임기에 관한 추억과 향수는 딱히 없을 것 같다. 국민의 정부 당시 나름 저렴한 가격으로 가정용 PC를 보급했고 이를 통해 우린 PC 게임, 혹은 온라인 게임을 주로 즐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Doshin”은 한국에 정발되지도 않았으니 이에 관하여 추억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도 비디오 게임 음악은 각별하다. 베이퍼웨이브, 퓨처펑크, 로파이 비트 음악이 지난 10년간 발휘했던 거대한 힘의 원초성은 시티팝, 소울, 훵크, 뉴에이지에만 존재하던 것이 아니다. OPN과 Macintosh Plus가 ‘세가’의 게임 “Ecco”에 헌정했듯, 90년대 게임과 게임 음악에 또한 그 원초성이 분명 존재했다고 본다. 그리고 닌텐도 BGM 특유의 아늑함, 특히 “Doshin” 사운드트랙 감독인 아사노 타츠히코(Tatsuhiko Asano)의 오가닉한 기타 스타일은 본인의 취향이기도 하다.

연남동에 ‘소프트컬러(softcolor)’라는 공간에서 매주 주말 커피타임 디제이로 음악을 틀며 [In The Wake Of Doshin, the GIANT]의 수록곡을 꽤 자주 걸었다. 수록곡 중 “Yellow Giant”와 “Bonfire”를 비슷한 템포의 뉴에이지, J-퓨전 음악과 섞어 틀거나, 혹은 “The Island Of Memory”를 퍼커션 그루브의 하우스 음악과 주로 믹스했는데, 어느 하루는 위층에서 차를 마시던 손님이 “Bonfire”를 듣고 어떤 음악인지 물어보더라고. 좀 뿌듯한 날이었다.


오욱석 / 에디터 – minnano x Digawel Baggy Shorts

매년 여름, 더위를 이겨낼 반바지를 사고 있지만, 아직까지 내 인생 최고의 반바지를 만나지 못했다. 작년 한참 입던 녀석도 여름이 되어 슬쩍 꺼내어 보면, 괜히 마뜩치 않고 어색한 게 ‘슬슬 다시 올해의 반바지를 사야하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저번 편에서도 말했듯 긴 바지는 크게 가릴 것 없이 이것저것 사게 되지만, 반바지는 정말 어렵다. 우선 반바지는 그 기장을 쉬이 가늠할 수 없다. 긴 바지야 두꺼운 내 허리에 맞췄을 때, 대번 97%의 확률로 기장이 남기에 밑단을 접어 입거나, 목이 높은 신발을 신어 어느 정도 원하는 핏을 낼 수 있지만, 완벽한 핏의 반바지를 구하는 일은 진짜 쉽지 않다. 반바지를 접어 입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기장을 늘리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물론, 이미 검증된 좋은 핏의 반바지가 많으나 내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왜 대부분의 반바지는 왼쪽 하단에 그들의 로고를 내놓지 못해 안달인 걸까. 물론, 그 로고 하나 때문에 반바지를 사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영 거슬려서 참을 수 없다. 그리고 최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가 나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VISLA 매거진의 인터뷰에도 등장한 민나노(Minnano)의 고로(GORO) 씨가 그러한데, 평소 그의 팬이기에 블로그에 방문했다가 드디어 나의 정신적 동지를 만난 것이다. 아래 내가 감명 깊게 읽은 포스팅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려 한다.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도 좋아합니다만, 파타고니아의 반바지를 입었을 때 아크테릭스의 재킷을 입을 수 없고, 나이키 ACG 반바지를 입었을 때 나이키 이외의 스니커를 신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섞어 입는 문화도 있지만, 저는 그다지 능숙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 바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브랜드 매치에 죽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이키 운동화에 아디다스의 양말을 신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런 연유로 고로 씨가 사랑한다는 그 바지를 구매했다. 반바지에 이런 거금을 쓰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이제 어떤 브랜드와도 섞일 수 있는 무적의 반바지……. 드디어 사버렸습니다.


한지은 / 에디터 – Nintendo ‘wii’ Official T-Shirt

자타공인 음악광 황선웅 에디터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꽤 자주 음악에 관한 주제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또는 한때 좋아했던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놀라운 몰입도로 대화를 이끈다. 가끔 그와 공통적인 음악 취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거대한 음악적 정보의 벽에 부딪힌다는 느낌을 받긴 하지만, 그가 자신이 무언가 더 아는 정보에 있어 잘난척하려 드는 사람은 아니기에, 스스럼없이 대화하다 보면 절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작년 이맘때엔 우연히 닌텐도(Nintendo) 게임 bgm을 24시간 플레이리스트로 엮은 유튜브 영상에 빠지게 되어, 그 듣는 즐거움이 당최 이런 류의 음악은 누가 만든 걸까 하는 호기심과 이와 비슷한 곡들을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때쯤, 마침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던 황선웅 에디터와의 접점 덕에 나는 더 큰 파이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곧 그 여정은 토타카 카즈미(Kazumi Totaka), 아사노 타츠히코(Tatsuhiko Asano), 팀 폴린(Tim Follin)과 같은 음악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 닌텐도라는 회사에 대한 큰 팬심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그 관심은 이번 달 이베이(eBay)를 통해 wii 공식 라이선스 티셔츠를 구매하는 계기가 된다. 닌텐도는 라이선스 음악을 유통하는 일이 드물어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의 커뮤니티를 통해 부틀렉 음반을 사고파는데, 듣자 하니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여 웬만한 컬렉터가 아니면 음반을 가지기엔 힘들겠다는 판단이 섰고, 밴드 티셔츠를 소비하는 심리처럼 팬심이 담긴 티셔츠라도 구매하기로 한 것이다. 어릴 적 친오빠가 가지고 놀던 모습을 어깨 너머 바라보던, 그보다도 더 이전에 태동한 게임 회사들의 움직임을 돌아보면 각 게임의 디자인에서부터 음악, 광고까지 하나같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구매는 내게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구매한 첫 번째 사례라 의미가 있다. 아래엔 음원을 즐길 수 있는 영상을 첨부한다.


장재혁 / 에디터 – 2002 FIFA World Cup Official T-Shirt

간만에 마음에 쏙 드는 모자를 발견했다. @govermentcap에 올라온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굿즈였는데 웬걸… 파는 상품이 아니란다. 올해 월드컵도 열리겠다, 2002년의 영광과 빈티지함 모두를 갖춘 최적의 아이템이란 생각이 들어 eBay며, 아마존(amazon)이며 각종 중고 거래 사이트는 죄다 뒤졌지만 20년 세월에 파묻힌 추억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뜻밖의 행운을 마주하고 ‘인생사 새옹지마’를 외치는 게 바로 디깅의 묘미 아닐까. 2002 FIFA WORLD CUP 공식 티셔츠, 25,000원, 미착용. 천정부지 치솟는 물가에 20년 전 가격을 그대로 고집한 새 제품을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향수를 자극하는 월드컵 마크에 청바지, 아디다스 스니커즈를 더하면 스트리스 스타일의 정석 같은 룩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 구매를 서둘렀다. 사실 로우-라이즈(low-rise)다, 새깅(sagging)이다 하는 Y2K 트렌드가 판을 치고 있는 현 패션계 트렌드를 살피며, 직접 관통하지 않은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스스로 썩 석연치 않았는데 추억도 멋도 놓치지 않은 2002년 월드컵 티셔츠는 내게 둘 없는 선택지였다.

대부분의 행사용 굿즈가 그렇듯 월드컵 티셔츠 역시 내가 기대하던 핏은 아니었다. 어정쩡하게 펑퍼짐한 것이 요즘 맛 들인 미니 티셔츠와는 영 딴판이다. 팔을 잘라 나시로 만들어 입을까 고민도 했지만 그냥 뒀다. 뭐, 아무렴 어떤가. 손흥민을 등에 업고 다시금 축구 붐이 일어난 올해에는 두툼한 코트 안에 2002년의 추억을 간직하고서 20년 만의 기적을 바라볼 요량이다.


박진우 / 그래픽 디자이너 – Feathered Friends Helios Hooded Down Jacket

남반구의 마음으로 쇼핑를 했습니다.

패딩은 그저 겨울나기용 두꺼운 잠바지만, 근 십여 년간 저에겐 뭔가 겨울의 숙제, 숙제의 구매목록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따뜻하고 편하면서 브랜드도 왠지 멋지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면서 매일 입어도 덜 질리는 그런 든든한 패딩 잠바를 찾는 것…

3년 정도의 주기로 패딩 갈증이 오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3년이라는 간격이 사치스러울 수도, 누군가에는 너무 뜨문뜨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은 제가 신경 쓸 그건 아니죠.

나이스한 패딩의 가장 쉬운 답은 노쓰 700이라 불렸던 노스페이스 눕시 재킷이 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죠… 이제 좀 질리니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섭니다. 어떤 해에는 왠지 코트를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트 카테고리에는 데이터가 거의 없으니 정신을 다잡아봅니다.

2년 전 겨울에 큰맘 먹고 텐씨의 패딩을 샀었습니다. 입다 보니 텐씨는 등산복 바이브가 아니어서 자주 입기 편한 느낌은 또 아니었지요. 그리고 2.5년 정도 시간이 흘러 2022년 6월. 친구가 저에게 링크 하나를 보내줬습니다. 페더드 프렌즈(Feathered Friends)라는 브랜드였는데, 든든해 보이는 디자인과 뭔가 캘리포니아에서 개발자를 하고 있을 것 같은 모델의 대충 찍은 착샷이 왠지 갖고 싶게 했습니다.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패딩 삼대장 어쩌고 하길래. 저는 구매를 결심했어요. (일부) 현대인은 자존감이 떨어지면 쇼핑으로 치유한다는데, 최근에 제 자존감이 여름에 비싼 패딩을 살 정도로 떨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사기로 결정했으니 컬러를 고민해야 하는데요. 저는 블랙에서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몰개성의 패배감을 느낍니다. 잘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그레이 또한 같은 이유로 패스합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그레이 블랙 추천을 제외하고는 그린 혹은 퍼플을 추천이 많습니다. 저는 그린을 사기로 결정합니다. 200불이 넘으니 관세를 물어야겠구나. 배대지 어쩌고 하면 언더밸류 어쩌고 해서 관세를 피할 수 도 있다고 합니다. 왠지 번거로워 관세를 내기로 결정하고 직구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사진으로 보던 패딩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사이즈가 너무 잘 맞습니다. 삼대장이라는 소문답게 패딩이 엄청나게 빵빵해서 입자마자 땀이 줄줄 흘러 후다닥 벗어버렸습니다. 저는 심지어 1달 전에 담배를 끊었기 떄문에 담배 불똥이 튀어 패딩에 빵꾸가 날 걱정도 없어졌습니다.


Editor│오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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