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 MARTIN (THE PHOTOCOPY CLUB)

지난 3월, 미 대륙 곳곳을 누비며 촬영한 풍경 사진을 모아 ‘American Xerography in Colour’이라는 책을 출판한 영국인 포토그래퍼 맷 마틴(Matt Martin). 사진집만 봐서는 유별난 점을 찾기 힘들지만, 그의 이력은 사실 꽤 화려하다. 언더그라운드 예술을 서포트하는 런던의 둠드 갤러리(Doomed Gallery)에서 큐레이터로 일했고 지금은 사진 문화 공간 포토 북 카페(Photo Book Cafe)의 이벤트 매니저로 일하는 그는 사진가, 큐레이터 그리고 가장 대표적으로 전시 프로젝트 포토카피 클럽(the Photocopy Club)의 운영자다.

그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포토카피 클럽에 관한 간략한 소개를 덧붙인다.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전시 ∙ 출판 프로젝트인 포토카피 클럽은 공개 모집을 통해 사진을 받아 전 세계 다양한 도시에서 사진전을 개최한다. 아마추어와 전문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본 프로젝트는 누구나 자신의 사진을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전시 작품을 저렴하게 판매하여 전통적인 갤러리의 장벽을 낮춘다. 한가지 더 특별한 점이 있다면 전시되는 모든 작품이 제록스(Xerox) 복합기를 이용해 복사 ∙ 출력된 흑백 사진이라는 점. 거친 그레인(Grain)으로 뒤덮힌 사진들은 과거 저렴한 펑크 잡지와 공연 플라이어(Flyer)에서 본 듯한 그래픽으로 변모하여 포토카피 클럽만의 독특한 개성을 완성한다.

서론이 길었다. 전 세계 아날로그 사진 커뮤니티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맷 마틴과 나눈 짧은 필담을 아래에 남긴다.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포토그래퍼, 큐레이터, 편집자 그리고 인터뷰어로 일하는 맷 마틴이다. 포토카피 클럽을 2011년에 시작했고, 둠드 갤러리의 큐레이터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일한 후 현재는 런던의 포토 북 카페에서 이벤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포토카피 클럽은 사진가들이 흑백 프린터로 출력한 사진을 공모하여 세계 곳곳에서 그룹 전시회를 여는 전시 프로젝트다.

전시회, 진(Zine) 출판, 토크 세션 등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당신이 담당하는 수많은 일에 코로나 19(COVID-19) 팬데믹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모두에게 혼란스러운 시기일 거다. 나의 경우 포토 북 카페가 문을 연 2019년 10월부터 함께 일을 해왔는데,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으로 계획해 두었던 1년 치 이벤트가 전부 무산되었다. 하지만 DIY 예술 커뮤니티가 언제나 그래왔듯, 우린 우리에게 남은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사진을 둘러싼 토론과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 셧다운 세션(SHUTDOWN sessions)이라는 온라인 토크 세션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12회 정도 진행하며 더 많은 관객에게 우리의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있다.

우선 당신의 커리어 초기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의 작품과 프로젝트에 펑크(Punk) 문화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다. 펑크 문화와 유스 컬처(Youth culture)가 어떻게 당신을 사진과 독립 출판의 길로 이끌었는지 궁금하다.

펑크 음악은 내게 모든 것의 시작이며, 사진에 빠지게 된 계기다. ‘아무도 네가 원하는 일을 해주지 않는다’, ‘네가 원하는 것은 스스로 성취하라’라는 식의 펑크 정신을 사랑한다. 펑크 뮤지션들이 기타 코드 3개만 배우고 바로 밴드를 시작하듯, 포토그래퍼도 작품을 사무용 복합기로 출력해서 책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저렴하고 부담 없이 세상에 내 작품을 알리는 방법이지.

개인적으로 나는 인터넷의 태동기에 자랐기 때문에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점을 모두 보고 자랐다고 생각한다. 과거 세대의 교훈과 온라인 세대의 초연결성 모두에 익숙한 거지. 다들 나와 비슷할 거다. 인터넷 덕분에 펑크 록에 밀접한 배경을 가진 애들 중 카메라를 가진 몇몇이 죽여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지금 그 커뮤니티들이 엄청난 결실을 낳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도시에서 전시를 여러번 진행했는데, 모집한 사진 중 각 전시에 적합한 것을 추려내는 과정이 꽤 힘들 것 같다. 전시에 맞는 사진을 고르는 당신만의 기준이 있나?

기준이랄 건 없다. 그냥 하는 거지. 모든 작품을 갤러리 바닥에 죽 깔아 놓고 보면, 내 안에서 전시회가 자라나고 형태를 갖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청소년 시절 자신의 방을 포스터와 사진으로 직접 꾸며 본 적이 있다면 그 느낌을 이해할 것이다. 결국엔 느낌과 사진들의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하지. 느낌이 오는 사진을 벽에 붙인 뒤 정말 어울리지 않는 몇 장의 사진만 변경하고, 더 바꿀 게 없다는 느낌이 오면 자연스럽게 선정 작업을 마친다.

전 세계에서 사진을 모집하는 만큼, 각 도시와 지역마다 느껴지는 작품의 특징이 있는지 궁금하다.

글쎄, 꽤 다양한 작품이 온다. 사실 포토카피 클럽 이전 2006년에 위아러키(wearelucky)라는 사진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블로그에 올린 사진이 대부분 어린 애들끼리 멍청한 짓 하는 장면이다 보니 그와 비슷한 느낌의 사진이 많이 오곤 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들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사진의 스펙트럼이 꽤 넓어졌고, 이젠 진짜 다양성을 갖췄다고 자부한다. 흑백 프린터로 출력된 사진을 모집하다 보니 실험적으로 출력된 작품이 오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전통적인 사진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다. 인물 사진, 풍경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을 중점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대부분 갓 떠오르는 젊은 사진가들을 위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젊은 세대 포토그래퍼들의 특징이라면 무엇일까? 어떤 점이 좋고 무엇이 아쉬운가?

굳이 복합기를 이용해 복사 ∙ 출력한 사진을 모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과정에서 포토그래퍼 개개인의 스타일이 흐려지고 날 것의 이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과정 자체가 프로와 아마추어 간의 실력 차이를 줄이며 전시장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등하게 만든다. 개인적인 선호를 말하자면, 이전에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선호했다. 버려진 건물과 사유지에 무단침입해서 찍은 사진이라거나, 잔뜩 취해서 기차 뒤꽁무니에 달라붙은 사람을 찍은 사진 따위지. 아쉬운 점이라기보다는, 내가 나이를 먹으니까 좀 더 전통적인 사진이 좋아지더라. 포토카피 클럽이 좋은 점은 이 두 가지 사진을 모두 볼 수 있으며, 둘의 상호작용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포토카피 클럽을 통해서 지금까지 젊고 재능있는 사진가를 여럿 만났을 것이다. 그 중 특별히 인상 깊었던 이가 있다면?

포토카피 클럽 초창기에 가장 먼저 사진을 보내온 이들 중 한 명인 크레이그 맘마노(Craig Mammano)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포토카피 클럽의 진정한 친구이자 존경할만한 사진가가 되었다.

둠드 갤러리의 큐레이터로 근무한 이력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다. 펑크 성향이 강한 갤러리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반적인 갤러리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또한, 갤러리 큐레이션을 할 때 특정한 목표나 콘셉트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그냥 존나 펑크로 저렴하게 운영하는 것이 목표였다. 굳이 설명하자면 사진 예술을 중심으로 런던 로컬 작가와 해외 작가를 적당한 비율로 소개할 것 그리고 정해진 규칙이 없는 공간을 만들 것. 둠드는 정말 멋진 공간이었고 전시 작가 모두 최고의 쇼를 보여주었다. 매 전시회가 재미있는 놀이였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자라나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공간이었지. 사진 업계의 것이 아닌 ‘우리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이미지 큐레이션 플랫폼으로서 인스타그램이 활성화되었고, 온라인에서 사진을 전시 및 아카이빙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더욱이 파리 포토 NY(Paris Photo NY)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가 올해 코로나 19사태로 온라인에서 이벤트를 진행할 것을 발표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은데, 여전히 오프라인 전시회가 젊은 포토그래퍼들에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SNS가 큐레이션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작품을 오프라인에 전시하는 일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책이나 벽에 걸린 작품을 통해 보았을 때 가장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작품을 갤러리 너머, 길거리와 수많은 기타 공간에서 소개해야 한다. 그래서 내겐 북 페어가 정말 중요하다. 북 페어 같은 오프라인 행사들이 진짜 커뮤니티를 형성하거든. 지금껏 우린 SNS에서 커뮤니티의 뼈대를 만든 후 오프라인에 그 커뮤니티를 가져와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해왔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가장 잘 소개하는 문구로 ‘DIY 아니면 죽음을(DIY or DIE)’이라는 문구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왜 DIY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의 인플루언서나 유튜브 스타들을 보면 상당히 정신 나간 구석이 있다. 내 말은, 그러니까 그들은 종종 좋지 않은 의도에서 시작한 일을 바이럴하게 부풀려버리는 데 일조하기도 하거든. 사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는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요즈음 세대는 온라인으로 티브이 채널, 잡지, 라디오 스테이션 등 자기가 원하는 모든 플랫폼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젊은이들에게는 항상 이런 DIY 정신이 있게 마련이다. 다만, ‘DIY 아니면 죽음을’의 진정한 의미는 나만을 위한 것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도움이 될 것을 시작하라는 말이다. 가령, 스스로 어떤 공간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전수하거나, 전시회를 열어 더 많은 노출이 필요한 예술가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등의 일이다.

당신은 또한 진 문화의 최전방에 서서 전 세계에 그 문화를 알리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진의 기준을 듣고 싶다.

좋은 진의 요소는 정말 다양하다.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가 출판 과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요소가 좋은 진을 만드는지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예시를 들어 설명하자면, 사진 관련 진 중에서 햄버거 아이즈(Hamburger Eyes) 같은 진을 좋아한다.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나.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흑백 거리 사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포토카피 클럽이 출판한 진 중 딱 한 권만 추천해 본다면?

부틀렉 보이(Bootleg Boy)의 ‘모에 진(Moe Zine)’. 단순히 재밌기도 하고, 내가 심슨(The Simpsons)를 워낙 좋아해서.

포토그래퍼로서 맷 마틴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가자. 최근 ‘American Xerography in Colour’라는 사진집을 출판했는데, 다큐멘터리 사진과 인물 사진 위주의 초창기 작업에서 풍경 사진으로 넘어간 변화가 흥미롭다. 어떤 계기로 관심사가 바뀌게 되었나?

나이를 먹었다. 하하. 사진을 더 많이 배우면서 이전과 같은 주제를 더는 찍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 패션 업계에서 잠깐 일해 본 후 돈 버는 사진을 찍는 일에 질색하게 되었다. 더는 거대한 팀에서 마감에 쫓기며 사진 찍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유유자적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창문 너머 보이는 세상을 사진에 남기고 싶다. 나와 카메라 단둘이 차에 올라타 끝없이 펼쳐지는 도로를 달리며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과정을 즐긴다.

미국 대륙 횡단(American road trip)이란 주제는 포토그래퍼들에게 더 이상 새로운 주제가 아니지만, 외국인인 당신이 미국을 보는 시선은 분명 새로운 구석이 있을 것이다. 포토그래퍼로서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국만의 특징이 있는가? 아니면 당신이 찾고 있는 특정한 미국의 이미지가 있나?

사진을 찍는 순간에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이 뒤섞여 나타난다. 내 책을 봤다면 알겠지만, 반복되는 주제가 몇 가지 있다. 자동차, 스트립 클럽, 광활한 풍경, 버려진 공장 그리고 가정집. 이게 진짜 미국일까? 아니면 과거의 사진, 영화, 잡지에 영향을 받아 이미 내 머릿속 한 쪽에 굳어져 버린 남성주의적 이미지들인가? 아직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내 사진이 새로운 담론을 끌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 책 한 권만으로 그런 대답을 얻긴 힘들겠지. 이 책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거의 없다. 그저 2달이라는 기간 동안 좋은 사진을 찾아다닌 개인적인 여정의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2020년 하반기를 앞둔 당신의 계획이 궁금하다.

살아남기(Staying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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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김용식
사진 출처│ Matt Martin