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에 발매된 Aunt Sally의 유일한 풀렝스 앨범 [Aunt Sally] 재발매 소식

일본 오사카와 고베를 기반으로 활동한 포스트 펑크(Post Punk) 밴드 앤트 샐리(Aunt Sally)의 유일한 풀렝스(Full-length) 앨범인 [Aunt Sally]가 재발매된다. 1979년에 발매된 앨범은 당시 19세였던 모리타니 히로미(Hiromi Moritani)가 70년대 음악계를 주름잡던 포스트 펑크 유행에 뛰어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음악으로 표현한 음반이며 바이닐(Vinyl)로는 1984년 이후 첫 재발매이다.

1977년, 17세였던 모리타니 히로미는 머나먼 영국 런던까지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공연을 보러 가가서 예상치 못한 광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내 오사카로 돌아와서 밴드를 결성하는데, 비케(Bikke)라는 이름의 첫 밴드는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멤버를 꾸린 팀이었고 더 후(The Who)와 라몬즈(The Ramones)의 곡을 커버하며 라이브하우스를 옮겨다녔다. 그렇지만 같은 곡을 반복해 연주하는 것에 염증을 느낀 모리타니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앤트 샐리를 결성하기로 마음먹는다. 

비케의 77 펑크나 개러지 펑크(Garage Punk)는 역동적인 사운드와 달리 앤트 샐리는 19세이던 모리타니의 날 선 성향과 함께 텔레비전(Television), 바우하우스(Bauhaus),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 등의 그룹처럼 포스트 펑크 특유의 예술 감각이 더해진 밴드로 거듭났고 이는 그의 음악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된다. 앤트 샐리 이후 1980년에는 퓨(Phew)라는 이름으로 전자음악을 연주하는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 그리고 크라우트 록(Krautrock)의 대표적 밴드인 캔(Can), 아인슈튀어첸데 노이바우텐(Einstürzende Neubauten) 등의 멤버들과 함께 작업했다. 또한 앤트 샐리의 [Aunt Sally] 앨범 커버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고레에다 히로카즈(Hirokazu Koreeda), 테라야마 슈지(Shuji Terayama), 짐 자무쉬(Jim Jarmusch) 등 음악계와 영화계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마사요시 스키타(Sukita Masayoshi)의 작업물로 알려져 있기도.

앤트 샐리의 앨범 재발매를 앞두며 모리타니는 인터뷰를 통해 “아직 펑크가 런던을 휩쓸고 있을 당시에 내가 앨범을 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점이다”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또한 “앤트 샐리가 결성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앨범이 나왔고 섹스 피스톨즈는 해체했다. 중요한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섹스 피스톨즈가 나에게 펑크였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밴드의 해체에 관해 설명했다.

Aunt Sally 밴드캠프 계정
Phew 밴드캠프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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