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UKA HIRATA(BIG LOVE RECORDS)

훌륭한 레코드 숍은 그 자체로 한 도시의 자산이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쉽게 닿지 못하는 음악의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도시의 로컬 음악 신(Scene)에 활력을 불어넣는 레코드 샵은 뮤지션 및 음악 애호가들에게 도서관 혹은 살롱에 비견할만할 터. 기이할 정도의 바이닐 판매량 급증 현상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들려오는 독립 레코드 샵들의 폐점 소식이 단순한 뉴스거리가 아니라 문화 다양성의 위기를 말하는 불길한 전조로 다가오는 이유다.

국내외 레코드 디거와 숍 오너들을 수차례 인터뷰해 온 VISLA는 이번에 도쿄로 향한다. 수없이 많은 레코드 숍을 자랑하는 도쿄의 로컬 음악 신을 고려할 때 단 한 곳의 ‘대표 주자’를 고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빅러브 레코즈(Big Love Records)를 빼고 도쿄의 레코드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음악 파트를 담당하는 나카 마사시(Masashi Naka)와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담당하는 히라타 하루카(Haruka Hirata)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빅러브 레코즈는 컬트 팬덤을 거느린 독립 레코드 숍이자 음악 레이블이다. 해외 레이블 및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협업을 진행하며 도쿄 로컬 문화에 뚜렷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들은 도쿄와 해외 문화예술계를 잇는 중요한 교두보 중 하나로, 그 배경에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디렉터로서의 탁월한 비전을 가진 하루카가 있다. 빅러브 레코즈뿐 아니라 편집숍 GR8의 코디네이터, 퍽스 앤 미니(Perks And Mini) 재팬 디렉터 그리고 이케바나(ikebana)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하루카를 소개한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도쿄 하라주쿠의 독립 레코드샵 빅러브 레코즈의 공동 설립자이자 이케바나 아티스트인 하루카 히라타다. 도쿄에서 나고 자랐으며 유년 시절의 일부를 가족과 함께 그리스 테살로니키(Thessaloniki)에서 보냈다.   

우선 코로나19(COVID-19)가 근래 당신의 일과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묻고 싶다그간 어떻게 지냈나?

이번 팬데믹이 도쿄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기 직전인 2월 26일, 해외에서 날아온 밴드 세 팀의 쇼케이스 무대를 진행했다.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무대를 진행하는 일 자체가 밴드와 관객 모두에게 어려운 결정이었고, 그렇기에 무대에 선 아티스트를 제외한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통제하고 머천다이즈 부스에 손 소독제를 비치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연의 에너지는 차분한 동시에 웅장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일본 정부는 모든 행사와 공연을 취소 혹은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일본 정부는 절대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비상사태가 지속되는 동안 빅러브 레코즈 스태프들은 문을 닫은 가게 안에서 온라인 주문 건을 처리하며 지냈다. 이렇게 조용한 하라주쿠 거리는 난생처음 봤다. 우리는 고객과 소통하기 위해 주간 인스타그램 라이브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져 가게 매출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비상사태 선언 해제 이후에는 매장을 정상 운영하되 가게에 입장하는 모든 이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과 체온 측정은 기본이고, 구매 의사 없이 단순히 구경하기 위해 방문한 고객은 입장이 불가하다. 레코드샵 내 바(Bar) 공간 또한 당연히 레코드를 구매한 고객만 입장할 수 있고. 혹자는 우리가 너무 엄격하게 군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우리는 우리에게 단순히 무언가를 얻어가는 이들보다 얻어간 만큼 기꺼이 돌려주는 고객을 더 존중하고 싶다.

내 일상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면, 일단 외국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지금까지 패션 혹은 이케바나 관련 프로젝트로 한 달에 최소 한 번 이상 꾸준히 해외 출장을 다녔으니까. 또한 내 가장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일본 밖에서 살고 있어 그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꽤 힘들다. 인터넷 덕분에 모두와 연결되어 있긴 하나, P.A.M의 샤나(Shauna)를 비롯한 모든 친구를 꼭 안아주고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싶다. 

본래 외출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어서 집에서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편안했을 뿐 아니라, 생각해보면 특이하게도 비상사태 때 되려 더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 9월 도쿄의 상황이 안정되며 사회 활동이 재개되자 조금 우울해졌을 정도다. 나에겐 인적이 없는 도시가 더 편한 것 같다. 실제로 난 사람들이 모두 고향에 내려간 새해 연휴 기간을 일 년 중 제일 안락한 시간이라고 느낀다. 도쿄 토박이라면 누구나 다 이 부분에 동의할 걸.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빅러브 레코즈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안 들어볼 수 없다. 이미 다양한 매체에서 수차례 이야기했겠지만, 어떻게 빅러브 레코즈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빅러브 레코즈가 ‘에스컬레이터 레코즈(Escalator Records)’였던 초창기에는 지금과 무엇이 달랐나?

난 대학교에 다니던 2003년 카페 스태프로 에스컬레이터 레코즈에 합류했다. 나보다 13살 많은 친오빠가 음악과 문화에 대해 많이 가르쳐 준 터라, 음악과 관련된 커리어 경험을 쌓고 싶던 차였지.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이 일에 이 정도로 깊게 관여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에스컬레이터 레코즈는 빅러브 레코즈의 공동 설립자인 나카가 90년대 초반에 설립한 음악 레이블이고, 당시 굉장히 팝적인 음악을 하는 일본인 아티스트들과 주로 일했다. 나도 처음에는 카페 스태프로 합류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덕에 점점 레이블의 업무를 하나둘씩 돕기 시작했고, 2008년 나카와 결혼한 뒤에는 우리에게 더욱 와닿는 해외 밴드에 좀 더 집중하고자 레이블 겸 레코드 숍의 이름을 빅러브 레코즈로 바꿨다(참고로 나와 나카는 행복하게 이혼했으며, 현재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레코드 숍은 초창기부터 쭉 나카의 취향과 전자 음악을 담당하는 바이어 마루(Maru)의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운영됐지만, 레이블은 조금 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향으로 변해 온 느낌이다.

빅러브 레코즈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당신의 목표가 궁금하다사업이 이렇게 커질 줄 예상했나 

전혀 예상 못 했지! 우린 그저 우리가 진짜 사랑하고 싶은 일을 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빅러브 레코즈는 나와 나카의 취향을 반영하는 협력 프로젝트고, 우린 그 본질에 최대한 충실해지려 노력한다. 세계 최고의 레코드 숍 주인인 나카와 함께 빅러브 레코즈를 운영하는 나는 진짜 행운아다. 그게 전부다! 물론 유럽에서 자라고 미국 학교에 다닌 도쿄 네이티브로서 내가 속한 문화와 커뮤니티를 지켜내기 위한 책임감은 항상 느끼고 있다.  

빅러브 레코즈를 이야기할 때 아티스트 칼리 손힐 드윗(Cali Thornhill Dewitt)이 디자인한 올드 잉글리시(Old English) 폰트의 로고를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구적인 동시에 일본 고유의 미학과도 잘 어울린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로고를 의뢰하게 되었고 왜 이 폰트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칼리는 지난 2010년 그의 레이블 티네이지 티어드롭(Teenage Teardrops)의 음반을 들여오기 위해 연락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레이블 오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일본인에게 굉장히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디자인과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더라. 칼리는 당시 자신의 상징적인 올드 잉글리시 폰트를 프린팅한 스웻 셔츠를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빅러브 레코즈의 로고가 필요해진 순간 나카가 그걸 떠올리며 ‘그때 그 폰트로 우리 로고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자’라고 하더라. 그게 바야흐로 2013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칼리의 로고를 얻은 일에는 트렌드,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은 나카의 공이 크고 내 덕이라고 할 것은 딱히 없다. 난 그때 그냥 애였거든. 나카의 말을 듣고 ‘와 그거 완전 멋있겠다’라고 생각한 게 전부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올드 잉글리시 폰트는 일본 문자와 완전히 대비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너무 이국적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거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일본 문자와 한자는 일본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 일본은 17세기부터 약 2세기에 걸쳐 타국으로부터 고립되었고, 이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약 7년간 점령 상태(Occupation)를 유지했지. 기본적으로 일본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기존에 이미 있는 무언가를 발전시키는 일에 능하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항상 다른 나라와 그들의 문화를 깊게 관찰하고 존중하는 거지. 올드 잉글리시 폰트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를 상징한다. 그래서 되려 신선하고 흥미로운 것 아닐까. 우리의 로고는 다른 문화에 존경을 표하는 우리의 방식이다.

칼리 손힐 드윗은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The Life of Pablo] 프로젝트에 디자이너로 참여하며 메인스트림 신(Scene)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 문화적 현상이 그의 로고를 사용하는 빅러브 레코즈에도 모종의 영향을 끼쳤나?   

별로. 칼리가 칸예의 머천다이즈 디자인 의뢰 전화를 받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당시 칼리는 빅러브 레코즈에서 열린 아트 쇼 행사를 위해 컴 티즈(Come Tees)의 소냐(Sonya), 콜만(Kohlmann)의 엠마(Emma)와 함께 도쿄에 와 있었거든. 내 친구들이 주목을 받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기쁘지만, 그건 우리와 상관없는 외부의 일에 불과하다. 칼리는 항상 우리 커뮤니티를 다음 단계로 도약하게 만들어 주는 멘토 중 한 명이다. 우리의 시야를 확장하고 태도에 영향을 준 것은 칼리의 인격이지, 그의 폰트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고객들이 음반이 아닌 빅러브 레코즈 머천다이즈를 사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빅러브 레코즈의 행보가 인상적인 점은 자체 머천다이즈의 선풍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레코드 숍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빅러브 레코즈의 머천다이즈가 전세계 패션 애호가들의 인기 아이템이 되었으나 당신은 레코드 숍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머천다이즈 라인의 지나친 확장을 지양하고 있다. ‘레코드’라는 정체성은 당신과 동료들에게 왜 중요한가?  

우리가 머천다이즈를 판매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레코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훌륭한 신예 아티스트들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진짜 집중하는 대상은 우리 레코드 숍의 단골들이다. 우린 유명한 브랜드 혹은 개인과 일할 때도 우리의 ‘진짜’ 고객과 팬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는 그들이 우리를 절대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런던의 굿후드(Goodhood)가 우리에게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전설적인 [Unknown Pleasures] 앨범 아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콜라보레이션 제안을 했을 때도 우리의 목표는 그냥 길거리의 흔한 친구들(Street Kids)이 아닌 진짜 조이 디비전 팬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머천다이즈 협업에 또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나와 실제로 친구 사이인 아티스트하고만 협업한다는 점이다. 우선 그들과는 밖에서 식사할 때나 거리를 걸을 때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고, 음악을 사랑한다는 상호 간의 확실한 믿음이 있다. 바로 그 사랑이 우리의 머천다이즈에 진정성 있고 순수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모든 것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당신은 빅러브 레코즈가 언제나 언더그라운드 신에 남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다수의 매체 인터뷰에서 피력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언더그라운드 레코드 숍의 형태는?

근 십수 년은 음악 산업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과거에는 음악이 유스 컬처(Youth Culture)의 핵심이었지만, 이젠 즐길 수 있는 다른 미디어가 많아졌으니까. 이 점을 생각하면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죽이고 최대한 대중과 근접한 메인스트림 음악을 지향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레코드 스토어 데이(Record Store Day, RSD)는 오늘날 독립 레코드 숍으로 소비자를 인도하고자 하는 본래의 목표를 상실했다. 협의된 음반 릴리즈 날짜를 지키지 않는 메이저 레코드 숍이 참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들은 RSD가 시작되기도 전에 더 싼 가격에 온라인 판매를 먼저 시작해버린다. 나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숍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를 대부분의 숍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적인 언더그라운드 레코드 숍은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기 위해 다른 곳을 존중하고 지지해야 한다. 다들 이 환상적인 레코드 문화를 죽이는 일에 이미 동의해버린 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언더그라운드 정신은 DIY 정신 및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는 독립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그렇다면언더그라운드 정신을 지키는 것과 상업적 성공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일까

오늘날에는 SNS 팔로워 수가 곧 개인의 가치이고 SNS 피드가 곧 개인의 성격이다. 모든 것이 조작할 수 있다. 엄청 상업적이고 피곤하지 않나.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의 생계를 위해 사업을 유지하고 현재와 미래의 소비자 그리고 산업 그 자체를 위해 레코드 문화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옳지 않다고 느끼는 것에 ‘예스’로 대답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언더그라운드 밴드와 아티스트의 에너지 그리고 열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과 예술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진짜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진짜 삶이 곧 DIY다. 상업적 콘텐츠에는 삶이 없다.  

빅러브 레코즈가 셀렉하는 음반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최근 주목하고 바잉하는 음악이 있다면?

개인적인 취향을 얘기하자면 최근 케냐의 아티스트 듀오 듀마(Duma)에 빠져있다. 녜게 녜게(Nyege Nyege)가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새 음악 신을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빅러브 레코즈의 음악적인 부분에 대한 답변은 빅러브 레코즈의 바잉을 전담하는 나카(Masashi Naka, 이하 N)에게 맡기겠다. 이 업계에 30년 넘게 몸담은 그의 식견이 독자들에게 훨씬 깊고 흥미로울 것이라고 믿는다.  

N: 우리는 주로 갓 릴리즈된 록(Rock)과 기타 밴드 음악에 집중하여 음반을 셀렉한다. 물론 일렉트로닉, 랩, 알앤비, 인더스트리얼, 노이즈, 앰비언트, 아프리카 음악 및 팝을 전부 취급하지만 모두 록 음악의 관점을 통해 선별하고 있어서 이들 장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숍들과 취향의 차이가 느껴질 것이다. 우리에게 ‘새 음악’이란 혁신성에 기반한 개념이 아닌, 시간과 시대성에 충실한 개념이다. 지금 이 시대에 릴리즈된 음악. 어떤 음악이 진정 혁신적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기까기 기다려야 한다. 최근 감명 깊게 들은 음악을 소개하자면: 녜게 녜게 테입스의 케냐인 듀오, 듀마가 만들어내는 그라인드 코어, 긴 공백기를 끝내고 돌아온 일본의 전설적인 노이즈 음악 프로젝트 더 게로게리게게(The Gerogerigege), 런던의 블랙 컨트리(Black Country) 그리고 10년 만에 신보를 공개한 미국의 살렘(Salem)과 뉴 로드(New Road)가 있다.

빅러브 레코즈는 레코드 숍인 동시에 음악 레이블이다. 레이블이 지원하는 아티스트와 당신을 감동시킨 그들의 매력이 무엇인지 소개해달라. 

N: 위에 언급한 살렘의 7”와 4AD와 계약하기 전의 아리엘 핑크(Ariel Pink) 음반을 빅러브 레코즈에서 릴리즈한 경험이 우리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우리는 그 릴리즈 이후로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기로 결심했거든. 그 음반들은 당시 일본에서 많이 팔리지 않았으나 지금은 수요가 높은 희귀 음반들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우리가 릴리즈한 ‘The xx’의 초기 12”도 일본에서 사실 그다지 잘 팔리지는 않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미래에 스타가 될 가능성이 없는 밴드의 음악이라도 우리가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음반을 릴리즈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이 어떤 점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는지는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감동과 매력을 느끼는 지점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니까.    

도쿄의 훌륭한 레코드 숍들은 도쿄를 문화적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로 만드는 일에 크게 이바지했다. 레코드 숍의 오너로서 최근 도쿄의 음악 트렌드와 지형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N: 세계가 바이닐 레코드에 관심을 잃은 70년대 후기부터 90년대까지 일본에서는 엄청난 레코드 붐이 일었다. 어쩌면 시부야계(Shibuya-kei) 음악의 약동이나 힙합 붐에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시부야 크로싱을 건너는 사람 아무한테나 돌을 던져도 십중팔구 레코드 숍 가방을 든 사람을 맞출 것’이라는 농담이 있었는데, 정말 그 정도의 붐이었다. 그 시기에 미국, 영국, 유럽, 브라질, 러시아 등지에서 일본 바이어들이 수입해 온 수천 톤의 바이닐 레코드가 RSD 덕분에 레코드가 다시 인기를 끄는 현재까지 대부분 일본에 남아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그 덕분에 환상적인 중고 레코드 숍들이 아직 일본에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거니까. 일본의 바이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시티 팝을 위시한 일본 음악이 큰 인기를 끌며 호소노 하루오미(Haruomi Hosono), 오누키 타에코(Taeko Onuki), 야마시타 타츠로(Tatsuro Yamashita) 등의 80년대 음반이 리이슈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리이슈 음반들은 새롭게 뿌리내린 문화를 기반으로 재탄생된 것이 아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대기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니까. 7, 80년대 일본 대중음악이 지금 들어도 훌륭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최근 시티팝 현상은 외국인들에게는 새로울지 몰라도 우리 일본인들에게는 조금 민망한 구석이 있다. 음악 자체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최근 일본에 새로운 음악 트렌드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과거의 선배들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나날이 증가하는 바이닐 판매량에 관한 당신의 생각도 들려달라. 

N: J팝이던 K팝이던 간에 새 음악이 바이닐의 형태로 발매되는 건 기쁜 일이다. 스포티파이(Spotify)에 익숙한 인터넷 네이티브 세대가 다음 매체로 바이닐 레코드를 선택했다는 소식은 날 행복하고 기쁘게 만드는 진정 꿈같은 소식이지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하나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리이슈 열풍이 더 사그라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미공개 곡을 바이닐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중고 레코드 숍에서 이미 단돈 몇백 엔에 팔리는 바이닐까지 리이슈해야하는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물론 유명 아티스트의 이름이 박혀있다면 몇천 장 팔아치우며 돈을 좀 만질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레코드 공급이 포화 상태에 도달해 종국에는 소비자들이 관심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능하다면 새로운 얼굴의 밴드와 아티스트의 음악을 바이닐로 출시했으면 좋겠다.   

빅러브 레코즈는 어쩌면 현재 일본에서 중고 음반이 아닌 신보만 취급하는 유일한 레코드 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음반이 없다는 것은 곧 20년 후에 중고 음반이 없다는 의미다.    

하루카는 다양한 브랜드와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시에 이케바나에 열중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비전문가의 시선에서 볼 때, 최근 문화의 흐름과 이케바나의 철학은 다소 상반되는 요소를 지닌 것 같다. 예컨대 트렌드의 소음과 이케바나의 정적 그리고 트렌드의 새로움과 이케바나의 전통. 이케바나는 당신의 직업과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다! 나는 일본의 삼대 이케바나 유파 중 하나인 소게츠(Sogetsu) 유파의 인증을 받은 이케바나 아티스트인데, 소게츠류의 철학은 비자연적인 재료까지 포함한 모든 재료를 통해 스스로를 정돈하고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소게츠류는 이케바나의 전통적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을 권장한다. 실제로 소게츠 유파를 창시한 데시가하라 소후(Sofu Teshigahara)는 앤디 워홀(Andy Warhol),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등의 아티스트와 절친한 친구였으며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니까, 나 또한 전통적인 방법론에서 벗어나 나에게 가장 솔직한 방법을 따르면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6세기에 시작되어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케바나에 ‘전통적인’ 순간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가 겪은 바에 따르면 이케바나에 즉흥적이고 격 없는 태도는 지양된다. 항상 스승과 학우를 존중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며 작품을 만드는 내내 책상 위를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 이케바나 수업을 처음 들었을 무렵에는 어딘지 차갑고 무뚝뚝해 보이는 선배들의 인상에 주눅이 들어 최대한 검소한 옷을 입고 깍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갈수록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이케바나로 나를 표현하는 일에 자신감을 얻은 지금은 다리 혹은 어깨가 노출된 옷을 포함하여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맘 편히 입는다. 의외로 이런 내 모습을 선배들도 반기며 딸에게 하듯 ‘너 너무 귀엽다!’라는 칭찬을 해주시곤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기본을 익히고 난 후에는 앞서 길을 개척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모두 겸비할 줄 아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내가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준비 과정과 끝난 후 정리하는 과정의 중요성인데, 이 교훈은 내 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쳐 나를 좀 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며 언제나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 것. 언젠가는 사람들이 내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아볼 날이 온다. 결국, 끝없는 배움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나는 GR8 매장 인테리어를 위해 매주 이케바나 작품을 만들고 있으며, 알릭스(Alyx)의 쇼룸 이케바나를 담당했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꽃을 사랑하는 사람과는 얼마든지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 

최근 참여한 몇 가지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 가보자. 헤븐(Heaven by Marc Jacobs)의 첫 룩북에 모델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브랜드와 룩북이 일본의 후루츠 매거진(FRUiTS Magazine)과 로컬 스트리트 패션에 존경을 표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의 아바(Ava)가 먼저 섭외 요청을 해와서 참여했다. 너무 순탄하고 재미있는 촬영이었는데, 내가 평상시에 입는 스타일로 스타일링하도록 허락해줬을 뿐 아니라 심지어 배경에 빅러브 레코즈 로고가 노출되는 것도 허락해줬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빅 브랜드와 협업할 때 나와 내 브랜드가 이용당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고 있다. 많은 브랜드가 단순히 그들의 캠페인 달력을 채우기 위해 언더그라운드와 인디펜던트 문화를 이용하니까. 그들에게 한 번의 실수는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이지만, 우리 같은 작고 독립적인 사업체에는 한 번의 작은 실수가 치명적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협업 제안 대부분을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다행히 마크 제이콥스에게서는 문화를 향한 진정성을 느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지금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최근에는 입스 튜머(Yves Tumor)의 ‘Applaud’ 7” 한정판 바이닐에 일어 가사 번역을 맡았다. 일본에는 해외 음반 가사를 일어로 번역해 판매하는 일이 일반적인지 궁금하다. 어떻게 맡게 된 프로젝트인가?

일본식 영어 교육은 진짜 수준이 낮다! 모든 부분에 번역이 필요하다. 특히 일본 리스너들은 음악을 들을 때 가사에 상당히 집중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아티스트의 가사를 번역했는데, 리스너들이 아티스트의 언어를 통해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이번 입스 튜머 음반은 워프 레코즈(Warp Records)가 특별히 이 7”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락해줘서 번역 가사를 넣은 쪽지를 추가해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 언어를 사랑한다. 언어는 정말 아름답고, 잔인하며 순수하다. 나는 언어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브랜드 및 프로젝트와 일하고 있다. 그 밖에도 개인적으로 욕심이 생기는 프로젝트나 분야가 더 있을까?

이케바나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해보고 싶다. 어쩌면 가짜투성이 패션 신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도 내게 조금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 최근에는 음식을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제작하는 일도 하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감자튀김 먹기. 

Haruka Hirata 인스타그램 계정
Big Love Records 공식 웹사이트


에디터│James Kim Junior
사진 출처│Haruka Hir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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