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소조쿠 & 이타샤: 공도 위의 이단아

빠라바라바라밤, 그들의 혼(Horn)이 들리는가

90년대, 국경일이면 태극기와 함께 한국의 밤거리를 수놓았던 형형색색의 오토바이 무리를 기억하는가. 이들의 전신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시작된다. 그 이름하여 보소조쿠(bōsōzoku). 제2차 세계대전 후 삭막하고 혼란했던 일본으로 소급해 올라간다.

보소조쿠의 의미는 ‘통제 불능 폭주족’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보소조쿠라는 명칭은 본래 ‘천둥족’을 뜻하는 카미나리 조쿠(Kaminari zoku)에서 기원하는데, 카미나리 조쿠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퇴역 군인(주로 가미카제)의 서브컬처였다. 그들은 전쟁의 잔상으로 인해 들끓던 아드레날린을 표출할 수단이 필요했고, 이는 곧 사회에 대한 반항심과 분열을 모터사이클에 투영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50년대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한국 전쟁에 군용 이동 수단을 공급하며 발전했고, 엔진 성능이 향상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카미나리 조쿠 문화가 동반 성장할 수 있었다.

초기 그들은 극한의 위험과 스릴을 갈망하며 곡예 운전을 하고 길거리 레이싱을 벌였다. 소음과 과속을 통해 분출된 그들의 열망은 비행 청소년을 끌어들이며 점차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70년대에 접어들어 비행 청소년과 경찰의 대립이 고조되고, 집단 간의 폭력이 잦아지자 일본 언론은 그들에게 ‘보소조쿠’라는 명칭을 새로이 부여했다. 다시 말해, 레이싱 위주였던 기존의 카미나리 조쿠와 구분하여 그 이름에 난폭성과 폭력성을 내포하기 위함이었다.


보소조쿠의 드레스 코드 : 토코우 후쿠(Tokkou-fuku)

보소조쿠는 17세부터 22세까지의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대부분 노동자 신분이었던 그들은 당시 현상 유지에 대한 경멸과 반체제 정서를 표출했고, 때론 우익 세력과 결탁하여 일본으로 유입되는 서양 문화(런던의 훵크, 미국의 힙합, 스트리트 패션 등)에 대항하며 과거를 향수하기도 했다. 이는 반항적이고 전통적인 요소가 가미된 토코우 후쿠(Tokkou fuku : 특공복)라는 스타일의 출현으로 증명할 수 있다. 토코우 후쿠는 점프 수트나 오버사이즈 배기팬츠, 밀리터리 부츠를 아우르며 보소조쿠의 유니폼으로 쓰였다. 이 복장이 집단적 드레스 코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본래 보일러 수트와 배기팬츠가 일본 내 육체노동자의 작업복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며, 일각에서는 가미카제 조종사 복장 또는 야쿠자 조직의 정문 경비원 복장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소조쿠는 향유자에게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정착했다. 특히, 토코우 후쿠는 그 중심에서 각 그룹의 소속감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멤버들은 크루의 엠블럼과 슬로건, 일장기, 민족주의 문구 등을 옷에 스티치로 새겨 넣으며 그들의 정체성과 결속력을 시민들에게 과시했다. 이와 함께 퐁파두르(Pompadour) 헤어와 하치마키(Hachimaki) 머리띠, 롱부츠, 경찰로부터 신분을 숨기기 위한 마스크가 토코우 후쿠를 대표하는 스타일에 포함되었다.

보소조쿠 갱이 토코우 후쿠에 새겨 넣은 주요 슬로건은 아래와 같았다.

  • 포기하지 않는다.
  • 원 샷 원 블로우(One Shot One Blow, 투혼)
  • 나라를 통일한다(Unify a country)
  • 바람처럼 빠르고, 숲처럼 고요하고, 불처럼 용감하고, 산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 도전은 받아들인다(피할 수 없다면)

청소년들의 자의식 과잉 +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하위문화로 점철될 수도 있지만, 일본의 오타쿠(Otaku) 문화 속에서 팬들이 코스튬을 통해 상호 교감하듯, 보소조쿠에게 토코우 후쿠는 카운터 컬처로써 받는 시선을 방어하는 갑옷과도 같았다. 한 멤버는 재팬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유니폼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입음으로써 하나가 된다. 토코우 후쿠는 우리를 하나로 엮어준다”라며 토코우 후쿠를 예찬하기도 했다.

이처럼 독보적 분위기의 스타일은 패션 산업에 있어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낳았다. 대표적인 예가 90년대 초, 우라 하라주쿠(Ura-Harajuku) 스트리트웨어 신을 선도한 브랜드 네이버후드(Neighborhood)의 창립자 타키자와 신스케(Shinsuke Takizawa)는 모터사이클에 기반을 둔 보소조쿠 문화와 밀리터리, 저항정신 등의 장르를 아울렀다. 네이버후드 컬렉션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디자인 철학, 이를테면 호랑이와 용, 태양, 후지산 그래픽 문양을 비롯해 반복적인 텍스트 스티치는 토코우 후쿠의 기풍을 이어받은 대목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름부터 토코우 후쿠를 표방하는 브랜드도 있다. 2018년 런던을 베이스로 설립된 토코우(Tokkou)는 밀리터리 훵크, 스포티 엘레강스, 스마트 캐주얼을 테마로 한다. 한마디로 바이커 갱 스타일을 내세우는데, 특히나 일본 오카야마에서 생산되는 데님 특유의 퀄리티로 서양 컨템포러리 패션 신에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공도 위 존재감을 극대화 하다 : 카이도 레이서(Kaido Racer)

70년대 이후, 보소조쿠는 여러 갈래의 개성을 가진 집단으로 파생되었다. 그중 하나가 카이도 레이서(Kaido Racer). 가도 또는 도로라는 의미를 갖는 공도(Kaido)의 첫인상은 다소 과격하고 엽기적이다. 요컨대, 이는 슈퍼 실루엣 레이스 그룹5(당시 일본 모터스포츠의 한 종류)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모습이다. 말 그대로 자동차의 실루엣만 유지하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개조 가능한 레이싱 머신. 일본 스트리트 카 신의 게임 체인저는 이 머신을 모방하며 등장한다.

모터스포츠에 관한 그 배경을 살펴보자면, 도심에서 위험한 스피드 경쟁이 가속화되자 혼다(Honda)는 서킷 인프라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1962년, 스즈카(Suzuka) 서킷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는 일본 모터스포츠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도로 건설 및 포장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 내 고속화도로의 확장을 불러일으켰다. 허나, 과연 혈기왕성한 보소조쿠가 얌전히 모터스포츠만 즐길 수 있었겠는가. 공도 환경의 개선은 곧 그들이 맘껏 질주할 기회로 다가왔고, 이 기회란 위에서 살펴본 카이도 레이서와 같이 보소조쿠의 세포 분열을 촉진하는 도화선과도 같았다.

DIY를 모토로 이들은 개러지에 모여 바디킷을 직접 제작하고 빌드했다. 길쭉하고 넓게 뻗은 스플리터(Splitter)와 오버휀더, 그와는 대조적으로 귀여운 휠, 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페인트칠, 그리고 무엇보다 맥락 없이 솟아오른 배기구. 카이도 레이서는 중간 없이 거대하거나 타이니한 요소들의 접목으로 보소조쿠의 개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당대의 이러한 불법적 튜닝 양식은 배기구가 높이, 많이 뻗을수록 미의 기준을 충족했다는 것이 보소조쿠의 정설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다 : 이타샤

상술했듯 보소조쿠는 줄기를 뻗어나갔다. 렉서스와 같은 고급 브랜드 차량을 개조하는 비프(Bippu : VIP), 클래식 JDM(일본산 차량)을 커스텀 하는 큐샤(Kyusha), 아스팔트를 긁을 정도로 차체를 낮추는 샤코탄(Shakotan) 등 여러 튜닝 양식이 창조되었으며, 나아가 범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튜너 RWB와 TRA 교토, 리버티 워크(Liberty walk) 등이 문화의 황금기 전후로 탄생해 자동차 튜닝 신을 이끌었다.

한편, 레이싱카를 본뜬 외관과 퍼포먼스를 위한 개조가 아닌 막강한 취향과 개성을 표하는 긱(Geek) 컬처가 등장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이타샤(Itasha). 오타쿠의 자동차다. Ita : 고통스러운, sha : 자동차. 그러니까 보기 고통스러운 차. 80년대 캐릭터 붐과 함께 차에 스티커를 붙이면서부터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차량 전체를 래핑 하며 캐릭터를 우상화하는 오늘날의 이타샤는 2000년대 초반, 도쿄의 아키하바라(Akihabara) 거리에서 출현했다. 본래 용산의 전자상가같이 도쿄의 전자제품 거리였던 아키하바라는 수년간 비디오 게임과 애니메이션, 망가 관련 제품을 다루면서 오타쿠들의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자연스레 이타샤의 성지가 된 것.

조용하고 아웃사이더의 성향을 보이던 오타쿠 문화가 마음먹고 도로 위에 등장해버리니, 과연 이타샤의 태동은 앞선 보소조쿠를 모범생으로 만들 정도로 거리의 튜닝 신을 뒤흔들었다. 그야말로 긱 오브 긱. 오타쿠는 주류가 아니었을 뿐 열도 곳곳에 다부지게 분포했고, 이타샤를 이동 수단 삼으며 그들만의 세계관을 건설했다. 코스프레 증명사진으로 ‘이타 면허증’을 발급받는가 하면(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 시골의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농기계에도 망가 래핑을 하는 경우가 더러 포착되었다. 모터스포츠에도 진출한 이타샤는 백미러로 보면 약간 비켜주고 싶고 민망할 정도의 망가 래핑을 한 채 코스프레 레이싱걸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문화력 또한 입증했다. 주말이면 각종 이타샤가 모이는 아키하바라의 UDX 빌딩 주차장은 소셜 베뉴가 된 지 오래. 이 외에 텍사스 남부 최대 규모 애니메이션 축제인 ‘산 재팬(San Japan)’과 더불어 해마다 도쿄 오다이바(Odaiba)에서 열리는 ‘이타샤 천국’은 전 세계로부터 차량과 방문객을 모으는 세계 최대 이타샤 축제로 거듭났다. 한국은 대표적으로 ‘서울 코믹 월드’에서 이타샤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보소조쿠 & 이타샤 2.0

오늘날에 와서 일본 튜닝 신을 상징하는 보소조쿠와 이타샤의 명암은 상당히 대비된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타샤는 지상으로 올라오며 바다 건너에까지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오리지날 ‘이타샤’가 그 뉘앙스 자체에 부정적이고 해학적인 성격이 담기고, 덕혐들에 의해 조롱당하던 과거를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문화적 성취다(여전히 고의적으로 이타샤를 흠집 내고 달아나는 행위, 일명 이타샤 사냥은 존재하지만).

반면 보소조쿠의 경우 자동차, 바이크 할 것 없이 하락세가 뚜렷하다. 일본의 버블 경제 시기에 발맞춰 정점을 찍은 보소조쿠는 경찰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1982년 그 규모가 43,000여 명에 달했다. 허나 이후로 현대의 밈처럼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에 활발히 소비되었음에도, 그들의 캐릭터는 재생산될수록 파급력이 줄어들었다. 경제 거품이 꺼졌고 미디어의 확장과 함께 시민의식의 성장, 법 규제 강화로 인해 사회적 민폐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식 자료에 의하면 오늘날에 와서 그 규모는 6,000여 명까지 수축되었다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자가 증식한다는 것. 보소조쿠는 언더그라운드 신으로 흘러 들어간다. 몸집을 부풀리기보단 여러 갈래로 증식하며. 추종자들은 도심의 지하 주차장을 찾는다.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숨지 않고 맞이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어느 지상보다 현란한 지하가 있다.

보소조쿠와 이탸사, 그들이 본인의 취향을 당당히 내비치는 행위는 결코 불가해하지 않다. 인간의 정체성, 질서에 대한 거부, 더 강한 자극과 자기표현 욕구를 대변하는 이 문화를 우리는 비단, 탄압과 조롱의 대상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신(Scene)을 투시해 보면 누군가의 꿈이자 삶, 때론 가족이 있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식과 향유자의 건강한 자세가 균형 맞아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기에, 현세대가 물려받은 유산에 햇볕이 드리울 날을 고대한다.


이미지 출처 | wikipedia, Pinterest, Youtube, Twitter, Otakuma, Insidejapantours, 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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