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진 도서관 #2···8/28

진(Zine)이라고 불리는 ‘DIY’ 출판물은 개인 또는 소규모 공동체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조직하는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다. 가끔 그 목적은 개인의 기록에 있고, 타인과의 네트워킹에 있으며, 가볍고 빠르게 어떤 결과물을 산출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도 활용된다. 이처럼 개인과 집단에게 열린 가능성을 제공하는 진은 가공의 스포츠, 퀴디치의 공처럼 눈에 잘 띄지 않고 무질서하게 부유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그 궤적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가상의 진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는 기획 기사 바벨의 진 도서관은 총 28팀(29인)이 기증한 진들을 통해 새로운 독자와 진을, 그리고 진과 진 사이를, 또는 진의 이러한 특징을 애호하는 이들을 연결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도서관은 남은 6회에 걸쳐 찾아올 예정이다.

*답변은 23년 10~12월 사이에 취합되었습니다. 답변자의 답변은 원문 그대로 표기했습니다.

최민석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최민석이다. ‘cross4ire’라는 ID를 사용하고있으며, 최근에는 ‘DiceKey’라는 TRPG모임을 즐겨하고 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제작자이자 수집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 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ARTIFICIAL ARTIFACT의 8번째 에디션으로 그간 Ed Davis가 작업해온 커머셜 / 논커머셜 작업을 붉은 색지에 1도로 프린트한 진이다. 도쿄 하타가야의 한 작은 갤러리이자, 편집샵이자 독립출판사인 @ccommune에서 Brain dead, Ed Davis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걸로 알고있다. 어떤 이유로 LA와는 멀고도 먼 도쿄의 갤러리와 협업 관계를 맺게된지는 모르겠으나, SF(San Fransisco) Bookfair를 위해 제작된 걸로 보여진다. 겉면에는 형광색 별주 스티커가 붙어있으며 갤러리 ccommune의 인스타그램에 재생산할지 몰랐다며 1쇄이라고 쓰여져있는 부분을 스티커 수작업을 통해 2쇄로 고치는 대담한 결정을 했노라 고백한 점이 인상적이다. 아마 형광별색 스티커 단가가 꽤나 비쌌던 모양이다. 또 브랜드이자 레이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의 ‘2017-2021 그래픽 아카이브 미니북’을 소개하고 싶다. 인터내셔널의 4년간의 여정을 담은 손바닥 사이즈의 미니 진인데, 평소 존경하던 디자이너 ‘임솔’님을 아마 처음 만나게 된 계기였다. 그야말로 디자이너의, 브랜드의 에센스를 모아놓은 미니 진이고, 이걸 얻기 위해 한달음에 웰컴레코즈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한 10년 뒤에 미니 진이 아닌 정규형태의 인터내셔널 아카이브 북을 발매할 날을 응원한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Ed Davis의 작업을 존경한다. 그리고 더욱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작업의 양에 있다고 보는데, 이정도 분량의 그래픽 진을 여덟번째 에디션까지 발매했다는 것은 그 방대한 작업양의 증거이지 싶다. 이따금 작업이 안될때면 존경하는 디자이너의 진을 꺼내 자극제로 사용하곤 하는데 아주 합리적인 진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진을 끝까지 음미해보진 못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는가?

최근에는 Dicekey의 진을 만들었다. 또 실크밸리프레스라는 단체로 ‘Sweet Spot’이라는 로컬 기반의 진을 제작 및 판매했었는데, 이때의 기억은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으나 대부분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결국 우리가 생각한 우리 도시는 틀리지 않았어…”라는 증명의 시간이었던 것 같고,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나는 김포를 떠나게 됐고 서서히 김포는 망가져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자체로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진 제작자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컬트(@seoul_cult)님을 소개하고 싶다. 워낙 진 매체를 다뤄오기도 오래 다뤄오셨고 판매도 지속적으로 제작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 중복의 여지가 있지만, 독창성, 독립성, 접근성을 모두 지닌 ‘진 퍼블리셔’라고 칭하고 싶다. 일전에 뵌 이후로 만나 뵈진 못했으나 서울 곳곳의 서울컬트님의 ‘Global Trend’를 마주치며 반가움을 느끼곤 한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진은 결함이 있어야 진이지 않나 싶다. 완벽하다면 진이 아닌 매거진, 출판물 등 더 상위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포켓몬스터 게임에서 특정 조건을 성립해야 진화하는 포켓몬이 그 특정 조건하나 때문에 평생 진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완벽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 진화해 버려아 하는 것… 그게 진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판단요소 아닐까?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진의 최고의 매력은 접근성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에도 가정용 프린트든 사무실에 비치된 복합기든 진을 찍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튜브에 중철제본, 실제본, 사철제본 등 제본 관련 검색만 해도 각자의 진을 만들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내용이 어떻든 간에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드는 결과물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장재혁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장재혁/VISLA에서 일하고 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수집가도 제작자도 아니다. 다만 이제 하나 만들어 보려 한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白い花びら-JUHA’. 사실 진이라고 했을 때, 이걸 가장 먼저 생각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종이로 만들어진 무언가 중에는 가장 애착이 간다. 핀란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유하(JUHA)>에 관한 진? 책?이며, 내용이나 영화 사진, 감독 사진 인터뷰, TMI 등이 담겨 있는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유하”는 99년도작인데, 아마 일본에는 아마 이듬해 개봉했지 싶다. 그래서 아키가 00년도에 일본에 방문한 거겠지. 아무튼 “유하” 개봉에 맞춰 일본 아트 시네마 ‘유로 스페이스’에서 제작한 진 겸 팜플렛 겸 책 같은 물건이다. 기존 영화 팜플렛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실한 내용으로 꽉 찬 책이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발간된 아키 카우리스마키 관련 다른 책 혹은 진 등을 모아봐도 그 수준이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디지털보다는 실물 활자에 더 알짜배기 정보가 많구나 싶었다. 아키가 일본인 보다 스시에 와사비를 많이 넣어 먹는다거나, 술에 취해서 기자회견에 늦었다거나 하는 이야기 혹은 전봇대를 밟고 담을 넘는 사진 같은 것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거의)무성 영화인 “유하”의 특징을 잘 살려 마지막에는 컷 별로 사진을 작게 배치했는데 그게 압권이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아직이지만 곧 해보고 싶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내가 소개한 진에 삽화가 하나 있는데 오타케 신로(Shinro Ohtake)라는 일본 아티스트가 영화의 한 장면을 그린 거다. 그가 누구인지 뒷조사를 좀 해보니 진 같은 형태의 예술작품을 46년 동안 만들어온 어마어마한 분이더라. ‘ZINE’하면 떠오르는 자유분방하고 거친 매력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그가 만들어 놓은 진 진열장을 보면 박물관 같은 경건함도 든다. VISLA에도 소개한 적 있으니 참고해 보시길…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ZINE’하면 떠오르는 건 빤딱빤딱한 종이의 인쇄물보다는 DIY로 비뚤빼뚤 만들어진 게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것 외에는 애매한 선에 걸쳐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집(ex사진집, 수필집)’이나 책으로 분류하는 게 맞지 싶은데 그러고서 내가 이런 진을 택해서 좀 민망하다.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폼을 덜 잡는 거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까불거리는 내용을 담을 수 있고 읽는 입장에서도 그 편이 훨씬 즐겁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초심자로서 누가 만드는 방법 좀 자세히 알려주면 매우 감사할 것 같다.

임솔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임솔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아니요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Mieuxxx – Broken Diary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인터내셔널 론칭 4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제작했던 그래픽을 거의 모두 모아서 소책자로 발행하고 배포한 경험이 있습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일본인 사진가/뮤지션 친구인 Mieuxxx 가 코로나 시기에 뉴욕을 여행하며 체험한 것들을 적어 각각 일본어와 한국어판으로 발행했습니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인쇄된 실물은 일본어판으로, 후에 한국어 번역판을 pdf 파일로 받았습니다. 브로큰 다이어리라는 이름도, 출판해서 나눠주는 행위도 재밌게 다가왔고 독특한 사적 경험을 글로써 간접체험 할 수 있도록 공유해줘서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wreckpack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제작 목적에 따라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구분이 왜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얼마든 자유롭게 창작하고 결말을 지어서 외부세계에 내보일 수 있다는 점.

서울컬트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최원겸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본인이 제작한 것 제외).

2023년 9월 Waiting Room에서 구입한 진 두 권입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1) Lo Yi Fan, <Ninja Turtles>
대만 작가 Lo Yi Fan이 1990년 초등학교 재학 중 그린 만화가 실린 진입니다. 오리지널 <Ninja Turtles> 스토리에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작가 본인은 90년대 대만, 홍콩, 일본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2) ID-TW POP BUREAU, <POPLETTER Issue #1>
ID-TW POP BUREAU에서 발간한 뉴스레터입니다. 대만과 인도네시아 뮤지션을 소개합니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오래 고민해 봤는데 과연 어떤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는지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친구가 좋아할 것 같은 진이 보이면 사뒀다가 선물하기도 합니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ditor | Jieun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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