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맞이 컬트 영화 추천 5작

2023 신년의 미지근한 추위를 물리치고 전기 장판과 함께 따뜻한 겨울을 나려는 사람들을 위해, 몸은 훈훈하되 정신은 아득해질 컬트 영화들을 영업한다.

컬트 영화는 특정한 장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관습적, 상업적 영화에서 벗어난 비주류적인 영화를 통칭할 때 많이 쓰인다. 컬트는 ‘숭배’를 뜻하는 라틴어 ‘컬츠(Cults)’에서 유래한 단어로 소수의 관객층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7-80년대 호러, 코미디 등을 상영했던 심야 영화 상영관 중심으로 열성적인 ‘회전문 관객(똑같은 영화, 뮤지컬을 수차례 재관람하는 관객)’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이후 ‘컬트’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다.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는 컬트 현상 설명하는 대표적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만 각설하고 화면을 넘어서 신선함을 전해줄 추천작들로 넘어가 보겠다.


1. 바비 예 (Bobby Yeah, 2011)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반인반수의 크리피한 토끼가 주인공인 “바비 예(Bobby Yeah)”를 첫 작품으로 소개한다. 이 토끼는 일단 생김새부터가 께름칙하다. 울그락불그락한 얼굴과 썩은 이빨, 튀어나올 것 같은 부담스러운 눈알과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행동만 하는 호기심의 소유자이다. 주인공 ‘바비’가 미스터리한 정체의 애완동물을 훔치게 되면서 곤경에 빠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왜인지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의 영화들이 생각나는 그로테스크한 악몽 같은 이미지들로 점철되어 있다. 내장같이 반질거리고 선홍빛의 질감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가히 천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방식으로 바비를 괴롭힌다. 꿈속 같은 공간 디자인을 감상하는 것 또한 이 영화의 묘미. 

“바비 예”는 23분짜리 짧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기괴한 세계관을 가진 로버트 모건(Robert Morgan) 감독이 제작하였다. 선댄스 영화제를 포함하여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니, 믿고 즐기러 가볼 것.


2. 쾌락의 공범자들(Conspirators of Pleasure, 1996)

언캐니한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내는 초현실주의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단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대화의 가능성(Dimensions of Dialogue)”로 유명한 얀 슈반크마이에르(Jan Svankmajer)의 장편 영화. “쾌락의 공범자들”은 여섯 명의 남녀가 각각의 기상천외한 방식을 통해서 자신만의 성적 쾌락을 탐닉하는 내용의 무성 영화다. 처음에는 무관한 것처럼 보였던 이들이 암암리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사실이 점점 밝혀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포주의※) 

간단히 인물 소개를 해보자면,

첫 번째 인물 : 주인공인 ‘남자’는 사건의 중심이자 영화 내내 옆집 부인을 경계하며 닭머리의 주술사 코스튬을 만든다. 그는 코스튬을 만들어 의식을 통해 부인을 저주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인물 : 옆집부인은 ‘남자’의 모습을 본딴 인형을 만들어 그녀만 아는 비밀 장소에서 BDSM 플레이를 즐기며 쾌락을 얻는다. 
세 번째 인물 : ‘남자’ 집으로 우편배달을 오는 우편 배달원. 빵 안의 부드러운 속을 파 내어 동그랗게 굴린 뒤 굳혀 코와 귀로 흡입하는 행위를 통해 쾌락을 얻는다. 
네 번째 인물 : 동네 형사. 형사는 방망이 같은 도구에 닭털이나 못을 달라 자신의 신체를 애무하며 쾌락을 얻는다. 본인만의 쾌락에 빠져 아내를 등한시한다. 
다섯 번째 인물 : 형사의 아내. 아나운서이며 남편과의 관계에 늘 만족하지 못하다가 물고기를 쓰다듬거나 물고기에 발을 빨리는 행위를 통해서 성적 쾌락을 찾은 캐릭터. 우편배달부가 만든 빵 속으로 만든 동그란 공들을 물고기의 먹이로 종종 준다.
여섯 번째 인물 : 잡지 판매원으로, ‘남자’가 자주 가는 매장의 직원이다. 그는 아나운서에게 반해 TV 아래 마네킹 팔을 달아서 그녀가 방송할 때마다 기계를 작동시켜 자신의 신체를 애무하며 쾌락을 얻는다.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각자의 성적 취향을 가진 소수자들을 조명한다. 이 여섯 명이 마치 하나의 오컬트 집단처럼 보이기도 할 만큼 주술적인 분위기를 토대로 코믹스러운 상황을 연출한다. 이들이 쾌락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모든 내러티브가 하나로 융합되는데 마치 모든 장벽이 사라지는 듯한 혼란스러움에서 솟아오르는 쾌감이 강렬한 영화다. 


3. 홀리 마운틴(The Holy Mountain, 1973)

컬트 영화의 거장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감독의 대표작. “록키 호러 픽쳐 쇼”와 마찬가지로 컬트 영화의 고전이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에 비해 “록키 호러 픽쳐 쇼”는 훨씬 깜찍하고 산뜻한 맛이다) 종잡을 수 없는 서사로 튀어나가는 작품이라 몇 문장으로 시놉시스를 설명하기에 상당히 난해하다. 인간의 철학과 역사, 성경과 이교도의 신비주의 등 수많은 은유적 상징을 가져와 뒤섞고 풍자한다. 이 영화를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 다들 그렇다.

타로카드의 0번 ‘The Fool’ 바보 카드를 상징하는 예수를 닮은 남자와, 태양계 혹성의 대표들이 함께 홀리 마운틴이라 불리우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홀리 마운틴”은 문단마다 비디오 아트 급의 눈이 돌아갈 만한 화려한 프로덕션 디자인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조도로프스키가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 편집에 참여하고 직접 출연하며 그의 충격적인 판타지에 적극적으로 힘을 더했다. 이 영화만큼은 다른 사람의 구구절절한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러 당장 홀리 마운틴을 감상해 보자.

주의 : 이만하면 끝났나 싶을 때 또다시 이어지는 비주얼 폭격에 영육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을 테니 긴장의 끈을 놓지 말 것. 


4. 철남 테츠오(Tetsuo, The Ironman, 1989)

츠카모토 신야(Tsukamoto Shinya) 감독의 초기 장편 영화로 주인공이 점점 기계 인간으로 변해가는 내용의 영화. 제목의 ‘테츠오’는 오토모 카츠히로(otomo katsuhiro)의 애니메이션 영화“AKIRA”의 등장인물 ‘테츠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8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감독의 시각적인 센스와 편집의 리듬감이 탁월하다. 감독의 젊은 패기와 실험적인 상상력이 한 시간으로 축약된 작품. 저예산으로 만들었다 보니 쓰레기장에서 고철을 주워 기계인간의 비주얼을 구현했고 특수 효과 장면들은 스톱모션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그의 가난한 열정 덕분에 3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여전히 작품이 날카롭고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흔해진 트렌드처럼 느껴지는 기계화된 인간 신체, 물화된 인간 신체 비주얼에 물렸다면 “철남 테츠오”를 되돌아봐야 한다. 츠카모토 신야의 말도 안 되는 에너지에 두 눈이 다시 뜨일 것이다.


5. 개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Dogs Don’t Wear Pants, 2019)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BDSM 플레이에 관련된 영화이다. 주인공인 ‘유하’는 익사 사고로 아내를 잃고 난 후 우연히 들린 SM 클럽에서 마조히즘에 눈을 뜨게 된다. 이게 대체 무슨 어불성설한 문장인가 싶지만, 영화를 보면 납득이 되는 전개다. 주체적인 가학과 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깨우치는 주인공의 변화를 보고 있자면 성장영화라고도 읽히는 “개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소재를 빼고 보면 트라우마 이후 상실감과 회복에 대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주고받는 물리적, 심적 상호 작용을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컬트 영화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이 확실하고 컬트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자체가 주는 우스꽝스러움과 기괴함, 공포스러움이 흥미로운 것은 확실하다. 뿐만 아니라 그 기저에는 제도권과 기성세대 문화의 전복에 대한 갈망, 금기를 파괴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즘 때문에 더더욱 매료되는 것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이 영화들과 함께 짜릿한 신년을 맞이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이미지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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